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 젊은 여성 동대표(김대표편)

제14화. 조용한 불씨, 번지다

by 건축학도고니




01. "톡방 방장님,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주민 간담회가 끝나고 며칠 뒤,
홍위원장은 조용히 메시지를 보냈다.
상대는 그날 마지막에 들어와 회의실 뒷자리에 앉아 있었던,
바로 그 인물이었다.



홍위원장: 안녕하세요. 입주민 톡방 방장님 맞으시죠?
혹시 저랑 한 번 대화 나눌 수 있을까요?

목이버섯 (닉네임): 네, 저예요. 어떤 이야기인가요?





나는 둘의 이야기를 뒤로 한채 집으로 돌아갔다.





이틀 후.
입주민 카카오톡방에 조용히 하나의 글이 올라왔다.



○○아파트 정상화추진위원회


입대의의 기능 마비, 관리감독 부재,
노후화된 단지를 외면하는 무관심 속에서
○○아파트의 ‘정상화’를 바라는 입주민들의 모임을 시작합니다.


운영진: 입주민 자발 참여
참여 방식: 오픈카톡, 비공개 익명 가능


우리 단지를, 우리 손으로 바꿉시다.


글의 작성자는 ‘목이버섯’이었다.
그 밑에는 짧은 덧글이 달렸다.



✅ 김대표: 함께 하겠습니다.
✅ 수진맘: 애 키우기 너무 불안해요. 지원합니다.
✅ 행정일하는사람: 필요 서류 정리 도와드릴게요.
✅ 홍위원장: 주민의 뜻이 모이면, 구조는 바뀝니다.





하루 만에 40명이 방에 들어왔다.





"정상화추진위원회? 저번에 홍위원장이 입주민 카톡방 방장이 따로 한 이야기인가?"
















02. "동대표 해임안"




토요일 밤, 정상화추진위원회에서 작은 회의를 한다고 한다.

장소는 아파트 단지 내 이디야 커피숍



이 모임은 정상화추진위원회 1기 회의다.

나는 분위기를 보고자 한번 참석해보기로 했다.




탁자 위엔 프린트 된 도면, 회의록, 주민들의 민원 리스트가 빼곡했다.

참여한 입주민들은 한마디씩 이야기한다.

“입대의를 구성하는 동대표는 총 11명. 그 중 절반 이상이 사실상 아무 활동도 안 하고 있죠."

“일부는 연락도 안 돼요.”


목이버섯이 노트북을 보며 거들었다.

“우리가 해야 할 건 두 가지입니다.”


홍위원장이 손가락을 접어가며 말했다.

“하나, 주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 ‘바꿔야 한다’는 공감대를 만드는 것.
둘, 실질적으로 교체 가능한 대표들을 파악하고,
다음 회의에서 ‘주민들의 입장’을 표명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

“그러려면…”
“먼저, 구청에 집단 민원이 필요해요.
엘리베이터, 전등, 하수구 문제…
실제 주민 불편이 반영된 민원을 묶어
‘입대의가 대응하지 않은 내역’을 정리합시다.”



목이버섯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SNS로 퍼뜨려요.
‘우리 단지를 위한 기본 행동’을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겐
대표 자격이 없다는 걸 보여주는 거죠.”



“좋아요.”
홍위원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입대의를 부정하려는 게 아닙니다.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사람들을 교체하려는 겁니다.”

그 말에 회의실은 조용히 무거워졌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공동주택관리법상, 입대의 회장을 해임하려면 입주민 전체의 10% 서명입니다.”
목이버섯이 프린트를 펼쳤다.



“우린 총 1,696세대.
10%면... 약 200명을 받아야 합니다.”



잠깐의 침묵.
그 수치의 무게감이 방 안을 눌렀다.

“200명이면... 단순 민원 수준이 아니라,
‘진짜 의지’가 있어야 모일 숫자네요.”
홍위원장이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럼 어떻게 시작할까요?”
김대표가 물었다.

목이버섯이 노트북을 넘기며 말했다.


민원을 주기적으로 그리고 짧게 계속 제기하면서,

아파트 이디야커피숍과 방문서명으로 해임 서명을 모읍시다.















03. 엘리베이터 안의 대화




다음날

나는 퇴근 후,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한 손에는 클립으로 묶은 서명지,
다른 손엔 입주민용 간단한 요약 안내지.


같은 층에서 사는 402호 이웃과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요즘 엘리베이터 불편하시죠?”

“어우, 아주 매일 불안해요.
애가 있는데, 걸어서 내려가기도 힘들고...”


“저희 지금 입대의 개편 움직임 하고 있어요.
입주민 10% 서명 받아야 한다고 해서...
혹시 설명 좀 드릴 수 있을까요?”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들었어요. 그 회장님, 연세 많으시다던데요?
그분이 의사결정을 직접 하실 수는 없잖아요.”

“네, 맞아요.

그래서 저희는 ‘젊은 세대 중심의 운영체계’로
단지를 바로잡고 재건축으로 이끌 준비를 하려는 거예요.”



“아, 이거 사인하면 돼요?”
그녀는 펜을 들었다.

“네. 이건 단지의 미래에 ‘다시 참여하겠다’는 의사 표현이에요.”

서명지에 또 하나의 이름이 적혔다.
그리고 다음 층에서 한 명 더.





난 오늘 단지에서 마지막 층까지 올랐다.

1703호. 노부부가 사는 세대였다.

“안녕하세요. 밑에 사는 입주민입니다.
혹시 저희가 추진하는 서명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할머니는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거… 회장 해임 시킨다는 거?”

“네. 지금은 아무 활동이 없고,
사실상 관리사무소가 대리로 모든 결정을 하고 있어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옛날엔 말이야,
우리 같은 사람들 말 안 들어주는 게 많았어.
그런데 당신들 보니까 뭔가 제대로 해보려는 것 같더라고.
이런 젊은 사람들 믿고 한번 해보자고.”

그녀는 조용히 펜을 들었다.




199번째.

그리고 맞은편 1704호,
한 번도 얼굴을 본 적 없던 입주민이
문을 열고, 무심히 말했다.

“아, 그거요? 나도 할게요. 지난번 전등 교체 얘기했더니 무시당했어요.”



나는 핸드폰을 꺼내

정상화위원회 카톡방에 남겼다.


"홍위원장님, 해임서명을 하루만에 200세대 넘게 받은거 같아요.

내일 바로 해임안을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제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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