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2, 관계 역학(에세이 & 시)
1년 전, 남편과 두 딸, 그리고 사위까지. 우리 다섯 식구는 생애 최초의 가족 여행을 떠났다. 테니스를 사랑하는 우리 부부의 사심을 가득 담아, 호주 오픈이 열리는 시기에 맞춰 호주 멜버른행 티켓을 끊었다. 로드 레이버 아레나(Rod Laver Arena)에서 세계적인 선수들의 경기를 직관하고, 호주의 광활한 자연을 온몸으로 만끽했다.
그런데 문득 낯선 기분이 들었다. 여행지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대화는 담백했고, 아이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걷고 있었다. 공원을 산책하고 휴식을 취하는 방식조차 한국에서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이들은 사진을 찍거나 음악을 들었고, 나는 사색에 잠겨 휴대폰 메모장에 글을 끄적였으며, 남편은 흡연 구역을 찾아 부지런히 발길을 옮겼다.
묘한 일이었다. 분명 따로 놀고 있는데, 그 거리감에서 오는 괴리나 외로움보다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평화로움이 밀려왔다. '첫 가족 여행'이라는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익숙한 집을 벗어나 먼 곳에 와 있다는 적당한 긴장감과 낯섦이 오히려 좋았다. 지척에 가족이 있다는 안심, 그리고 이 이국적인 풍경 속에 우리가 함께 속해 있다는 은근한 소속감.
햇볕이 참 좋았다. 벤치에 홀로 앉아 글을 쓰다, 사진을 보다, 잠깐 졸기도 했다. 나는 여행에서 새로운 것을 정복하듯 경험하는 것보다, 이런 이질감 속의 동질감'이 더 좋았다. 집에서 가장 멀리 떠나왔다는 성취감 뒤에 숨은 평온함의 실체는 무엇일까.
그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현실의 무게에서 잠시 멀어져 각자의 의무와 책임을 내려놓았다는 해방감이었다. 지극히 정적이고 사유를 즐기는 나와, 거친 건설 현장에서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는 공학도적인 남편 사이에는 분명 '틈'이 존재한다. 예전에는 그 틈을 메우고 서로에게 동화되려 애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틈을 억지로 메울 필요가 없다는 것을.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고슴도치 딜레마'를 통해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의 중요성을 말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거나, 반드시 같은 감동을 공유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진정한 휴식이 시작된다.
시선에서 멀어지지 않는 딱 그만큼의 거리에서 각자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자유를 느끼는 것. 가족이라는 굴레를 잠시 벗어던지고 각자의 여백을 존중할 때, 우리의 '틈'에는 비로소 낯선 새들의 노래가 머물 자리가 생긴다. 억지로 맞추지 않아도 흐르는 그 여유와 여백,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완벽한 여행이었다.
1월과 2월, 그 서늘한 이음새
북반구와 남반구 위
구름을 헤치고
애정의 틀, 이 아득한 사이를 건넌다
함께 채집해 온 시간의 파편들이
우리의 틈을 메웠을지
더 깊게 벌려놓았을지
회상에 두 손가락 벌려 들여다본다
새벽의 틈을 뚫고 도착한
당신의 시그널은
인문과 공학 사이에 끼인 쇳소리
때론 목적 없이 떠도는 휘파람
지구 반대편, 호주의 품에 안겨
아슬한 이 틈에 나무를 심는다
발등에 내려앉은 태양의 무게만큼
어긋난 발걸음을 고쳐 가두는
모랫길 위에서
나는 당신의 그림자 안쪽을 본다
당신과 나, 둘이 이 틈에 머물며
낯선 새들의 문장을 제멋대로 번역해 볼까
일반글의 내용을 브런치북에 연재로 옮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