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강의 제이 바캉스주간이 겹쳐서 감정도 글도 정리가 안된 일주일 일기
*퇴고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개인적인 기록
2주간의 바캉스 투쌍 동안 첫 주는 피겨 스타쥬가 있고 월화수목금토 이렇게 오늘이 마지막 날인데 못 갔다. 겸사겸사 16구 아클리마따시옹 정원으로 갈 마음이 생겨서 오후 한 시경에 집에서 나섰다.
선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아이와 좋은 시간을 보냈다. 이것만 기억하면 될 것 같다,라고 하고 싶지만 메트로의 문제로 두어 시간 집에 가는 시간이 지체되면서 아이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뭐냐고 했을 때 '저녁에는 걸을 때 다리가 아파서 좀 힘들었다는 거'라는 말도 기억하고 싶다. 예상치 못했던 비와 강한 바람 그리고 대중교통의 반란.. 고생했을 아이가 안쓰럽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2025년의 어느 가을날 빠르게 성장하는 아이와 함께 귀한 시간 잘 보냈다.
서머타임 종료
몬스테라 분갈이
어항 물갈이
부서진걸 다시 끼워 맞출 수 없다 등등 메모해 둠
새엄마가 혼자 오래서 혼자 갔다가 입구컷 당한 그
문을 열어주지 않아서 들어가지도 못하고 바들바들 떨었다는데.. 이걸로 내가 당할 고통 최소 5일 예상. 3~4일 막장 스펙타클+잠자는숲속의누구누구로 멘탈 나가다가 4~5일째에는 신체적으로 반응이 올 가능성. 환절기 특성상 감기몸살 예상됨.
기어들어오면서 쭝얼쭝얼 누가 들으면 내가 부자상봉을 엄청 싫어하는 줄. 포인트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는. 능지의 문제구나, 그러니 화학약품을 작작 흡입하지 그랬니.. 이제 고쳐 쓰고자 하는 맘 버려야 할 듯. 10년을 기다리고 결과가 나왔는데도 인정하지 못하는 또 다른 장기 모두 다 손상될 듯. 이이를 지켜주고 낫게 하고 싶은 사람이 저렇게 대기를 타고 있는데, 이제 기회를 줘야 할 듯. 아이와 나로 인해 자신의 아이가 힘들고 쉬지도 못한다고 생각하는 거 솔직히 팩트잖아
아침부터 춥고 몸이 으슬으슬 떨림
몸살인지 인후염인지 편도선이 부은 건지 좀 힘드네
일어날 생각을 않으니.. 자기 엄마에게는 아이 수영장 데려다준다고 뭔가 엄청 책임감 있는 아빠의 모습을 어필하려고 어제저녁에 온 듯한데.. 문도 열어주지 않는 새엄마와 곧 다 죽어가는 듯 어필했던 지 아빠에게 제대로 쇼크 받은 듯. 작년에도 그리고 재작년에도 그는 그렇게 문전박대를 당했었지. 그때마다 일이주 된통 똥물 뒤집어쓴 게 누구였던가. 여하튼 저 인간의 바캉스 패턴은 절대 어긋나지가 않는구나.
내 몸이 아프기 시작한 것이 저 인간이 10월 24일 자기 아빠 생일과 관련해서 그쪽 새엄마와 통화와 문자로 스트레스받고 또 우리에게 그 똥을 토스할 때부터 면역력이 결핍되면서부터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책임을 전가할 누군가를 찾고 있는 것일까, 어느 누군가에게는 며느리가 잘 못 들어와서 아들이 저 모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또 어느 누군가에게는 아들을 깨떡같이 키워서 하루하루가 지옥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또 어느 누군가에게는.. 또 어떤 누군가에게는...
아이가 이틀째 수영장 활동이 있기에 아침 5시 몇 분부터 7시 40분까지 잠이 깨다마다 했다. 아이가 아침으로 떡볶이떡 구운 거 먹고 싶다고 한 게 생각나서 준비해서 아이를 깨우니 득달같이 일어난다. 세수 좀 하고 오라고 했더니 또 물만 두어 번 얼굴에 찍어 바른다. 우유를 데워서 바나니아 두 스푼과 코코아가루 한 스푼을 넣어 잘 섞어 접시 옆에 둔다. 너무 허여멀건한 떡볶이만 주려니 그래서 달걀프라이도 먹을 건지 물어보니 예스란다. 제이가 오면서 시엄니가 근처 숲에서 직접 딴 호두를 사둔 것을 껍질을 까서 작은 조각케익통 정도의 상자에 담아 보낸 것도 차 안에서 먹도록 좀 챙겨 넣는다. 플라스틱통은 찾을 때마다 싸이즈가 맞지 않거나 뚜껑이 없거나 매번 이 모양이다. 지퍼백이 다행히 제 소임을 했다. 내 홍차는 우려서 우유로 온도와 색감을 조금 낮춘 후 찐 초록 보온병에 넣어 8시 40분에 집을 나섰다. 아이를 수영장 가는 미니버스에 넣어주고 나서도 뜨끈하게 마살 수 있을 것을 생각하며 나를 위한 그 짧은 시간이 벌써 기대가 된다. 새로 산 건 어떻게 득달같이 알고 얼마냐고 어제 물어봤던 제이. 좀 좋아 보이기는 하는데 lidl슈퍼마켓 parkside제품이라 4유로밖에 하지 않았다. 캠핑용품이라 보온이 쨍쨍한 건지 새 거라서 성능이 빵빵한 건지 너무 마음에 든다.
내가 운전하지 않았더라면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를 데려다주려고 씻고 어쩌고 한다고 피곤함이 더해서 오후에 상태가 완전 막가버릴 수도 있는데, 오늘은 우리가 문을 나서는 순간에 계단을 내려오기에 아이 인사는 받았다. 지 아빠와 새엄마에게 문전박대를 받고 그 피해의식과 열등감 그리고 트라우마로 또 며칠을 술 쳐 마시고 비실 비실댈지..
라고, 생각한 것이 오후에 딱 맞아떨어졌다.
부모를 골라서 태어날 수 없고 친구도 가족도 그렇다며 또 독일어 욕류와 유태인혐오 그리고 사르코지가 어쩌니 저쩌니 하면서 다시 또 영어욕류와 유태인혐오 그리고 서러움과 자기혐오까지… 그러더니 갑자기 청소리를 가지고 이층으로 가서는 별별가지 소음을 다 만들어내고 쿵쿵 소리가 너무 심하게 나서 직접 올라가 보니 서랍장이 내려앉은 건 지 옷가지가 다 나와있었다. 뭐가 어떻게 됐다고 징징거리며 말하기에 문을 쿵 닫고 내려와 버렸다.
빨리 여길 벗어나야 해
지금 필요한 건 뭐?
RUN!
운전을 하기에 아이를 싣고 동네 도서관으로 가는 것도 후다닥 결정했다. 1.5리터 물통에 물이 한 1리터 정도 남았기에 파인애플맛 비타민 2개를 반으로 나눠서 반달모양 4조각을 거기에 넣었다. 감기가 자주 걸리는 편은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챙겨 먹지 않으면 얼마가 갈지 모른다. 솔직히 좀 쉬고 싶은데 선택의 여지가 없다. 계속 참고 앉아있기도 이젠 안된다. 딱 10년 반환점이 되니 내 샤우팅이 분을 이기지 못할 때도 있어서 저인간과 나를 분리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가 그 오물을 다 뒤집어쓴다. 수동운전을 10년 전에 했었더라면 지금 나는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자유를 획득한 비둘기가 과연 작은 새장 속에서 주는 모이와 물에 길들여져 다시 회귀하고 그 철장 문을 스스로 닫았을 가능성과 푸른 하늘로 방향을 선회하여 훨훨 날아갔을까.
17시 50분. 도서관 문을 닫는 시간임을 알려온다.
짐승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곳에 잠자코 앉아있었다면.. 생지옥이 따로 없었을 텐데..
결단력 혹은 자율성. l’Autonomie,
내 선택을 내가 내림에 자율성이 필요한 데
나의 경우엔, 혼자서 가고 싶은 곳을 가고 갈 수 있게 된 이번 달의 수동차 운전 시작이 그 시발점이다.
이건 극명한 사실이다.
차를 몰고 나가니 유독 공사구간이 많다.
걸어 다닐 때는 풀 필요가 없었던 문제지.
예측하지 못한 그런 것들이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갑자기 나타나면 새로운 길을 찾고 또 찾아야 한다.
너무 빠듯하게 시간을 잡고 나가면 함께 타고 있는 사람이 불안할 수 있으니
넉넉히. 준비하는 삶.
시간이든 돈이든. 꿈이든 가치이든.
이어지게, 부드럽게 이어가야 한다.
제이는 스트레스상황에서 집에서 문제가 되는 곳을 찾아다닌다.
거기에 자신의 분노와 화를 온통 분출하고 울부짖는다.
식기세척기 서너 번 물이 다 터져서 부엌바닥이 엉망이 되고 그 물을 저벅거리고 온 바닥을 헤매고 다니고..
내 랩탑과 보일러까지. 마이너스의 손이 닿는 곳은 파괴의 서막이 열린다.
아이와 도서관으로 나서는 나에게 '이제 저차는 니 거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이제 어디든 니 마음대로 다닐 수 있겠네. 수동도 별거 아니란 걸 알아버렸네'하는 제이.
'왜 운전 안 하냐'에 대한 화답을 해 줬는데, 이 선택이 끌어당길 나비효과에 대한 인지는 전혀 없을 줄 알았는 데 '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쎄한 느낌'이 조금은 있나 보다.
그래, 우리 함께 지켜보자.
비가 내리고 추운 데다가 으슬으슬 떨리고 콧물도 줄줄 나오니… 어제부터 휴지곽을 들고 다니는 형국이다.
코가 이번엔 헐지 않았으면 좋겠고 내일이 되면 눈과 목의 마름 증상도 없어졌음 너무 감사하겠습니다, 만... 슬픈 예감은.. 오.. 예...
https://fr.wikipedia.org/wiki/Frankenweenie_(film,_2012)
프랑켄위니 (Frankenweenie, 2012)
감독: 팀 버튼 (Tim Burton)
장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블랙 코미디, 호러 패러디
줄거리 요약: 외로운 소년 빅터가 사랑하는 반려견 스파키가 사고로 죽자, 과학 실험으로 스파키를 되살린다. 하지만 부활한 스파키가 마을에 혼란을 일으키고, 빅터는 생명과 죽음의 경계를 고민하게 된다.
핵심 테마: 사랑, 상실, 과학 윤리, 괴물에 대한 편견
특징: 1931년 프랑켄슈타인 영화 오마주, 흑백 스타일, 팀 버튼 특유의 고딕+귀여운 미학
주요 캐릭터: 빅터(소년), 스파키(부활견), 엘사 반 헬싱(시장 딸), 에드가(괴짜 친구)
한 줄 요약: 죽은 개를 되살린 소년의 사랑과 그로 인한 기묘한 사건을 흑백 스톱모션으로 그린 팀 버튼식 프랑켄슈타인 이야기 (Ai설명)
도서관에서 핼러윈 수요일 기념 팀 버튼 감독의 '프랑켄위니'라는 영화를 아이 엄마 둘과 아이들 여섯 명과 함께 보게 되었다. 우리 집 딸내미도 드러누웠다가 앉았다가 기댔다가 하면서 끝까지 초몰입했다.
명작인데 그 이름조차 한번도 들어보지 않았다는 것이 꽤나 큰 충격이다. 최신작도 아닌 것 같은 데 이런 게 있었다니.. 어떻게 이렇게도 대중문화에 무지하게 살고 있었나. 살아있었던 건 맞는걸까
삼십여 년 전 미술학원을 다닐 때 기영이 언니가 영화와 이런저런 영미권 가수에 대해 얘기할 때 하나도 아는 것이 없었고, 관심도 하나도 없었다. 지금도 같은 집에 살고 있는 저 인간이 정치를 제외하고라도 프랑스 유럽 영미권 가수나 영화에 대해 한 번씩 언급해도 아는 것이 없고 관심도 없다.
대중문화에 무지하게 되면 일반대중인 내 이웃 내 친구 내 가족과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이질감과 간극이 생기게 될까 이 시대에 속하지도 못하고 지난 시대에도 속하지도 못했다면 미래 시대에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지금이라도 의식적으로 좇아가려고 하고 따라잡으려고 바둥바둥이라도 대야 하나. 나대는 모습이라도 한번 시전 해야 하는 걸까.
이제껏 저렇게 했는데 결과가 이따구라면, 일단 다르게 해 봐서 결과를 지켜봐야 하나.. 직접 해보고 실패해 보고 성공해 보고... 이러다 구십될텐데.. 아............. 인생 참 짧다 그러고 보면. 한 이백 년 병 없이 살 수 있다면, 이런 삶 저런 삶 다 경험해 볼 수 있으련만... 마음이 고생스러우면 몸에 이상이 오고 그러면 한 오 백 년들 산 들 뭘 어쩌자는.
집에 가기 전에 비도 오지만 수동차 덜덜 몰고 와이퍼 뻑뻑하게 움직이며 뱅뱅 이 골목 저 골목 돌아서 굳이 정육점까지 가서 스테이크아셰 3개와 레몬과 허브로 마리네이드 한 닭정육 350그램을 샀다. 집에 도착하니 근처 주차구역은 이미 차로 꽉 차서 약간 내리막 쪽에 주차를 이리저리 왔다 갔다 댔다가 다시 시동 걸어서 또다시 ㅣ대고 문을 열어 확인하고 나왔다가 바퀴가 약간 돌아가있어서 다시 타서 한 치의 오차도 없도록 아주 예술을 한다. 십여 년 전 내가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타던 차에 이미 전후방 카메라, 큰티비화면 부터 해서 앞뒤 블랙박스와 전시트 열선 듣는 기본적으로 있었는데,, 아주 옵션이 없는 차에 수동 기어이니 시간이 걸리는구나
그렇게 주차를 하고 내릴 땜 벌써 땅거미가 내려앉았고 집에 도착하니 깜깜하다. 내 마음도 답답해진다. 아직 자는 건지 벌써 자는 건지.... 튀김기에 온도를 올렸다. 아무래도 160도까지는 괜찮은데 아무리 튀김용 기름이라도 180도 이상 올리고 싶지는 않은데, 새 튀김기에 감자튀김이 닭튀김을 제치고 최고온도 190도로 적혀 있다. 간고기스테이크를 굽고 깜박있고 버터 슬라이스해서 위에 살짝 놓는 것을 잊어버렸지만, 아이는 입맛에 맞는 지 감자튀김과 눈 깜짝할 사이에 먹어치웠다. 오전에 9시 10분에 수영장 가는 오토꺄 버스를 타고 가서 11시 45분까지 2시간 30분을 외출하지만 오가면서 두어 군데 센터를 들러서 아이들을 싣고 가기에 최소 버스에서만 사오십분, 수영장 입장과 퇴장에 이삼십 분 잡으면 실질적으로 수영장에서 노는 건 1시간에서 십여분 정도 더 노는 정도일 것이다. 그래도 물에서 노는 것이 에너지 소모가 크다 보니 입맛이 도는 가보다. 엄마로서는 기분 좋은 일이다.
잠자는 동거남의 저녁밥은 접시에 담아서 그냥 둔다. 또 새벽에 내려와서 먹고 놀다가 또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겠지, 하며 쉽게 말하지만.. 나, 속이 많이 상한 듯하다. 콧물도 질질 나고 몸에 온도 조절 능력도 떨어지는데 새벽 2시가 넘어가는 데 유튜브로 한끼줍소라는 것을 계속 보게 되었다. 이질적인 느낌이 어제 김동규의 세레나데 올릴 때 느낀 비슷한 수준으로 엄습해 온다.
'내일은 그냥 계속 자버릴까 하루 정도 안 보낼까. 그러면 수영장의 에너지 넘치는 그 사람들처럼 좋은 시간을 제공할 수 있을까. 계속 누워있을 수도 없고 너도 좀 누워있으라고 할 수도 없고, 일어나 있는다 해도 그게 일어만 나 있는 거지..' 그냥 폰이 배터리가 나가버리면 좋은 데 싶다가도 그러면 아침에 알람을 못 들을 것 같다가도 어차피 알람을 설정해 놓아도 항상 그전에 계속 깨어서 알람을 한 개씩 끄고 결국 알람을 믿고 푹 자지 못하고 있다. 이게 다 제이의 바캉스 시즌의 업 앤 다운 감정지도에 미리 겁먹어서 인 듯하기도 하고.. 진짜 인생 독하다.
여하튼 나는 사람 좋은 강호동 이경규 한끼줍소와 목요일 새벽을 함께했다.
저 사람들은 어쩌면 저렇게 잘 살고 있을까.
좋은 집 좋은 사람들 좋은 음식.. 따뜻한 집 따뜻한 사람들 따뜻한 음식
이질감이 가득한 저 이들, 너무나 비현실적인 완벽한 현실
부럽다기보다는 보기 좋아서 계속 보게 된다..
내일 엄마로서의 시간을 저당 잡고..
눈도 너무 따갑고 맑은 콧물이 줄줄 나오고 몸의 온도는 조절이 안 되는 이 중늙은이는 해가 다시 찾아오기까지 남은 몇 시간 과연 잠을 잘 수 있게 될까. 무슨 꿈이라도 꿀 수 있을까.
새벽에 또 어김없이 몇 번 깨다 자다를 반복했다. 제이는 자정에도 일어나고 그리고 새벽에도 일어나고 거기에 나도 편승하고.. 하지만 차이점은 아이를 아침에 데려다주고 왔는데도 이층의 덧문은 닫혀있었다는 거다.
원래는 바로 코 앞으로 들이닥친 통역일을 준비하려고 맥북을 연건데, 잠도 못 자고 피곤하고 몸도 으슬으슬 떨리고 콧물도 여전하고 눈도 건조하고 따갑고 집중이 안되어 마음도 허해서 다시 '한끼줍쇼'를 멍하니 보고 또 보고 있다. 그 사이 시간은 흘러 흘러 11시가 되었다. 어제는 11시 45분 픽업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했는데 오늘은 저 인간에게 할 일 하나 던져줄까 싶어서 그냥 어제 산 레몬 어브 양념 닭고기와 파스타를 준비할까 싶다. 원래는 이달 초에 김치 담을 때 쓰고 남은 무로 무밥을 해서 먹고 싶었는데, 10킬로 쌀 가마니(?)가 텅텅 비어서 디저트용 쌀 봉지를 보니 몇 숟가락도 채 남지 않았기에 아쉽게도 이 메뉴는 패스한다. 그래도 무에 새순이 많이 나있어서 먹어치워야 할 듯해서 귀엽지만 단단한 저 녀석들이 바람 들기 전에 썰어서 해치워야겠다고 작정하고 총총 썰어서, 이번에도 김치 담글 때 양념이 작은 밥그릇 반 정도 어정쩡하게 남은 것이 생각나서 그냥 얘랑 쟤랑 버무려서 먹어야겠다. 그저께 제이가 한 숟가락 떠먹고 남긴 밥도 이번 기회에 먹어버리고 잘 되었다. 냉장고에 남았다고 넣어두었던 그릇들을 조금씩 조금씩 줄이지 않으면 어찌 될지 생각하면 뭔가 감정이입까지 될 판이라, 필사적으로 없애고 또 없앤다. 잡초를 바로바로 뽑아내지 않으면 어찌 될지 생각해도 감정이입이 되어, 그 또한 필사적으로 없애고 또 없애려고 했던 지난여름처럼.
낮잠이라도 좀 자고 싶지만 일단 살롱에서 아이와 저녁 아홉 시까지는 버티며 있어줄 작정이다. 서머타임이 끝난 지 얼마 안 되니 여덟 시까지 마지노선 잡고 싶지만 아이가 과연… 구구단 어제 조금 봐주고 오늘은 그냥 내버려두었다. 움직일 때마다 내가 아고아고 했더니 그 소리를 따라 한다. 재미있나 보네.
아.. 쌩쌩하고 팔팔한 삼십 대 초중반 엄마들.. 어쩔 거야
이제 오늘부터 제이는 정상인의 모습을 제법 보이니 내일 오전에는 네가 아이 데려다주길. 열 시 치과 예약을 첫 외출로 하면 나도 머리 정도는 감고 문명인으로 의사만날수있자녀.
점심때 부서져버린 윗 어금니가 아이가 간식 먹을 때 따라먹다가 더 부서지고 거의 휑하다…
나쁜 일은 그룹으로 온다더만 그려.. 뭐 그렇다 치고, 11월부턴 바통 터치 해야지? 그럴 거야 안 그럴 거야. 캐스팅, 통역, 아이 추가 피겨연습 등 알지? 부탁 좀 혀!
그나저나..
뜨끈뜨끈한 데서 좀 지졌으면 원이 없겠다
어젯밤에는 알람을 맞추지 않고 잤다.
알람을 설정 하든 설정하지 않든 일어나는 시간은 6시와 7시 사이, 그리고 아이 방학 때는 다시 7시 사오십분 까지는 누워 있다. 새벽 한두 시는 기본이라 이렇게 눈이라도 잠시 붙이면 조금은 가볍게 침대를 벗어날 수 있다. 오늘은 그 사이 잠도 잠시 들었는지 몸이 훨씬 가볍고 이삼일 감기 몸살 초입에서 콧물까지 줄줄 나던 그 단계를 약간 벗어난 듯 상쾌한 기분마저 들었다.
어렸을 적 엄마는 감기 몸살이 되면 최대한 머리를 감지 않고 있었다. 아줌마 파마머리는 어딘가 한 군데가 눌려 있었지만 항상 호탕하고 주변에 사람들이 끊이지 않던 엄마는 크게 개의치 않았고 그런 엄마를 그때 엄마의 나이를 지나가고 있는 나는 놀랍게도 그런 그녀를 참 많이 닮아 있다.
오늘 아침을 그래서 '감기 폭풍의 눈' 지대를 벗어난 것을 기점으로 보고 머리를 감았다. 그 사이 더 자라 있는 머리타락을 키우고 옷 안에 수영복을 먼저 입는 게 생각나서 말려 둔 수영복을 아이 침대 위에 걸쳐 놓고 내려와서 수영장 가는 센터 버스에 태우고 나서 마실 홍차를 만들어 좀 우리고 우유를 조금 부어서 보온병에 넣는다. 우유도 만들고 아이가 먹을지 안 먹을지 모르겠지만 빵과 호두 까 둔 것도 준비한다. 의료 보험 카드와 사보험 카드도 챙긴다
어제는 다행히 다음날인 '오늘 오전 10시'에 치과의사 한 명의 시간이 남기에 그를 예약했다. 치과의사 10명 정도가 하나의 센터에서 일하는 것 같은 데 이 중에서 오늘 오전 시간이 가능한 사람은 세 명이었다. 그중에 두 명은 10시 대가 가능하고 나머지 한 명은 11시 40분 혹시라도 제가 일어나서 나거나 문제가 있는 경우에는 이 시간 되는 곤란하다. 그래서 열 시가 가능한 두 사람 중에서 누구를 할지 생각해 보다가 이름도 성과 함께 완전한 원조 프랑스인을 골랐다. 나 무지한 사람은 이름도 원조가 아니고 어느 학교를 졸업했는지도 나와있지 않고 어떤 경력이 있는지도 적혀 있지 않았다. 내가 고른 사람은 스타스볼에 있는 치과 대학을 졸업하고 여러 포 마씨옹도 했으며 현재 이곳에서만 근무하고 있는 일종의 정규직 의사였다. 그렇게 9시 아이를 데려다주고 치과에 도착하니 9시 30 분이었다. 아직 30분이 남았다.
치과 바로 앞 슈퍼마켓에 주차를 하고 남은 시간은 슈퍼마켓에서 장을 좀 보면서 때우기로 한다.
우유 세 통과 키위 네 개 바나나 다섯 개 클레망틴 열개 아보카도 한 개 계란 열두 알 스테이크 아셰 네 덩어리 정도만 황급히 고르고 시계를 보니 벌써 10시 10분 전이다.
응? 그 사이, 부재중 전화가 들어와 있다. 07로 시작하는 번호가 있는데 이후 4자리까지 내 번호와 동일해서 전화가 오면 이제 받지도 다시 전화를 걸어보지도 않는다. 저건 2년 전인가, 보이스피싱에 걸려서 애진간히 고생했던 그 사람이 다시 집이 자가냐하면서 새로운 보이스피싱을 하고 있는 아주 강한 느낌이 들어서 어제 드디어는 블록을 걸러두었다. 이건 '01'로 시작하는 일반 전화선이다. 왠지 치과인 듯해서 다시 걸어본다. 뭐지? 내가 선택한 의사가 오늘 못 오거나 그래서 취소나 미루거나 하려는 건가? 친절하고 공손하게 전화를 받는 전화기 너머의 그녀는 '오늘 항데뷰를 컨펌하기 위해 전화했었습니다'했고, 나는 지금 치과 앞에 주차장이고 지금 들어가려는 길이다' 말하며, 뭔 일인가, 일을 이렇게도 꼼꼼하게 한다고? 하는 생각을 한다. 이 슈퍼마켓은 우리 동네에는 딱히 없어서 따로 고객카드 바코드도 없고 하니 다른 코너까지는 굳이 돌아보지도 않고 그냥 계산대로 직행했다.
내 쌩니를 그냥 지지직, 그 길고 튼튼해서 잘 빠지지도 않는 어금니를 뽑아버린 그놈은 예약사이트에서 보니, 이제 캐비넷을 bondy봉디라는 나름 쏀 동네에 오픈을 한 것으로 확인을 했기에, 절대 가고 싶지 않았던, 집에서 가장 가까워서 걸어서 십 분이면 도착하는 그 치과를 올해 다시 갔었다. 그 어금니를 정말 힘겹게 뽑아내던 날, 뽑다가 그냥 멈출 수가 없으니 끝까지 땡겨내던 그날, 그가 약간 당황해하던 것이 기억나고, 나는 그날은 정말 너무 충격을 먹어서 그가 브릿지를 추천할 때도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었다. 더구나 양쪽의 멀쩡한 이를 또 깎아내고 뭐 어쩌고 저쩌고.. 일단은 예상견적서를 뽑아주면서 다음 예약일을 잡으면서 숨기고 있었지만 무릎 꿇고 사과해도 무방한 그 상황에서 이미 워낙 욕을 많이 처먹어봤고 미리 미안한 표정을 최대한 차단한 그런 아이러니한 면상이었다. 나는 "오늘의 정신적인 고통은 마흔에 내가 첫 애를 출산하던 그때의 그것에 맞먹었다'는 말을 남기고 억울하고 서러운 심정으로 15분에 한 명씩 환자를 쳐 예약하는 돈에 환장한 새끼의 캐비넷을 나섰다. 정말 얼굴에 침이라도 뱉어야 했었다. 물론 '모욕' 등으로 법정 문제로 불거질 수 있겠지만, 누가 누구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는지는 법정 공방으로 가리면 되리 문제였다. 저 새파랗게 어린놈이 돈을 15분에 십만 원씩 처 벌어서 벌써 개원을 처한 것이다.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 불감훼상효지시야(不敢毁傷孝之始也)
입신행도양명어후세(立身行道 揚名於後世) 이현부모효지종야(以顯父母孝之終也)
“사람의 신체와 터럭(털)과 살갗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이것을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요, 몸을 세워 도를 행하여 후세에 이름을 날림으로써 부모를 드러내는 것이 효의 끝이다.”
네가 뭔데 내 부모가 낳아서 날 먹이고 길러서 나온 어금니를 그 지경으로 만들어 이 짐승만도 못한 거짓말쟁이! 어찌 보면 내가 성격이 망가져버린 상태로 보이기 충분한 이런 메모를 하는 것 자체가 얼굴에 침 뱉기이다. 허나, 짐승의 삶과 인간의 삶- 식물의 삶과 인간의 삶 혹은 생물과 무생물의 삶 그 어느 지점에서 떠다니는 삶을 살다 보니, 모든 인간이 인간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게 되었다. 그 옛날 순수했던 시절에는, 모든 사람들이 다 나 같겠거니 했었지.
그러나 이제는 나도 사무치게 느끼고 있는 중이다, 모든 사람들이 다 나 같지는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나와 결은 달라고 온전한 인간의 삶을 살지 못하고 혹은 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그래, 너는 입신은 했다고 자만하고 있겠지만 파충류처럼 그 피는 더 이상 뜨겁지 않고 차갑기 짝이 없구나. 돈 맛을 알아버리는 순간 인간은 아이러니하게 더 이상 돈 맛을 모르는 인간들이 인간으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해버렸다. 그 이가 멀쩡했다는 것은 내가 너에게 요구했던 엑스레이사진에서 드러났고 네가 브릿지는 그냥 해주겠다. 임플란트는 백만 원 정도만 지불하면 그냥 해주겠다고 했지만, 네가 내 입을 벌리게 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이제 연습을 많이 해봤으니 너는 이제 빠르고 과감하게 치료에 유능한 의사가 될 수 있다고도 본다. 내가 네 연습용이고 마루타였다는 것, 그리고 나는 결국 소송을 시작할 수 없는 소시민이라는 것이 쓰디쓴 현실이었다. 나는 조만간 반백이 될 것이다. 배우는 데 많이 늦은 나이란 것은 없지만, 나이가 어릴 때 깨우치는 것보다 더 쓰라린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너무 순진하고 너무 순수했었구나.. 하지만 독하게만 산다고 인생이 네게 독하게 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니.. 그냥 이제는 돌다리도 두드리는 그런 심정으로 조심조심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다 자기 얼굴에 침 뱉기인가. 결국은 너무 순진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으로 살다가는 언제 어떻게 예기치 않은 강제 수혈을 당하게 되는 건지.. 요즘 유독 한국대사관에서 사기꾼 조심 문자가 잊을만하면 오고 잊을 만하면 오고..
우리 동네는 아니지만, 이 구역은 그간 십 여번 지나다녀 봤기에 전혀 낯설지 않다. 여기 치과는 슈퍼 건너에 잘 보이는 곳에 위치하는데도 한 번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하지만 처음 들어서는 순간, 대기실도 꽤 현대적이고 핼러윈 장식도 꽤 상큼하게 잘해두었고, 전등이나 냉난방기도 천장매립식으로 전체적인 마감이 상당히 매끄러워서 첫인상이 꽤 좋다. 우리 동제 저곳보다는 돈 들인 티가 역력하다. 과연 치료는 어떨까.. 기대감과 불안감이 동시에 몰려온다.
프랑스에 온 지 첫 해에 바게트를 먹다가, 반월당 유명 치과에서 충치를 치료하고 때울 때 사용했던 어금니표면에서 아름답게 쉬고 있던 '금' 충전재가 떨어져 버린 적이 있다. 그건 버리지 않고 책상서랍 어딘가에 넣어둔 것 같은데, 어쨌든 대구의 어느 치과, 그것도 20년이 다 되어 가는 그 시점에 방문했던 한국의 의료기관까지는 아니지만 나쁘지 않다. 물론 파리의 어느 동네에 가면 한국과 버금가는 수준으로 서비스를 하겠지만, 나는 파리 외곽의 어느 구석탱이에 살고 있다. 돈은 똑같이 혹은 비슷하게 지불하지만 솔직히 서비스라던가 품질 혹은 퀄리티가 차이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일반화를 시킬 수는 없으나 의료업계의 경우, EU라는 상황에서 여기에서 의대를 나온 2세대 3세대 이민자가 의사인 경우는 그래도 양반이다. 유럽연합이라는 이유로, 거기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여기서 프랑스어도 제대로 못하는 의사들도 부지기수다. 워낙 여기 의사들이 바캉스를 가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자리를 비우는 일이 워낙 잦고, 프랑스에 이민자들도 해마다 천정부지로 그 수가 증가하다 보니, 대충 의사자격증을 인정해 주는지는 몰라도 그냥저냥 서로가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다. 최근 이십 년간 프랑스 국민들은 강하게 단련되어 웬만한 상황도 그냥 저냔 받아들이는 상황이라고 적어도 나는 그렇게 바라보고 있다.
10시가 지나가고 의사로 예상되는 남자가 하나 들어온다. 머리 위에서 발끝까지 깔끔하고 옷과 운동화 모두가 구입 일 년도 채 되지 않은 세련된 모양새의 어리다와 젊다 사이의 나이대에 있는 정규직 오리지널 프랑스인 치과의사로 보인다. 카운터부터 시작해서 웃음소리 말소리가 나는 곳으로 굳이 찾아 들어가서 이야기를 시작한 지 5분 정도 지나서야 간호사인지 보조분인지 엑스레이 찍는 분인지 모르겠지만 유니폼을 입은 여자 두 사람과 함께 나온다.
그때 또 다른 어리다와 젊다 사이의 나이대에 있는 비정규직 비오리지널 프랑스인 치과의사 혹은 학생의사로 보인다. 머리숱은 남고도 넘치는 데 비듬은 아닐 것으로 아니어야 하는 허연 무언가가 이곳저곳에 몇 개 묻어있고, 들어오면서 인사해도 뭔가 그렇게 전체적으로 동료들이 받아치는 분위기에서 친한 느낌이 전혀 없다. 뭔가 셋방살이하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프랑스에서는, 뭐 한국에서도 그럴 수 있겠지만, 자기 캐비닛이 없거나 정규직이 아닌 경우에는 두 개 세 개 정도의 치과에 출근을 하는 데 월수는 여기 화목은 저기 금요일은 어디 다른데.. 이런 식으로 보따리 장사처럼 다니는 식으로 일하는 의사 혹은 예비 의사 혹은 학생 의사들이 많아 보인다. 적어도 내가 캐비넷 예약을 위해 살펴본 바에 따르면 그러하다.
사람을 이렇게 등급메기고 있는 나도 참 한심하기는 하지만, 중학교에서 보조사감으로 일할 때 십 대 초중반의 그 아이들은 자신들이 모두 프랑스인임에도 불구하고 '진짜 프랑스인'인가 아닌가에 대한 아이덴티티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한 여학생은 내가 프랑스인과 결혼했다고 하던데 프항세 프항세? ou..? 이렇게 궁금해하기도 했다. 여튼, 오리지널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웬만하면 저 첫 번째 사람이 왠지 내가 예약한 그 오리지널 프랑스인 이름을 지닌 치과의사가 아닌가 싶어서 그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면서 저 선생은 제발 그 인간과는 달라야만 한다며 최면을 걸고 있었다.
집에 와서 오늘 내 이에 빵쓰망(밴드)을 발라준(채워준) 후 다음 주 금요일에 다시 보자며 45분을 예약 시간으로 잡아준 친절하고 인간적인 의사의 프로필을 찾아보았다. 분명히 내가 예약한 사람의 이름과는 판이한 이름이 예약카드에 적혀 있어서, 아 아침에 그 전화가 자신들이 취소하기 전에 환자가 취소한다고 말하는 경우를 추려내려고 한 건가 싶었다. 리셉션에서 혼자 열심히 전화로 예약컨펌을 계속하면서도 예약 의사가 바뀌었다는 얘기는 일도 없었다. 치료받고 나오면서도 '치료는 괜찮았나요?' 하면서 뭔가 염려스러운 말투가 묻어있었으나, 결코 '오늘 예약했던 의사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출근하지 못하여' 혹은 '예약사이트에 저희의 실수로 대체의사가 이 의사 대신에 진료하게 되었다'는 류의 말은 없었다. 진짜, 구렁이 담 넘어가듯 그냥 슬쩍 이렇게 넘어간다고? 뭐.. 그렇다 치고..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 프랑스 입국 후 초반에 제도의 불합리함에 반발하고 하면서 체류증만 빨리 못 받게 되는 불이익만 가득했던 시간들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대체의사의 경우에는, 치과의 진료의사 리스트에 나와있지 않은데, 오늘 받은 예약 카드에 적혀있는 의사의 경우에는 리스트에 떡하니 있다. 그 말은 대체는 아니고 비 정규직으로 하루나 이틀만 출근하는 경우라는 것이다. 출신학교와 경력은 표시되어 있지 않고, 구사언어는 프랑스어와 에스파뇰이다. 스페인 쪽인가 하는 생각으로 이름의 오리진을 찾아보니 인도유러피언이라는 두리뭉실한 대답이 나오고, 유대인이라는 말도 있다. 조금 있다가 Ai를 한번 돌려봐야 하나 싶다, 일단 아이가 계속 유튜브로 무슨 쓸데없는, 뭐 이렇게 말은 하지만 솔직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 보이긴 한다. 오전 9시에서 12시까지 수영 놀이 활동 신청한 것은 정말 신의 한 수였지. 감사할 따름이다 그 프로그램을 기억하고 신청일 전에 안전하게 예약하고 매일매일 이 엄마가 수동차 덜덜 몰고 가서 안전하게 딱 데려다주고 마침내 오늘 수료증도 자랑스럽게 받아 들고 오고, 혓바닥 색깔도 파란색으로 바꿀 수 있는 사탕도 하나 선물로 받아서 5일을 함께 놀았던 친구들과 촵촵 쫍쫍 먹는 즐거운 시간들.. 에 너무 감사하다. 아.. 그래서 오전은 다행히 잘 보냈는데, 오후엔 이 엄마가 챙겨주지 않으면 그냥 두어 시간 유튜브로 마인크래프트를 보거나 아니면 무슨 이런저런 챌린지를 하는 쓰잘데기 없는 프로를 보거나 혹은 지 아빠가 테무인지 알리인지에서 구입해 대는 하얀색 보라색 빨간색 게임기와 80~90년대 화면이 두 개인 은색 게임기를 가지고 놀고 있다. 그러하니 저 의사 출신이 어딘지가 뭣이 중허겠나.
시간을 보니 15시 30분이다. 빙상장이 14시부터 17시 30분까지라고 하니, 일단 한 시간 정도 음악에 맞춰 빙빙 돌다오도록 해야겠다. 아직 몸 상태가 꽝이니 제이에게 좀 요청해 보자. 일단은 지난 목금토일월화 6일을 지 쪼대로 행동했으니 입이 너 또한 열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고. 그리고 그저께와 오늘 아이를 데리러 갔다 올 때도 감당하지도 못하는 술을 사 와서 몰래 마시고 그러지 않았으니 일단 한번 미친척하고 다시 한번 너를 믿어보련다. 한 5분 정도 이러쿵저러쿵 밑에서 또 컴퓨터를 고치는 건지 고장 내는 건지, 아니면 버그를 잡으려고 또 서너 시간을 저러고 있는지 모르는 그 속에서 구시렁대어서 나는 또 한 번 땍!하고 소리를 질러버렸다. 그 와중에 아이는 '엄마랑 가고 싶다, 아빠랑 가면 나를 보고 있지 않고 항상 사라져서 언제 올지도 몰라서 혼자서 스케이트 타는 거 너무 무섭다'라고 할 때, 나도 마음이 흔들린다. 제이는 '그냥 공원이나 놀이터에 가거나 할까' 하고 아이는 그럼 '놀이공원 가자' 한다. 조금이라도 내가 틈을 보이거나 줏대 없이 행동하면 여기저기에서 의견의 누수가 있다. 다른 의견의 여지가 없도록 대쪽같이 나아가야 한다. 물론 내 몸 상태를 잘 유지해서 내가 행동의 주체가 되어함은 당연하다. 이것이 오늘 안되니 이 또한 누수의 원인이다. 일단은 스케이트 안 탄 지 일주일이나 되었으니 가서 한번 타주는 것이 맞고 한 시간 정도면 그렇게 길 지 않으니, 얼른 갔다 오자고 약간의 푸쉬를 했다. 그렇게 16시 10분쯤에 부녀는 외출했다.
제발 너는 정상적이어라. 두 사람만 함께하는 외출의 누적에서, 아이에게서 네 모습이 엿보이거나 나도 보지 못했던 모습까지 엿보일 때 그 섬찟한 순간에 마음먹었던 다짐이 지금 또 무너져버렸는데.. 제발 너는 정상적이어라. 제발..
이 세상의 모든 동물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이 세상의 모든 인간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식물적인 요소보다 동물적인 요소가 더 강한 인간들이 생각보다 더 오래 살아남는 것 같다.
식물적인 요소보다 동물적인 요소가 더 강한 인간들이 식물적인 요소가 더 강한 인간들을 더 잘 파악하고 있어서도 아니고
동물적인 요소보다 식물적인 요소가 더 강한 인간들이 동물적인 요소가 더 강한 인간들을 더 잘 파악하고 있어서도 아니고
그냥.. 뭔가.. 내가 생각하기에.. 식물적인 요소보다 동물적인 요소가 더 강한 인간들이 생각보다 더 오래 살아남는 것 같다. 물론 식물도 식물 나름이고, 동물도 동물 나름이겠지만.
여기에 프린세스도 예외가 아니고, 제이도 예외가 아니고 아이와 나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나는 뭐에라도 홀린 양 봄부터 오늘 이 순간까지 하루도 예외 없이 저 고양이의 밥과 우유를 미친 듯이 공급하고 그녀는 많이 먹는 만큼 정원 이곳저곳에 besoin을 해결하고 정원 이곳저곳에서 햇빛을 쬐고 이곳저곳에 털 뭉탱이가 떨어져 있거나 굴러다니고 있다. 제이는 정원 이곳저곳을 걸어 다니고 그 똥인지 흙인지 모를 것을 현관 입구까지 올라오는 계단 이곳저곳에 옮겨놓고, 고양이를 수의사에 데려가서 입과 잇몸에 있는 저 사라지지 않는 염증도 치료하고 샴푸앙하는 데 데려가서 벼룩과 비듬처리를 좀 한 후에 안으려면 안아라 그렇지 않은 경우는 좀 자제하라는 내 의견은 술 취한 경우에는 생각자체가 안 나기에 결국 지 옷 이곳저곳에 벼룩인지 진드기인지 아니면 그 둘인지를 잔뜩 묻혀와서 집안 이곳저곳에 가려움증이 창궐하게 한다. 신기한 것이 저 인간은 크게 가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의 그의 피 반을 물려받은 내 소중한 딸조차.. 그리고 당사자인 동물, 프린세스 또한 그렇게 가렵지 않아 보인다. 등에 무언가가 뛰어다니는데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무감각한 것일까 아니면 그 이상의 뭔가가 있는 것일까. 식물성 동물성 요소의 퍼센티지의 농도에 따라 세상에 현상에 반응하는 속도와 모양새가 다 다른 것일까.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제 프린세스의 안위에 지나친 염려를 놓을 생각이다. 오늘 아침에도 눈을 뜨자마자 큰 창문이 있는 거실로 가서 두꺼운 빨간 커튼을 열고 반 투명의 흰 커튼을 열어젖혔다. 마침내 창문을 열었다. 덧문까지 열면서 드디어 그녀가 살고 있는 바깥세상을 접하며 '이 추운데.... 어떡하면 좋냐 진짜'하며 고양이의 생존여부를 파악하고 있었다. 짧은 순간이지만 심장이 터질 만한 긴장감이 넘쳐흘렀다.
그녀는 건재했고, 나를 보더니 기지개를 켜고 슬슬 움직였다. 나를 보면 언제라도 배가 고픈가 보다. 날이 추워지면서 더 자주 배가 고픈지 나를 볼 때마다 항상 먹을 것을 내놓아라 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어제 Ai에게 물어보니 고단백 음식을 충분히 잘 공급해 주면 추위에 더 강해질 수 있다고 하더니, 본능적으로 먹고 또 먹고 하는 것 같다. 건식 사료는 좋아하지 않아서 습식을 사 주고 있어서 그 소스맛에 중독된 것인가 싶기도 하고, 필요한 모든 영양소와 고기류 6가지 생선 4가지 등으로 매 끼니마다 다양하게 먹다 보니 계속 다음 맛이 무엇인지 궁금한 건가 싶기도 하다. 여하튼 100그램이 들어있으니 하루에 300그램은 택도 없나 보다. 배가 항상 고파보여서, 건식사료도 섞어 주지만 귀신같이 건식은 발라놓는 생선가시처럼 남겨둔다. 그러다 새벽에 와서 네 번째 식사를 하는지 아침밥을 줄 때 보면 하나도 없이 싹싹 비워져 있다. 그릇을 뜯어먹지 않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다. 어떤 상황과 환경에도 결코 꺾이지 않는 식성과 먹어야 한다는 저런 본능이 한 번씩 무서울 때도 있다.
며칠 전에는 다른 거리의 고양이가 우리 정원에 들어와서 이 고양이와 싸움이 있었는지, 내 휘파람 소리를 듣고 프린세스가 다리를 질질 끌면서 절뚝절뚝거리면서 밥을 먹으러 왔는데 약간 섬찟하기도 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째 되면서 그것은 저절로 고쳐진 것인지 자연치료가 되었는지 멀쩡하게 걸어 다니고 있다. 3월 어느 봄날에 우리 집 정원에 있는 아이 봉봉에 들어가서 햇빛을 쬐며 잠을 자고 있던 이 고양이를 발견했을 때는 인간의 나이로 80세는 될 것으로 예측을 했었는데, 6개월이 더 지난 오늘날 아이와 제이 그리고 나, 우리 모두는 고양이가 좀 더 어려진 것으로 의견이 일치되었다. 잇몸의 염증과 입 밖으로 튀어나와 있는 어금니 같은 이빨도 여전하지만 듬성듬성했던 등과 꼬리에 털도 풍성해지고 삐쩍 골아서 뼈가 육안으로 보이던 그 몸뚱이도 임신이 의심된다고 내가 농담할 정도로 탄탄해지고 더 이상 비실비실해서 곧 죽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은 전혀 없다.
이제.. 나는 쓸데없이 걱정을 위한 걱정은 내려놓으려고 한다. 안되면 노력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할 것 같다. Ai도 그만하면 잘하고 있고 영양분이 충분히 공급되면 한겨울이 아닌 지금 같은 계절에 크게 걱정할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물론 그녀가 나를 안심시켜 준다고 내가 안심하는 것은 아니고, 그냥 동물들은 그 동물적인 감각으로 식물적인 인간을 조종하는 법을 정확히 알고 있고, 그것이 정확히 맞아떨어졌다는 것에, 그리고 그 상황에 순응하고 있는 내 모습에 약간 기분이 상하는 부분도 있고.. 뭐 여하튼 동물적인 감각이 쎈 그런 류의 동식물들은 다 알아서 살아남고, 누구보다 더 길게 생존한다는 것이 팩트인 것 같다. 감성팔이하는 놈과 감성팔이 당하는 놈. 감성팔이를 인지하는 놈과 인지하지 못하는 놈 알면서 하는 놈과 알면서도 당하는 놈 감성팔이인 줄 모르면서 감성팔이하는 놈은 없어도 감성팔이인줄 알면서 감성팔이 당하는 놈은 없다. 그 어떤 상황이든 전자와 후자 둘 중에 누가 더 강할까. 누가 적자가 되어 생존해 낼까. 뭔 말도 안 되는 저울놀이 다 떠나서 프린세스는 먹기 위해서라도 생존해 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날이 더 추워지는데도 계속 밥을 먹기 위해 저렇게 소나무 밑에서 자도록 둘 수는 없기에, 나는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등의 귀신 씬나락 까먹는 소리들에 대한 대답을 각자가 내려야 할 대목이다
지금 시간은 새벽 1시 2분이다. 이틀 전 우연히 유튜브에서 추천 영상으로 올라와서 보기 시작한 '한끼줍쇼' 프로그램을 보는 사이 시월에서 11월 1일이 되었다. 이제 11월이다.
세월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어차피 나의 변화는 자신의 그것과 비교했을 때 너무 더디고 체계적이지 못해서일까..
아니란 걸,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면, 시간이 나를 기다려줄까?
그것을 잡아서 할 무언가는 있고?
두고 볼 일이다.
위에서 일주일 일기랍시고 뭐라고 뭐라고 씨부린 것을 굳이 다시 읽어보지 않으려 한다. 이 잡다한 것을 왜 굳이 기억하고, 혹 후일 이것을 다시 읽고 소환한 이 시간들이 좋은 추억은 고사하고 무슨 짠내 나는 욕뿐인데 기록하고 있어야 하나 싶다. 지금 이 문장들도 말이 꼬이고 정리되지 않은 내 정서와 유사한 모습이다.
일단 주로 이번 주 일기의 근저에는 '제이의 초반 일주일 패악질과 환절기라는 계절적 요인이 결합하여 이 비루한 몸뚱아리에 바람이 들고 마음에는 화가 쌓이는 컬래버레이션'으로 일축할 수 있겠다.
제이가 요 며칠 각성하고 알아서 기고 있음에도, 삼사 일 전부터 마음에 이어 몸까지 상태가 꽝이다 보니.. 일기의 내용이고 자시고도 없고 그냥 분리수거용 쓰레기봉투 안에 단어와 글자들이 무질서하게 나름의 연합을 하여 간신히 문장을 삐그덕 삐그덕 만들어낸 형상일 것이다.
갑자기 내용 전환을 맥락 없이 해보자면,
한끼줍쇼를 보고 있자 하니 사람들도 가지각색이고 살아가는 방식과 살고 있는 동네와 생활수준도 천양지차임을 다시 한번 느꼈다. 성인이 될 때까지도 내가 살고 있는 곳이나 내가 먹는 음식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 흔한 '비교'나 '불만'도 크게 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라고 말하는 순간 머리에 스치는 고등학생 때 미술학원 다니던 시기 즈음, '차라리 입양이 되어 부잣집에서 자랐다면'하고 한번, 진짜 딱 한번 생각했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때 어떤 짧은 단편만화에서 거리의 청소부인 아빠가 그 돈으로 딸이 원하는 모든 것을 사주려고 노력하는데도 정작 딸은 그런 아빠를 부끄러워하면서.. 류의 스토리도 맞닥뜨렸던 것 같다. 난 그걸 보면서 이질감이 느꼈던 것이, 부자는 아니었지만 아이러니하게 단 한 번도 가난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고 이것은 내가 미술을 하고 음악을 하고 연기를 하는 주변 친구들과 나를 부모의 경제적 지위나 금전적 지원 등으로 생활수준을 비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으며 단 한 번도 용돈을 펑펑 쓰거나 이거사고 싶다 저 거사고 싶다 무언가를 바라본 적도 없었기 때문인 듯하다. 개미처럼 일해서 그래도 빚 없이 아이들 키워내는 부모님에게 장녀로서 걱정을 안겨드린 일이 없었다고, 지금 한 엄마의 눈으로 보아도 착한 딸 그 자체였다. 하지만 한끼줍쇼를 보면서 여러 군상과 다양한 삶의 스펙트럼을 보며 이 그림과 저 그림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극심한 목마름을 느낀다.
몸이 아프면 알아서 더 일찍 자거나 해야 하는 데 그것도 안 하고 또 못하면서 또 유튜브몰핀이나 찾아서 팔뚝에 팍팍 놓고 있는 나의 모습을 다시 지켜보면서 타는 듯한 목마름을 느낀다.
사람은 참 바뀌기 힘들다.
하지만 어떤 계기나 강렬한 동기로 결심하면 순식간에 변화의 기회를 위한 어떤 문은 분명히 활짝 열릴 수 있지만 오래 기다려주지 않고 다시 닫혀버릴 것이고 그것이 또 언제 열릴지 모른다. 관 뚜껑이 닫히는 그 죽음의 순간까지 기다려도 영원히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그 순간이 임박함을 느낀다. 이 느낌은 십 대 중반에서 후반까지 나를 찾아왔었고, 30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 그 문을 겁내지 말고 활짝 열어젖혀서 그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서 전혀 새롭지만 전혀 새롭지 않은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그 길을 나도 이어 가고 싶다. 누군가에겐 벌써 익숙한 그 길, 나도 다시 이어 걷고 싶다.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영역을 보존하는 것이 삶의 목표일 것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그 영역을 자손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줄 수 있도록 그들의 능력치를 끌어올 려 주는 것을 삶의 목표일 것이다. 나는 그 어느 쪽에도 속해 있지 않고, 관심도 없었다. 단지 한끼줍쇼를 보면서 이 세부류가 모두 보이고, 또 더 다양한 모습이 보이고.. 결국, 어느 한 사람 같은 사람은 없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라는 그런 삶을 나도 이제 꿈꿔보면 어떨까 하면서 소박한 욕심도 살짝 고개를 내밀었다.
왜 나는 내가 바라는 것을 말할 수도 없을까.
그건..
한 번도 욕망하여 보지 않아서였던 것 같기도 하다.
'나도 제일 좋은 것을 가지고 싶다'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는, 못하는 선택을 왜 나는 이어갔고 지금도 그러고 있을까
내꺼, 내 가족, 내 일, 내 꿈, 내 목표, 나의 도전과제 그리고 내 미래.. 나의 시간들
욕심내고 계획하고 획득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들을 왜 한 번도 최고의 것으로 잡고 장기적으로라도 반드시 거머쥐려고 하지 못하나..
17세 안팎을 지나던 그때 운이 아무리 내게 몰려있다고 해도, 가족이라는 완전체의 움직임이 없으면 20대로 넘어가는 문턱을 넘어서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그 문턱에서 넘어지고 알지도 못하는 새로운 길에서 헤매다 완전히 길을 잃고 다시 새로운 하늘 구멍에서 빛이 떨어지는 데 30년이 걸릴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그래도 30년이 40년을 기다리는 것보단 낫다, 말을 똑바로 하자면 기다린 적은 없으니 여러 기회를 놓친 적이 많았다가 맞겠다.
이번에는 정신을 차리고 준비하고 있다가, 익숙하지 않은 몸짓일지라도 적어도 일단 시도라도 해봐야 한다.
올 하반기와 내년 한 해가 이제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뭐라도 해야 한다.
이제는 선택지가 '다른 의미에서' 없다고 본다.
매진하자!
무엇에?
그것은 두고 볼 일이다.
11월 12월에 내게 오는 그것을 잡고 2026년 내년에 그것에 올인해 보자.
이제 반백의 후반전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이라도 각성의 초입에 들어섰으니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