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한 놈 리턴즈: 문 열리는 소리 철컥,' 강제 상영 9시간 전
오늘은 수요일, 아이 학교가 없다.
등교..
8시 20분에서 30분 사이, 1분이라도 늦으면 출입문은 닫히고, 그때부터는 교장에게 직통으로 전화를 해서 열어달라고 구질구질하게 구걸해야 한다. 타격감이 워낙 좋은 우리 집 아이는 교장 그리고 담임 그리고 반 아이들에게 찍혀서 하루 종일 놀림을 당했다고 속상해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평생 닫힌 문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엄마가 교장에게 전화하고 입구 벨을 누르며 누군가 제발 열어줘, 아이들 누구라도 촘촘한 철창 너머의 우리를 보고 제발 거기 누군가에게 얘기 좀 해 하던 모습을 기억하게 될 것이고, 이것은 삶의 여러 상황에서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걸어서 간다면 15분 거리지만, 요즘 날도 춥고 혹시 가는 길에 공사구간이 있으면 돌고 돌아야 하고 학교 근처 주차장도 등교시간에는 자리가 거의 없어서 걸어가는 시간만큼 계산을 하고 8시 10분에는 늦어도 나가야 한다.
그런데 오늘은 이 등교 준비의 긴장감이 적다. 그래도 아이를 빙상장에 데려다주어야 한다. 등교 시간에 비해 한 시간 늦은 9시 30분이라 무슨 오래된 먼지 앉은 가발처럼 텁수룩한 머리를 감을 시간이 난다.
cattier shampooing. 꺄티에 샴푸앙. 순해서 매일 사용하는 용도로 나와서인지 1L에 9~11유로 정도로 약국에서 팔리고 있는 데 벌써 몇 년째 이 샴푸를 사용하고 있다. 처음 이 브랜드를 봤을 때는 샴푸뿐만 아니라 꺄르티에 Cartier 브랜드로 착각을 하고 수분크림 아이크림 등등 거의 모든 라인의 낮게 책정된 가격에서 좀 놀랐다. 큰 슈퍼마켓에 붙어 있는 혹은 내부에 있는 파라파마시 쪽에서도 항상 볼 수 있는 브랜드이다. 여하튼 이 샴푸도 조만간 사러 가야겠다. 거의 바닥이다.
저 샴푸도 처음에는 지금보다 성능이 더 좋았다. 요즘은 아마존에서도 묶음으로도 팔고 하면서 판매량을 높이는 대신 가격을 더 낮추고 품질 또한 덩달아 더 떨어진 듯하다. 여하튼, 저 아이로 머리를 감았다. 도대체 며칠이 또 지나버린 건지.. 샤워를 언제 했었던가.. 저번에 수영장 갔다 와서도 머리만 감았었는데.. 욕조에 물을 받아 때를 벗긴 것은 더 오래전 이야기이다. 도대체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드디어 머리를 감았다.
그 긴 터럭을 부여잡고 물을 빼고 접고 또 접어 그 위로 수건을 두르고 낯을 씻는다. 머리의 물기를 어느 정도 흡수한 그 수건을 풀어서 대충 얼굴을 닦고 수건들은 따로 모아서 문 손잡이 이곳저곳에 걸어둔다. 어느 정도 마르면 지하의 빨래통 주변 이곳저곳에 이차로 말려서 수건이 어느 정도 더 모였을 때 빨래를 해야 한다. 요즘 같은 날씨엔 수건류를 말리는 것이 여름과 비교해서 마음 같지 않다.
힘들게, -'힘들게': 이 날의 광경은 이 부사를 적으면서 파노라마처럼 내 머리를 드르르륵 갈고 지나간다- 중고로 '들고 온', 그때만 해도 최신식이었던 삼성 세탁기는 95도 수건 기능이 있는데 저렇게 빨고 나서 여름 직사광선에서 서너 시간만 말려서 까칠까칠 뽀송뽀송 만족도 최상이다. 건조기능도 있지만 한 번도 사용해보지 않았다. 5,6년 전인가 빨래방에 이불 빨래하러 다녔는 데 그때는 건조기를 사용해 봤지만 집에서 고온으로 한 시간 정도 저 물건을 사용한다는 것이 너무 부자연스럽고 낯설다. 그래도 한번 사용하고 나면 계속사용할 것 같기는 하다. 지금 저 수동차처럼. 차를 끌고 다니면서 걷는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었는지, 어제 아이 점심을 집에서 먹이고 학교에 데려다줄 때 해가 좋아서 걸어갔다가 다시 집으로 오면서 오르막길을 걸어 올라오는데,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사람은 환경에 의해 어떤 식으로든,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 탈피에 탈피를 거듭하는 것이 확실하다.
드라이기로 잡초처럼 무성하게 올라오는 것들을 털고 말리고 털고 말리고.. 그런데 갑자기 알람이 울린다. 크와쌍이 다됐나 보다. 특유의 따뜻하고 포근한 그 냄새를 기대하며 부엌으로 들어섰따. 어, 오븐이 비어 있다. 아뿔사. 오븐 밖에서 물컹해지고 있는 반죽 두 덩어리.. 오븐이 빈 상태로 20분 동안 돌아가고 있었다. 해동된 반죽을 다시 냉동하기도 그렇고 슈퍼에서 위기상황에서 먹으려도 다둔 빵오레 봉지를 꺼내서 누텔라를 발라먹으려고 생각하니 그건 또 싫었다. 시간을 보니 8시 45분. 9시 30분에 피겨 수업이 시작하는데.. 적어도 9시 15분에는 나가야 한다. 그러면 30분이 남았다. 이왕 오븐이 예열이 완벽하다 못해 차고 넘치니, 15분 정도만 구워도 될 것 같다, 그래 됐다. 킵 고잉.
그 사이 일단.. 우유통을 냉장고에서 꺼내서 식탁 위에 올려둔다.
그항프레에서 le lait de la ferme des Peupliers라는 브랜드도 일반 슈퍼와 큰 가격 차이가 없지만 나쁘지 않은 우유가 있다. 이 이유도 아니다. 저번에 그항프레 슈퍼에 갔을 때 약간 노릿한 우유가 있기에 내가 아주 어렸을 적 엄마가 냄비에 받아 온 표면에 막이 형성되어 있고 따끈따끈했던 그 우유가 생각나서 집어 들어든 그 우유도 아니다. 저 우유의 경우에는, 가격이 바싸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몇 달 전에 뭐였는지는 바로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경험한 바가 있어서, 1.70에서 2유로 사이의 다른 우유에 비교해서 3유로가 조금 넘게 책정되어 있는 그 몸값만 보고 이것의 맛도 남다를지는 알 수 없다,라는 생각으로 반신반의하며 집어들었던 우유이다. 이름은 Lait frais fermier de Jersiaise entier, 래 프레 체흐미에 드 제흐지에즈 앙티에. 그항프레에서 파는 이 두 종류 중 하나가 아닌 수퍼U에서 산 우유이다. 가격은 1.75유로이고 보통 1L들이 세 통을 산다. 그러면 이틀 정도 아이와 고양이를 먹이고 내 홍차에도 넉넉히 넣을 수 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퍼마켓 Carrefour intermarché Auchan SuperU Monoprix 중에서 수퍼유의 유제품이 제일 맛이 좋다고 생각한다. E.leclerc나 franprix는 집 근처에 없어서 잘 가지 않는다. Auchan도 저번에 치과 앞에서 시간 떼우면서 장을 보면서 처음으로 거기 우유를 먹어 봤는 데 우유통에 '행복하게 밖에서 풀 뜯어 먹으려 큰 젖소'라는 느낌의 메세지가 있어서 집 근처에는 없지만, 빙상장 근처에 하나가 있으니 거길 가서 수퍼유에서 오샹으로 갈아타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저번에 갔을 때 우유류가 매진되어 있어서 그냥 치과 근처 물건 많고 좀 더 큰 오샹 수퍼에서 우유 세통을 사 들고 와야겠다. 그러고보니 내일 모레 치과 예약이 되어 있다. 그나저나 견적서는 어떻게 감감무소식이다. 사보험에서 얼마나 커버가 되는 지 좀 알아봐 달라고 했더니 반응이 없다. 결국은 보험 관련도 내가 다 직접 처리해야하는 게 맞는거다. 외국인 아내고 어쩌고 저쩌고 잡소리는 다 쓰잘때기 없는 것이고, 저 인간이 하는 일은 나도 다 할 수 있고, 저 인간이 못하는 일도 결국은 내가 다 시도해서 되게해야한다. 뭘 믿고 맨날 기다리고 있는지.. 허송세월 하는 기술만 늘었다. 지난 10년동안. 어이구, 정신차려 이 여편네야. 허송세월하는 게 뭐가 그렇게 자랑이라고 이렇게 기록까지 해두니. 정신줄 잡고 눈치 좀 챙겨야 하지 않겠어?
우유를 살 때는 항상 entier앙티에만 사는데 우유통 뚜껑이 빨간색이다. 파란색은 드미에크헤메라서 지방을 좀 제거한 것이고 내가 사는 것은 유지방에 손 대지 않은 거다. 초록색은 아예 살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설마 무지방일까 싶은데, 그럴 가능성도 있어보이지만 그게 무슨 맛일지는 모르겠다. 가끔식 cru라고 생우유를 파는 경우도 있는데 예민한 사람들은 설사를 할 것 같은데 이건 뚜껑이 까만색인가 확실하지 않다, 몇년 전에 한번 사먹인 적이 있는데 그때 설사든 뭐든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 같지는 않다. 발효우유라는 것도 있는데, 일반 수퍼에도 있고 심지어 아랍수퍼에도 있는 그것은 뚜껑이 금색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데 다트라는 꾸덕하게 말린 과일과 함께 먹어본 적이 있다.. 염소우유 산양우유 당나귀우유 등 마이너까지 다 챙기면 종류가 꽤 다양한 편이다. 프랑스인들은 주로 냉장보다는 한국에서 본 적이 있는 멸균우유 식으로 생수 옆에 하나의 코너로 있는 그런 우유를 많이 먹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한국여자라서 그런지 보수적인 옛날 대구여자라서 그런지 뭔지는 몰라도 냉장고 밖의 우유에는 손이 전혀 가질 않는다.
일단 우리 집 바로 옆에는 없는 신선제품 수퍼인 그항프레에서 사먹은 Lait frais fermier de Jersiaise entier, 래 프레 체흐미에 드 제흐지에즈 앙티에, 이 우유가 너무 만족스러운 맛을 품고 있었고, 이것을 사기 위해서 아직 수동차를 몰고 혼자서 저기까지는 가보지 않았다. 저길 가려면 사방에 있기는 하지만 사방 모두 20분은 적어도 잡아야 한다. 그래서 우유를 꺼낼 때 마다 삼삼하게 떠오른다.
오늘 식탁 위에 꺼내 놓은 저 우유는 그래서 일반 슈퍼에서 산 빨간색 뚜껑의 일반 생우유이다. 우려 둔 홍차에 넉넉히 붓고, 아이에게 줄 우유 컵은 젖병 데우는 기계에 넣고 중탕으로 데운다. 얼마 남지 않은 우유도 냉장고에 넣지 않고 일단 식탁에 두었다가 고양이를 주어야 한다. 시엄니는 고양이에게 우유는 독약과 같다고 아이에게 말해서 그 이후로 며칠을 내가 고양이에게 우유를 줄 때마다 울부짖으며 큰일 난다고 난리법석을 떨었다. 아니.. 3월부터 계속 주었고, 고양이가 물 자체를 입에 대지도 않고 지 스스로 우유를 달라고 우유통을 보면 환장을 하는데 갑자기 9월 어느 날 제이의 엄마가 그렇게 말한다고 내가 안 주겠는가. 아이에게 6개월간 하루에 세 번을 우유를 마셔도 안 죽었으니까 걱정 붙들어 메라고 하고, 지금도 오매불망 기다리는 그 우유를 매일 먹이고 있다. 그나저나, 혹시라도 새벽에 배고파서 와서 밥을 찾아오려나 해서 건사료를 둔 것을 다 먹었나 궁금했다. Ai에게 물어보니 길고양이의 경우,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에 추운 날씨에는 고단백으로 평소보다 2배 정도 먹어도 좋다고 해서 그렇게 야식까지 준비해 둔 것이다. 어라, 그녀 밥그릇을 보니 거의 비어 있다. 건사료를 다 먹었으니 아침밥은 네가 좋아하는 쏘스로 줄게 여덟 가지 중에서 어떤 맛으로 줄지는.. 그냥 잡히는 대로. 선택 앞에서 한없이 쪼그라드는 나는 고양이 밥 앞에서는 그 무서운 '선택'의 장벽이 한없이 낮게 느껴진다. 그냥 상자에 손을 넣고 잡히는 대로 준다. 무얼 주든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프린세스. 그 생존력과 환경 적응력 그리고 삶의 확실한 목표. 동물로 태어나 철저히 동물로, 죽을 때도 동물답게 그렇게 강하고 깔끔한 묘생을 살다 가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섬뜩하기까지 하다.
크와쌍. 너무 잘 익었다. 이렇게 말하니 뭔가 고구마를 삶은 듯 물컹한 느낌인데, 정말 너무 완벽한 아웃핏에 흐뭇해서 기쁘게 아이를 부른다. 아이도 바삭바삭 잘 구워지고 색깔과 모양까지 완벽한 이 아이를 잔소리 필요 없이 순식간에 해치웠다. 그렇게 시간은 부족했지만 지체 없이 아이가 행동해 주었고, 마치 수동을 평생 몬 사람처럼 15분을 잡고 가야 하는 곳을 나가는데 1분, 운전 8분, 대기실 입장 1분 총 10분 만에 스케이트화를 신게 되었다. 우리 뒤로도 서너 명이 들어왔다. 바캉스 끝나고 첫 수요일 오전 수업이라 모두 어리바리한 모습이 조금 있다. 너무 인간적이잖아 좋아. 이미 시간은 9시 30분이 되었지만 빙상장의 얼음을 고르는 차가 여전히 이리저리 돌고 있다. 아까 들어올 때 보니까, 앞 타임에 다른 그룹이 있었던 듯한데, 어쨌든 다행이다. 아이가 한 다리 내가 한 다리 해서 착화 완료. 까만 데캬틀롱 장갑까지 딱 끼고 아이들과 함께 여유롭게 빙판으로 들어가는 우리 집 딸내미.. 9시 32분이다.
다음 주 수요일에는 진짜 넉넉하게 나오자. 엄마가 독하고 완벽하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다. 아프다는 핑계도 하면 안 되는 것이 아픈 날이 안 아픈 날보다 더 많을 수 있기에. 사람 사는 거 아무도 장담 못하니까. 일단 운동은 시작하고 유튜브 중독도 줄이고 화도 좀 덜어내고 일도 좀 더 진지하게 하지만 고민만 하지 말고 뭔가 결과를 만들어내도록 뇌를 좀 사용하고... 할 일이 많이 많이 생각이 나지만..
그래.. 일단 오늘이라도 당장 잘 지내보자. 그럼 되지.
그래.. 일단 네 애비가 퇴근하기 전이라도 마음 편히 우리 지내보자. 그럼 반은 성공한 것이여.
우리를 또 얼마나 괴롭힐지.. 개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