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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글을 공개적으로 써야 하는 이유

삶을 뒤집는 글쓰기의 시작

by 애기곰

마흔이 다 되도록 내 글을 공개한 적이 없었다. 나의 부끄러운 민낯을 공개하는 순간, 나라는 존재는 '파삭' 바스러져버릴 것만 같았다. 오래된 초등학생 시절 일기장 옆에, 매년 한 권의 다이어리를 살포시 놓아둘 뿐이었다. 나는 그렇게 공개되는 것이 두려웠다.


출산 후 시작된 육아 휴직의 늪에서 처음으로 공개 글을 썼다. 시험관 9차의 여정을 뒤늦게 블로그에 기록하며 다른 난임의 아픔을 가진 이들과 연결됐다. 글을 공개함으로써 얻는 무언의 위로를 그때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더 깊은 감정을 공유하게 된 계기는 브런치에 <이혼하고 싶을 때 읽는 책> 연재를 시작하고부터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 글을 쓰기 위한 밑작업을 하면서부터다. 부디 이 결혼에서 나를 꺼내야겠다는 마음 하나로 연재를 시작했는데, 대강의 목차를 짜고 몇 편의 글을 쓰면서 이상하게 마음이 어려워졌다. 내가 쓴 몇 편의 글은 희망과 다르게 나를 엉뚱한 곳, '과거에 대한 후회, 남편에 대한 미움, 불투명한 미래'로 데려가고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무엇을 공개할 것인가에 대해 모호했다는 것을.


내 민낯이 아니라 백수 남편의 어리석음을 공개하고 싶었던 걸까? 내 들보같은 잘못은 없고 시댁의 티눈만을 만천하에 고발하고 싶었던 걸까? 이런 남편과 이혼하는 게 마땅하다는 지지가 받고 싶었던 걸까?




그때부터 나는, 마음 어느 구석을 조명해서 공개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리고 이 글은 나를 살릴 수 있을 것인가를 또 고민했다. 목차를 뜯어고쳤다. 앞서 써둔 글의 분위기를 틀었다. 만인 앞에서 나의 가장 약한 부분, 어두웠던 부분도 가감 없이 써냈고, 우리의 가장 희망적인 부분 역시 밝게 조명했다. 나는 사회의 구조를 비판하려는 것도, 슬픈 드라마나 블랙 코미디를 쓰려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배설'보다 '깊은 사유'를 택했다. 그리고 이것이 아무도 보지 않는 일기장에 펜으로 꾹꾹 눌러썼을 때와는 다르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경험 상, 공개 글은 배설 글쓰기가 되기 어렵다. 글을 공개한다는 것은 다듬어야 한다는 것인데, 글을 다듬다 보면 자연스럽게 글 속에 담긴 나의 마음과 생각이 다듬어진다. 비논리적인 부분은 논리로 깨부수고, 지나치게 감정으로 치닫는 부분은 정제하게 된다. 과거 나의 작은 일기장에 담긴 감정적인 글과 다른 이유다.




글로써 업(業)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도 있고, 재미를 추구하는 사람들도 있고, 경제적 자유를 얻으려는 사람도 있다. 한편, 지금 당장의 삶과 내 마음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의 글쓰기야말로 공개 글로 써보길 조심스럽게 권한다.


못난 모습도 내보일 약간의 용기만 있다면, 그리고 공개 전 여러 번 다듬고 사유할 조금의 여유만 있다면 우리의 삶도 그에 비례해서 나아갈 것이다. 내가 조명하는 방향으로, 내가 다듬은 만큼.


hannah-grace-j9JoYpaJH3A-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 hannah gr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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