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의 허기에 쫓기는 (시&에세이)
거미줄보다 복잡하게 얽힌 길
땅 위에, 땅 속에
하늘 위에, 바다 위에
사연 많은 길 위에
역사 없는 줄이 그어지고
목적 잃은 사람들이 사유 없이
좀비처럼 떠돈다
안개보다 자욱하게 얽힌 길
네이버와 구글에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 가득한 정보
똑똑한 ChatGPT가 생각을 대신하니
홀로 서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들
타인의 잔상을 먹고 입고 쓰면서
데이터의 허기에 쫓기는 돼지가 되어간다
스스로 길을 찾지도 못하고
모험의 의지조차 잃어버리고
정보의 홍수에 떠밀려 가는
시력 나쁜 호모 사피엔스에게
그녀가 단호하게 말한다
“경로를 벗어났습니다!”
[행간의 온도]
서울의 땅 밑엔 지하철로가 몇 겹의 그물망처럼 촘촘해졌다. 휴대폰 속 지도에는 새로운 길이 수시로 업데이트되고, 하늘 위에도 보이지 않는 항로가 쉼 없이 생겨난다.
나는 오늘 처음 태어난 수많은 것들에 뒤처지고 길을 잃을까 늘 마음이 조급하다.
다행히 몇 개의 AI 툴과 내비게이션만 있으면 처음 가보는 복잡한 길도 헤매지 않고 찾을 수 있다. 초보운전자인 나도 용기를 갖고 운전석에서 페달을 밟으니 말이다.
가끔은 이런 엉뚱한 상상을 한다. 거미줄처럼 뒤엉킨 내 복잡한 인생 위에도 내비게이션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몰라 마음이 한없이 어지러울 때, 막다른 길 앞에서 주저앉아 울고 싶을 때, 단호하고 정확한 목소리로 " 잠시 후 왼쪽길입니다" 혹은 "계속 직진입니다."라고 말해주는 존재 말이다. 그러면 나의 하루가 조금은 덜 고단할 것만 같다.
똑똑한 기계들이 세상을 채운 시대라지만, 오히려 이전보다 더 심한 목마름을 느낀다. 스스로 길을 찾는 법을 자꾸만 잊어간다. 검색 결과로 내 취향이 결정되어 나를 정의한다. 나 대신 결정해 주고, 알고리즘은 나를 파악해 좁은 울타리 안에 가둔다.
Al가 써 내려가는 매끄러운 문장들을 보고 있으면, 나의 투박한 생각과 서툰 글씨가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속도는 어떻고? 그의 일 처리 속도에 허탈감을 느낀다.
손가락 노력만으로도 정보가 넘쳐나니 나는 너무 쉽게 남의 생각을 빌려 입고, 먹고, 쓴다, 데이터라는 허기에 쫓겨 이리저리 떠돈다. 스마트 기기의 현란한 유혹에 빠져 있는 사이, 사람들과 진심을 나누던 따뜻한 눈빛은 오래된 유물처럼 흐릿해졌다. 쓸쓸하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머지않아 기계가 정해준 궤도를 벗어나는 법조차 잊어버린 인공지능의 로봇이 되는 게 아닐까 덜컥 겁이 난다.
어쩌면 지금 나에게 정말 필요한 건 남들보다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는 방법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 생각을 가로채는 이 매끄러운 기계들의 목소리를 잠시 끄고, 스스로에게 용기 내어 외쳐야 하는 게 아닐까.
“경로를 벗어났습니다!”라고.
그래, 가끔은 정해진 길을 벗어나 마음껏 헤매고 싶다. 좀 느리면 어때? 그렇게 길을 잃고 한참을 서성이다 보면, 바람이 묻혀온 숲의 향도 느끼고, 숱한 꽃망울을 터트렸을 햇살의 온기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그때야 비로소 누구의 것도 아닌 진짜 나의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 시를 처음 쓴 게 벌써 3년 전쯤이니 지금은 말해 뭐 하겠는가
#내비게이션 #AI시대#현대인 #사유의상실#호모사피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