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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내 안의 괴물을 만나러 가는 길

너 때문에 내가 괴물이 되어버렸다는 말

by 애기곰

누군가의 이혼 소식에 마음이 저려온다.

유명인이든 무명인이든,

지인이든 듣도 보도 못한 사람이든,

우리 주변에서 이혼 소식을 듣는 일이란 그리 어렵지 않다.


이혼 사유를 다 알 수는 없지만,

대체로 그 이유는 합리적이며 그럴듯하다.

당치도 않은 이유로 이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매우 존경했던 인물이 있었다.

어찌나 당차고 야무졌는지 그녀의 삶을 반만이라도 따라가고 싶었던 날도 있었다.


그녀가 최근에 이혼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귀책사유는 100% 전남편에게 있다고 했다.


최고의 나(the best version of myself)로 살고 싶었는데

그 사람 때문에 자꾸 괴물 같아지는 자신이 싫다고 했다.


누구보다 예쁘고 자유롭게,

그리고 나답게 살고 싶다고 했다.


소름 돋았다.

나의 이혼 소망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의 생각과 똑 닮았기 때문이다.




남편의 백수 기간이 길어지고 또 길어지고

하염없이 길어져 올해 10년이 되었다.


백수 남편 9년이 되어서야 깨달은 것이 있는데

결혼은 내 안의 괴물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는 것.


반짝반짝 예쁘게 살고 싶은데

너만 보면 화가 나고 답답해서 도저히 너와는 살 수 없다고 소리치는 그때,

그 민낯이 진짜 나라는 것을, 그 괴물이 나의 진면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미래가 불투명한 그를 보며, 나의 불안을 마주했다.

그의 암흑기를 조금도 참아줄 수 없는 나를 보며, 똘똘 뭉친 욕심 덩어리를 마주했다.

이렇게는 못살겠다며 당장 도장찍자는 내 모습에서, 치가 떨릴 만큼의 이기심을 마주했다.


(이쯤 되면, 나답게라는 말이 무색해진다. 나는 불안, 욕심, 이기심으로 꽉 차있었다)




꺼낼 괴물이 없는 내면이 맑은 이들도 있다.

괴물을 꺼낼 필요가 없는 좋은 환경이 갖춰진 이들도 있다.


그러나 혹시, 나처럼 배우자로 인해 괴물을 만났더라도, 너무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처음 보는 낯선 얼굴에 놀라지 않았으면 좋겠다.


잠시 꼬옥 껴안아 주길.

지금 너무 아파서 그런 거니까 조금 못생겼더라도 꼭 안아주길.


이 결혼에서 나를 지키고자 나온 거니까

이 삶에서 나를 살리고자 몸무림 친 거니까

괴물의 속내를 자세히 들여다봐주길.

애정 어린 시선으로 조목조목 짚어주길.




(결혼에 관한 한)

The best version of myself라는 말에 속지 말자.


상대의 the worst를 참아줄 때, 결혼은 피어난다.

내 안의 the worst를 만났을 때, 진짜 결혼을 시작할 수 있다.



결혼을 지속하면서도

반짝반짝 예쁘고 자유롭고 참으로 나답게 살 수 있다.


괴물을 살살 진정시킨 후에 만난 나의 진면목이

더 나다워졌음은 이루 말할 것도 없다.


이혼 후 나답게 사는 살 수 있는 사람은, 이혼을 하지 않고도 나답게 살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우리는 그런 힘을 이미 가졌다.




p.s.

나의 the worst를 참아준 남편에게 감사함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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