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창의적인 선택
나는 오랜 시간 광고 디렉터로 일해왔다.
이 직업의 특성상 늘 소비자들의 시선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광고주의 요구를 정확히 전달하는 게 업무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과정을 풀어나가는 데 가장 중요한 도구는 바로 '창의력'이다.
하지만 창의력이 모든 이에게 똑같이 작용하는 건 아니다.
팀 내의 직무와 역할에 따라 창의력의 크기와 방향은 달라진다.
내가 속한 광고 제작팀은 흔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를 중심으로 아트디렉터(AD), 카피라이터(CW)로 구성된다.
프로젝트에 따라 각 역할의 비중이 달라지고, 창의력의 주도자도 매번 바뀐다.
주니어의 창의력은 힘차게 솟아오르는 분수처럼 활기차지만, 그 힘이 오래가지 못한다.
짧은 순간 빛을 발하지만, 지속적으로 밀어붙이기에는 마무리가 초라하다.
반면, 시니어의 창의력은 여러 방향으로 힘차게 뻗어 나간다.
그들의 아이디어는 선택의 폭이 넓고, 경험을 바탕으로 더욱 세밀하다.
내가 결정권자의 위치에 있을 때, 자연스레 시니어의 아이디어에 더 무게를 두게 되는 이유다.
그러나 흥미로운 건 창의력 그 자체보다도, 이를 바라보는 구성원들의 반응이다.
주니어, 시니어, 그리고 최종 디렉터로서 모든 위치를 경험한 나는
회의 테이블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긴장과 묵시적 동의를 자주 관찰하게 된다.
모두 알고 있다. 창의력이라는 특권이 각자의 위치에 따라 다르게 발휘되고,
또 다르게 평가받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모든 걸 느끼고 알지만 내 이기심은 이 모든 걸 무시하고 가장 유리한 걸 선택한다
내게 유리하든, 광고주에게 유리하든, 하지만 내 이기심에 대한 책임은 나한테 있으니 상관없다.
이것이 내 위치에서의 창의력이다.
창의력은 단지 신선한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 아이디어가 어떻게 발현되고 선택되는가에 따라 가치가 결정된다.
그리고 여기에는 이기심이라는 또 다른 요소가 작용한다.
누구나 자신의 아이디어가 채택되고, 자신의 창의력이 인정받기를 바란다.
나 또한 그중 하나일 뿐이다.
일일이 모두의 창의력을 평가할 마음도 없다.
나에게 가장 유리한 창의력이 필요할 뿐이다.
모두가 동의하는 완벽한 창조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기적인 선택의 결과만이 남을 뿐이다.
회의가 끝나면 선택되지 못한 아이디어는 자연스레 사라지지만, 그 아이디어를 낸 이들의 아쉬움은 남는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 창의력은 더 정제되고, 때로는 더 이기적으로 변해간다.
이기심은 본능이다. 그리고 때로는 이기적인 창의력이 가장 탁월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그 결과가 팀 전체의 성공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팀원 누군가의 새로운 길을 열기도 한다.
창의력은 누구에게나 주어졌지만, 그 발현 방식은 각기 다르게 작동한다.
자신의 위치, 경험,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그 특권은 다르게 평가된다.
그리고 그 창의력을 어떻게 이용하느냐는 전적으로 각자의 선택에 달렸다.
이것은 단지 나의 업계에서 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창의력은 어디에서나 필요하고,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단순히 재능으로 치부할 것도 아니다.
창의력은 가장 이기적인 선택을 할 수 있게 하는 힘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기적인 선택을 부정적으로 본다.
스스로의 자리에서 최선이라 생각한 선택조차, 남의 시선에선 종종 이기적인 것으로 치부되곤 한다.
그러나 사실, 이기적이라 평가되는 선택들 속에는 책임을 회피하려는 마음이 깔려 있을 때가 많다.
책임은 지지 않고, 결과에 대한 불편한 시선을 피하기 위해 ‘이기적’이라는 꼬리표를 달아 정당화한다.
마치 이기적이라면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가볍게 넘길 수 있을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진짜 이기적인 선택은 책임을 수반하는 것이다.
최선의 선택이라면, 그에 대한 결과도, 그에 따른 책임도 스스로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선택은 그저 책임을 회피하는 핑계에 불과하다.
결국, 가장 좋은 창의력은 책임을 수반한 가장 이기적인 선택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각자의 자리에서 가장 이기적인 선택을 하는 연습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