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야기
인간은 모두 누군가의 아들이거나 딸로 세상에 온다. 어머니는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어머니는 그저 나를 키워준 사람이 아니라, 사회라는 커다란 파도속으로 나가기에 앞서 모든 풍파를 막아주는 든든한 방파제와 같다. 세월은 어머니를 작게 만든다. 당당한 모습은 어느새 사라지고 그 자리에 세월이 새겨놓은 주름이 가득하다. 왜 어머니는 그렇게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으면서 자신을 희생하는 것일까.
철학자 김형석은 말한다. 모든 어머니는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다가 사랑으로 생을 마무리하는 것 같다. 주름으로 가득 찬 어머니의 얼굴에서 성인聖人다운 무엇을 발견하는 때가 있다. 그 점에 있어서 우리 어머니도 예외는 아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대상은 언제나 내가 있었다. 자식의 웃음은 곧 어머니의 희망이 되고, 자식의 눈물은 상처가 된다. 어쩌면 어머니는 자식을 통해 세상을 다시 쓰고 자신의 인생을 다시 한번 살아간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실수를 통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선물한다.
버진그룹 창업주 리처드 브랜슨(Richard Branson)은 난독증으로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학생잡지 창간을 시작으로 음반판매, 앨범제작, 항공여객, 무선통신, 신용카드 등 전 세계 200여 개의 사업체를 거느린 글로벌 CEO가 되었다. 리처드의 성공의 이면에는 어머니 이브 브랜슨(Eve Branson)의 깊은 사랑과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리처드가 고등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학생잡지 ‘Student’를 창업한 것은 어머니의 과감한 투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음반 판매점을 열 수 있었던 것도 어머니의 신뢰와 응원 덕분에 가능했다. 어머니 이브는 여성 파일럿이자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였다. 그녀는 파일럿의 꿈을 이루기 위해 남장하고 훈련받을 정도로 적극적인 인물이었다. 그녀는 외향적이고 강했다. 반대로 아들은 소심한 마마보이였다.
어머니는 아들이 부끄러움을 타지 않고 다른 사람을 충분히 배려할 줄 아는 외향적인 사람으로 키우려 했다. 리처드가 6살 때 쇼핑에서 돌아오는 길에 집에서 5Km 정도 떨어진 곳에 차를 세우고 아들을 혼자 집까지 걸어오게 했다. 어떤 날은 80Km나 떨어진 친적집까지 자전거로 갔다오게 했다. 그런 경험 이후 리처드는 모험을 즐길 수 있게 되었고, 인생을 하나의 흥미진진한 게임처럼 받아들이게 했다.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무엇이든 즐겁게 시도해 보라. 인생은 너무 짧단다. 네가 무엇을 하든 나는 네 편이다.” 아들의 독창적 선택과 모험적인 인생 여정을 끝까지 존중하고 지지해 주었다. 크리스마스 나무와 새를 키우게 했고, 괴상하지만 엄청난 회사를 만들도록 했다. 어머니의 응원은 훗날 아들이 기발한 사업 아이디어를 실천에 옮기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리처드는 말한다. 실패에 당황하지 마라, 실패로부터 배우고 다시 시작하라. 어머니는 내게 세상이 무섭지 않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내가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게 ‘무엇이든 해 봐라.’라고 응원해 주던 어머니가 계셨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사랑은 전통적인 모성애를 넘어 아들을 넓은 세상으로 보낼 준비를 단단히 해주는 진정한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어머니는 제품에 진심을 담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아모레퍼시픽 창업자 서성환은 오늘의 아모레퍼시픽이 모친의 기업가정신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기업가정신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어머니는 성품이 곧고, 생활력이 강한 여성이었다. 일제강점기 개성에서 여성용 머릿기름을 팔았는데, 품질과 신용이 좋은 가게라고 널리 소문이 났다. 이후 제품을 구리무와 가루분으로 확대하고 ‘창성당’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어머니는 독자적인 브랜드를 출시할 만큼 시대를 앞서간 선구적인 기업가였다.
서성환은 초등학교를 마치자마자 어머니 일을 돕기 시작한다. 처음 맡은 일은 개성에서 남대문시장까지 가서 좋은 재료를 사 오는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 어둠이 내릴 때까지 쉬지 않고 자전거 페달을 밟아야만 가능한 힘겨운 일이었다. 어머니는 새벽길을 나서는 아들에게 하루치 도시락 세 개를 정성들여 싸주었다. 그렇게 어머니는 제품에 진심을 담는 방법을 몸소 가르쳤다.
어머니는 고객을 접할 때, 인격을 존중하는 의(義)의 정신, 신뢰를 쌓아가는 신(信)의 정신, 허풍과 허투를 경계하는 실(實)의 정신을 강조했다. 어머니로부터 화장품 제조법이 아니라 제조에 임하는 바른 자세와 고객을 대하는 진실한 마음가짐을 배운 것이다. 1947년 가업을 물려받은 그는 서울로 이사하며 회사명을 ‘태평양’으로 바꾸고 고품질의 차별화된 제품 개발에 매진했다. 그리고 멜로디 크림, ABC 포마드, 한방화장품 설화수를 출시하여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좋은 원료가 좋은 제품을 만든다는 어머니 가르침을 따른 덕분이다.
성공의 기쁨도 잠시, 아들이 36살이 되던 1959년 정신적 지주였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인생의 롤모델이자 스승이었던 분을 이제 더 이상 가까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오랫동안 마음 깊은 곳에 자리했다. 서성환은 어머니에게서 상도(商道)를 배웠고, 이를 평생 실현한 진정한 기업가였다. 그래서 누구보다 어머니, 여성의 삶에 관심이 높았고 이들을 위한 복지에 신경 썼다.
서성환은 말한다. 장사를 한다는 것은 돈을 버는 일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라는 것을 어머니에게 배웠다. 우리 회사의 뿌리는 어머니입니다. 우리 회사는 여성이 키운 기업입니다. 아모레퍼시픽은 선대 회장과 고인 어머니의 뜻을 기리고자 기금을 조성하고 여성 가장의 창업을 지원하는 ‘희망가게’ 사업을 시작하였다. 어머니는 가셨어도 어머니의 따뜻한 마음은 기업의 철학으로 남아 영원히 살아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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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천사같은 존재다.
류운천의 어머니는 아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산나물을 뜯고 옥수수를 삶아 머리에 이고 다니시며 장사를 하셨다. 그 돈으로 아들의 학비도 주고 용돈도 마련했다. 하지만 어린 아들은 그런 모습을 무척 창피해했다. 어머니가 좀 더 멋진 일을 하시길 원했지만, 그것이 아들을 키우기 위한 최선이었다는 것을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세월이 흘러 아들이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한 지금도 어머니는 같은 일을 하신다. 이제 어머니는 나이가 많아 더 이상 그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다닐 수 없다. 그래서 아들이 보따리를 차에 싣고 가 노점에 자리를 잡고 어머니와 나란히 앉아 나물을 판다. 어린시절 부끄럽게 느껴지던 어머니의 모습은 지금 차라리 자랑스럽다. 어머니 고맙습니다.
어머니는 강하다. 성공한 기업자에게는 언제나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과 응원이 있었다. 어떤 어머니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억지로 아이들에게 떠맡기려 하지만, 어떤 어머니는 아이의 꿈을 응원한다. 서성환의 어머니가 그랬고 리처드 브랜슨의 어머니가 그랬다. 링컨의 말처럼 아이가 성공하는 것은 그것은 오직 천사와 같은 어머니의 덕일 것이다. 오늘의 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천사 같은 어머니 덕분이다. 위대한 인물은 모두 어머니의 자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