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안의 불청객
오싹한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공포 영화나 드라마 같은 지어낸 이야기 말고요, 누군가 실제로 겪었다는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선호합니다. 입안이 마르고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경험담 말이에요. 그런 일을 겪은 사람들은 특별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신비롭게 느껴집니다. 저는 영감이라고는 하나 없는 둔한 사람이거든요.
그런 저에게도 신기한 일이 벌어졌어요. 강릉에서 부산으로 내려가는 길이었습니다. 네비에 목적지를 입력하자 예상 소요 시간이 5시간이나 되더군요. 가족이 함께 노래도 듣고 책도 읽고 하면서 지루한 운전길을 견뎠습니다. 밝았던 하늘은 5시를 넘기자 금세 까매졌어요. 졸음쉼터 화장실에서 아이와 남편만 가서 볼일을 보고 왔어요. 굳은 허리를 쭉 펴고 시동을 켜서 출발하는데 자동차에서 삐- 삐- 하고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어딘가 이상이 있다는 거죠. 계기판을 살펴보니 안전벨트를 안 멨다는 빨간색 표시가 떠 있었습니다. 아이에게 말했죠. "얼른 안전벨트 해야지. 고속도로라 위험해." 하고요.
엄마, 저 자동차 타면
안전벨트부터 하는 거 아시잖아요.
또박또박 말하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뒤를 돌아보니 웬걸, 잘하고 있더라고요. 운전하는 남편과 조수석에 앉은 저도 좌석에 단단히 묶인 상태였습니다. 이상하다 싶었죠. 오류가 났나, 금방 꺼지겠지 했는데 소리가 계속 나더라고요. 경고를 보내고 있는 느낌에 마음이 조급해졌어요. 최근에 바꾼 차라 성능을 잘 몰랐는데 화면에 안내가 떴습니다. 지금 안전벨트를 안 한 자리가 어딘지 가르쳐주더라고요.
그곳은 텅 빈 아이의 옆좌석이었습니다. 오소소 소름이 돋더라고요. 혹시나 해서 올려놨던 가방과 노트북을 밑으로 내려도 소음은 계속 됐어요. 자동차 불빛 없이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고속도로다 보니 상황이 으스스하잖아요. 무서운 생각이 드는 와중에도 뒤를 보며 말했어요. "누굴 데리고 탄 거야, 이제 나가라고 해."라고요.
아이는 눈과 입을 동그랗게 만들더니 "무서워!"를 외쳤어요. 그리고는 금세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이렇게 된 거 같이 가자고 해요."라고 말하더군요. 저보다 더한 개구쟁이에게 무슨 말을 하겠어요. 서늘한 마음이 가시지 않아 남편의 등을 일부러 장난스레 두들기며 말했어요.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얼른 가시라고요.
여러분은 미신을 믿으시나요? 밤에 손톱 안 깎기, 문지방 안 밟기, 휘파람 안 불기 등등 오랜 옛날부터 내려오는 이야기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통은 인식을 안하지만 찝찝할 때도 있죠. 그래도 꼭 한 가지 지키는 건 있습니다. 장례식장에 다녀오면 집에 들어가기 전에 소금을 몸에 뿌리는 거요. 아무래도 저는 귀신을 데리고 집에 들어가는 건 피하고 싶은가 봅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고요.
부산은 오늘 -9도입니다. 아무리 겨울이라고 해도 따뜻한 남쪽 지방에서는 대처능력이 부족한 온도예요. 오늘은 나가면 큰일 난다는 마음으로 여독을 풀기로 했습니다. 어젯밤 삐- 소리는 중간자리에 안전벨트를 메주자 꺼졌어요. 풀면 소리가 다시 나길래 채워둔 채 집으로 올라왔습니다. 집 밖을 나가지 않았으니 벨트는 그대로 일 겁니다.
밤중에 히치하이킹을 하신 손님은 차에 그대로 앉아 얼어붙어 있을까요. 얼른 물러가 주셨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이 있네요. 이왕이면 차가운 겨울바람과 함께 말입니다. 부디 내일 자동차 문을 열었을 때 그 무엇과도 눈이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