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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5일 수요일 오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불쌍한 놈 리턴즈: 문 열리는 소리 철컥,' 강제상영, 서너 시간 전

안녕하세요, 오늘도 퇴고 없이 올리는 개인적인 시간들의 메모입니다 항상 그렇지만요.. 부족한 부분이 인격적으로도 그렇고 글 자체도 그렇고.. 주절대다가 결국은 할 얘기는 하지도 못하고 이쪽 구석 저쪽 구석에서 사는둥 마는둥하면서 제대로 살지도 못하네요.


이렇게 삐그덕 삐끄덕거리며 뼈대도 제대로 잡히지 않은 구조물을 그냥 외부 노출하면서, ‘할 말 안 할 말을 구분하는 온전한 삶과 그러한 글을 써야 한다’는 자체적인 교훈을 하나 얻는 정도가 나름의 성과라면 성과가 되겠습니다. 네.. 깨달아도 변화를 위한 첫걸음을 내딛고 도약하지않으면 신기루에 불과하겠지요.


혹시라도 이 글을 읽으시는 작가님들이 계시다면 현재 이 사람의 정신상태가 그렇게 봄날 같지 않다는 것과 보따리 보따리 정리되지 않은 짐이 산적하고 있는 형국의 이 개인적인 상황에 대한 양해의 말씀 올리겠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래요, 상황이 허락될 때 작가님들 서재 방문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9시 32분. 유난히 큰 빙상장의 디지털시계. 붉은 숫자가 정면 상단에 떡하니 아이들과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다. 나도 아이들이 얼음판에 발을 들이자마자 지체 없이 시작되는 다이내믹한 코치들의 구령에 따라 눈빛이 재장전하며 매진하는 꼬맹이 친구들의 놀라운 동태만 뚫어져라 쳐다만 보는데, 오늘은 이 한 시간을 나를 위해 좀 써보자 싶은 생각으로 '도구'를 하나 가져왔다. 도구를 사용하면 인간이라고 누가 그러기에.


수년 전에 한국인 유학생이 중고로 프랑스존에 내놓은 450유로에 산 맥북을 꺼내서, 내가 선택한 명당자리의 내 테이블에 놓고 카카오 무슨 캐릭터인지는 몰라도 갈색 커버까지 쏙 벗겨서 왼쪽 의자에 둔 까만색 면가방 위에 놓았다. 이제 준비 완료인가. 저 빙상장의 코치들처럼 발이 얼음에 붙자마자 움직임이 불꽃처럼 일어나는 걸까. 나는 그렇지 못했다. 그 맥북 커버에 있는 캐릭터가 너무 생경해서 가방 위에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 같아 집어 들어서 가방 뒤에 놓았다,가 다시 가방 위에 비스듬히 놓았다가 또다시 가방 뒤로, 하지만 살짝 걸쳐서 캐릭터 부분만 보이지 않도록 둔다.


정서가 불안한 것인지 꼼꼼함이 지나친 것인지.. 애들 앞에 서야 하고 항상 수업준비를 하던 십여 년도 훨씬 넘은 세월 동안 후천적 자연발생한, 학창 시절에는 상상도 못했었던, 완벽주의성향의 발현인지.. 여튼 별것도 아닌 것에 목숨을 걸어요 목숨을. 일분 사이에 수만 가지 모션이 왔다 갔다 한다. 무슨 드라마 소품팀도 아니고.. 정말 내가 예민한 편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 정의하지는 않는다. 뭐 예민한 것이 흠이라고 말한다면 이 예민함의 역사에 대해 따지고 들다 보면 누구 하나 예민해지지 않을 이 누가 있으며, 예민한 것과 예민하지 않은 것의 경계와, 예민하게 된 이와 예민하게 만드는 이의 그 경우의 수는 또 누가 정의할 수 있는가.


여튼 말인지 막걸리인지 이야기가 또 산으로 스멀스멀 기어 올라간다 싶지만 저번에 수동운전 연수만 해도 그렇다. 집 주변에 서너 개의 운전학원이 있기에 모두 한 번은 방문했고, 그중에서 총 세 번을 방문한 곳에 65유로를 수표로 결제하고 날을 받고 10분 일찍 도착했으나 문이 닫혀 있었다. 오후 2시에서 5분이 더 지나니 경리라고 해야 하나 담당자라고 해야 하나.. 구시대적인 언어가 입 밖으로 나와서 흠칫한데, 그만큼 지나간 이 경험이 별로였다는 것이 팩트이다. 여튼 이 운전학원 직원 이 여자와 또 다른 여자 그리고 한 남자가 피자를 두 판 들고 어기적어기적 걸어오고 있다. 점심시간이 꽤 지났는데 지금 먹나 보네, 근데 저 남자가 운전강사일 것 같은데 뭐가 저렇게 여유롭나. 웃으면서 인사는 하지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가 없다. 뭔가 쎄한 느낌이 든다. 아니나 다를까, 열쇠를 주면서 저 앞에 저 회색 차에 먼저 가셔서 몸에 맞게 시트 조정하고 세팅하고 계세요, 이러면서 들어가 버린다. 그렇게 차를 찾아 들어가 안전벨트를 하고 의자를 당기고 핸들 높이도 좀 내리고 클러치도 밟아보고 기어감도 익히고 모든 준비가 끝났다. 2시 10분이다. 무슨 피자 한판을 다 처먹고 오려고 하나.. 싶은 와중에 그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문을 닫으면서 콜록콜록! 어, 젠장 이게 무슨 경우인지?! 왜 문을 닫은 후에 더럽게 바이러스를 퍼트리는지.. 약간 늦게 왔네요 미안해요 하며 자기도 페달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편하게 하시면 된다면서 시동 걸고 가자고 하는데, 마음에서는 그냥 나가자, 너무 더러운 이곳에 있으면 안 된다, 지저분한 생활방식을 보니 이미 이 연수의 질적 측면은 가늠이 되고 이미 시간관념과 프로의식의 결여로 양적 측면도 검증이 되었는데 왜 내가 여기 있어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그 인간이 액셀을 밟으면서 차는 움직이고 있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핸들을 조정하며 전진할 수밖에 없었다. 2시 15분에 시작된 내 삶의 공유는 2시 50분인지 55분까지 이어졌다. 솔직히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그렇게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인가 보다. 한 시간으로 알고 있었지만 차라리 잘 되었다. 같이 사무실로 들어가니 그 직원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어땠냐고 내게 물어보았고, 나는 '너무 좋았다'면서 '다음에 이 분 스케줄이 어떨지 모르겠네요'했더니, '아! 다음에도 이분 수업으로 연결하시겠어요? 정말이요?' 했고, '오늘은 아니지만, 제가 다음에 한번 들를게요'했다. 그 여자가 이번에는 그 남자에게 어땠냐고 물어봤고, 그 남자는 저분이 운전은 해봤을지 몰라도 수동은 완전 초보로 생각하고 기본적으로 10회 이상은 적어도 연수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새끼, 연수하면서 휴대폰이나 쳐보고 말로 잘 설명도 조리 있게 못해주는 초짜 놈이 돈에 환장을 했구나'까지는 아니지만, '좀 작작해라 네가 뭘 가르쳐줬냐 열 번 하면 어떻게 뭘 가르쳐주려고'싶었다. 여하튼, 지난 중학교 보조사감할 때 아이들이지만 그래도 이 나라를 살아가는 군상의 미니미버전을 칠팔백 명을 매일 보다 보니 이 놈도 대충 어떤 과인지 대충 감은 잡게 되었다. 물론 좋은 습관은 아니지만, 분명히 '부류'라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 확실하지 않은가. 물론 나도 잘난 것 없지만, 저런 류의 인간들과 정말 엉켜서 살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돈이 있어도 저 운전학원에는 다시 가지 않는다는 결심을 하며 다음에 연락하겠다며 웃으면서 그곳을 나섰다. 이렇게 처음이자 마지막인 프랑스에서의 운전연수는 끝이 났었다. 이런 내가 예민하다면 예민할 수도 있지만, 다시 저 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나는 그냥 안전벨트를 풀고 차 밖으로 나왔을 거다. 더 예민하게 행동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지경이다.


브런치 연재북을 월화수목금토일 7일 발행으로 걸어놓고 뭘 끄적이기가 이렇게도 어려운지 오늘은 여기서 뭐라도 좀 써보자 아침이고 기운이 좋은 곳이니 좋은 말들이 좀 나오지 않을까 싶다. 전원을 켜려는 순간, 옆 테이블에 여섯살 귀염둥이 에밀리 아빠가 와서 앉는다. 누나가 10살 많고 형이 다섯 살인가 일곱 살이 많은 어느 집 막내아들, 사랑 듬뿍 받고 자란 에밀리 아빠. 그와 그렇게 신들린 듯 입을 털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의 전쟁 그리고 재건에 대한 이야기로 물꼬가 트인 이야기에서 그가 언급한 대한민국의 교육열에 대한 궁금증도 내가 경험한 부분을 나누었다. 내가 고등학교에서 일할 때 남학생들 단어시험 통과 못해서 몽둥이로 엉덩이 찜질을 하는데 두 동강이 나서 교실 저 쪽으로 날아가서 한 남학생이 주워와서 '너무 죄송합니다 선생님, 저희 때문에 손목이 너무 아프실 텐데.. 저희가 덩치도 너무 크고.. 한두 명도 아니고... 줄도 저렇게 긴데.. 우리가 우리를 스스로 응징할게요'하는 부분에서는 아예 주변 엄마들 연연하지도 않고 박장대소를 한다. 어라, 아이들의 수업이 끝나 있다. 수요일 오전은 한 시간이 아니구나, 10시 45분이다. 한 시간 15분이 지나있구나. 우리는 11시에 시작하는 댄스수업으로 이동하기 위해 10시 50분 빙상장을 나섰다.


내 앞에 딸 둘 모두 데텍시옹 프로그램에 집어넣은 엄마, 지난 월요일 점심시간에도 빙상장에서 본 그 열혈엄마의 빨간 차가 있다. 같은 동선이므로 최대한 신호도 같이 지나가려고 생각하고 있는데.. 빨간 불로 바뀌는 순간 그녀는 그냥 지나간다 나도 보행자가 없기에 함께 홀린 듯 지나간다. 저 차 앞의 차도 여기 엄마가 운전하는 듯하다. 고풍스러운 작은 오솔길을 달릴 때도 우리 세 차는 나란히 나란히.. 드디어 도착 스폿이 보인다. 입구 코 앞에 주차 공간이 두 개가 보인다. 두 엄마가 순서대로 차 머리를 들이 넣는다. 그런 나는 저... 어. 기? 앗, 뒤에 잇따르는 차들이 있다 보니 마음이 급해져서 오히려 주차할 공간을 두어 개 지나치며 미끄러지듯 더 주행해 버린다. 걸어가는 것과 차를 타는 것, 이 둘에는 삶의 다른 측면과 마찬가지로 빛과 어둠 까지는 아니더라도 장단이 분명 존재한다. 그렇게 입구에서 약간 지나간 곳에 주차를 하고 시간을 보니 벌써 11시이다. 아이에게 너를 데려다주고 엄마 주차 다시 하고 들어간다고 하니 싫다고 한다. 입구에 있던 그 두 자리가 너무 아깝지만 솔직히 십여 초 걷는 것인데 뭘 그렇게 까탈스럽게 하나 아이 교육에도 안 좋을 수 있으니 그만하자 싶어서, 그래 그냥 여기 대어 두기로 한다. 인생을 단순하게 살고 싶으면 단순하게 생각하고 복잡하게 살고 싶으면 별 것도 아닌 일에 건건이 고민하고 감정과 에너지를 소모하면 될 것 같다. 어떤 일이든 우선순위를 두고 대충 넘기는 센스도 중요할 텐데?


도착하니 대체 선생님이 발레복을 입고 있다. 아마 이번에는 클래식 댄스인 듯하다. 아직 수업은 시작하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화장실 가는 통로를 기준으로 왼쪽에는 에밀리아빠가 있고 오른쪽에는 조아나엄마가 앉아있다. 그냥 입구에서 더 가까운 조아나 엄마 옆 자리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았다. 조아나는 우리 집 딸내미와 같이 아홉 살인데, 키가 150센티는 된다. 아이 엄마가 그렇게 큰 편이 아니라 저번에 뭐를 그렇게 잘 먹이는지 물어볼 정도이다. 저번에 중학교 보조사감할 때 각종 바캉스가 지나고 2주 만에 2달 만에 학교로 다시 돌아온 아이들 중에 유독 키가 과하게 커진 아이들이 있다. 한 아이에게 물어보니 수프를 먹었다고 했고 거의 매일 엄마가 해주고 다행히 아이도 그 야채수프를 그렇게도 좋아한단다. 조아나의 경우에는 그냥 보통으로 웬만한 거 해주고 아이가 또 다 잘 먹는단다. 아이 엄마는 무슨 영화배우처럼 머리 위에서 발 끝까지 완벽세팅을 하고 화장과 헤어도 메이크업샵을 다녀온 수준으로 다니기 때문에 아이 관리 또한 예상이 된다. 선생님의 스타일을 보고 발레를 짐작한 우리는 아이들이 과거에 어떤 댄스를 했는지 얘기를 시작했다. 들어온 지 1분도 안되어 별 얘기를 다 나눈 우리. 12시 2분, 아이들이 신발을 벗고 차가운 그 바닥으로 또 들어간다. 조아나 엄마는 아이가 클래식 발레를 3년 하면서 각종 대회에 나간 얘기를 한다. 붉은색을 좋아하는지 아이의 발레복도 온통 붉음이다. 발레를 계속할까 피겨로 완전히 갈아탈까 고민하다다 발레를 놓았다며 딸에 대한 자부심을 숨길 수 없는 그녀. 나는 조아나 재능이 많아서 고르기 힘들겠다고 맞받아쳐주었다. 그랬더니 폰을 켜서 동영상을 요리조리 찾아서는 딸 발레 영상들을 보여주며 설명을 한다. 아니 수업이 시작되었는데 무슨 지방방송을 켜는지.. 신경이 쓰인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볼륨을 올리고 있다. 오.. 마이.. 아.. 빨리 좀 그 영상이 종료되기를 바라며 신에게 기도를 짧게 한다. 수업 간간히 조아나 엄마 주변으로 몰려든 나에게는 새로운 엄마들도 그녀 덕분에 안면 텄다. 그냥 조용조용 다니는 게 좋은데 점조직이 부담스러운 경우도 많지 않은가. 영원히 맥북 꺼내서 도구를 사용할 시간이 없어질 것이다.. 10분 정도가 지나니 웬만한 학부형들은 다 착석을 했다. 어쩌다 보니 왼쪽에는 아빠들 오른쪽에는 엄마들이 몰려 앉아있다. 수업이 끝나기 10분 전에는 빨간 립스틱을 바른 아이 할머니가 유모차까지 끌고 들어오고 있다. 쌈박한 댄스 스튜디오가 아니고 1층 단층으로 된 곳이기에 문도 뭔가 너무 세게 닫히고 투박하다. 매주 수요일마다 들어올 때 유모차가 문에 끼여 고생하던 것이 생각나서 그녀가 소음을 내기 시작할 때 용수철처럼 튀어나가서 문을 잡아 주었다. 세련된 외모와는 정반대로 완전감사모드로 몸 둘 바를 모르는 순박한 모습을 보인다. 저 손녀와 우리 집 딸내미가 바캉스 전 볼륨댄스 시간에 최종 커플이 되어 보이지 않는 텐션 속에서 나는 기쁨도 느낄 틈이 없이 아이에게 정말 최대한 건조한 톤으로 '그래 재밌었어 수업?' 이렇게 밖에 축하해주지 못했었지..

12시가 되어서 수업이 끝났는데, 아이들 몇 명만 빠져나오고 나머지 열명 정도는 그대로 저 찬 바닥에 머물러 있다. 일단 뭐든 우리는 가려는데, 조아나 엄마 옆에 앉아 있던 엄마가, 우리는 게임 안 하고 가냐고 물어온다. '우리 집 아이는 수업 시간에 이미 많이 놀아서 그냥 가려고요'했더니 피식 웃으며 우리를 보내준다. 웃기라고 한 말은 아니고, 다른 집 아이와 비교할 수도 없는 각자 다른 환경에서 각자 다른 성격을 가지고 살아가기에 딱히 할 말도 없지만, 우리 집 딸내미가 조아나에 비교해서 너무 아기 같고 진지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니.. 일단 아니도 집에 빨리 가서 유튜브로 마인 크래프트인지 뭔지 게임을 하면서 뭐라고 뭐라고 말하는 영상을 보고 싶어 한다. 일단 정육점부터 들러야겠다.


좋은 곳에서 고기를 사서 아이에게 먹이고 싶었다. 저 집에는 일반 소고기가 킬로에 30유로가 넘어가고 간 쇠고기는 킬로에 19유로이다. 보통 다른 정육점에서는 14유로 안팎이지만 아이가 한 근씩 먹는 것도 아니고, 적게 먹어도 진짜 소고기를 먹이고 싶다. 얼마 전에 aldi인지 lidl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저렴하다는 것을 메인 문구로 사용하는 슈퍼에서 간 소고기를 사서 구웠는데 소시지 맛이랄까 떡갈비맛이랄까 뭔가 소고기 자체가 아닌 첨가된 가공된 맛이 났다. 아이는 오히려 밥과 먹을 때 이게 훨씬 더 맛있다고 잘 먹긴 했지만.. 그래도 저 정육점에 오늘은 가야겠다.


차를 몰고 가다 보면 앗차하는 순간에 진행방향이 순식간에 달라진다. 짐나즈에서 4분 거리에 있는 저 정육점도 까딱 잘 못하다가는 도착 시간이 7분이 될 수도 10분이 걸릴 수도 있다. 출발하고 백여 미터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구글맵에서 좌회전을 하라고 되어있다. 그런데 좌회전 하라는 곳에 좌회전 금지 팻말이 보이는 듯하다. 네비말은 듣지 않고 우회전해서 가보았다. 네비가 갑자기 꼬불꼬불한 경로를 보여주면서 8분이라고 나온다. 순간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이렇게 쭉 가면 집이 나오는데.. 어디를 어떻게 돌고 돌아서 뭘 어쩌라는 건지.. 일단 빵집과 슈퍼마켓을 보게 되고 제이가 보드게임을 빌리는 곳도 눈앞에 보이고..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이곳.. 일단 주차부터하자. 주차공간이 시야에 들어와서 차를 세운 후 저 빵집과 슈퍼마켓 바로 근처에 정육점도 왠지 있을 것 같다. 구글을 확인해 보니 빵집 옆이라고 나온다.


일반적으로 뽈레호티의 경우 그냥 뽈레호티 일반이야 파흐미에냐 이 두 종류이고 그 아래서 떨어진 육수를 맞고 익은 감자를 함께 살 거냐 말 거냐 정도인데, 통구이 기계에는 영계들이 동시에 구워지고 있었다. 상단에 영계가 대여섯 마리 하단 두 층에는 일반 싸이즈 네 마리씩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그 앞에서 사람 좋아 보이는 50대 후반 정도로 예상되는 흰 가운을 입은 부셰가 그것들을 큰 그릇에 담고 있는 중이었다. 영계 호티구이는 이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호기심을 가지고 일단 가격을 물어보았다. 일반 닭의 경우에는 물론 동네마다 차이는 있지만 완전히 크지 않고 저렇게 일반적인 크기의 경우에는 7에서 15유로 사이인 것을 알고 있기에 큰 차이가 없을 것이기에 작은 아이만 물어보았다. 2.5라고 한다. 드쥬호 쌍깡뜨. 엥? 진짜? 잘못 들었나 해서, 12.5 두쥬호 쌍깡뜨? 이렇게 또 다른 선택지를 들이밀어 보았다. 솔직히 여기 이 동네에서 저 작은 닭모양의 장난감 같은 저것이 12.5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돈을 떠나서 항상 한 마리를 사면 다 먹지를 못하기 때문에 반으로 잘라둔 것을 사거나, 한 마리를 사서 양쪽 다리와 날개를 먼저 자르고 가슴 부분은 반만 드러내어 그날 소비하도록 뼈를 바른다. 나머지 가슴 반은 볼에 담아서 랩을 씌워서 냉장고에 보관하지만 보통은 말라서 다음번에 맛있게 먹는 건 한계가 좀 있다. 그. 런. 데. 쬐끔한 아이가 있다니. 이 정도면 아이와 내가 바로 먹어치울 수 있으니 남기고 자시고 할 여지가 없다. 그러면 감자 저 것도 한통에 3유로라고 명시되어 있으니, 두 개 하면 5.5유로에 간단히 별 준비과정 없이 점시 한 끼가 뚝딱 해결이 되는 것이렸다? 그렇게 들어간 정육점 안에는 과일과 채소 그리고 쌀 웬만한 주전부리거리 각종 올리브 저민 것들을 통에 담아서 주걱으로 퍼서 무게로 파는 그런 아랍식 코너도 있고, 계란도 직접 어디서 공수해서 파는 건지 특별한 상표가 없다. 유통기한을 보니 11월 24일까지이다. 응? 슈퍼보다 신선한 듯한데? 크기는 두 가지이다. 완전 큰 것과 큰 것. 나는 주로 작은 싸이즈를 사는 데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냥 웬만큼 큰 것을 산다. 이건 딱 한통 남았다. 왜 인지는 모르겠다. 이것이 더 신선해서 인지 아니면 여섯 개 들이 계란 한통에 2.90유로와 3.60유로라는 약간의 가격차이 때문인지. 아이는 멜론 모양의 동그란 껌에 또 꽂혀서 껌껌 껌껌 야단법석이다. 이렇게 준비된 식사가 있으면 집에 가서 바로 밥 먹어야 하는데 단 것을 먹으면 입맛이 떨어질 수도 있지 않겠느냐 등의 말하는 사람 목만 아픈 얘기를 시작하다가, 그럼 가서 밥 먹고 난 후에 먹도록 주머니에 넣어가자,라고 한다. 그러다가 뭐가 그렇게 꼼꼼하게 이래라저래라 애를 아주 수동적으로 복종하게 만들고 하나부터 열까지 아주 프로토꼴을 짜서 상자에 가둬두고 키우려고 하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그냥 '점심 먹을 수 있을 거 같으면 먹던가'라고 말을 바꾸었다. 한번 말을 뱉으면 웬만하면 아이의 반응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이 이래도 오케이 저래도 오케이 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다 보니 또 자칫하면 아이의 의견이 묵살되어질까 봐 조심스러운 경우도 있다. 그래서 동시에, 아이가 의견을 내는 경우에는 웬만하면 '그래 그렇게 하자'라고 하는 경우도 많다. 여하튼, 껌 한 개까지 추가. 바나나 닭다리 8개 스테이크 아셰.. 옛날 une huit 에피소드도 다시 나누고 나니 갑자기 내적 친밀감이라도 생긴 걸까. 사탕 한 봉지를 나더러 이것은 당신 거라고 하면서 계산하려고 모아둔 봉다리 봉다리 옆에다 살포시 놓는다. 그걸보더니 아이가 '저 사람은 좋은 사람'이란다.

영원은 아니라 할지라도 긴 시간을 함께하면 '좋은 사람이라는 판단' '진심'이라는 마라톤의 모습 또한 달라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우리는 알 수 없지만, 그냥 지금 이 순간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을 테고 좋은 시간을 주고받고 싶을 테다.


오후에는 도서관 code de la route dvd video interactif코드 드 라 후트 데베데 비데오 앙테흐악티프 예약해 둔 것도 빌려옴. 원래는 아이 책 일곱 권 반납기일이 지나서 그것을 기계로 반납하려고 카드 바코드를 기계에 삑 하고 대보니 밤사이 운전 신호 교통법규 관련 책과 영상물 3개를 예약한 것 중 하나가 준비되어 있었던 거다. 일처리가 10년 새 상당히 좋아졌다. 프랑스도 변하는구나. 변해야 해서 변하는 것인지 변하고 싶어서 변하는 것인지 변하고 싶지 않은데 변하고 있는 건지, 변한다는 허상을 내가 보고 있는 건지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 주변에 분명히 실재하고 있었던 '좋은 환경'에 나도 근접하는 때가 잦아지고 있다는 것은 나의 생존과도 직결하는 문제이다. 다행이다. 가끔씩 너무 힘들 때 맞는다는 비타민 주사처럼, 괴사 되지 않도록 나 스스로 살고자 바둥대기라도 해야 한다. 햇빛을 향해 머리를 돌리고 몸을 뻗어야 생명을 이을 수 있다.


슈퍼마켓. 유독 프리뜨가 너무 맛있는 감자를 파는 수퍼 lidl. 냉동 크와쌍 여섯 개들이 하나와 미니 크와쌍 빵오쇼콜라 12개들이 하나 외출용 우유. 계산대 주변에 변심으로 그냥 둔 물건들이 꽤 있는데, 오늘은 깔끔하다. 그런데 와중에 초콜릿 2개가 내 눈에 들어왔다. 유일하게 변심한 제품 하나라 더 눈에 띈다. 그제야 제이가 슈퍼 가면 초콜릿 넛종류 박혀있는 걸로 좀 부탁한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마 한두전에 했었지만, 메모하기 좋아하고 언제나 살 것이 있으면 폰의 일정에 바로바로 타이핑해두는데, 저건 그렇게 하지도 않았고 생각의 파편으로도 돌아다니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의 간절한 염원이라도 있었던 걸까. 저것이 지 발로 걸어와서 내 눈앞에 서 있는 꼴이다. 우리가 입고 마시고 쓰는 모든 돈이 어디서 나오는지 생색을 그렇게도 술만 처마시면 해대는 꼴과 오버랩이 되면서 마치 무엇에 홀린 듯 가격은 물어보지도 않고 계산원에게 이거 두 개는 우리가 살 테니 넣어주세요 한다. 알고 보니 하나에 3.70유로였다. 이 cote d'ivoire브랜드는 그렇게 특별히 비싼 건 아니지만 보통 원 플러스 원의 형태로 너무 많이 봐와서 두 개를 샀는데 할인도 없는 꼬뜨 디브와 초콜릿 두 개에 7.40유로는 좀 생소하다, 그것도 여기 리들 슈퍼마켓에서. 뭐 십 원짜리 백 원짜리 아껴서 누가 알아준다고. 지지리 궁상도 손발이 맞아야 떨지. 혼자서 그래봤자 결국 누구 좋은 일 시킬지. 됐다. 그냥 사다주자. 먹고 싶다 하니.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는 심정으로.


스테이크 아셰를 보고 바가지.. 카드가 된 거냐며 좀 많이 놀라는 티를 냄. 들들 볶다가. 거기 감자를 보고 자기가 튀김을 준비한다고 했지만 또 언제 어떻게 바뀌고 어떤 자은 문제가 들이닥쳐서 괴물로 변할지 불안해서 내가 한다고 하다가. 그냥 뒀는데 8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또 쥐이프쥐이프 야볼 야볼이 날 화나게 함. 요 며칠 내가 아플 때 설거지를 하면서 또 튜이요가 다 막혔는지 씽크대 물이 샌다고 야단법석. 마이너스의 손 니 손이 닿는 모든 것은 파괴되거나 고장 나거나 죽거나.. 구피 한 마리의 행방은 여전히 알 수가 없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 지 아빠집에도 아홉 시가 넘어가서 문을 열어주지 않은 것. 거기서도 ;잔머리를 쓰다가 된통 당한 듯 그렇게 레스토랑에서 자기들끼리 밥을 먹고 밥값을 내고 뭐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음. 거짓말을 이렇게 일상으로 하다니.. 지 새엄마에게 그리고 지 엄마에게 뭐라고 했을지.. 맨날 이쪽과 저쪽 사이에 끼여서 너무 힘들다는 말을 하는. 미친 새끼 지가 양쪽에서 거짓말하는 것이 힘든 것이었구나 이제까지 제발 아무 말도 하지 말던가. 진짜 엮이는 것을 이제 거부한다. 그냥 너 새엄마 엄마 이렇게 삼각축으로 잘들 살아라. 이제 이 공공의 적은 이 지긋지긋한 이상한 세상에의 문을 열고 어디로든 가련다. 제발 좀 떠나자. 관짝으로 나가고 싶지 않으면 빨리! 쫌!


10년 도 훨씬 전, 네 엄마가 네게 데리고 온 그 엘리오스를 기점으로 나는 네가 지니고 있는 파괴력을 이미 보았다. 그리고 며칠 전부터 보이지 않는 2번 구피까지. 엘리오스가 왜 그렇게 날카롭고 예민했는지, 거짓말이 거짓말인 줄도 모르고 거짓말을 해야 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면 보이지 않는 물고기의 행방을 상상하고 고민하고 걱정해야 하고 그래도 알 수 없는 진실에 그때부터는 모든 것이 의심스럽고 날카롭고 예민하게 변하는지 알게 되었다. 엘리오스는 제이의 엄마가 데려갔지만 얼마 되지 않아 심장마비로 수의사에게 판정받았다. 내가 얘를 피해서 얘네 엄마집에 어린아이를 데리고 피신 갔을 때, 침대에서 잠시 휴식도 못 취하고 너를 걱정하는 네 어미의 쿵쾅거림으로 다시 눈을 뜨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했던 것이 아직도 기억나는데, 그래도 한 번씩 이곳을 벗어나 그래도 아이할머니인 그녀의 그 작은 아파트에서 잠시 휴식을 취할 가능성이 있을까 생각할 수밖에 없는 나는 엘리오스의 그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방금 들었다.


나는 너에게 좋은 놈이었고 지금은 이상한 놈일 테고 추후에는 나쁜 놈이 될 거야

너는 내게 이상한 놈이었고 지금은 나쁜 놈이고 추후에는 좋은 놈이 되어 줬으면 좋겠다

내가 살려면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지 너도 나도 잘 알고 있지만 너도 나도 말하지 않고 있다, 서로 다른 이유로. 그래서 나는 이상하고 넌 지금 참 나쁘다는 거야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물고기에게 밥을 주면서 동물의 삶에 대해 조금이라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 아이에게 한없이 미안해지는 지점이다. 아이에게 동물과 인간의 차이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 차이를 전혀 모르는 것 같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삶, 솔직히 이것도 쉬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동물과 인간 모두 된다고 했을 때, 전자의 경우에는 만족할 수 있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여기에 '행복감'까지 추가되어야한다고 아이에게 내 의견을 들려주었다. 어라, 말하는 동시에 헷갈린다. 동물이지만, 저 만족함이 행복감과 동일한 경우도 있지 않겠으며, 인간이지만 만족함도 행복함도 없이 사는 경우가 많으니.. 결국 '행복'의 경우, 각자의 '선택'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건가. 이렇게 뭔말인지 모르고 씨부리는 문장은 요기까지 하자. 아이가 '나는 그래도 여기서 자고 먹고 하는 것까지는 되니까 괜찮다'한 그 말을 기억하고 제발 아이 엄마여, 정신차리자! 도대체 어쩔 생각이니..?!


일단 자학은 요기까지 하고, 며칠 뒤,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영역의 장을 경험해 볼 기최를 가지니 뭐라도 준비 좀 해야할 생각하자. 응? 살고 싶어 죽고 싶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그렇게 목숨을 지탱만 하려고 하지는 말자. 제발 삶이든 죽음이든, '선택'하자, 좀!


선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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