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라는 영화, 당신이라는 주인공, 마음이라는 감독
나는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한다.
정확히는 영화와 대화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 버릇은 책을 읽는 방법에서 비롯된 것이다.
책에 있는 문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내 주관과 생각을 지닌 채 책을 읽는다.
그렇게 읽다 보면 작가와 나의 생각이 상충하는 문장이 생기는데
그럼 옆에 준비해 둔 노트에 내 생각을 이렇다고 이야기하고
읽은 책을 기반으로 한 상상으로 작가의 대답을 적어가며
작가와 대화하며 책을 읽어 나의 언어를 새롭게 설립한다.
영화를 볼 때도 마찬가지이다.
이 장면의 작가의 의도는 어떤 것인지 보면서 질문하고
영화의 장면을 토대로 대답을 듣는다.
책도 영화도 이런 방식으로 읽고 보다 보면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는 청중이 아닌
그것과 함께하는 참여자가 되어있다.
그래서 보통 영화를 보러 갈 땐
사람이 많이 없을 시간대를 골라 간다.
평일 심야 마지막 시간대는 거의 없거나
아예 없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드넓고 어두운 공간을 온전히 혼자 이용하며
영화와 감독과 대화하며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비평가가 되기도 하고 그 공간에 완전히 몰입하며 즐긴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취미 중 하나이며
여전히 가끔 즐기고 있다.
영화는 영사기를 통해
필름에 있는 이미지들을 빠른 속도로 연속해서 비추어
하나의 움직이는 영상을 만든다.
즉, 아주 빠르게 움직이는 이미지의 연속이다.
우린 이것과 같은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 당신들의 인생이다.
지금 당신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공간의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의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그 자체가 하나의 이미지로서
당신의 눈을 통해 보고 있는 것이다.
눈이라는 카메라로 찍은 이미지가
연속적으로 당신에게 펼쳐져 보인다.
그리고 당신은 그 연속적으로 펼쳐지는 이미지 속에
1인칭 참여자가 되어 활동한다.
펼쳐지는 상황에 당신은 반응하고 행동한다.
슬픔을 느껴 울기도 하고
실패를 경험해 좌절하기도 하며
분노를 느끼며 화를 내기도 하고
재미를 느끼며 크게 웃기도 한다.
당신은 그 이미지 속에 철저하게 들어가 있다.
그동안 해왔듯이 습관처럼 반응하는 당신은
어느새 스스로에게 불만을 품기 시작한다.
나는 왜 이렇게 반응할까
나는 왜 이럴까
내 인생은 왜 이렇게 험난할까
내 인생은 왜 이렇게 불안할까
그래서 명상도 해보고 책도 읽어보고 운동도 해본다.
변화하고 싶기 때문이고, 평화로워지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여전히 내 삶은 불안하고
나는 그대로 반응한다.
어째서일까?
영화 속 주인공은 아무리 발악해도 결국 정해진 대로 행동한다.
마찬가지로 당신이 아무리 발악해도 결국 그대로인 이유이다.
영화 속에 들어가 있는 당신을 기준으로 세상을 바꾸려 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바꾸려면 영화 속 주인공이 아닌
영화를 만드는 감독의 입장에서 바꾸어야 한다.
즉, 당신이 아닌 당신 내면에서 모든 것을 펼쳐 보여주며
관찰하고 당신에게 반응하라고 목소리를 뱉는
'마음'이라는 감독이 변해야 영화가 변한다.
일반적인 영화감독들과 다르게
마음이라는 감독은 딱 한 가지를 원한다.
펼쳐 보이는 세상의 흐름을
그저 온전히 느끼고 관찰하는 것.
매일 변화하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즐기고 바라보기를 원한다.
하지만 주인공인 당신은 이를 거부한다.
당신이 계속 거부하기 시작하자
감독과 주인공의 충돌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삶이 늘 불안해지고
삶이 어딘가 부족하고
삶이 어딘가 불편하고
삶을 거부하게 되는 것이다.
이 삶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거부하고 부정하니
그 반작용으로 삶이 힘들고 우울하고 불안해진다.
우리는 나의 시점에서 '나'라는 마음의 시점으로 옮겨가야 한다.
마음이 변해야 세상이 변하는 것이다.
눈이라는 카메라를 통해
관찰된 세상을 우리는 마음이라는 감독의 지시 아래
편집하여 새롭게 재창조해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같은 물체를 바라보더라도
누군가는 감사한 마음이 먼저 샘솟고
누군가는 짜증의 마음이 샘솟는 것이다.
인생은 늘 불안할 순 없다.
인생은 늘 행복할 순 없다.
인생은 늘 부정적일 순 없다.
인생은 늘 긍정적일 순 없다.
세상 모든 것은 이것이 있기에 저것이 있다.
한 가지만 존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를 알고 어떤 감정이 올라오던
그 감정과 하나 되어 연기하는 배우가 되는 것이 아닌
그 배우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점으로 가야 한다.
긍정적인 감정이 올라와도
'지금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는 상태구나'
하고 한 발 물러나 그저 바라보고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와도
'지금은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는 상태구나'
하고 한 발 물러나 그저 바라보고 온전히 느끼면 된다.
그럼 자연스럽게 인생이라는 영화의 감정선을 조절하기 위해
그에 반대되는 감정을 느끼게 되고
결국 한 극에만 치우치는 것이 아닌
양 극의 균형을 유지하게 된다.
이제 불안의 감정이 올라오더라도
스스로에게 이렇게 이야기해 보자
'내가 지시한 대로 연기를 잘하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