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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에게 묻다 - 3장 : 몽환〔夢幻〕

by 준서 Mar 24. 2025

  어느덧 3월 말이 찾아왔고, 이 말은 3월 모의고사를 목전에 두고 있다는 뜻이었다. 슬프게도, 선생님들 이름을 외우고 친구들과 친해질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곧 시험 당일이 찾아왔다.     

  “여러분, 고등학교 올라와서 모의고사는 처음 보는 거죠? 이거는 중학교 때 봤던 지필평가하고는 아주 달라요. 문자 그대로 모의고사예요.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이 시험은 전국 단위로 보는 겁니다. 분명 처음 보는 지문들 많이 나올 텐데, 나만 어려운 게 아니라 모두가 어려워하는 지문이랑 문제들이니까 혼자 망칠 거라 생각해서 너무 긴장하지 말고, 시험 잘 봅시다. 화이팅!”     

  선생님의 응원을 뒤로 하고 일정은 모의고사 시간표대로 정확히 흘러갔다.

  나는 시험 처음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국어는 도대체 내가 한국인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난이도였다. 작년의 악몽이 다시금 떠올랐고, 내 멘탈은 도미노처럼 차례차례 무너졌다. 시험 점수도 함께. 수학, 영어, 한국사, 사회탐구까지.

  해가 뜨고 좀 지나고서부터 해가 기울기 시작할 무렵까지 온종일 시험지만 붙들고 있었다.

  아침에 선생님이 하신 말씀은 절대로 과장이 아니었다.     

  “모의고사 점수는 어떻게 됐어?”

  “아, 그게….”

  “그래도 올해는 정신 바짝 차리고 잘 봤지?”

  “아, 저 원점수가.”

  “원점수가?”

  “일단 수학이 30점….”

  “….”

  다른 과목의 점수를 하나하나 부르는 동안에도 엄마의 얼굴 근육은 단 한 번도 꼼짝하지 않았다. 




  봄날의 아침은 말없이 모든 것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 간간이 새들이 지저귀고, 벌써 출근하는 부지런한 사람들은 자동차 엔진 소음을 거리에 뿌리며 지나가고 있었다. 그저 멈추어있는 커튼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맑고 푸르게 저 너머까지 펼쳐져 있었고, 벚나무들은 지금이 적기인 듯 분홍빛 꽃잎을 가득 머금고 있었다.

  …. 내 아름다운 말을 핸드폰의 진동이 끊고 말았다.     

  “나연우, 너 언제쯤 출발할 거야?”
   “아, 미안. 나 이제 출발할 거야.”

  “한 몇 시쯤에 도착할 거 같은데?”
   “일곱 시 반 전에는 도착해.”

  “그래, 알았어. 끊어.”

  “어.”     

  어느덧 완연한 봄이 찾아왔다.

자연물과 인공물이 조화롭게 배치된 창밖의 풍경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지만, 나는 이런 그림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중간고사까지 한 달이 채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며칠 전, 모의고사가 끝난 다음 멘토링 활동이 시작되었다. 나는 수학 멘티로서 박지민에게 도움을 받기로 했다. 박지민은 수학 멘토를 해주면서 복습과 동시에 생기부도 채우고, 나는 부족한 과목 중 하나인 수학을 좀 보완하고. 서로 좋고 좋은 일이었다.

  다만, 내게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쉬는 시간에는 물 마시고 화장실 갔다 와서 밀린 숙제를 하거나 영어 학원의 숙제 중 하나인 영어 단어를 외우기에 바빴고, 오후에는 학원 일정이 줄지어 있어 절대로 시간을 낼 수가 없었기에, 꼭두새벽에 일어나 해가 떠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학교에 와야 유의미한 아침 공부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월요일의 새벽 같은 아침부터 학교로 나서게 된 것이다.

  가방은 어젯밤에 싸놨기에 나는 몸만 준비해서 가면 됐다. 무거운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고 재빠르게 준비를 마친 다음 집을 나서며 인사를 했다.

  “갔다 올게요.”

그 말과 함께 몇 걸음을 더 걸어가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등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양옆으로 벚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어림잡아 200m쯤 되어 보이는 길을 걷다 보면 왼쪽에 교문이 나왔다. 만개한 벚꽃은 섬세하고 화려하여 보기 좋았지만, 나는 시험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1분 1초도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나는 곧 계단을 올라가 교실로 갔다. 교실의 불은 이미 켜져 있었다.     

  “어, 나연우. 이제 왔네?”

  “좀 늦었지, 미안.”

  “담엔 조금 더 일찍 와. …아, 물어볼 거 챙겨왔지? 수학 문제집이라던가, 모의고사 틀린 문제 같은 거.”

  “그럼. 나 되게 많이 가져왔어. 아침에 가방 너무 무거워서 납작해지는 줄.” 나는 그 말과 함께 가방에서 곧장 책 한 무더기를 꺼냈다.

  “와…, 진짜 많네.”

  “다 알려줄 수 있겠어?”

  “시간이 되려나 모르겠다. 일단 하루 만에 다 할 필요는 없으니까, 오늘 되는 데까지 해보자.”

  “응.”

  내 짧은 대답과 함께, 박지민은 안경집에서 안경을 꺼낸 후 안경닦이로 안경알의 앞과 뒤를 문질러댔다. 곧 안경을 쓰더니, 내가 올려놓은 책 무더기 중에서 가장 위에 있는 책을 집어 펼쳤다. 박지민은 빠르게 책을 훑으며 넘기더니 곧 붉은 비가 내리는 곳을 발견하고는 문제를 훑기 시작했다.

  옆에서 그 행동을 지켜보면, 참 대단한 모습이 아닐 수가 없었다. 이제 와서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박지민을 동경했다. 어쩌면 동경을 넘어, 내가 그 아이처럼 될 수 없는 사실에 묘한 열등감에 사로잡혔던 걸지도 모르겠다. 객관적으로 봐도 못 하는 게 없는 아이니까. 

  나도 저렇게 가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게 정말이지 부러웠다. 단순히 부러움만 느끼는 것이라면 동경이라 할 수 없겠지만, 이따금 부러움을 넘어 나도 저런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기에 나는 그 감정을 동경이라 칭했다.

  박지민은 문제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며 각종 개념과 공식을 내 머릿속에 주입하고 있었다. 차라리 얘가 수학 선생을 하면 내 성적이 높아지지 않을지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오전 7시 반부터 8시 40 내지 50분까지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열심히 공부했다. 아침 시간을 알뜰하게 사용하는 내가 약간 자랑스럽기도 했다.

  친구들이 하나둘 들어오고 어느덧 9시가 다가오자 나는 가르쳐줘서 고맙다고 다음에도 부탁한다는 말을 박지민에게 하고는 자리로 돌아왔다.

  조회 시간이 되었고, 곧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여러분, 벌써 4월입니다. 고등학교 들어오고 나서 처음 보는 중간고사까지 한 달도 안 남았어요. 그쵸? 이제 시험 기간이니까 다들 준비합시다. 한 달 금방 지나니까, 시험이 너무 멀리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잘 해봅시다. 오늘 안내 사항은 여기까지. 화장실 갈 사람은 갔다 오세요.”

  일어나서도 그러기는 했지만, 한 달은 금방 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입학을 한 지 벌써 한 달이나 지났고, 모의고사는 치른 게 몇 시간 전 같이 생생한데 중간고사까지는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험이 중학교 시험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얘기를 어디서 들어서 그런지, 괜히 불안감이 한 겹, 한 겹 마음속에 쌓여만 갔다.          




  분홍빛 풍경이 서서히 사라지는 동시에 중간고사는 3주 앞으로 다가왔다. 작년의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아침부터 밤까지 죽어라 공부하고 있었다. 물론 무언가를 응용하는 일은 절대로 쉽지 않았다.

  일주일, 또 일주일. 시험 당일이 찾아오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느덧 1년의 3분의 1이 지나가고 4월의 끝자락까지 오게 되었다. 떨어지는 꽃잎과 가지에 매달린 봄꽃은 내 청춘의 절정을 상징했다.

나는 가장 푸른 봄이라는 시기에 걸맞지 않은 옷을 입고 있었다. 육체와 정신이 모두 종잇장처럼 너덜너덜해진 채로 그냥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하루가 거듭될수록 나는 궁지에 내몰렸다. 나는 누군가가 구제해 주지 않는 걸까.     

  “나연우. 이제 내일이 중간고사인데 시험 준비는 잘하고 있어?”
   “아, 응.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요….” 늘 그렇듯이 나는 마지막 한 글자를 흘리듯이 말했다.

  “엄마가 늘 말하는 거지만, 공부는 열심히, 또 꾸준히 해야 해. 하루하고서 하루 안 하면 아무 소용 없다. 어쨌든 이제 중간고사까지 하루밖에 안 남았는데, 내일 잘할 수 있지?”

  “어…. 에.”

  “엄마는 우리 아들 믿어~ 이번에는 성적 잘 나올 수 있게 최후의 최후까지 공부 열심히 하고. 알았지?”
   “네.” 나는 상대방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뜻인 1음절의 소리밖에 낼 수 없었다.

  그 짧디짧은 한마디를 제외하고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너무나도 무력하게 느껴졌다.

정말이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나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성적표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바로 내일이면 중간고사인데, 점점 시험이 다가오는데 마음속에서는 압박감이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평균 70점은 넘을 수 있으려나?

  중학교 마지막 점수를 생각해 보면 그리 쉬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나마 자신 있는 사회 쪽이 점수를 견인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시간은 야속하게 지나갔다.

  중간고사 첫날, 교실 안에는 경직되고 긴장된 공기가 가득했다. 짧게만 느껴진 아침 시간이 지나 종이 울리고, 안내 방송이 있는 중에는 모든 학생이 각자 자리에서 무거운 침묵 속에 앉아 있었다.     

-시험 도중 휴대 전화, MP3 등의 기기를 휴대하고 있는 것은 금지되며….-     

  나는 자리에 앉아 시험지를 기다리며, 손을 꽉 쥐었다. 식은땀은 두 피부끼리 맞닿은 부분의 감각을 정말 불쾌하게 만들었다. 찐득거리면서도 오묘한 느낌이 나는 싫었다. 나는 손을 교복 바지에 앞뒤로 한 번씩 쓱 닦은 후 샤프를 손 가까이에 두려고 했지만, 그 손이 떨려서 제어가 잘되지 않았다.

  시험 시작만을 기다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마음속에서는 마치 몸이 억눌려 있는 듯한 느낌이 지속해서 들었다.

  시험지의 종이를 넘기는 소리나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나의 심장은 점점 더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숨이 턱 막혔다.

  ‘할 수 있을까?’

  나의 머릿속은 불안하고 암울한 생각들로 가득했다. 이 시험은 나의 미래를 결정지을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무게에 짓눌려, 다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안 될 것 같아….’ 그렇게 한심하게, 스스로에게 속삭이며, 자신을 저주하고 있었다. 시험은 시작도 하지 않았지만 이미 포기한 기분이었다.     

  이삼 분도 지나지 않아 시험이 시작되었고, 나는 손을 떨며 OMR 카드를 집어 들어 책상의 왼쪽 구석에 놔두었다. 수정 테이프 있고, 컴싸 있고. 나는 준비물들을 다시 확인했다. 시험 준비는 완벽했다. 유형적인 선에서만.

무형적인, 다시 말해 지식과 심적으로는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다. 오늘이 중간고사 날이라는 것은 어제도, 그제도, 한 달 전에도 알았지만, 놀란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다.

  시험지를 들여다본 순간, 시험지 위의 글자들이 이상하게 흐릿하게 보였다. 첫 번째 문제부터 쉽게 풀릴 거라는 기대는 산산조각 났다. 

  ‘어, 나 왜 이러지?’

  돌아오지 않을 질문을 자신에게 속삭였다. 마치 글자들이 시험지를 떠돌며 나에게서 도망가려는 듯했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며 시험지를 집중해서 바라보려 했지만, 긴장감은 전혀 가시지 않았다.

  자습 시간이 지나 바로 시험을 치르는 그 2교시부터 난관이었다. 오늘 시험을 보는 과목 중에서는 내가 가장 못하는 양대 산맥인 수학과 과학, 시험 첫 교시는 그 중 수학이었다.

  일명 ‘수포자’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는 수학을 즐기거나 좋아하지는 않았다. 내겐 너무나도 어려운 것이 수학이었다. 말로 문제가 나와도, 식으로 문제가 나와도 나는 늘 손을 덜덜 떨었다. 이번에 한 75점 정도 맞으면 ‘나연우 진짜 잘 풀었다.’ 소리가 나올 것 같았다. 아니다. 60점 후반대 정도면 많이 맞은 거 아닐까. 

  그저 학교와 학원에서 나왔던 오지선다 객관식 문제였지만, 내 머릿속은 이미 종이 치고 나서부터 백지상태가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나는 문제를 차분하게 풀려고 온갖 노력을 해보았다. 펜을 놨다가 다시 들어보기도 했지만, 하필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 떠오른 것은 지난번 시험에서 받았던 성적표와 학원 시험지였다. 

  내 일평생 그렇게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는 것은 처음 보았던 기억이 다시 살아났다. 아예 번개도 칠 듯이 뻘건 작대기들이 시험지를 관통해 나가는 모습이 그려졌다. 선명하게 찍힌 숫자들이 나를 조롱하듯 눈앞에 맴돌았다. 아빠의 실망한 얼굴과 성적표가 교차하며, 나의 손은 또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작년, 그러니까 중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1학년과 2학년 때에 나는 어쩌다 한두 과목을 뺀 모든 과목에서 늘 A를 받았고, 시험 점수도 90점 이상이었다.

  그저 시험 기간이 끝나기 며칠 전에 벼락치기로 공부를 조금만 했을 뿐인데, 개념 몇 개만 잠깐 외웠을 뿐인데, 성적이 이렇게 좋으니 나는 내가 정말로 똑똑한 아이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큰 착각이었다는 것은 3학년에 올라가고서야 깨닫게 되었다.

  내가 나온 중학교에서는 많은 선생님들이 시험이 너무 어려우면 외려 학생들의 공부 의지를 꺾을 수 있다며, 수행평가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시험을 비교적 쉽게 내주었다. 그런 선생님들이 내가 3학년이 되었을 때, 타 학교로의 전근 등 하나둘씩 저마다의 이유로 학교를 떠나고 그 빈자리를 새로운 선생님들이 채웠다. 사실 나는 그동안 선생님들이 시험을 쉽게 내준 줄도 모르고 있었다. 시험은 원래 그 정도 난이도인 줄 알았다.

  중학교 3학년 1학기 첫 시험인 중간고사, 그때도 나는 예전처럼 단지 하루 이틀 전과 시험 당일 자습 시간에 벼락치기를 했을 뿐이었다. 전까지는 그렇게만 해도 점수를 좋게 받아왔으니까. 고공행진을 하던 점수가 어떻게 60점 대로 내려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너무 긴장되어서라고 변명해야 할까. 티가 나지는 않게 슬그머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대각선 앞자리에 앉은 박지민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공부도 잘하고, 뭐 할 줄 아는 것도 많은 우리 학교 최고 인기녀. 박지민은 조용히 날카로운 샤프를 움직이며 문제를 풀어나갔다. 차분하게 시험지를 훑는 박지민의 모습은 마치 나에게는 다른 세계 혹은 다른 차원의 사람처럼 보였다. 내가 뒤쪽에 있었기에 표정은 볼 수 없었지만, 아마 여유로운 표정으로 계산하고 있을 것이었다.

  ‘쟤는 괴물이야. 도대체…, 뭔 생각을 하고 사는 걸까?’

  나는 질투와 동시에 미묘한 열등감에 휩싸였다. 저 애와의 비교는 언제나 나를 더 위축되게 했다.

  대놓고 뒤를 돌아봤다가는 그나마 맞을 몇십 점 정도도 못 맞을 테니, 다음으로는 왼쪽을 곁눈질했다. 내 옆자리에는 오하진이라는 애가 있었다. 딱 봐도 무슨 행동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 행동이 특이했기에 이름을 기억할 수 있었다. 친하지는 않았지만, 오하진은 중학교에서 딱 한 번 같은 반이었을 때도 저런 행동을 했었다. 시험지에 대충 몇 줄을 적은 후, OMR 카드에, 일자인가? 눈을 찡그리고 보니 누가 봐도 진한 검은색 줄 몇 개가 있었다.

  오하진은 팔짱을 끼고 눈을 감고 있었다. 마치 이 시험이 자기 인생에는 전혀 중요한 게 아니라는 듯,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왜, 어떻게 저렇게 태연할 수가 있지?’ 나는 그 무심한 태도가 한편으로는 부럽고, 한편으로는 이상하리만치 불편했다.

  저 애는 마치 시험 따위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듯, 아무런 부담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저렇게 해도 되는 걸까? 쟤 부모님은 뭐라고 안 하시나?’     

  그리고, 내가 자잘한 생각을 이어가는 중에도 시곗바늘은 돌아가고 있었다.

  어찌 되었든, 적어도 나에게는 오하진 같이 여유를 부린다는 선택지가 없었다. 내 인생은 이 시험에 달려 있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숨을 들이마시고서는 명치 아래의 배를 빨아들이듯이 호흡했다. 문제가 풀리지 않아 답답해 목구멍이 따가운 지경까지 왔을 때는 이런 호흡을 하는 게 제법 도움이 되었다. 나는 머리를 맑게 환기한 후 시험지를 다시 바라보며, 억지로 문제를 풀기 위해 애썼다. 중간중간 문득 드는 생각들이 자꾸만 내 손을 멈추게 했지만, 이것도 못 풀면 난 끝이었다.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었지만, 나는 겨우 열두 번째 문제를 반쯤 풀었을 뿐이었다. 

  ‘그냥 풀 수 있는 문제부터 먼저 풀어야 했나. 15번 이 문제는 아는 건데…’. 벽에 걸린 둥근 시계의 초침 소리가 더욱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마치 나의 귀에 들리는 경고음 같았다.

  곧 안내 방송이 나왔다.

“시험 종료, 5분 전입니다.”

  ‘더 빨리 풀어야 해…. 시간이 없어.’ 나는 뇌와 손을 더 빠르게 돌리고, 움직이려 했지만, 이 상황에 집중력은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손은 자꾸만 떨려서 글씨는 나조차 알아보기 쉽지 않을 정도로 엉망이 되었다.

  ‘나연우, 제발, 집중 좀 해.’ 

  스스로 다잡으려 했지만, 이미 늦은 것 같았다. 이미 시간은 3분의 2 이상이 지나있었다. 나는 스스로가 남은 문제를 풀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감에 빠져들었다. 

가벼운 공황인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질식되어 가는 기분이었다. 시험지는 여전히 내 손 안에 있었지만, 나에게는 이제 전혀 의미가 없는 종이조각 같았다.

  ‘포기하고 싶다…. 도망치고 싶다.’ 

나는 그 순간 교실 밖으로, 아니 아예 학교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다. 시험지가 점점 나의 손에서 멀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멍하니 시간을 허비했다.

  정신을 차리고서 허망한 표정을 하고 시험지를 바라보았을 때, 시험 종료를 알리는 벨 소리가 울렸다. 나는 마지막 문제는커녕 맨 뒷장의 문제들에는 손도 대지 못한 채 펜을 내려놓았다. 

  못 푼 문제들은 시험 종료 직전에 대충 3번과 4번을 왔다 갔다, 왕복운동을 하며 문제를 찍었다. 나의 얼굴은 창백했고, 아니다. 확실히는 모르지만. 뭐 그런 느낌이었다. 시험이 끝났음에도 손은 여전히 덜덜거리고 있었다. 선생님이 시험지를 거두어가자, 나는 의자에 몸을 깊숙이 기대며 숨을 내쉬었다. 모든 것이 끝난 느낌이 들었다.

  그다음도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점이라면 나만 시험을 못 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중학교 때와 확연히 달라서 체감이 더 되었을 수도 있겠다. 반에는 우는 아이들이 네댓 명씩은 꼭 있었다.

정말 뜬금없이 타이타닉 호가 생각났다.

시험 점수가 침몰한다….          



      

  “평균 점수가 육십사 점?”

  “네….”

  “백 점 만점 맞지?”
   “…네.”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부끄러운 것도 부끄러운 거지만, 지금은 조금이라도 고개를 들 수는 없는 분위기였다.

  “그래도 고등학교 들어와서 사실상 첫 시험이니까 기대치를 낮춰서 칠십 점은 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연우야, 너는 지금 이게 준비를 잘한 거라고 생각 하니? 이렇게 성적 나오면 너 나중에 고생해. 지금 내신 잘 준비해 놔야지. 예전에 시험 시간이 되면 불안하다고 했잖아. 그런데도, 그 정신으로 이 년 후에 정시 도박을 할 거야?”
   “…아니요.”

  “거 봐. 본인도 잘 아시네. 엄마가 너 서울대 가기를 바라니 아니면 뭐 변호사 되기를 바라니? 이름난 대학교에 원서 넣어서 붙으라는 것도 아니고, 당장 시험 점수 칠십 점 이상이 어려워? 칠십 점도 많이 낮춘 건데?”
   “아니 그게, 문제가 조금 어려-”

  “어디서 지금 엄마가 말하는데 말대꾸야. 나연우, 너 이러면 안 돼. 우리는 뭐 돈이 넘쳐 흘러서 너 비싼 학원 보내는 줄 알아? 다 너 잘되라고 하는 거잖아. 널 위해서. 엄마가 왜 너 좋은 밥 먹여주고 좋은 침대, 뭐 좋은 책상에, 좋은 공부 환경 만들어주려고 노력하는데. 다 너 잘되라고 하는 거잖아. 안 그래?”

  “….”

  “왜 대답이 없어 나연우? 엄마 말 안 들려?”

  “네….”

  “뭘 ‘네’야 ‘네’는. 말 안 들리냐는데. …어쨌든 말이야, 엄마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야. ‘공부만 죽어라, 열심히 하면 다 된다.’ 너 중학교 일, 이 학년 때는 다 구십 점 대 나오고 괜찮았잖아.”

  “네….”

  “공부 계속 열심히 하고. 이제 할 말 없으면 가 봐.”     

  나는 너덜너덜해진 채로 내 방으로 들어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미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펼쳐 본 수학책을 펼쳤다. 이차방정식과 이차함수의 개념 설명이 그 페이지부터 시작하여 몇십 페이지에 걸쳐 빼곡하게, 또 자세하게 쓰여 있었다.

  설명을 다시 읽었다. 다음에는 틀리면 안 되니까. 떨어지는 눈물 때문에 나뿐만이 아니라 책도 군데군데 울 것 같아 나는 책을 다시 덮었다.     

  곧 퇴근한 아빠가 들어오셨고, 성적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실망감이 드러나는 표정을 지은 것을 나도 확인할 수 있었다. 성적이 기대 이하일 것이란 예감은 이미 시험을 봤던 당일부터 알고 있었고, 그것이 현실로 다가온 지금은 또 한 번 좌절하게 된 순간이었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아빠도 엄마와 같은 말을 했다. 한번 들은 말을 또 한 번, 그것도 혼나면서 들어야 한다는 것은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나연우. 엄마한테 말은 들었겠지만, 아빠도 한번 말해야 할 것 같아.”

  “네.”
   “너 이제 몇 학년이야.”
   “고등학교 일 학년이요.”

  “학생은 공부에 충실해야지. 네가 진짜로 최선을 다 해서 봤으면 이것보다는 잘 나왔을 거 아냐. 시험 전날에 준비 다 했다면서 친구랑 잠깐만 놀다 오겠다고 했다며. 시험이 사흘 동안 치러지는데 어떻게 그 과목 모두를 다 못 보는 거야. 어?”
   “….”

  “됐어. 너도 생각이 있으니까 알아들었겠지. 밥상머리에서 괜히 큰소리했구나. 밥이나 마저 먹자.”

  “네….”     

  내 방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동시에 부담감은 더 커졌다. 학원에서 나오는 시험 안내, 끝없는 문제집들, 부모님의 기대. 

  그 압박감에 가끔은 숨이 막혀 미쳐버릴 것 같았다. 나도 평범하게 친구들이랑 놀고 싶고, 그냥 아무 걱정 없이 푸른 봄의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그럴 시간은 없었다. 주말에도 서로 시간이 맞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정말 어쩌다, 겨우겨우 나와서 거의 몇 달에 한 번 보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그렇다고 온라인으로 쉽게 연락할 수도 없는 게, 나는 중학생 때부터 하루 핸드폰 시간에 제한이 걸려 있었다.     

  나의 삶은 마치 숲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 같았다.

앞의 길은 희미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도 몰랐고, 모든 것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눅진하고 무거운 공기는 내 의욕을 떨어트렸다. 내가 잘못된 건가. 차라리 그랬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기분을 세 글자로 표현할 수 있었다. 무력감.     

  나도 내 의견을 피력하고 싶을 때가 있고, 평범하게 웃고 떠들고 즐기고 싶을 때가 있는데 어째서 나는 내 말을 하지 못하고 그저 듣기만 해야 하는 것인가? 왜 내 생각은 받아들여지지 않는 건가?

  안 좋은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전의 여유로운 태도는 중간고사 이후로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변곡점이었다.          



         

  정말 문득 한 생각이 들었다. 먼 훗날, 내가 커서 혹은 늙어서, 지금 이 시기를 회상한다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떤 생각이 들까? 그때의 나는 이 시기를 어떤 단어로 정의할까?

  그렇게 몇 분을 생각하며 등교하다 보니 곧 교문 앞에 다다랐다.

  으레 그렇듯, 이 시기는 나무고 풀이고 관목이고 상관없이 가지치기를 많이 하는 시기였다. 특히 학교 주변에 잔뜩 심어놓은 개나리가 그랬다. 양옆으로 늘어선 벚나무 아래의 삐죽삐죽 튀어나온 개나리 가지들을 아저씨들이 전기톱 같은 도구로 잘라내고 있었다. 물론 삐죽이 튀어나온 가지뿐만 아니라 딱 봐도 성장에 방해되는 가지들까지. 튀어나온 개나리 가지들은 전기톱에 의해 사정없이 난도질당하고 있었다.

  나무와 풀이 잘리자, 다들 한 번쯤은 맡아봤을 냄새가 거리에 진동하기 시작했다. 풀이 조각조각 잘리면 날 것 같은 그 쌉쌀하고도 머리가 띵해질 정도로 이상하리만치 불쾌한 냄새.

썩 좋지 않은 냄새였기에 나는 재빨리 교문 안쪽으로 들어갔다.     

  실내화를 갈아신으며 아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지, 하며 골똘히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도통 기억이 나지를 않았다. 확실한 것은, 무언가 뇌 속에서 방황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까의 생각을 찾는 움직임은 곧 일정한 목적이나 방향이 없이 헤매기 시작했다.                                                                                                                   


짧은 기간에 너무 많은 일을 겪게 되면

풀을 잘게 자르면 진동하는 냄새를 맡은 것처럼

머리가 어지럽고 아파질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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