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대 시절, 나는 학교와 사회에서 문제아라는 낙인을 안고 살았다.
가출, 흡연, 싸움, 자퇴까지.
내가 걸어온 길은 엄마의 마음을 수없이 무너뜨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절에도 끝내 나를 붙잡아 준 건 엄마의 끈질긴 믿음이었다.
아무리 방황해도, 돌아올 수 있다고 믿어 주었던 그 마음.
그 믿음은 결국 내 삶을 다시 제자리로 이끌어 주었다.
얼마 전, 내가 일하는 미용실에서 한 고객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분은 호프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였는데,
아르바이트생들 때문에 늘 힘들다고 했다.
대부분 갓 스무 살이거나 사회 초년생인데,
책임감이 없고, 성실하지 않으며, 세상과 타협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 고객은 이렇게 말했다.
“그런 가정환경에서 자란 애들은 결국 사회에서도 똑같이 삐뚤게 살 수밖에 없어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그렇게 자라왔어도, 오히려 더 성숙하게, 더 열심히 살아가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속으로는 나 자신을 떠올리며 말했지만,
그분은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는 듯 못을 박았다.
그 대화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도 믿기 때문이다.
삐뚤게 자란 듯 보였던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았고,
부모의 믿음이 있다면 아이는 반드시 돌아올 수 있다고.
내가 그 증거이기 때문이다.
부모님, 사춘기 아이의 방황은 때로 끝이 없는 터널처럼 느껴집니다.
때로는 아이가 완전히 무너져 돌아오지 못할 것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 경험으로 말씀드립니다.
부모의 믿음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그 믿음은 아이가 세상에 다시 발 딛고 설 수 있는 마지막 끈입니다.
아이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
그동안의 방황은 낭비가 아니라 더 단단해지는 과정이 됩니다.
혹시 지금 방황하는 아이를 바라보며 지쳐 있는 부모님이 계시다면,
부디 포기하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언젠가는 그 아이도, 저처럼 “나는 다시 살아낼 수 있다”는 순간을 맞이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