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 러브 코딩 23화 - 승자의 저주
민수는 문서를 소라에게 건네며 말한다.
“정소라씨, 이 공문 접수 좀 하려고요.”
소라는 민수가 건넨 문서를 보며 말한다.
“데이터 리포팅 요청 의뢰서네요.”
소라는 데스크 앞의 서류 접수철을 꺼내 들고 문서를 보면서 서류철에 내용을 기재한다.
민수는 소라의 책상 위에 공연 티켓이 놓여 있는 것을 본다.
“어, 이 가수 요즘 잘 나가던데, 애인이랑 같이 갈려고요?”
소라는 부끄러운 듯 공연 티켓을 서류철 밑으로 숨기고는 얼굴을 들어 민수를 흘겨보며 말한다.
“아닌데요, 친구하고 같이 갈 건대요.”
민수는 장난치듯 짓궂게 묻는다.
“친구? 남자 친구?”
소라는 민수의 말을 못 들은 척하며 문서에 명판을 찍고 접수번호를 적는다.
“접수 마쳤어요, 결재 다 받고 난 다음 복사본 한 부 주세요, 여기 철해 놓아야 하거든요.”
민수는 소라로부터 문서를 받아 들며 묻는다.
“예, 그런데 이 티킷은 어디서 구하셨어요?”
“구내매점에서 사면 할인돼요. 애인이랑 가시게요?”
이번에는 소라가 애인 운운하며 묻자 민수가 웃으며 말한다.
“아니요, 그냥 물어봤어요.”
민수는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민수는 자기 자리에 앉아서 문서에 찍힌 명판의 담당자란에 서명한다.
그리고 서명한 문서를 결재판에 끼워서 일섭에게 다가가서 내민다.
“문서 접수 처리했습니다.”
일섭은 결재판을 펼쳐서 보는 동안 중만은 일섭 옆에 서 있는 민수에게 말을 건넨다.
“민수씨, 장동수씨에게 병문안 가봐야 하지 않겠어?”
민수가 의아한 듯 묻는다.
“병문안요?”
“민수씨랑 술 마시다가 그렇게 되었는데, 커피라도 사 들고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민수가 조심스럽게 말한다.
“귀찮아할 텐데요?”
“가서 누가 술로 이겼는지 확실하게 보여주고 와야지.”
짓궂은 중만의 말에 민수는 거부한다.
“예이, 선배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이것은 민수씨 개인적인 일이 아니야. 우리 시스템1과를 위한 일이야.”
중만의 말에 민수는 긴가민가한 표정을 짓는다.
“지금 빨리 가, 오후 되면 다시 살아날 수 있으니까, 지금 가서 확실하게 눌러주고 와야지.”
일섭이 결재판 사이에 끼워진 문서를 보면서 웃으며 말한다.
“송사리, 얘한테 좋은 것 시킨다.”
그러면서 일섭은 민수를 정색하고 바라보며 말한다.
“민수씨, 빨리 안 가고 뭐 해?”
시어머니가 며느리 닦달하듯 민수를 몰아붙이는 일섭, 중만보다 더하다.
“예.”
민수는 내몰리듯 발걸음을 옮긴다.
민수는 장동수 자리로 쭈뼛거리며 다가간다.
“장 선배님, 어제 집에 잘 들어가셨어요?”
동수는 힘든 표정으로 민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민수는 어색한 표정으로 꿀차 음료수 캔을 동수에게 내민다.
“이거 드시고 속 푸세요.”
동수는 손사래를 치면서 말한다.
“아냐, 나는 괜찮아 으아 읍.”
동수의 괴로운 표정을 보며 무안해하는 민수는 그 자리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
“그럼, 선배님, 몸조리…, 가보겠습니다.”
“응, 그래.”
민수는 돌아서려다가 자신을 째려보고 있는 승호의 눈길과 마주친다.
“김중만이 시켜서 왔지?”
승호의 추궁하는 말에 민수는 쩔쩔매며 변명한다.
“아닙니다. 저는 그냥 속 풀어드리려고….”
승호가 민수를 보며 빨리 꺼지라는 듯 턱짓을 하자 민수는 쫓기듯 자리를 뜬다.
자리로 돌아와 앉는 민수를 보며 중만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묻는다.
“뭐래?”
민수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무안해서 죽을 뻔했습니다.”
“세상은 냉정한 거야. 당분간 저쪽에서 새로운 멤버가 나오기 전까지는 우리 과를 넘볼 수 없겠지. 잘했어!”
중만의 장난스러운 말에 일섭이 두목처럼 나선다.
“시스템2과 송사리들, 이쪽으로 지나갈 때 눈 깔고 다니라고 해.”
일섭의 말에 팀원들이 기분 좋은 듯 크게 웃는다. 이것은 회사가 아니라 완전 조폭 소굴 같다.
다른 팀 사람들이 뭔가 싶어 신계약팀을 바라본다.
일섭은 민수가 올린 공문에 서명한 후 그것을 들고 서 과장에게 간다.
일섭이 묵례한 후 서 과장에게 결재판을 내밀자 서 과장은 결재할 공문을 살펴본 후 서명을 한다. 그리고 서 과장은 일섭과 대화를 하다가 기분 좋게 웃은 후 민수 쪽을 바라본다.
“어이, 민수씨, 좀 봅시다.”
“예.”
민수는 서 과장 책상 앞으로 가서 선다.
“이거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계약 부장으로부터 잘해달라는 연락을 받았어요, 민감한 작업이니만큼 조용하게 진행해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서 과장은 결재판을 일섭에게 돌려준 후 민수를 향해 웃으며 말한다.
“민수씨, 언제 나하고도 한잔합시다.”
민수는 예상치 못한 서 과장의 말에 당황하며 대답한다.
“예, 알겠습니다.”
일섭과 민수가 서 과장에게 인사하고 돌아선다.
점심 식사를 마친 민수가 구내식당에서 나오다가 구내매점 유리에 붙어있는 전단을 바라본다. 소라가 티켓을 구매한 유명 가수 공연 팸플릿이 붙어있다.
재희가 이 가수를 좋아할까 생각하는 민수. 그 옆의 연극공연 소책자도 붙어있다. 민수는 그 팸플릿을 바라보며 재희와 나란히 앉아 연극공연 관람하는 것을 상상한다.
민수는 자기 책상에 앉아 영숙에게서 받은 데이터 리포팅 의뢰 공문을 살펴보고 있다.
그 문서에 ‘설계사 명, 보유계약 건수, 실효 계약 건수, 수금 연체율, 약관 대출 건수, 설계사 동일 주소 건수’의 문구가 나열되어 있다.
민수는 문서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든다. 그리고는 깎지 낀 양손으로 머리 뒤를 받쳐 들고 전방을 멍하니 응시한다. 중만이 민수의 그런 모습을 보며 말한다.
“왜? 감이 안 잡혀?”
“예,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쪽으로 와 봐.”
민수는 의자를 끌고 중만의 책상 귀퉁이로 다가간다.
“먼저 이 작업의 핵심부터 잡아야 해. 지금 이것은 계약자 주소가 설계가 주소로 되어 있는 것을 찾아내는 거잖아?”
“예.”
“그렇다면 보험계약 마스터 파일을 읽어서 거기의 계약자 주소가 해당 설계사의 주소와 일치하는 지를 찾아야 하겠지?”
“그렇습니다.”
중만은 이면지 메모지 위에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을 시작한다.
그것을 바라보는 민수.
“이런 개념으로 작업을 하면 되겠지?”
“아, 설계사 인사 파일에서 주소를 가져오는군요.”
“그렇지. 약관 대출은 지급팀에서 관리하고 설계사별 수금 연체율은 영업관리팀에서 관리하니까 그 팀에 가서 파일명을 물어서 하면 될 거야.”
“영업관리팀의 장동수 선배 말인가요?”
민수는 찝찝한 표정을 지으며 묻지만 중만은 기분 좋게 웃으며 대답한다.
“응, 그 장동수.”
“아, 예….”
민수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중만은 설명을 이어간다.
“자료를 의뢰한 계약서비스부는 개념만 있지 구체적인 방안은 없어, 그러니 이번 데이터 리포팅도 변경 요청이 들어올 수 있어, 그거 감안하고 작업을 해야 할 거야.”
“예, 알겠습니다.”
민수는 중만이 그려준 플로차트를 들고 살펴본다.
일환은 단말기 테이블에 앉아서 피곤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민수는 일환에게 다가서며 인사한다.
“응, 웬일이야?”
“데이터 리포팅 작업을 하는데 약관 대출 관련된 데이터가 필요해서요.”
“저번에 데이터 리포팅 한다고 왔을 때 메모해 줬던 것 같은데?”
술이 덜 깬 일환의 목소리에 힘이 없다.
“아, 저번에 메모해서 주셨던 그 파일 말인가요?”
“응, 약관 대출 마스터 파일.”
민수는 민망한 듯 말머리를 돌린다.
“아, 예… 그런데 선배님은 괜찮으세요?”
“죽겠어…. 그런데 민수씨 오전에 장동수한테 가서 불 질렀다며?”
민수가 무슨 뜻인지 몰라 눈을 크게 뜨며 묻는다.
“예?”
일환은 고수처럼 민수의 무례를 친절하게 지적한다.
“무림의 세계에서는 쓰러진 상대 고수의 모습을 못 본 척하는 것이 예의야.”
졸지에 악당이 되어버린 민수는 억울한 듯 변명한다.
“아, 그거요… 힘들어하시기에 음료수 드리러 갔었는데….”
일환은 군자처럼 문자를 퉁기며 말한다.
“그것을 사자성어로 '병 주고 약 주고'라고 하지.”
“저는 장 선배님이 그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선배님과 그냥 술을 마셨을 뿐인데….”
민수의 말에 일환은 감탄하듯 말한다.
“민수씨 내공이 상당하군. 그냥 얼떨결에 저 고수를 떡으로 만들다니….”
악당에서 다시 고수가 되어버린 민수. 역시 일환의 신통력은 대단하다.
“저도 어제, 밤에 집에서 개고생 했어요.”
이제 개까지 들먹이며 변명하는 억울한 민수.
“이 무림의 세계에서 민수씨가 새로운 고수로 등극했으니 이제 자객 술꾼들을 조심해야 할 거야. 언제 그들에게 걸려서 한 방에 갈 줄 모르니 조심하라고.”
옆에서 일하고 있는 강우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한다.
“놀고들 있네, 아직 술 덜 깼어?”
민수는 웃으며 그 자리를 뜬다. 그리고 영업관리팀 쪽으로 향한다.
민수는 사무실 복도를 걸어가며 영업관리팀의 동정을 살핀다. 동수는 책상에 앉아서 뭔가를 그리고 있다. 민수가 쭈뼛거리며 영업관리팀의 동수에게 다가간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동수는 대답 대신 왜 왔냐는 듯이 민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민수는 주눅이 든 채 어렵사리 말을 꺼낸다.
“선배님, 설계사별 수금 연체를 알 수 있는 데이터가 있다고 해서….”
죄인처럼 묻는 민수에게 동수가 무뚝뚝하게 묻는다.
“그것은 왜요?”
“데이터 리포팅 작업에 필요해서요.”
“무슨 데이터 리포팅?”
“계약서비스부에서 요청한 계약자별 주소 현황 분석이라는 데이터 리포팅에 필요한 데이터라서요.”
여전히 퉁명스럽게 묻는 동수.
“주소 현황 분석이라며 설계사 주소가 왜 필요하지?”
민수는 망설이다가 낮은 톤으로 동수에게 말한다.
“사실 사고 설계사 파악하는 데이터 리포팅입니다. 위에서 은밀하게 진행하라는 작업이라서요.”
그 말에 동수는 더 이상별 말없이 메모지에 파일이름과 관련 필드명을 적어서 민수에게 건넨다.
“감사합니다.”
동수는 민수의 인사를 무시한 채 다시 모니터 화면으로 눈길을 돌린다. 민수는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돌아선다.
민수는 팀원들이 퇴근한 사무실에서 단말기 모니터를 바라보며 일하고 있다.
민수는 키보드를 치다가 상세히 그려 놓은 플로차트를 자세히 살펴본다. 그러고는 플로차트에서 '설계사 주소'라는 부분을 펜으로 '?' 표시하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이 방법은 아닌 것 같은데….”
민수는 A4 이면지 묶음으로 된 메모지에 흐름 도표를 그리기 시작한다. 종이에 플로차트가 채워져 가는 모습이 전개된다.
플로차트 그리던 민수가 벽시계를 바라본다. 9시 45분.
민수는 아쉬운 듯 단말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