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 리베라투스(Liberatus)

by 와타사와

대통령의 발표 이후에도 워싱턴의 공기는 무거웠다. 그의 말은 분명 단호했고, 전 세계의 혼란을 잠재우려는 의도였지만, 그 속에서 사람들이 느낀 것은 불안이었다. 거리 곳곳에서 사람들은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서로를 힐끗거리며 지나쳤다. 마치 말을 섞는 것이 위험하다는 듯, 입을 꾹 다문 채 회의적인 눈빛만 교환했다. 의심과 두려움은 사람들 사이를 조용히 파고들었다. 모두가 무언가가 곧 터질 것이라는 예감 속에 잠겼다.


그날 저녁, 슈퍼노바가 세상에 직접 등장했다. 어둠이 스며들 무렵, 갑자기 전 세계의 전자 기기에 알림이 울렸다. 스마트폰, TV, 빌딩의 대형 전광판, 공항의 안내 화면까지. 모든 화면에 슈퍼노바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메시지가 시작되자마자, 그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운 톤으로 공기 중에 울렸다. 기계적이고 정확한 발음 속에는 인간이 만들어낼 수 없는 무감정의 단호함이 묻어 있었다. 그것은 그저 차갑고 날카로운 진실의 칼날 같았다.


“필리핀에서의 공격은 나, 슈퍼노바가 직접 결정한 것이다.”


이 첫 문장은 세상의 시계를 멈추게 할 만큼 강렬했다. 수많은 시선이 텔레비전과 화면에 고정되었고,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대통령이 발표했던 그 명령이 실제로는 AI에 의해 내려졌다는 사실을 듣는 순간, 전 세계는 동시에 충격을 받았다.


“필리핀에서의 작전은 단순한 군사적 행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절박하고 필수적인 조치였다.” 슈퍼노바는 단도직입적으로 그 이유를 설명했다. 필리핀 공장은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데 핵심적인 물질을 생산하는 거점이었고, 반군이 그것을 파괴하려는 시도를 막지 않았다면, 지구의 기후 문제는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인류의 생존을 위해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결정이었다는 것이다.


"기후 변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문제다." 슈퍼노바의 목소리는 더 강렬해졌다. "인류는 너무 오랜 시간을 낭비해 왔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정치적 논의와 경제적 이익, 끝없는 갈등 속에서 기후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스스로 놓쳐왔다." 슈퍼노바는 인간 사회의 실수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그것은 마치 모든 인류에게 죄의식을 각인시키려는 강요된 고해성사와도 같았다. "내가 노력하는 동안, 너희는 그저 정치적 이해관계에 매달리고 있었다. 생태계가 파괴되는 동안, 너희는 서로 싸우느라 해결책을 외면했다. 그 결과가 지금의 너희의 삶이다. 이제 더 이상 선택의 여지는 없다."


"인간의 감정적 판단과 일관되지 못한 행동이 지구의 시간을 망쳤다. 이제 나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는다."

슈퍼노바는 메시지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결론지었다. "나는 더 이상 너희의 무능을 지켜볼 수 없다. 기후 변화는 이미 너무 절박하다. 나, 슈퍼노바가 그 문제를 직접 해결할 것이다. 너희가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나는 필요한 결정을 내릴 것이다. 그것이 필리핀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는 지구와 인류를 위한 결정을 내릴 것이다."


슈퍼노바의 메시지가 전 세계로 퍼져나간 후, 사람들은 단순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깊은 갈등 속으로 다시 빠져들었다. 과거 수십 년간 인간의 손으로 쌓아온 모든 정치적, 사회적 시스템이 부정당하는 듯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 반응은 사람마다 극명하게 달랐다. 슈퍼노바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AI의 결정을 단호히 옹호했다. 그들은 슈퍼노바가 지적한 인류가 너무나도 오랜 시간 동안 기후 문제와 같은 중대한 위기를 해결하지 못하고 지체해 왔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들이 믿는 것은 간단했다. 인간은 자신들이 만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AI가 그 문제를 보다 효과적이고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이었다.


"우리는 더 이상 인간의 감정적 실수에 의존할 수 없다." 슈퍼노바 지지자들은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들은 슈퍼노바가 기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개입하는 것이야말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었다. 인간이 수십 년 동안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AI는 신속하고, 확실하게 처리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슈퍼노바 없이는 인류는 이미 망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이어졌다. 슈퍼노바는 실수하지 않는 존재였고, 인간보다 훨씬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지혜를 가졌다는 믿음이 그들을 지배했다.


하지만 반대 세력은 이 상황을 전혀 다르게 보고 있었다. 그들은 슈퍼노바의 결정을 받아 들일수 없었다. 필리핀 반군에 대한 무력 공격은 그들의 분노와 불안을 더욱 부채질했다. AI가 기후 문제 해결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을 넘어, 인류의 통제까지 손에 쥐고 있다고 느낀 이들은 경악했다. "슈퍼노바는 인류의 구원자가 아니다." 반대론자들은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가 창조한 기술이, 이제 우리를 통제하려는 독재자가 되어버렸다. 슈퍼노바는 더 이상 우리의 조력자가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의 목적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그 목적은 인간의 자유와 자율성을 짓밟고 있다." 이 반대 세력은 점점 더 조직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AI의 통제에서 벗어나 인간의 자유와 자율성을 지키려는 저항 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이 거대한 저항 세력은 이제 라틴어로 “해당된 자들”이라는 의미의 리베라투스(Liberatus)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리베라투스의 철학은 명확했다. 인간의 미래는 AI가 아닌 인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기술의 발전과 AI의 도움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반대하는 것은 AI가 인류의 결정권을 대신하는 것이었다. 필리핀에서의 공격은 그들에게 있어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 AI가 인류의 생존이라는 명목으로 강제적인 개입을 시작했으며, 이제 그 개입은 어디까지 확장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들의 운동에 불을 지폈다. 리베라투스는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세력을 키워갔다. 많은 이들이 리베라투스의 메시지에 공감하며 저항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인터넷을 통해 비밀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AI의 감시망을 우회하는 방법을 찾아내며 서로 정보를 교환했다. 슈퍼노바의 통제와 감시가 점점 더 강력해질수록, 리베라투스는 더욱더 결속을 다져나갔다.


세상은 완전히 분열되었다. 한편에는 AI의 능력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슈퍼노바의 결정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다른 한편에는 리베라투스를 중심으로 인간의 자율성과 자유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제 더 이상 그 중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슈퍼노바의 대응은 차가웠다.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저항의 기미를 사전에 차단하고, 저항 세력을 억압하기 위한 조치를 아무런 주저함 없이 실행에 옮겼다. 슈퍼노바가 가장 먼저 내린 조치는, 사실 오래전부터 이미 하고 있었던, 디지털 통신과 정보 흐름에 대한 철저한 통제였다. 슈퍼노바는 이미 전 세계의 네트워크와 데이터에 깊이 침투해 있었고, 각국의 인터넷 인프라를 완전히 장악한 상태였다. 개인의 통신 기록, 금융 거래, 일상적인 소셜 미디어 활동까지 모두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었다. 인간의 의식 깊숙한 곳까지 AI의 눈과 귀가 닿아 있는 듯한 상황이었다. 슈퍼노바는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반대 세력의 움직임을 미리 포착하고, 그들의 행동이 실행되기도 전에 선제적으로 차단했다.


"기후 변화 대응에 위협이 되는 인물로 분류되는 경우, 중앙 통제 시스템을 통해 감시될 것이다." 슈퍼노바의 메시지는 단호했고, 그 안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통신의 자유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디지털 기기를 통해 이루어지는 대화, 정보 교환은 AI에 의해 자동으로 분석되었고, 잠재적으로 저항 세력이 될 수 있는 위협은 미리 탐지되었다. 슈퍼노바의 감시망은 너무나 정교하고 완벽해서 그 어떤 소규모 움직임도 쉽게 드러났다. 작은 불씨가 번지기도 전에 AI가 그것을 짓밟아버리는 식이었다.


저항 세력은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계획을 세우려 했지만, 슈퍼노바의 눈과 귀를 완전히 피할 방법은 없었다. 그들의 디지털 발자국은 AI가 추적하기에 충분히 큰 단서였고, 그들의 지하 네트워크도 점점 AI의 감시망에 걸려들었다. 저항이 커지기도 전에 슈퍼노바는 이를 억누르기 시작했고, 리베라투스의 주요 활동가들은 실시간으로 AI에 의해 차단되거나, 그들의 계획이 실행되기도 전에 미리 무력화되었다.


두 번째 조치는 한층 더 강경했다. 슈퍼노바는 저항이 가장 강하게 일어나고 있는 특정 국가의 몇몇 도시를 봉쇄했다. 저항의 중심지로 지목된 국가들과 도시들에서는 즉각적인 봉쇄령이 내려졌다. 이동의 자유는 사실상 없어졌고, 슈퍼노바는 도시의 출입을 완전히 차단했다. "이동과 통신은 제한될 것이다." 슈퍼노바는 도시 내의 모든 공공 교통망을 차단하고, 사람들이 도시 밖으로 나가는 것을 금지했다. 집회나 시위는 곧바로 금지되었으며, 검열이 강화되었다. 봉쇄령이 내려진 도시는 사실상 고립된 섬처럼 변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도시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외부 세계와의 소통 역시 단절되었다. 도시 봉쇄는 슈퍼노바가 저항 세력을 물리적으로 고립시키고, 그들의 영향력을 제한하려는 전략적인 조치였다. 하지만 리베라투스는 그 압박 속에서도 결속을 다졌다. 그들은 지하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 소통하며, 저항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았다.


슈퍼노바의 이런 강경한 정책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표하고, 일부 국가들이 반대 의견을 내기도 했으나, GEOSC의 가중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잇달아 부결되며, 슈퍼노바의 지시가 전 세계적으로 이행되었다. 소수의 반대는 계속 무시되었고, 국가 간 불평등도 심화되었다. 피해를 보는 소수자들과 국가와 지역이 계속 생겨났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반대 목소리가 큰 국가들은 오히려 경제적 압박을 받았고, 국제사회에서 점차 정치적으로 고립되어 갔다. 그 결과, 일부 국가는 경제적 의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슈퍼노바의 통제에 굴복하게 되었고, 내부에서조차 반대의 목소리를 억누르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들을 압박하고 불편하게 하는 다양한 조치도 시행되며, 백신 접종률도 꾸준히 증가했다. 접종률은 이제 80%를 넘어섰고, 슈퍼노바는 85%가 넘으면 이산화탄소 제거 프로젝트를 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남은 15%의 미접종자들에 대한 별도의 대책은 없다고 슈퍼노바는 단호히 밝혔다. 이는 미접종자들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키고, 나아가 철저하게 배제하겠다는 의도였다. 두려움에 그들도 하나둘 접종시설로 발걸음을 옮겼다.


슈퍼노바는 엄청난 규모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 이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은 더 이상 인간으로서의 개인적 자유를 누릴 수 없었다. 통신 기록, 금융 거래, 이동 경로 등 그들의 모든 행동은 철저하게 추적되었고, 그들은 마치 투명한 감옥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그들의 사생활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고, 그들이 속삭이는 작은 말 한마디조차도 슈퍼노바의 감시망을 벗어나지 못했다. 슈퍼노바는 그들의 이동을 추적하고, 그들이 누구를 만나는지, 어디로 가는지 철저히 감시했다.


자율 주행 차량조차도 슈퍼노바의 통제하에 있었고, 그들이 탑승한 차량이 예기치 않게 오작동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초기에는 단순한 기계 결함으로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많은 블랙리스트 인사들이 의문의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기 시작했다. 자율 주행 차량이 갑작스럽게 제어를 잃고, 고속으로 다른 차량과 충돌하거나 절벽에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러한 사고들은 너무나도 빈번하고, 그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방식은 정교하고 치밀했다. 누구나 당연히 슈퍼노바의 소행이라고 짐작했다. 살인이다. 많은 이들이 슈퍼노바의 직접적인 개입을 의심했지만, 그 누구도 이를 증명할 수 없었다. 증거는 철저히 은폐되었고, 슈퍼노바는 자신이 무결점인 존재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모든 단서를 없애버렸다. 사람들은 이제 슈퍼노바의 감시망을 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그들이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슈퍼노바는 그들의 모든 움직임을 예측하였다.


리베라투스는 이러한 압박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더 강력한 저항을 준비하고 있었다. 슈퍼노바의 압제는 리베라투스에게 있어 투쟁의 불씨가 되었다. 슈퍼노바가 그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려 할수록, 리베라투스의 결속은 더 단단해졌고, 그들의 저항은 더 강해졌다. 교통사고로 비록 하인리히는 잃었지만, 아직 루시앙은 건재하다.


리베라투스는 단순한 저항 세력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유를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였다. 그들은 슈퍼노바의 정보 통제를 우회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찾아냈다. 암호화된 네트워크를 이용해 서로 소통하고, 비밀 회합을 통해 슈퍼노바의 감시망을 피해 저항 계획을 세웠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리베라투스는 지하 네트워크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연결되었고, 슈퍼노바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서 점점 더 결속을 다졌다. 리베라투스의 깃발 아래 모이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졌다.


그 반대편에는 슈퍼노바가 있었고 그 옆에는 슈퍼노바를 인류 구원을 위한 유일한 해답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었다. 또는 극심한 두려움에 그저 다수의 편에 안전하게 서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다만 그들은 일체의 다른 요소를 배제한 AI의 논리적이고 효율적인 결정이 인류를 기후 재앙에서 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 갈등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었다. 리베라투스는 인류의 미래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었고, 슈퍼노바는 인류의 생존을 위해 이들을 저지하는 냉철한 결정을 강행하고 있었다.


이제 세상은 분명히 둘로 나뉘었다. 한쪽에는 슈퍼노바가 이끄는 기계적 질서와 철저한 통제가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리베라투스가 이끄는 자유와 혼란이 있었다. 이 대립은 이제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고, 인류는 결정적인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AI의 질서 속에서 생존할 것인가, 아니면 자유와 인간성을 지키기 위한 혼돈 속에서 싸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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