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만드는 지옥 - 비교
식자재를 발주낼 때
같은 상품이라도 이곳저곳을 살펴보며
가격 비교를 필수적으로 해본다.
터무니없이 저렴하게 파는 것은
어떤 문제가 있다 판단되어 보지 않지만
평균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이라면
분명 조금이라도 더 싸게 파는 곳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즉 판매하는 음식에 대한
코스트(순재료비)로 이어지며
이 티끌들이 모여
코스트의 퍼센티지를 낮춰준다.
이는 우리와 같은 레스토랑에서만 하는 것이 아닌
쇼핑을 한 번이라도 해본 인간이라면
특히 가정을 꾸리고 있는 주부라면
필수적으로 거치는 과정이다.
비교하고 분석하여
같은 물건이라도 조금 더 합리적이고
가성비 좋게 구매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마트나 시장을 가도
가격을 비교해 보고 흥정하는 인간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렇듯 꼼꼼한 비교는
분명 지갑 사정에 도움을 준다.
하지만 한 인간의 일생에서 도움은커녕
오히려 끝없는 윤회의 고리에 빠지게 만들어
무한한 고통을 주는 비교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나와 타인의 비교이다.
자신과 타인의 비교는
스스로가 만들어낼 수 있는 최고의 지옥이자
벗어날 수 없는 윤회의 고리이다.
이 고리의 시작은 생각보다 빠르게 시작되는데
교육을 본격적으로 받기 시작하면서
세상과의 분리와 타인과의 비교가 시작된다.
언어를 통해 '다름'이라는 개념을 설립하고
점수를 통해 '비교'를 하여 경쟁을 일으킨다.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우주 만물에는 그 어느 것도 잘못된 것은 없다.
중요한 점은 당신의 자식은
당신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당신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고
당신만큼 불안하지 않은 삶을 기원하며
당신과 똑같은 길을 걷도록 하고 있다는 점이다.
놀라운 점은 대다수 인간은 이를 모르기에
똑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당신도 그렇게 배워왔다.
당신의 부모도 그렇게 배워왔다.
당신의 부모의 부모도 그렇게 배워왔다.
즉, 분리와 비교를 대물림하고 있는 중이며
이렇게 대다수 인간들은
눈뜬 채 잠들어 있는 '대중'이 된다.
초등학생 때 옆집 자식과 비교하며
미래의 더 나은 중학교와 성적을 위해
현재의 삶을 희생시킨다.
중학생 땐 윗집 자식과 비교하며
미래의 더 나은 고등학교와 성적을 위해
현재의 삶을 희생시킨다.
고등학생 땐 친구 자식과 비교하며
미래의 더 나은 대학교와 성적을 위해
현재의 삶을 희생시킨다.
대학생 땐 친척 자식과 비교하며
미래의 더 나은 회사와 취업을 위해
현재의 삶을 희생시킨다.
그럼 이다음은?
이렇게 현재에 온전히 존재하지 못하고
미래를 위해 이 순간의 포기을 강요한다.
즉, 대다수 인간들은 단 한순간도
지금 이곳에 존재하지 못한다.
'자식이 잘되기 바라는 건
부모의 당연한 마음 아닌가?'
반복해서 강조하지만
그 무엇도 잘못되었거나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더 잘되었다는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분리와 비교를 통해 오로지 당신이 설립한다.
나 또한 그랬다.
나 또한 다른 이들과 무한히 반복되는
운동장의 트랙을 같이 뛰었다.
그렇게 달리다 한번 넘어져서
트랙에서 벗어나보니
결승점이 보이지 않는 무한한 윤회였다.
그리고 나는 시선을 나와 '나'에게로 돌렸고
이후로 세상을 보는 시각이 조금 달라졌다.
시각이 달라지자 조금씩 삶이 달라지기 시작했고
점점 펼쳐지는 삶을 관망하며 즐기기 시작했다.
내가 넘어졌을 당시 대다수 '선생'과'어른'들은
나를 썩 좋게 보진 않았다.
하지만 나와 같이 트랙을 달리던 이들은
여전히 무한의 윤회를 달리며
이런 나를 보며 부러워한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거듭 말하지만
잘못되었거나 틀렸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더 나은 삶을
더 행복한 삶을 살기 바라면서
어째서 똑같은 길을 인도해 주며
그럴 수 없는 방법만 제시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