나의 결핍을 찾아서, 그리고...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강연이 있었다.
그 강연을 실시간으로 보지는 못했다. 그래서 강연의 전문을 찾아 읽어내렸다.
그런데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강연의 시작이자 끝이었던 가치, ‘사랑’이라는 가치와 맞닥뜨렸을 때 나는 질문에 부딪혔다.
왜 거의 모든 교수님들과 사람들이 입을 모아 ’결국은 사랑이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인가.
도대체 사랑이란 무엇인가?
전 인류에게 해당되는 이 큰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나는 나에 대해서 먼저 알아야했다. 나에게 사랑이란 무엇인가.
가정 폭력과 잇따른 관계 실패로 나는 사람을 이따금씩 나와는 다른 존재인 것처럼 ‘인간’이라 짓씹어 부르곤 했다.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신뢰를 잃은지 오래고, 그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참으로 많이 노력했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별안간 나도 인간이라는 존재라는 것을 느낄 때에는 나에 대한 혐오감도 일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이런 나도 사랑이 샘솟아 나고, 사람에게 사랑을 주며, 사랑을 받기를 원한다.
내 머리로는 더 이상 해결할 수 없어 이 글을 쓰기 위해 사랑에 관련된 글들을 많이 읽었다. 유튜브 영상도 시청했고, 사람들이 커뮤니티에 올린 글도 보고, 책의 구절들도 읽었다.
어느 날은 갑자기 헌신하다 헌신짝된 내가 생각나 울컥하기도 했고, 사랑을 그토록 갈구하던 내가 안쓰러워 눈물이 나기도 했다.
그런데 어떤 글이 나의 가슴을 울렸다.
나의 결핍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채워주는 사람을 만나라고. 그러면 된다고.
나는 무엇을 사랑이라고 인식하는가.
나는 내 옆에 있어주는 사람을 원한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나의 친모는 언제나 짐을 싸서 집을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나는 항상 불안했었던 내가 떠올랐다.
그래서일까. 나의 곁에 있어주는 것 자체를 사랑이라고 여긴 것이.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떠나가는 것이 나의 결핍이었고, 곁에 있어주는 것이 내가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사랑의 표현이다. 가타부타 말이 필요없는 그 존재가 말해주는 사랑.
나에게 사랑이 ‘함께 존재해줌’ 그 자체라면, 인류에게는 왜 사랑이어야만 할까.
사랑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이라는 정의가 나온다.
인간이 어떻게 다른 인간을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길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인간에 대란 근원적인 신뢰가 무너져버렸고, 인간을 그렇게까지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가늠할 수가 없다.
평생 나를 알아가듯 사랑 또한 평생 알아가야하는 숙제인 것일까?
왜 사랑이어야만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