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냥 발길이 닿는 가까운 곳으로 그리고 그날의 입맛이 지시 내리는 곳으로 이동할 뿐이다.
배꼽시계는 정확하다. 밥을 달라고 계속 꼬르륵거린다.
전에도 그루지야식당을 가본 적이 있는데 딱히 음식 이름을 기억하는 편은 아니다. 그냥 메뉴판의 그림들을 보고 대충 맛있게 보이는 녀석들을 고르곤 한다.
고기가 당겨서 쇠고기요리하나 와 따뜻한 수프를 시켰다. 기다란 바게트 빵 하나까지 따라 나왔다.
'겉바속촉' 바게트. 요리 소스에 빵을 찍어먹으니 구수함의 깊이가 더욱 올라왔다. 풍족한 한 끼 식사를 마쳤으니 또 소화를 시켜야겠지.
아르바트거리까지 다시 걸어간다.
알마티뿐만 아니라 아르바트거리는 러시아의 도시에도 여러 곳이 존재한다. 한때 블라디보스토크여행이 한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을 때 그곳 아르바트거리가 한국 여행객들로 넘쳐났던 기억이 떠올랐다. 한국인지 러시아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날씨가 말고 청명해서인지 아르바트거리가 더욱 깨끗해 보였다. 하지만 한낮의 뜨거운 햇빛 때문인지 생각보단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아마도 선선해지고 저녁이 돼서야 사람들로 더욱 붐비고 활기찬 거리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어디선가 기타 연주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구경하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가져본다.
난 가끔 제발 하루만 평일에 쉬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난 자영업을 하는 좀 자세히는 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내가 쉬게 되면 누군가 내 일을 대신해야는데 성격이 까다로운 건지 책임감이 강해서인지 모르겠지만 내 일을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지 못하겠다.
여행을 와서야 비로소 혼자 조용한 시간을 가져본다. 가끔은 일의 노예가 된 채로 사는 건 아닌지란 생각도 든다. 돈도 분명 중요하지만 일만 하다 어느 날 아프고 병들어 죽을 날을 받아놓으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잠깐동안이지만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오늘 꼭 만날 사람이 있다. 사실 난 이 사람을 모스크바에서 만날 거라 생각했는데 뜻하지 않게
이곳 알마티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그의 이름 빅토르 최
빅토르 최의 열렬한 팬도 아니며 그의 음악에 대해서 잘 아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혈액형' 그 한곡만큼은 내 마음속 깊은 곳까지 큰 울림을 전달해 주었다.
특히나 요즘 같은 시기에 그의 이름을 자주 소환하게 되는 이유는 아직도 지구 곳곳에서 끊이지 않고 있는 전쟁의 참혹함 때문 일지도 모르겠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당시 반전 음악을 통해 전 세계인들 특히 젊은이들에게 큰 메시지를 전달했던 빅토르 최. 고려인의 피가 흘러서 그런지 그가 더 자랑스럽고 간지 나게 느껴졌으며 친근하게 느껴지기까지도 했다.
착한 사람들은 왜 그리 일찍도 떠나는지,,,
1990년 8월 15일. 그가 떠난 날짜 또한 참 드라마틱하다. 향년 28세.
라트비아에서 휴가를 보내고 차를 타고 돌아오던 그는 버스와 충돌하여 그 자리에서 세상을 뜨고 말았다.
만약 그가 살아있었다면 아직까지도 음악을 통한 평화의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열심히 걷다 보니 어느덧 그의 동상 앞에 마주하게 되었다. 한 손에는 라이터에 불을 켜고 당당하게 서있는 빅토르 최. 그리고 그 옆에서는 그의 음악에 맞춰 기타를 연주하는 한 명의 기타리스트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