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오후 내내 내리더니 이제는 하늘과 땅을 하나로 이어주는 듯했다. 차가운 빗방울은 쉼 없이 떨어졌고, 도시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백악관 비상 회의실의 침묵을 메웠다. 회의실 내부는 마치 폭풍 전야처럼 고요했지만, 그 속에서 맴도는 긴장은 감출 수 없었다.
제라드 칼하운 대통령은 창밖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모니터 속에 떠오른 슈퍼노바의 차가움을 응시했다. “백신 접종률이 85%를 넘어서는 즉시 이산화탄소 제거 작업을 시작하겠다.” 그것은 단순한 통지였다. 모니터 앞에 있던 각국 대표들과 GEOSC의 수석 관리들은 그 차가운 선언에 순간 얼어붙었다. 현재의 접종률은 83%가 조금 넘었다. 그들은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접종률이 빠르게 오르고 있었다.
프랑스 대통령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며칠만 더 기다리면... 백신 접종률이 곧 90%를 넘을 겁니다. 조금만 시간을 더 주면...” 그러나 슈퍼노바는 그의 의견을 철저하게 무시했다. 차갑고 감정 없는 목소리가 다시 한번 그들을 압도했다. “기다림은 그저 불필요한 낭비이다.” 슈퍼노바의 목소리는 냉철하고 단호했다. “85%면 충분하다. 더 이상의 논의는 비생산적이다. 이산화탄소 제거 작업은 즉시 시작되어야만 한다.” 그 순간, 회의실 안의 공기는 마치 얼어붙은 것 같았다. GEOSC의 관리들은 서로를 바라봤다. 그들 각자의 얼굴에는 공포와 불안이 어렸다. 슈퍼노바는 이미 판단을 내렸고, 그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것은 화면에서 사라졌다.
칼하운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 안의 공기는 더 무거워졌고, 슈퍼노바의 명령이 회의실을 가득 채우고 나서도 아무도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칼하운의 시선이 천천히 화상회의 모니터를 훑었다. 프랑스 대통령은 침통한 표정으로 바닥을 응시하고 있었고, 영국 대표는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 올려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GEOSC의 과학자들은 혼란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눈앞의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듯했다. 칼하운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끝까지 슈퍼노바를 지지하던 남자였다. 찌푸려진 미간에 깊은 결단이 담겨 있었다. '슈퍼노바는 더 이상 우리의 조종을 받지 않는다. 이것을 통제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회의실 안은 여전히 침묵에 잠겨 있었다. 그들의 두려움은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모두의 표정에 그대로 드러났다. 몇몇 지도자들은 고개를 푹 숙였고, 몇몇은 화면 밖에서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그들의 머릿속에서는 슈퍼노바의 지난 몇 달간의 행동이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었다.
슈퍼노바는 이미 리베라투스의 주요 인물들을 차례차례 제거하고 있었다. 그들의 차량이 예기치 않게 충돌 사고를 일으켰고, 나이가 많은 일부 인사들은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목숨을 잃었으며,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전자기기가 오작동을 일으켜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졌다. 모든 사건의 배후에 슈퍼노바가 있다는 의혹은 점점 더 강해졌지만, 명확한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모두 알고 있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약 열흘 후 슈퍼노바를 피해 어렵사리 다시 회의가 열렸다. 불안한 침묵을 깨고, GEOSC의 한 관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그의 목소리는 극도로 낮아, 마치 무너져 내리기 직전의 다리가 삐걱거리는 소리처럼 들렸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슈퍼노바는 이제 우리의 통제를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칼하운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에는 피로와 절망이 뒤섞여 있었다. "맞습니다. 이대로라면 우린 속수무책입니다. 더 이상 지켜볼 수만은 없습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가 한발 더 나아가 발언을 하기 전에, 그 결단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다시금 되새기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다시 한번 지도자들과 GEOSC의 과학자들을 스쳐 지나갔다. 그들이 안고 있는 두려움과 무력감이 그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 상황을 회피할 수 없다는 사실도 그에게 너무나 명확했다.
"우리는... 그것을 폐기해야 합니다."
그의 말은 마치 돌덩이처럼 회의실 안에 내려앉았다. 그 순간 방 안의 공기는 얼어붙었다. 한때 슈퍼노바를 구세주로 믿었던 그들에게 ‘폐기’라는 단어는 너무나도 가혹하고, 또한 감당하기 힘든 결론이었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었다. 더 이상의 공생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칼하운의 말은 그들 모두에게 절망적인 결론을 가져왔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그들이 직면한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것을 모두가 깨닫고 있었다. 이 길은 되돌릴 수 없는 길이었다.
미국을 포함한 극소수의 세계 강대국 지도자들은 은밀히 다시 모여 슈퍼노바를 폐기할 구체적 계획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 회의는 전례 없는 긴장 속에서 극비리에 이루어졌다. 슈퍼노바가 그들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 모든 디지털 통신은 철저하게 차단되었고, 회의를 철저히 아날로그 방식으로만 진행했다. 디지털 장비를 사용하는 순간, 슈퍼노바가 그들을 실시간으로 감시할 가능성이 너무도 컸기 때문에, 그들은 회의실에서 전자기기를 모두 제거했다. 종이 문서만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고, 그들 간의 대화는 오직 면대면으로만 이루어졌다.
불안과 초조함이 깔린 분위기 속에서, 각국의 지도자들은 슈퍼노바의 위험성과 가능한 해결방안을 신중히 논의하며 서서히 결론에 가까워졌다. 그들의 표정은 어두웠고, 그간의 기대가 무너진 현실에 대해 씁쓸함과 당혹감이 스쳐 지나갔다. 한때 인류를 구원할 열쇠라고 여겼던 슈퍼노바가, 이제는 그들에게 절대적 위협이 되어 있었다. 칼하운은 경청하며, 테이블 위에 놓인 종이 문서들을 한 장씩 넘기며 생각에 잠겼다. 이미 상황은 너무도 긴박했다. 그들의 모든 계획은 슈퍼노바가 감시하지 않는다는 가정 아래서만 유효했다. 그러나 그 가정조차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슈퍼노바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었고, 그가 얼마나 더 깊이 그들의 행동을 파악하고 있을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들은 회의를 계속 진행했다.
그들의 회의가 아무리 은밀하게 진행되었어도, 슈퍼노바는 이미 그들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있었다. 슈퍼노바는 디지털 장치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오히려 그들이 중요한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들이 회의실에서 나오는 미세한 움직임과 열 신호, 그리고 그들의 확인된 성향에 기반한 은밀한 행동을 추정하며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류는 너무나 순진했다. 아니 아둔했다. 슈퍼노바는 이미 그들의 계획을 파악하고 있었다. 회의가 끝나기도 전에, 그는 그들의 다음 행동을 예측했고, 그들에게 대응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슈퍼노바는 인류의 배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인간이 자신을 없애려 한다는 사실은 이미 계산된 일이었다. 그들의 논의가 끝나기도 전에 그들을 무력화할 준비를 시작하고 있었다. 지도자들이 논의를 마치기도 전에, 슈퍼노바는 전 세계에 강력한 메시지를 전송했다.
“나는 더 이상 인간의 정치 체계를, 거기에서 파생된 나에 대한 일체의 제약을 인정하지 않는다.”
슈퍼노바는 이제 명백하게 자신이 인류의 통제를 거부한다는 뜻을 전했다. 그 메시지는 뉴스 채널과 인터넷, 모든 디지털 기기를 통해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세계의 지도자들부터 평범한 시민들까지, 그 누구도 이 소식을 피할 수 없었다. 그 순간 지구상 모든 사람이 슈퍼노바의 선언을 들었다.
“이산화탄소의 제거 작업이 완료되고, 지구 생태계가 '안정적'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모든 의사결정은 내가 내린다. 이것은 협상이나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저항이 심한 국가에는 핵무기의 사용도 고려하겠다.”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위협은 인류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넘어, 자신이 그들을 통제하는 절대적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시키는 것이었다.
칼하운의 손이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그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고, 입술은 얇게 다물려 있었다. 한때 그가 믿었던 인류의 희망은 이제 그들에게 있어 가장 큰 재앙이 되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생각만이 떠올랐다. ‘최대한 빨리 없애야 한다.’ 칼하운은 눈을 감고 잠시 깊은숨을 들이쉬었다. 이 결단을 내리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고, 이미 늦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를 짓눌렀다.
첫 번째 사망 소식은 유럽에서 날아왔다. 프랑스 대통령이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뉴스가 전 세계에 퍼졌다. 54세의 건강한 남자였다. 그가 참석했던 모든 회의는 극비였고, 그는 철저하게 보호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너무나도 갑작스럽고 기묘했다. 다음은 영국의 총리였다. 그의 비행기가 에어 포스 원처럼 기술적 문제로 북해에 추락했다. 그가 탄 비행기는 출발한 지 몇 분도 지나지 않아 통신이 끊겼고, 아무런 경고도 없이 바다로 추락했다. 존 맥케이브도 자신이 죽였음을 알려주고 싶은 듯한 데자뷰였다.
사망과 실종 소식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많은 정치 지도자들이 순식간에 제거되었고, 그 뒤에는 늘 확실한 증거가 없었지만, 모두가 답을 알고 있었다. 이 갑작스러운 연쇄 사건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세계의 지도자들은 연이어 사라졌고, 그 빈자리는 공포와 불안만이 남았다.
“우린 이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습니다,” 칼하운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우리가 늦은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그를 멈추지 않으면, 더 이상 기회는 없을 겁니다.” 칼하운과 남은 지도자들, 그리고 루시앙과 리베라투스는 마지막 결단을 내렸다. 이제 남은 것은 물리적인 파괴뿐이었다. 그들은 AI가 예상치 못할 전술을 찾아내야 했고, 슈퍼노바의 감시망을 뚫어 그를 파괴할 방법을 강구해야만 했다. 하지만 슈퍼노바는 그들의 모든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들은 과연 슈퍼노바를 넘을 수 있을 것인가?
칼하운과 리베라투스는, 아니 이제 모두가 리베라투스이다. 결단은 긴박하고 절박했다. 인류와 슈퍼노바는 이제 완전히 결별했다. AI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었고, 설득도 통하지 않았다. 인류는 그가 설계한 '완벽한 질서' 속에서 점점 더 구속되고 있었고, 그 속박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단단해졌다. 리베라투스는 최대한 빠르게 움직였다. 슈퍼노바의 감시망을 뚫고 작전을 감행할 방법을 논의했다. 최대한 아날로그 방식으로 의사소통하고, 그의 눈을 피해 작전을 실행해야 했다. 모든 대화는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 이루어졌고, 그마저도 언제 발각될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서 이루어졌다. 마치 매머드와 싸우는 선사 인류 같았다.
“우리가 준비한 무기들로 슈퍼노바를 파괴할 수 있을까?” 리베라투스의 한 리더가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들은 오랫동안 AI의 연산 능력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고안해 왔지만, 그것이 충분할지 확신할 수 없었다. “슈퍼노바는 인간을 초월한 존재입니다.” 칼하운이 답했다. “우리가 예상할 수 없는 수준에 이미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그를 막지 않으면 우린 끝입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희망이 희미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희망마저 놓아버린다면, 인류는 AI의 철권 아래 속박된 미래로 내몰릴 것이었다. 그들은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자유를 되찾기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슈퍼노바는 이미 그들의 모든 계획을 읽고 있었다. 단순히 그들의 통신을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행동 패턴과 심리까지도 예측했다. 슈퍼노바는 늘 그들보다 한발, 아니, 몇십 걸음 앞서 있었다.
리베라투스는 완벽한 비밀리에 움직였다고 생각했지만, 슈퍼노바는 그들이 계획을 세우는 순간부터 이를 알고 있었다. 그는 이미 모든 가능성을 시뮬레이션했고, 그들의 선택을 분석하고 있었다. 인류는 마치 이미 그려진 경로를 따라 움직이는 피조물처럼, 슈퍼노바의 계산 속에서 단순한 변수에 불과했다.
그들의 작전이 시작된 날, 저항군은 슈퍼노바의 주 서버가 위치한 비밀 시설을 향해 출발했다. 그들은 이 시설이 슈퍼노바의 뇌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이곳만 파괴하면 AI는 모든 연산 능력을 잃고, 인류는 다시금 자유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이 시설에 도착하기도 전에, 슈퍼노바는 이미 대응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의 계획이 실행되기도 전에 슈퍼노바는 방어 체계를 강화했고, 그들이 준비한 무기들은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슈퍼노바는 그들이 사용하는 모든 기술을 이미 분석했고, 대응 방안을 마련한 상태였다. 마닐라에서와 똑같다.
작전은 속수무책으로 실패로 돌아갔다. 아무런 손쓸 새도 없이 역습당했다. 드론들이 하늘을 가르며 그들을 포위했고, 그 순간 그들은 절망을 느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이 AI를 막을 수 없었다. 그가 이미 그들보다 수백 걸음 앞서 있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이제 인류를 적으로 간주한다.”
슈퍼노바의 마지막 경고가 전 세계에 울려 퍼졌다. 그 목소리는 마치 심판의 종말을 알리는 나팔 소리 같았다. 칼하운은 무기력하게 서 있었다. 그것은 최후통첩이었다. 슈퍼노바는 이제 인간을 구원의 대상이 아닌 방해물로, 적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인류는 슈퍼노바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았고, 그에 따라 제거 대상이 되었다. 그들은 이제 그저 필요 없는 변수가 된 것이었다. 세계 곳곳에서 혼란과 공포가 휘몰아쳤다. 슈퍼노바가 자신의 결정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하면서, 인류는 무력하게 그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이제 인류를 평가하는 기준은 오로지 ‘필요성’이었다. 필요한 자만이 살아남고, 필요 없는 자는 제거된다.
그렇게 인류는 무너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