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
금방이라도 비가 올듯한 아침이다. 한편으로는 다행히 비는 오지 않는구나! 30분 정도라도 달리고 올까? 생각한다. 망설이다가 그냥 씻지도 않고 모자를 눌러쓰고 나갈 준비를 한다. 딱히 준비랄게 없다. 어차피 1년의 시간 동안 나의 옷 차람은 일상생활이나 잠옷이나 출퇴근 복장이 동일하다. 러닝 쇼츠, 땀흡수가 잘 되는 드라이핏 소재의 상의를 입고 있다. 새로 구입한 러닝 모자와 양말, 그리고 러닝화를 신으며 발걸음을 떼며 신나게 달리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주변 대학 캠퍼스 한 바퀴 돌고 오기였다. 중간지점까지 비도 오지 않는다. 마음속으로 되뇐다. 다행이다. 지금 안 나왔으면 오늘 운동 못할 뻔했네!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며 횡단보도를 지나 본격적으로 캠퍼스 입구에 들어서자 조금씩 빗방울이 떨어진다. "이 정도가 어디인가?" 하며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 나간다. 그 시간도 잠시였다. 빗줄기는 조금 더 세차게 몰아친다. 비를 피할 수 있는 건물에 도달했다. 잠시 머뭇 거리며 숨을 고르던 찰나의 순간!, 빗줄기는 더 힘을 낸다. 조금씩 겁이 나기 시작한다. 돌아갈 길은 어떻게 할 것인가? 무방비 상태로 나와 있는 나 자신은 또 어찌하란 말인가? 나오지 말걸 그랬다. 괜히 저질렀구나 싶다. 그때였다. 반대편에 두 명의 사람들이 달리기 시작한다. 한눈으로 보아도 경력이 오래되어 보이는 러너의 모습이다. 복장은 내가 감당하기 힘든 러닝 복장이다. 상의는 소매가 없는 전문 러너의 복장이었으며 바지는 3인치 쇼츠(마라토너 복장)이다. 다른 한분은 근육질의 아재미를 뽐내시며 상의마저 탈의한 채 열심히 달려 나간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내 모습은 그저 풋내기에 불과했다.
다행히 빗줄기는 잠시 잦아졌다. 마음을 고쳐 먹기 시작한다. 어차피 젖었다. 내려놓자. 목표한 만큼의 운동량을 채우고 돌아가자. 신발 젖으면 말리면 되고 하나 더 사면 그만인 것을 괜한 고민 그만하자. 건물 밖으로 나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비가 내린다. 기분이 나쁘지 않다. 음악은 없지만 빗소리를 들으며 달려간다. 한발 한발 발걸음을 떼며 외치기 시작했다. 빗소리가 들린다. "싸락, 싸락, 따락, 따락, 따라락" 소리를 낸다. 다시 소리를 낸다. "싸락, 싸락, 따락, 따락" 소리를 내며 발걸음도 맞춰본다. 맑은 날처럼 속도를 낼 수 없지만 집으로 향하는 길을 멈추지 않는다. 신발에 물기가 가득하고 양말은 이미 빗물에 젖었다. 이제 더 이상 그런 것에 신경 쓴다는 게 의미가 없어졌다. 상의는 이미 물기에 젖어 달라붙어 버렸다. 그 마저도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오직 소리에 집중한다. "싸락, 싸락, 따락, 따락" 멈추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세리머니는 모자를 벗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온통 젖어 버렸다. 수건을 준비하고 씻을 준비를 한다. 스마트 워치의 운동량도 체크한다. 37분 4.27km 389kcal를 소모했다.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들었다. 방수 기능 좋은데 하고 말이다. 그저 웃음만 나오는 시간이었다. 샤워를 하고 운동복 마저 세제를 풀어 손세탁을 한다. 세탁기는 탈수 기능을 이용해 탈수만 했다. 옷을 널어놓고 머리를 말리고 스킨과 로션을 바른다. 물을 두 컵 정도 마셨다. 순간 탄성이 일었다. 물 맛이 꿀맛 같다. 이 운동이 좋은 이유를 수차례 사람들에게 말했지만 오늘 또 한 번 다른 매력에 빠져 버렸다. 한계치를 시험한다. 한계에는 여러 의미가 있다. 오늘 나의 한계는 비 오는 날은 달리지 않는다.라는 신념화된 마음이었다. 그 마음을 내려놓는 과정 자체가 내면화된 틀을 깨는 과정이었다. 이 운동은 이렇듯 끊임없이 한계에 도전하게 만든다. 오늘의 나의 기록은 단지 숫자적인 기록이 아니다. 처음으로 마음먹고 빗속을 달렸다는 추억이다. "따락, 따락, 싸락, 싸락" 그저 웃음만 가득하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 비는 그쳤다. 가야금 소리가 청연 하게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