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눈밭에 세워둔 채
서로 돌아선다
밤새 발자국이 지워지는 동안
멀리 창밖에서 내다보는 눈빛이 있다
먼 훗날 자신들인 줄 모른다
눈사람,
거쳐간 털장갑 자리 중 하나가 들뜬다
그곳이 먼저 잊힐 구석이라는 듯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밤은 여전히 다녀가는 과정이지만
눈사람에게는 누군가의 뒷모습이다
새벽에 서 있던 눈사람이
아침이 오면서 스르르 스러져간다
함께 만들어 놓고 잊어버리는 사람이 있고,
잊어버린 걸 함께 다시 만들자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내어줄 수 있는 만큼만
서로는 뭉쳐지는 것이라서
관계를 궁굴리어
소유했다고 믿을 수는 있어도
가질 수는 없다
하지만 눈사람은 사람을 가졌다
사람을 가져서 눈사람이 녹는다
멀리 창밖에서 내다보는 눈빛이 있다
- 슈뢰딩거의 이별 시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