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머리전쟁

by 은나무


작년 첫 출근얼마 후 이야기.


10년 만에 다시 미용실에 나오니, 세상이 참 많이도 변해 있었다.

특히 미용이라는 직업은 유행에 민감해서, 오래된 경력자라도 늘 새롭게 배우고 손에 기술을 익혀야 한다.

오랜만에 다시 가위를 잡은 나는 새로운 유행, 더 좋아진 장비와 약제들을 따라잡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초등학교 3학년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엄마랑 함께 머리를 자르러 왔다.

딱 봐도 둘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나는 아이를 의자에 앉히고 엄마에게 물었다.


“어떻게 다듬어줄까요?”


“옆, 뒷머리는 깔끔하게 하고 앞머리는 눈썹까지 잘라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하고 대답하는 순간, 아들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눈썹 안 보이게 한다고!!!”


아하… 두 모자가 미용실에 오기 전부터 앞머리 길이로 실랑이를 벌이다가 타협을 마치지 못한 채 그대로 들어온 거였다.



나는 당연히 보호자인 엄마 말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앞머리가 눈을 덮으면 찔릴 수도 있고, 나 역시 같은 또래 아들을 키우는 엄마니까.

그래서 엄마 말대로 눈썹이 보일 정도로 잘랐다.



물론 아들 마음도 살짝은 봐줘야겠다 싶어, 눈썹이 살짝 가려질락 말락 하게 잘라줬다.

그런데… 아이 얼굴이 금세 일그러지더니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기세였다.

나는 다급하게 달래 봤다.

“아들~ 이 정도는 잘라야 눈에 안 찔려. 그리고 엄마가 말한 것보다 길게 잘랐어. 봐봐, 눈썹 가려지잖아~”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지만, 이미 늦었다.

얼굴이 시뻘게진 아이는 결국 가게 문을 나서는 순간,


“아아아아악~~~~!!!”


가게문 앞에서 동네가 떠나가라 고래고래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순간 얼어붙었다. 내가 그렇게 큰 잘못을 한 건가? 엄마 말을 들은 게 잘못인가? 아니면 요즘 애들이 원래 이런 건가?



며칠 뒤, 비슷한 또래의 아이가 또 엄마와 함께 왔다.

이번에는 “앞머리를 눈 바로 위까지만 잘라 달라”는 엄마의 요청.

나는 순간 온몸이 굳었다.

저번처럼 또 울면 어떡하지…? 이번엔 누구 말을 따라야 하지?



하지만 결국 또 엄마 편에 서서 자르다가…

역시나 대실수.

아이 울음바다가 가게 안에서 폭발했다. 엄마를 발로 차고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나는 속으로 외쳤다.

아니, 이 와중에 내가 왜 죄인이 돼야 하는데…!!!

이미 자른 머리를 붙일 수도 없고, 엄마 말대로 했을 뿐인데… 미치고 환장하겠네.



그날 저녁, 점장님이 내게 조용히 말했다.

“그럴 땐 무조건 아이 말 들어줘야 해요. 요즘은 애들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게 속 편해요.”



그날 이후, 나는 원칙을 바꿨다.

엄마가 뭐라 해도 아이 앞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아들~ 걱정하지 마.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줄게. 앞머리는 아주 조금만 자를 거야.”



엄마들 말은 그냥 “네, 알겠습니다~” 하고 흘려듣는다.

엄마들은 가게에서 울 일은 없지만, 아이들은 울고불고 가게를 난장판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알았다. 요즘 아이들에게 앞머리는 자존심이고, 정체성이었다는 걸.


그런데 말이다.

이게 남 얘기인 줄 알았는데… 얼마 전 우리 집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초등학교 4학년 (현재 5학년) 막내아들이 내게 충격적인 말을 했다.

“엄마, 앞머리는 손도 대지 마.”

순간 얼이 빠졌다.

“뭐? 너는 엄마가 해주는 대로 잘 따라오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우리 아들도 이미 앞머리에 자기만의 세계가 있었다는 거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제발, 누가 좀 알려줘. 도대체 앞머리를 왜 자르면 안 되는 건데?



오늘도 나는 여전히 배우는 중이다.

앞머리 철학 앞에서는 20년 경력도, 근자감도, 다 소용없다.

나는 오늘도 또다시 깨닫는다.



나는 끝없이 공부해야 하는, 배우는 미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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