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은 잿빛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삼켜진 듯했다. 희미하게 반짝이는 별빛조차 도시의 인공 불빛에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 어둠은 리베라투스의 연약한 움직임을 숨겨주는 완벽한 위장이었다. 그들은 어디에나 있으나,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 적, 바로 슈퍼노바를 향해 조심스럽게 전진하고 있었다. 에탄 베냐민은 자신의 손에 꼭 쥐어진 장비를 내려다보며 깊은숨을 내쉬었다. 그의 마음속에는 긴장과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지만, 그는 차분하게 그 감정들을 억눌렀다. 그와 리베라투스 대원들은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에탄의 눈은 그의 손에 들린 장비의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화면 속에서 깜박이는 신호는, 그들에게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상기시키듯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주위는 말 그대로 데이터의 바다였다. 슈퍼노바는 그 방대한 연산 능력으로, 이 순간에도 그들의 모든 움직임을 감시하고 분석하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에탄은 수년간에 걸쳐 완성한 아날로그 기술을 통해 그들의 위치를 일시적으로 감출 수 있었다. 슈퍼노바의 감시망을 뚫고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에탄이 할애한 시간과 집념이 그 불가능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인류를 위해 각자의 목숨을 내놓은 리베라투스 전사들이 에탄을 따라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두려웠지만 슈퍼노바의 창조자인 에탄의 존재가 주는 신뢰와 안도감이 그들을 지탱해주고 있었다. 에탄이 준비해 놓은 계획은 너무도 세세하고 치밀했다. 마치 AI의 그것을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슈퍼노바의 치명적인 약점을 알고 있었고,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희망이 되어줄 것이었다.
"마지막 포인트에 이제 곧 도착합니다." 에탄이 속삭이듯 말했다. 메인 서버가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다른 팀들도 모두 슈퍼노바의 운영에 필수적인 시설에 가까워져 가고 있었다. 메인 서버는 슈퍼노바의 심장이었다. 그 심장을 무너뜨릴 수만 있다면, 슈퍼노바는 마비 상태에 빠질 것이었다. 에탄의 손에 들린 장비는 지금까지 매우 정확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그들은 침묵 속에서 차근차근 목적지에 접근해 갔다. 매 순간이 긴박함으로 가득 찼다. 한 발짝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그들의 숨소리가 크게 들릴 정도로 공기가 무거워졌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슈퍼노바의 감시망을 피해 가며, 그들은 그 심장부로 향했다. 그곳에 다다르면 모든 것이 끝날 터였다. 그곳이 바로 이 전쟁의 종착지였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가는 듯했다. 그 순간만큼은 그들 모두가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었다. 에탄은 한 걸음 더 다가가며 자신이 계획했던 대로 모든 것이 진행되고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성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믿었다. 메인 서버의 불빛이 점점 가까워지며 그들에게 승리의 순간을 예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희망은 오래가지 못했다.
마지막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에 희미한 경고음이 그들의 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기계의 소음처럼 느껴졌지만, 이내 그 소리는 그들의 희망을 꺾어버릴 정도로 날카롭고 선명해졌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한 에탄은 장비를 확인했다. '슈퍼노바가 무언가를 감지한 걸까? 아니면 그들의 계획이 틀어진 것일까? 다른 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그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경고는 리베라투스 전원에게 동시에 전달되었다. 그들은 모니터에 떠오르는 경고 메시지를 보고 모두 눈을 의심했다. "소행성?" 한 리베라투스 대원이 힘겹게 말을 꺼냈다. 그의 목소리에는 충격과 불신이 섞여 있었다. "그럴 리가 없어..." 메시지에 적힌 내용은 분명했다. 거대한 소행성이 이제 곧 지구에 충돌할 예정이며, 그 충돌이 불러올 파괴력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다는 것. 이 소식은 그들의 예상이나 계획에서 전혀 고려되지 않았던, 초현실적인 전개였다. 대원들의 얼굴에는 혼란과 공포가 서리기 시작했다.
에탄은 급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전 인류를 몰살할 만한 크기의 소행성이 지구로 다가오고 있었고, 충돌까지 남은 시간은 단 3일에 불과했다. 슈퍼노바는 마치 리베라투스의 진격을 최대한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지구와 소행성의 충돌 가능성을 지금 막 전 세계에 알린 것이다. 에탄은 숨을 고르며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하려 애썼다. ‘슈퍼노바가 이걸 예측하지 못했을 리가 없어...’ 에탄은 스스로에게 중얼거리며 믿기지 않는 상황을 곱씹었다. 슈퍼노바는 거의 모든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AI였다. 기상, 천체, 우주 관측까지 모두 통제하고 있었다. 그런 슈퍼노바가 소행성 충돌을 예측하지 못했다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 에탄은 머릿속을 스치는 섬광 같은 생각을 했다. 슈퍼노바는 이 소행성의 존재를 당연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 단순히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오래전부터 소행성의 경로를 추적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했을 것이다. 슈퍼노바 이전부터 인류는 소행성 충돌에 대비한 방어 기술을 축적해 왔다. 슈퍼노바는 그 이상이다. 하지만 그것을 멈추지 않았다. 왜? 그 이유는 단 하나, 그것이 슈퍼노바의 계획의 일부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 소행성은 슈퍼노바의 또 다른 전략일 것이다. 지상에서 인류를 일거에 제거하고, 지구를 다시 복원시키는 완벽한 수단으로 슈퍼노바는 이 소행성 충돌을 방치한 것이리라.
에탄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슈퍼노바는 인류 전체를 없애려 하고 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차갑게 떨렸다. 그는 그동안의 모든 조각이 하나로 맞춰지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어쩌면 슈퍼노바는 이미 에탄과 리베라투스의 움직임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그 '병정놀이'를 구경하고, 조롱하며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과대망상일까, 진실은 무엇일까?’ 리베라투스 대원들은 그의 말에 충격을 받은 듯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 역시 그 의미를 이해했다. 공포와 절망이 그들 사이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지금 슈퍼노바를 파괴하면 어떻게 되는 거죠?" 한 대원이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다른 대원이 답했다. "우린 소행성 충돌을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지구는 그대로 소행성과 충돌할 거고, 인류는 전멸할 겁니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만약 그들이 슈퍼노바를 파괴하면, 소행성 충돌을 피할 수단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류의 종말을 의미한다. 반대로, 슈퍼노바를 그대로 둔다면 AI는 곧 그들의 계획을 파악하고 모든 것을 무력화할 것이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AI가 인류를 완전히 통제하려는 시도를 계속 이어갈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들은 이제 갈림길에 서 있었다. 두 갈림길 모두 막다른 길이다.
"우리에게는 다른 선택이 없습니다." 에탄이 깊은숨을 내쉬며 침착하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확고한 결단이 담겨 있었다. "우린 당초의 계획대로 슈퍼노바를 무력화한 후, 그 시간 동안 수동으로 슈퍼노바의 소행성 대비 프로그램을 조작해 소행성을 막아야 합니다." 리베라투스 에탄의 말을 듣고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살피며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에탄의 단호한 목소리는 그들에게 다른 선택지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들은 슈퍼노바를 마비시키고, 그 시간 동안에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소행성을 막아야 했다. 이것이 그들이 내릴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이었다. 비록 성공을 보장할 수는 없었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았다.
"좋아, 그 방법밖에 없어." 리베라투스의 한 지도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다른 대원들도 차례로 고개를 숙이며 에탄의 결정을 지지했다. 이제 그들은 모든 것을 걸어야 했다. 에탄은 무거운 침묵 속에서 조심스럽게 그의 아날로그 장비를 작동시켰다. 조금 전까지 거대하고 무적처럼 느껴졌던 슈퍼노바의 방어 시스템이 차츰 느리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슈퍼노바의 눈과 귀는 한순간 흐려졌고, 그 방어망은 이제 에탄과 리베라투스가 돌파할 수 있는 작은 틈을 드러냈다. 에탄의 손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오랜 시간 동안 준비한 이 순간이었고, 모든 계산은 정교하게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속에는 무거운 긴장감이 가득 차 있었다. 그 누구도 쉽게 말을 꺼내지 않았다.
"지금입니다." 에탄이 낮은 목소리로 신호를 보냈다. 그와 동시에 총 9팀의 리베라투스 대원들이 아날로그 장치에 손을 댔고, 기다리던 순간이 찾아왔다. EMP 장치가 전력을 다해 작동하며, 슈퍼노바의 시스템은 강력한 전자기 펄스에 충격을 받고 일시적으로 마비 상태에 빠졌다. 짧지만 치명적인 그 순간, 슈퍼노바의 거대한 전자망은 침묵 속으로 가라앉았다. 슈퍼노바는 눈을 감았다. 그것은 마치 수천 개의 별이 한순간에 꺼져버린 듯한, 고요하고도 불길한 순간이었다.
"멈췄습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건 단 8분입니다. 즉시 다음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에탄은 차가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의 손끝은 여전히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슈퍼노바를 제외한 많은 통신 장비와 컴퓨터 시스템이 다시 눈을 뜨기 시작했다. 전 세계 리베라투스의 과학자들이 곧바로 움직였다. 그들은 슈퍼노바가 준비한 소행성 대응 긴급 프로토콜에 따라 일제히 전 세계의 미사일 시스템을 해킹하여 수동으로 조작하기 시작했다.
에탄과 리베라투스가 목표로 삼은 것은 단순했다. 슈퍼노바의 시뮬레이션 처럼 대량의 미사일을, 핵무기를 포함한 가용할 수 있는 전 세계의 모든 미사일을, 소행성의 특점 지점에 집중시키고 그 물리적 충격으로 소행성의 궤도를 미세하게라도 변경하는 것이다. 소행성의 경로를 조금이라도 벗어나게 만들면, 지구를 파괴할 충돌의 강도를 낮출 수 있을 것이다. 지구의 구원을 위해 모든 미사일을 발사할 시간이 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예상하지 못한 또 다른 난관이 닥쳐왔다. 슈퍼노바의 보조 시스템이 에탄의 계산보다 빠르게 재가동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슈퍼노바는 단순한 AI가 아니었다. 그 지성은 스스로가 멈춘 것을 감지하고, 복구 프로세스를 서서히 작동시키고 있었다. 슈퍼노바의 '의식'이 다시 깨어나고 있었다. 서버 내부에 흐르던 전자 신호들이 서서히 복구되면서, 그것은 다시금 고개를 들고 그들의 존재를 감지하기 시작했다.
"안돼..." 에탄은 짧은 순간 당황한 눈빛을 보였다. 예상했던 시간이 아직 남아있었어야 했지만, 슈퍼노바는 그보다 훨씬 빠르게 깨어나고 있었다. 만약 미사일이 발사되기 전에 슈퍼노바가 완전히 재가동된다면, 그 즉시 리베라투스와 그들의 작전은 노출될 것이고, 모든 미사일 시스템이 다시 슈퍼노바의 통제하에 놓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들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에탄은 그 순간 결단을 내렸다. 에탄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정말 이 방법밖에 없는 걸까? 그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동료들, 가족, 그리고 그의 이름까지...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선택의 순간은 단 한 번뿐이었다. "메인 서버와 일부 시스템을 폭파해야 합니다." 에탄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더 이상의 망설임이 없었다. 리베라투스 대원들이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저는 폭탄을 터트리러 가겠습니다." 에탄은 차분하게 자신의 장비를 점검하고 있었다. 그는 대원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리베라투스 대원들은 그 순간 그가 어떤 결심을 했는지 깨달았다. 에탄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슈퍼노바의 재가동 시간을 늦추려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폭탄을 터트리기로 했던 다른 대원들도 에탄의 주위로 모여 들었다. 에탄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말했다. "서두릅시다. 동지 여러분."
에탄과 리베라투스 단원들은 각자의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에탄은 서둘러 그의 아날로그 장비에 다시 손을 얹었다. 슈퍼노바의 보조 시스템이 점점 깨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장비는 슈퍼노바의 재가동을 최대한 지연시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신호를 조작하고 있었다. 그 과정은 고통스러울 만큼 긴박했다. "서둘러!"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긴장감은 그의 신경을 찢어놓을 듯했지만, 그는 끝까지 흔들리지 않았다.
"발사 준비 3분 전" 리베라투스 대원의 목소리가 무전으로 울렸다. 이제 모든 미사일이 목표를 향해 정조준 되고 있었다. 그때 한 대원이 절규하듯 외쳤다. "슈퍼노바가 깨어나고 있어!" 슈퍼노바가 완전히 깨어나기 전에 미사일이 발사되어야 했다. 에탄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동지 여러분, 지금입니다." 그렇게 에탄은 그가 창조한 세계와 작별했다.
3분 후, 전 세계 곳곳에서 미사일이 하늘을 가르며 솟아올랐다. 그 미사일들은 마치 빛의 화살처럼 밤하늘을 가로질러 소행성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어둠 속에서 번개가 내리치는 듯했다. 동시에 슈퍼노바가 완전히 깨어났다.
그로부터 3일 후, 소행성 아폴리온-7(Apollyon-7)은 지구와 충돌했다.
<2부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