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여름이 지나간다. 퇴사를 하고 두 번째 맞이하는 여름이다.
태풍이 지나간 후로 그칠 줄 모르는 비로 마음까지 촉촉해져 멜랑꼴리아 모드로 접속했다. 찻 잔을 들고 베란다 밖으로 해무 가득한 비 내리는 하늘만 하염없이 바라보다, 새하얗게 뒤덮인 침묵의 숲 속으로 달려간다. 이런 날씨에 제법 잘 어울리는 W. G. 제발트의 <자연을 따라 기초시>는 이미 책장에서 탈출하여 내 시선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근위대장처럼 나를 수호하고 있다. 올해 1호 태풍의 이름은 우딥(wutip)이다. 마카오에서 세계기상기구 산하 태풍위원회에 제출한 이름으로 광둥어로 ‘나비’라는 뜻이라고 한다. 다행히 중국으로 비껴가 한반도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고 남동쪽으로 빠져나갔지만, 북태평양 고기압과 장마전선에 수증기가 유입되면서 수증기 정체현상으로 우리나라에는 많은 비가 예상된다고 뉴스에서 전해주었다. 요즘은 날씨 뉴스가 제일 정확한 것 같다. 이미 2019년의 2호 태풍의 이름으로 쓰였다는데, 2025년 다시 우딥이라는 이름이 등장한 것을 보니 그리 큰 피해를 주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나비’라는 곱고 귀여운 의미를 가진 태풍이라 그런가 보다 하는 비과학적 해석이 때론 정서적으로는 큰 도움이 된다. 자연의 질서 속에서 태어나는 태풍이 몰고 오는 바람과 비의 무서운 파괴력 앞에 무력해지는 인간의 나약함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할 것이다. 2014년 4월 필연의 자연사가 가지는 엄격함과 숭고함은 온데간데없고, 한없이 고요하고 잔잔한 드넓은 바다 한가운데서 일어난 어처구니없는 일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부산지사에 발령을 받아 2년간 근무했던 적이 있다. 단골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혼자 먹으며 믿을 수 없는 뉴스 화면과 놀란 눈을 부릅뜨고 입을 닫지 못하던 비빔밥집 사장님의 눈을 번갈아 응시하며, 사태파악을 하고 있었다. 사고의 원인은 차지하고서라도 이내 안심했던 것은 저 커다란 배가 가라앉고 있는데 아무런 구조작업을 하지 않았을 리 없으며 곧이어 전해진 전원 구조라는 뉴스 아나운서의 보도로 안도했기 때문이었다. 세월호를 잊지 않기 위한 약속의 리본은 지금도 일상에서 자주 접하게 된다. 청년의 백팩에 달린 노란 리본, 정치인 가슴 깃에 달린 노란 리본, 작고 예쁜 카페 입구에 달린 노란 리본까지 그날의 미안함과 슬픔이 밀려오는 순간 왈칼 눈물이 쏟아진다. 그 후로도 설마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은 여러 번 일어났지만.
W. G. 제발트의 <자연을 따라 기초시>의 살짝 접은 한 페이지. “벤츠하임의 숲을 산책하면서 그뤼네발트는 말했다./형제여, 나는 압니다. 낡은 옷은 찢어진다는 것을./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다만/ 소멸을 향해 기울어지는 시간이지요.”
그로부터 4년이 지난 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향하는 거대한 크루즈 갑판장 위에서 뜨거운 태양과 에메랄드 빛 태평양의 반짝임을 즐기며 가벼운 조깅으로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들고 나온 허은실 작가님의 시집 <나는 잠깐 설웁다>는 하얀 썬베드에 던져 놓았다. 매년 환경재단에서는 환경을 주제로 한 크루즈 여행 ‘그린보트‘ 프로그램을 기획 운영하고 있었다. 일본의 피스보트와 공동주최하던 것을 2018년 환경재단이 처음으로 독자적으로 개최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처음 알게 된 사업이었지만, 글쎄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난 후 이 프로그램의 취지와 의미는 무엇인지는 여전히 ?다. 조금 더 진정성 있는 접근과 방법론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다녔던 회사도 매년 이 행사에 참여하고 있었고, 나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의 인솔 선생님의 자격으로 크루즈에 승선했다. 4월 12일 부산에서 출항하여 블라디보스토크를 지나 가나자와와 후쿠오카를 거쳐 다시 부산으로 귀환하는 일정으로 정박지 부근을 관광할 수 있는 하선일정도 맘에 들었다. 당시 핫한 셀럽들과 소설가 그리고 시인과 영화감독, 각 분야의 저명한 학자들이 참여했고 다양한 환경과 연관된 주제를 중심으로 유익한 강연이 준비되어 있었다. 크루즈의 부대시설과 다양한 프로그램 그리고 선내에서의 식사를 즐기고 6박 7일 동안의 강연 스케줄을 스스로 자유롭게 선택해서 참여할 수 있었다. 여행과 교육을 접목한 매력적인 프로그램이란 생각으로 참여했지만, 일과 틀에 박힌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컸다. 자고로 여행은 마음을 느슨하게 만들고 어떤 면에서는 삶으로부터 무덤덤해지고 자유로워지게 만들어 주니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 프로그램에서 기억 남는 것들은 별로 없다. ’이건 좀 아니지 않나!’하고 주둥이를 삐죽 빼고 불만을 궁시렁거리며 귀밑에는 패치형 멀미약을 붙이고 마시는 멀미약으로 비몽사몽 지나가 버린 시간들뿐이다. 다만, 항해 기간 중반 이후쯤, 4월 16일 세월호 참사 4주기를 맞아 마련된 <세월호 낭독 추모콘서트>는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낭독콘서트는 은희경작가와 김경욱 작가 그리고 오은 시인 가수 요조가 함께했고, ‘진실의 노란 종이배‘를 접으며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기도 했다. 프로그램 참여 전부터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던 낭독회는 내게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낭독에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크루즈 승선하기 일주일 전에 은희경 작가님의 <생각의 일요일들>을 읽었던 지라 배에 승선하고 나서 작가님의 사인을 받기 위해 은희경 작가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다행히도 아이들이 듣고 싶어 했던 노홍철 님의 강연을 듣고 나오는 길에 은희경 작가님을 만날 수 있었다. 책에 대한 짧은 담소를 나누고 사인도 받고 인증샷도 남겼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작가님께 마음을 전했다.
“작가님, 혹시 함께 나누고 싶은 시가 한편 있는데, 저녁 낭독회에 저도 참여할 수 있을까요?”
<나는 잠깐 설웁다.>/허은실
보호자
아이엠에프 때 갈라서고 안 해본 일이 없어유.(손을 거두어 뒷짐을 진다. 손가락 끝이 뭉툭하다.) 입원했을 때 보호자가 있어야 된대유. 지가 보호자 한다고. 옷도 다 입혀주구 밥도 먹여주구.(붉은 목울대가 천천히 올라갔다 내려간다.) 아 근디 이렇게 살아보지도 못하고 갔으니 미치겠어유. (시든 귤을 쥐어준다.) 나기는 김제서 났지유. 죽을라고 소주 대여섯 병씩 먹고 실려가기도 많이 했어유. (발음이 성글다. 앞니 하나가 빠져 있다.) 그래도 억울한 거는 풀어줘야 딸 보러 갈 면목이 서지 않겠어유? (목에 걸린 학생증을 내려다본다.) 사무실 가서 커피도 한잔하고 가시지유. (노란 잠바 속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낸다.) 딸 생각이 나서 그래유. 꼭 저만할 때부터 혼자 키웠지유. (다섯 살 딸애에게 만 원을 쥐여준다. 등뒤로 바다는 눈시울이 붉다.)
작가님께서는 담당자에게 확인해 보고 알려 주겠다며, 크루즈에서는 어떤 통신기기도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 객실번호를 꼼꼼히 메모해 가셨다. 저녁 8시에 예정된 낭독회가 15분 정도밖에 남지 않았지만 연락을 받지 못해 아쉬운 마음으로 객실을 나서는 순간 문 앞에 붙어 있던 노란 포스트잇을 발견했다. 일찍 연락드리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과 낭독회가 진행되는 홀로 빨리 와 줄 수 있는지”하는 은희경 작가님의 메시지였다. 메시지를 읽으면서 홀까지 불이 나게 달려갔다. 한 남성분이 작은 편집 책자 한 권을 건네며 오늘 낭독회에 최은영 작가가 낭독해 주기로 했던 세월호 가족 수기 중에 한 편인데 , 최은영 작가가 개인적 사정으로 후쿠오카에서 하선하셔서 이 수기를 낭독해 주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생각보다 일이 커져버린 느낌이었다. 작은 글씨로 2 페이에 달하는 분량으로 낭독연습을 할 시간적 여유도 없었고, 제안하신 분은 귀찮은 듯, 친절하지도 않으셔서 그 자리에서 정중히 거절할까도 생각했지만, 마음 써주신 은희경작가님과 홀을 가득 메워주신 많은 분들과 함께 하고픈 마음이 컸던지라 다소곳이 ”네 알겠습니다.” 대답하고 전속력으로 화장실로 달려갔다. 작은 소리로 수기를 끝까지 한번 읽고 다시 홀로 돌아와 쿵쾅거리는 심장을 다독이며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준비된 낭독이 모두 끝나고 나는 가장 마지막에 소개되어 앞으로 나갔고 준비된 스탠드 마이크 앞에서 간단히 소감을 밝히고 담담히 한 글자 한 글자 읽어 내려갔다. 화장실에서 급하게 읽어 보기는 했지만 분명 내용을 파악하고 난 후 담담하게 읽어 내려가자고 마음먹었지만, 울컥하는 마음을 진정하기 어려웠다.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 글씨도 잘 보이지 않았다고, 울컥하는 마음에 목까지 메어왔다. 세월호 참사를 뉴스로만 접했던 내가 감당하기엔 상처와 슬픔을 견뎌온 유가족의 선명한 고통에 숨이 턱 하고 막힐 것만 같았다. 거친 호흡을 가다듬고 가슴을 몇 번이고 쓸어내리며 간신히 끝까지 마칠 수 있었다. 추모콘서트가 진행된 홀은 너무 어두워 함께하신 분들의 표정을 정확하게 볼 수는 없었지만, 내 마음과 목소리에 공명된 그들의 눈에는 글썽글썽 눈물이 맺혀 있었다. 누군가는 훌쩍훌쩍 눈물을 훔치고 있었으며, 누군가는 고개를 떨구어 손가락만 만지작만지작 거리고 있었고 또 누군가는 서로를 부둥켜 안고 등을 토닥이며 마음을 위로하기도 했다. 다시 자리로 돌아와 털썩 주저 않았다. 온 몸에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었다. 모든 순서가 끝나고 다소 형식적이고 딱딱한 뉘앙스로 말을 건넸던 그 남성분은 다른 사람마냥 친철하고 따뜻하게 “감사합니다.”하고 인사를 건넸다. 망망대해 어딘가에서 목적지를 향해 항해 중인 5만 7천 톤의 네오로만티카호가 바다 위에 둥둥 떠있는 미세한 흔들림을 감지하면서 멍하니 한 곳에 시선을 고정한 채 얼마간 앉아 있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조용히 번지는 환희 역시 감지하면서…
생각에 잠긴 채 객실로 돌아가는 선내에서 놀랍게도 많은 분들이 알아봐 주었다. 다른 기업에서 참여한 인솔선생님들, 봉사활동으로 참여한 대학생들, 낭독회에 참여한 분들로부터 ‘감사하다’는 뜻밖의 말을 전해 들었다. “낭독에 너무 위로를 받았어요.”, “목소리가 어쩜 그리도 좋아요.”, “덕분에 잠시 힐링되었어요.” 갑자기 선내에서 유명인사가 되었다. 아이들과 함께 뷔페식당에서 조식을 먹기로 한 다음 날 아침, 옆테이블인지 아닌지 분간이 어려울 만큼 다닥다닥 붙은 테이블 덕분에 옆 테이블 사람들과 가벼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S그룹과 N금융에서 참여했다는 중년의 남성분들이 나를 알아보며 말했다. “어제 낭독회는 덕분에 감동적이었어요”
깊은 바닷속에서 떠오르는 크고 붉은 태양은 고통과 슬픔 대신에 기대와 희망을 향해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이 날의 태양은 그 후로도 자주 내 인생에 등장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