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남편을 주부라 부를 수 없는 이유
어젯밤 남편과의 대화.
나: 자기야, '백수' 말고 더 좋은 단어는 없을까? 댓글에 어느 분이 '주부'라는 단어를 권했는데 어때?
남편: (...) '수벌'로 할까?
나: 수벌이 왜?
남편: 수벌은 하는 일이 없거든.
나: 자기 너무 웃겨.
남편: 수벌이 영어로 뭔지 알아?
나: 뭔데?
남편: 드론.
나: 진짜?
어쩌다 이런 (귀여운) 남자 부양 10년째.
단순히 과거 남녀 역할이 바뀐 거라고 말하기엔 조금 복잡한 관계다. 여자가 벌이를, 남자가 살림을 하는 아주 심플한 역할 분담이었다면 이혼을 생각하지도, 백수라고 표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남편은 직장 퇴사 후 자신의 업을 찾는 여정을 진행 중인데, 그의 마음처럼 잘 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예상보다 그 여정이 꽤 길어지는 게 우리를 많이 어렵게 했다. 경제적으로도, 심적으로도.
난생처음으로 하고 싶은 걸 찾는 어린아이 같은 남편을 보며 윤오영의 수필 <방망이 깎던 노인>을 자주 떠올린다. 자신의 방망이를 찾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고, 간신히 자기 방망이를 찾아 깎기 시작한 남편이다. 재촉한다고 방망이가 되나...
나를 어리석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왜 그렇게 호구처럼 사냐고, 엄마도 아닌데 엄마처럼 밥 해주고, 아빠도 아닌데 아빠처럼 돈도 벌어다주냐고. (그는 귀하게 자란 아들이라 밥 한 번 해 본 적 없는 상태로 결혼했다) 돈도 내가 벌고, 밥도 내가 하고, 육아 지분도 크다. 여성(엄마)이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 있기에 여러모로 불균형적으로 살고 있다.
그 불균형에 압도될 때는 신세 한탄, 자기 연민, 비교... 이혼을 결심하는 밤도 있었다.
그럼에도 결혼을 유지하는 건, 아팠던 숱한 시간이 우리를 꺼내주었기 때문이다. 진흙탕 아니면 보지 못했을 욕망과 오만을 다 걷어내고 서로의 '존재'를 보았기 때문이다.
백수든 수벌이든 살아만 있으면 되었다.
불균형이든 균형이든 함께하면 되었다.
방망이는 오늘도 깎인다.
그의 방망이는 반드시 완성된다.
p.s.
어쩌면 완성된 방망이보다 그가 방망이 깎던 이 시절을 나는 더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