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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치기

뇌의 가지치기와, 일상의 가지치기

by cogito


지금, 내 일상에는 가지치기가 필요하다;


쓸데없는 감정소모, 불필요한 지출, 하지 않는 게 나았을 말과 행동들...

- 걸러내야 할 것들이 넘쳐나지만, 나는 그것들을 붙잡고 있다가 결국 중요한 걸 놓치곤 한다.

(오늘만 해도 뉴스를 보며 감정을 소모하고, 틈만 나면 SNS를 보다가 시간을 허비했다.

차라리 그 시산에 부족한 잠이나 보충했더라면...)


우리의 뇌도 마찬가지다;

정상적인 기능을 위해선 '가지치기'가 필수이다.


갓 태어난 아이의 뇌는 무수히 많은 신경 회로가 있지만, 이 모든 연결들을 유지하기에는 에너지가 부족하다; 그래서, 뇌는 나무가 건강한 성장을 위해 불필요한 가지를 쳐내듯, 불필요한 신경망들을 제거해 한정된 에너지를 '최적화'한다. (이 과정을 '시냅스 가지치기(synaptic pruning)'라 부른다.)


이러한 가지치기는, 주로 유년기와 사춘기에 집중적으로 발생한다;

어릴 때의 뇌는 낯선 세상에서 가능한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지만, 나이가 들면 필요한 기억과 습관만 남는다; 생존을 위해, 뇌는 잡다한 것을 없애고 중요한 것들만 남기는 '정리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다. (어릴 땐 하루가 유독 길게 느껴지지만, 성장할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혼자 추측해 본다.)


만약 이 '가지치기' 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뇌는 과부하에 걸려 필수적인 기능을 수행하기 어려워진다. 실제로, 조현병, 자폐스펙트럼 장애, 뇌전증 등의 질환은 '가지치기' 과정의 이상과 관련 있다는 연구도 있다.



우리 뇌에서 시냅스(신경 간 연결)는 2살 때까지는 계속 증가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가지치기'의 과정을 통해 그 수가 점차 줄어든다.



어떤 신경 회로가 보존되고, 어느 회로가 어떻게 사라지는지의 원리는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 바로 '사용하지 않으면 사라진다(Use it or lose it)'는 원칙이다.


자주 쓰는 신경 회로는 점점 더 견고해지고, 사용하지 않는 회로는 점차 약해지다가 결국 사라진다 - 이는 마치 운동을 게을리하면 근육이 줄어드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모든 기억이 이 원칙을 똑같은 정도로 따르진 않는다.

예를 들어, 외국어 실력은 사용하지 않으면 빠르게 퇴화하지만,

자전거 타는 법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 그 이유는 두 가지 기능을 담당하는 뇌의 영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자전거 타기 같은 운동 능력은 소뇌(cerebellum)가 집중적으로 관여하는 절차 기억(procedural memory)이다. 소뇌는 '장기 억제(long-term depression, LTD)'라는 메커니즘을 활용해 불필요한 동작을 정리하고 꼭 필요한 움직임만 남긴다. 그래서 숙련된 운동선수의 움직임은 간결하고 효율적인 반면, 초보자는 불필요한 동작이 많아 시행착오를 겪는다. -이러한 절차 기억은 한 번 형성되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치매 환자도 과거에 배운 동작이나 운동을 무의식적으로 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면, 외국어 단어나 학습한 지식은 대뇌 피질(cerebral cortex)에서 처리하는 의미 기억(semantic memory)이다. 대뇌는 사용 빈도가 적은 정보를 그때그때 가지치기하기 때문에, 복습을 소홀히 하면 배운 내용을 빠르게 잊어버리게 된다. 공부한 내용이 몇 년, 아니 며칠만 지나도 말끔히 잊히는 것도 그래서다. (나도 고등학교 때 나름 열심히 공부했지만, 지금은 수능 수학 문제를 보면 하루를 통째로 준다 해도 다 맞히기 어려울 거다....)


우리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반복하는 행동과 생각은 점점 강해지고, 소홀히 하는 것들은 차츰 희미해진다.

어떤 습관은 한 번 자리 잡으면 쉽게 사라지지 않지만,

매일 갈고닦지 않으면 금방 사라지는 생각과 아이디어도 많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은, 불필요한 것들을 붙들고 있으면

정작 중요한 것들을 키울 여력이 없어진다는 점이다.

우리 삶의 패턴이 뇌와 유사한 것은, 우리의 행동과 생각이 모두 '뇌'에서 비롯되기 때문이 아닐까.


쓸데없는 걱정, 끝없는 비교, 시간을 잡아먹는 습관들. - 이 모든 잔가지들은 우리의 삶을 무겁게 만들곤 한다.

그때마다, 우리는 뇌가 생존을 위해 불필요한 신경망을 정리하듯, 의미 없는 것들을 덜어내야 한다. 그래야 남은 것들이 더욱 깊이 뿌리내리고, 더 단단하고 가치 있는 삶을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





뇌도, 몸도, 우리의 일상도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존재다.

지금 내가 내리는 선택들이, 뇌의 구조를 바꾸고, 내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

뇌과학을 공부하면, 매 순간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정체된 삶이 왜 위험한지를 더욱 실감하게 된다.


그래서 오늘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내가 가지치기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안 그래도 짧은 인생을, 우리는 시간을 허비함으로써 더욱 짧게 만든다." - 빅토르 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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