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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차려 모지리 Nov 19. 2024

심리적 소녀가장 루비의 독립기, <코다>



<코다>는 육각형 영화입니다. 다큐멘터리처럼 건조한 시선으로 농인 부모의 유해한 태도를 가감 없이 다루면서도 상업 음악 영화스러운 하이라이트들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상업영화 공식 덕분인진 몰라도 루비는 부모로부터 독립하고, 버클리 음대에도 합격합니다. 그 해피엔딩에 따른 단점도 있습니다. 그에 동원된 인물들인 재능 봉사하는 선생님, 너드에게 마음을 연 인싸, 장애에 편견 없는 쿨한 친구 등이 전형적이라 만듦새를 헤친다고 볼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상업 영화스러운 전개 상 작위성에도 불구하고 루비의 매력적인 캐릭터, 딸이 아닌 부모의 심적 독립이 <코다>만의 개성을 만들어 냅니다.


얼마 전에 본 KAFA 영화 관련 비판 기사가 떠올랐습니다. ([기획] 답답한 현실, 더 답답한 영화, 최근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영화의 주제적 공통점과 한계) 최근의 KAFA 영화들이 부모에게 부채감을 가진 자식이 부모가 초래하는 상황을 버티는 이야기를 다루는데, 해결다운 해결이 아닌 미적지근하고 답답한 엔딩을 맺는다는 문제 제기였습니다. 기자는 그걸 ‘리얼리즘의 세계를 해독하고 봉합하는 관점이 돈, 경력, 직업, 가족, 공동체주의 같은 기성세대의 기치에만 집중돼 있단 문제가 여전하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예시로 든 영화 중엔 무력한 피해자나 여성 가해자를 다루거나 신세대가 정체돼 가는 구세대를 이해하려 하는 작품들이 있었습니다. 사회의 주류로 자라나는 신세대의 이러한 노력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이해하려는 것만큼이나 인간 본성에 반대되는 인고의 성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인간 탐구 성과를 간단히 ‘기성세대적 가치’로 뭉뚱그리는 기자의 태도에 반감이 들었고, 각 영화의 반짝이는 디테일들을 눈에 담지 않고 ‘가족 영화’로만 환원시켜 봐서 그런 비판을 도출한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코다>를 보면서는 확실히 제가 봤던 비슷한 KAFA 영화의 주인공들과 다르게 루비가 매력적이라고 느꼈고, 기자의 비판이 조금은 무슨 말인지 알게 됐습니다. <코다>는 부모에게 부채감이란 빚을 진 딸을 그립니다. 그러나 그 딸이 부모와 꽤 동등한 위치에서 싸우고, 끝내 부모는 딸에게서 심적으로 독립합니다. 그래서 <코다>의 해피엔딩은 감동적이며, 명쾌합니다. 아무리 딸이 부모를 이해하더라도, 결국 변화하고 독립해야 할 건 부모이기 때문입니다.

  

고등학생 루비의 업무환경

루비는 덤덤한 가장으로서 가업을 이으며 정신 건강히 잘 살아왔습니다. 학업과 친교에 지장이 있는데도요. 대학 진학에 대한 욕망도 없었습니다. 어찌 보면 마초적인 아버지를 닮았으면서도 부모처럼 주눅 들지 않았고 ‘힘’이 있습니다. 루비의 가족은 마초성과 마이너리티의 혼합물입니다. 우선 부모는 외양이나 가치관에 있어서 전형적인 구세대죠. 수염을 기르고 칼하트를 입으며 육체노동을 하는 아빠는 무뚝뚝합니다. 엄마는 여전히 본인이 젊었을 무렵 2000년대 초반의 스타일링을 하고 있고, 오빠는 틴더로 일회성 데이트 상대를 찾으며 부모는 거기에 즐겁게 동조합니다. 

부모는 딸의 다른 미래를 꿈꾸지 못할 만큼 각박한 현실에 살며, 둔합니다. ‘장애인은 약자’라는 사회의 고정관념을 답습하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트럼프 지지자 같습니다. 하지만 한편 그들이 내재화한 마이너리티 정체성 덕분에 이 가족은 수평적입니다. 부모는 루비에게 성생활 이야기를 포함한 거의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고 소통의 창구로 삼습니다. 특히 루비가 토론회(?)에서 아빠와 오빠의 말을 대신하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아빠와 오빠는 소통의 힘이 부족하여 사람들에게 번번이 무시 당하지만 루비를 입을 통해서라면, 화자가 어린 10대 소녀일지라도 힘을 갖습니다. 그게 루비의 힘인 것 같아요. 루비는 가족들의 유치한 행동들에 질색하면서도 그들을 벗어나려는 생각이 없었습니다. 자기 취향이 있는 소녀로서 발전 없이 고립된 가족의 모습에 치를 떨 만도 한데 참 무던하게 그들을 꾸준히 사랑해 온 것입니다. 그게 장애인 가족을 둔 ‘코다’의 이야기를 넘어 MZ 세대 자녀의 이야기로 읽혔으니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요즘 들어 더더욱 부모를 존경한다고 하는 자식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세상은 갈수록 빠르게 바뀌는데 본인이 젊었을 적 유행과 가치관을 늙어서도 고집하는 부모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부모를 존경하지 않는 자식의 마음이 멸시나 패륜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격차를 느끼면서도 사랑하고 소통하는 마음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성장하면서 필연적으로 피양육자 아동 청소년에서 성인, 그리고 부모의 보호자가 되어 가야 하는 자식을, ‘코다’의 상황에 빗대어 드러내는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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