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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해 Dec 17. 2024

프롤로그

12년 만의 도쿄


 오랜만에 도쿄 어때?


 소파에 누워 휴대폰을 뒤적이던 이 지나가듯 물었다. 베트남을 다녀온 지 일주일도 안 된 어느 저녁이었다. 여독이 풀리지 않은 어깨는 뻐근했고, 선물로 사 온 기념품은 방구석에 쌓여있었다. 뱃속에 있는 쌀국수가 소화도 안 됐는데 일본이라니. 전두엽이 통장잔고를 보라며 말리는 소리를 냈다. 거기다 의 학교는 또 어떡하고. 입에서 단호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비행기값이 얼만데?   


 제일 중요한 말해주지 않다니. 성급한 손이 휴대폰을 찾았다. 한 달만 있으면 겨울방학인데 새해를 외국에서 보낼 수 있는 건가.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요즘 유행하는 한 달 살기도 해보고 싶었다. 근데 비행기값이 만만치 않았다. 연말, 연초, 방학이 다 그렇지. 미간을 모으고 날짜를 바꿔봤다. 제일 저렴한 출발일은 3주 뒤였다.


 뽕을 뽑자. 이왕 돈을 모아 다른 나라에 갔으면 될 수 있는 한 길게 있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가을의 끝자락부터 손가락을 꼽아보았다. 2주 정도는 다녀올 수 있겠다는 계산이 섰다. 유는 학교를 꽤 빠지게 되겠지만 두 팔 벌려 환영할 거다. 기관사인 아버지를 만나 일 년의 반 이상을 아빠와 떨어져 지낸다. 산의 귀국이 확정되자 '아빠 보고 싶어요'를 입에 달고 살았다. 평소 근면하게 사는 우리니 이 정도 복은 눈 감아달라며 뇌의 한 부분을 달랬다.


AI가 그려준 우리 가족. 엄마한테 손가락질하기 있긔, 없긔?

 

 덜렁 비행기 티켓을 구매했다. 망설이면 표값만 올라간다. 산과 얼굴을 마주하고 실성한 느낌으로 흐흐 웃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놀러 가는 나라의 언어를 할 수 있으면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가서 굶어 죽진 않겠지. 20대의 삼분의 일을 보낸 곳이다. 십여 년 만의 도쿄라니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크게 변한 게 있을까 싶다가도 두근거리는 속내를 말릴 수 없었다.


 일정이 정해졌으면 다음은 숙소 정하기다. 집세가 비싸서 고르는데 애를 먹었다. 여기서 한 달 살기는 무리겠다. 외곽으로 빠지면 집값은 저렴해지겠지만 일본은 교통비가 비싼 나라다. 잘못하면 배보다 배꼽이 커진다. 도쿄는 처음인 유를 위해 알려진 관광지 위주로 계획을 짰다. 일주일은 도쿄의 동쪽, 나머지는 서쪽에 숙소를 잡아 머물기로 했다.


 산은 맛집을 찾기 시작했다. 움직이는 손놀림이 리드미컬하다. 가고 싶은 곳을 뽑아 리스트를 넘겨주면 동선을 짜준다. 계획인 사람과 여행하면 이 점이 편하다. 다만, 틈틈이 '산이 최고!', '아이구, 덕분에 편하게 여행합니다.'하고 추임새를 넣어줘야 한다. 고맙긴 고마운데 뭐랄까. 손이 많이 간다. 종종 큰 아들로 변신해서 사람 속을 뒤집는다. 어째서 남편 칭찬은 욕으로 끝나는지 알 수가 없다.


 도쿄로 가는 수단과 숙소가 정해지면 나머지는 잔잔바리다. 천천히 생각하면 되겠지 하고 손을 놓았더니 크고 작은 일이 생겨 마지막까지 허둥댔다. 출발 전날이 되어서야 짐을  겼다. 눈을 감아도 잠이 오지 않았다. 무사히 다녀올 수 있을까. 우, 잡념을 날려보았지만 강아지마냥 품을 파고들었다. 고생은 사서 하는 거라고 중얼거리며 간신히 수면에 빠져들었다.


엄마! 엄마!


 눈이 번쩍 떠졌다. 깜깜한 새벽, 다급한 아이의 목소리가 나를 깨웠다. 여행 첫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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