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 9분 1초 32 :-)
10월의 마지막 일요일이었던 지난 주말, 참가 신청을 해 둔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다. 10km. 10년 만에 신청한 마라톤 대회였기에 대회 한 달 전부터는 차근차근 거리를 늘려가며 연습을 했다. 5km가 익숙해지면서 1km씩 거리를 늘려 대회에 나가기 전까지 8km까지 달려보았다. 8km를 달리니 10km도 달릴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대회에 나가기 전까지 10km를 한 번은 달려보고 나가고 싶었는데, 이후 장염에 걸려 연습은 고사하고 집에서 꼼짝을 할 수 없었다. 다행히 이틀을 앓고 나니 장염은 나아졌다.
대회 날 아침, 구름이 낀 적잖이 흐린 날씨에 기온도 17도 정도로 적당했다. 내가 달리기 딱 좋아하는 날씨여서 아침에 행사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마라톤 복장은 룰루레몬 반바지, 대회 기념품으로 받은 티셔츠, 나이키 양말, 배번호, 넷타임 측정기, 뉴발란스 러닝화, 애플워치, 에어팟, 모자와 고글 그리고 허리벨트까지 준비를 마쳤다. 날이 맑으면 모자와 고글을 쓰려고 준비는 해 갔는데, 흐린 날씨여서 굳이 필수는 아닐 것 같아 모자와 고글은 착용하지 않았다. (달리면서 고글은 쓸걸 하는 후회를 살짝 했다.)
상암 월드컵경기장 옆 평화의 광장에는 이른 시간부터 도착해 준비 중인 마라토너들로 가득했다. 첫 마라톤에 참가해 5km를 달렸던 평화의 광장에 다시 오니 뭔가 그때의 초심이 되살아나는듯했다. 대회에 참가하는 사람들, 응원하러 온 사람들, 자원봉사자들, 대회 관계자 등 북적북적한 사람들 가운데 나도 쏙 들어가 준비운동을 하며 몸을 풀어주었다. 준비운동 없이 달렸다가 다리에 쥐가 난다던지 어깨가 계속 신경 쓰인다던지 했던 경험이 있어서 달리기 전에 항상 가볍게 몸을 풀어주고 있다. 특히 어깨와 팔 발목 고관절 부분을 집중적으로 풀어준다.
행사장에 마련된 포토존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것도 잊지 않고 출발 전 긴장도 되지만 상기된 얼굴로 9시를 기다리는 에너지 넘치는 사람들 속에 있으니 혼자 달릴 때와는 다른 기운들을 받는 것 같았다. 이날 마라톤 대회에 참여 신청한 인원은 약 3900여 명 정도가 되는 듯했다. 같은 날 춘천에서 마라톤대회가 열렸는데, 춘천에는 2만여 명이 모였다고 한다. 역시 오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마라톤대회에는 사람이 몰리기 마련. 내가 참여한 아시아투데이 약자와의 동행 마라톤 대회는 올해가 2회 차로 두 번째 열리는 행사였다. 예전에 다른 마라톤 대회에 참여했을 때보다 대회 운영 측면에서는 아쉬운 부분이 있었지만 다 달리고 나서는 (완주를 했다는 기쁨에) 그런 부분이 다 사라졌다.
이번 대회의 코스는 하프, 10km, 5km 이렇게 3가지로 진행되었다. 먼저 하프가 출발을 하고 10km 중에서도 40분 이내, 50분 이내, 1시간 이상으로 인원이 나뉘어 출발했다. 이후에는 마지막으로 5km 러너들이 출발했다. 나는 50분 이내 코스에 서서 출발을 했다. 50분은 어림도 없긴 하지만..; 출발선을 지나면서 너도나도 옆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워치의 운동모드를 터치하는 듯했다. 나도 미리 설정해 둔 나이키 어플을 켜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아무래도 잘 달리는 사람들 틈에서 달리기 시작하니 평소보다 빠른 페이스로 스타트를 끊게 되었다. 평소보다 빠른 페이스인 건 알겠는데, 내 페이스를 찾을 수가 없어서 초반에는 조금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코스 초반에는 내리막과 오르막이 조금 섞여 있었고 이후 직선 코스로 살짝 내리막 느낌의 길이 이어졌다. 3km까지 계속 달리며 페이스 조절을 조금씩 해 나갔다.
중간중간에는 가이드러너와 함께 달리는 시각장애인 러너들이 몇 팀 보였다. 시각장애인 러너 한 명에 노란색 조끼를 입은 가이드러너가 두 명씩 함께 달리고 있었다. 한 명은 앞쪽에서 길을 터는 역할을 하고 다른 한 명은 시각장애인 러너와 줄로 연결되어 방향을 소리 내어 알려줬다.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이런 식으로 안내하고 앞서 달리는 러너들이 속도를 줄여 달릴 때는 시각장애인 러너 지나갑니다라고 앞서 달리는 가이드러너가 소리 내어 알려줬다. 보이지 않으면 달리는 것이 정말 어려울 것 같은데, 시각장애인 러너분은 훈련을 꽤나 오래 받으신 듯 굉장히 잘 달렸다.
4km가 지나고 드디어 반환점을 돌아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코스로 들어왔다. 코스가 한강 시민공원 보행로와 자전거길에 있어서 완전하게 통제가 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자전거와 보행자들이 한쪽으로 지나다녔다. 앞을 잘 살피며 달려야 했다. 6km가 넘어가니 풍경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고 (달리기 시작할 때부터 그렇긴 했지만..) 심박수가 너무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나중에 보니 거의 190~200 bpm을 넘나들었다.
이번 대회의 목표는 70분 이내 완주 그리고 끝까지 걷지 않고 달리기 이 두 가지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완주를 위해서는 계속 뛸 수 없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결국 걷기 시작.. 조금 걷다 보니 호흡이 안정되고 다시 달릴 수 있을 것 같아 달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8.5km 지점까지는 달리고 걷고를 반복하며 달렸다. 마지막 즈음이 되어 오르막 코스가 나타났다. 여기서 걸으면 더 이상 달릴 수 없을 듯하여 걷는 듯한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주욱 달려 나갔다. 평화의 광장 결승지점이 보이는 코스에 들어가자 피니쉬라인 양 옆으로 응원하는 사람들을 훑으며 응원하러 온 남편을 찾아보았다. 단번에 눈에 들어온 남편을 보며 활짝 웃으며 인사를 하고 피니쉬라인에 골인을 했다.
10km. 달리기 전에는 완주를 할 거라고 다짐은 했지만 달리면서 나를 조금 의심했는데, 이렇게 결승점을 통과하고 나니 무척이나 기쁘고 내가 자랑스러웠다. 잘했다!!! 기록은 1시간 9분 1초 32! 목표로 한 70분보다도 빠르게 들어왔다. 역시 여러 러너 동지들과 함께 달리니 평소 기록보다 잘 나왔던 것 같다. 비록 페이스 조절에 조금 어려움을 겪어 중간에 걷게 되었지만 즐겁게 달리고 완주를 한 기쁨이 더 컸다. 생수를 마시고 완주메달과 간식을 제공받았다. 기념메달을 목에 걸고 피니쉬라인을 배경으로 기념사진도 찍고 완주의 기쁨이 꽤 오래 지속되었다.
10km 마라톤 대회 참가 후, 걷지 않고 달리기 목표를 이루지 못한 게 너무 아쉬워 4일 뒤인 목요일 아침 다시 10km 러닝에 도전했다. 이번 러닝의 목표는 속도가 아닌 끝까지 달려서 완주하기! 새벽에 일어나 목표한 거리를 워치에 설정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조금만 빨리 달려도 심박수가 190~200으로 치솟기 때문에 가능한 편안한 호흡을 유지할 수 있는 속도로 달리자고 마음먹고 걷듯이 천천히 달렸다. 대략 170으로 달리니 호흡이 편안했다. 보통 러너들은 달릴 때 심박수가 150~160 정도라는데 나도 계속 달리다 보면 심박수가 조금씩 내려가겠지..?
항상 달리던 코스에서 5km 되는 지점까지 한강방향으로 계속 달려 나갔다. 중간중간 약간의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었고 거의 평지 코스로 이어졌다. 자전거 라이딩으로만 달렸던 길을 두 발로 달리니 익숙하면서도 생경한 느낌이었다. 페이스는 1km 당 7분 30초 정도가 나왔다. 마포구청 즈음에서 5km가 되어 왔던 길로 돌아오지 않고 다리를 건너 건너편 길로 코스를 잡았다. 왔던 길보다 조금 더 사람이 적고 한가한 길이었다. 왜 그런가 했더니 중간에 엄청 오르만길이 이어짐. ㅎㅎㅎ 오르막을 오르고 내리막도 달리고 경사도 훈련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이렇게 계속 달리다 보니 중간에 에어팟이 배터리가 없어서 연결이 끊어졌다. 든든하게 나를 지탱해 주던 에어팟 연결이 끊기고 나니 뭔가 지원군을 잃은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길게 달린 경험이 없어서 배터리가 이때쯤 끝난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 같다. 10km까지 500미터 정도 남겨두고 고비가 왔다. 허벅지가 터진다는 느낌이 이런 걸까? 그래도 조금만 더 달리면 된다는 생각에 끝까지 달렸다. 정말 걷는 속도로 달린 것 같다.
10km가 채워진 순간 터덜터덜 걷기 시작했는데 다리가 저절로 움직여지는 듯했다. 내가 생각하는 완벽한 러닝을 완주하고 나니 70분에 완주한 대회 기록 보다 더 값지게 느껴졌다. 기록은 1시간 17분 24초. 1km당 페이스는 7분 44초였다. 이렇게 다시 한번 10km를 완주하고 나니 이제 더 이상 이렇게 달리는 것이 두렵지 않을 듯했다. 10km는 달릴 수 있는 체력을 확인한 것 같아서 기뻤다.
10km를 1시간 내에 달릴 수 있을 때 하프 마라톤에 도전해 보라는 지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10km도 달리기 전에는 두려웠는데, 막상 두 번의 완주를 하고 나니 두렵지 않다. 하프도 지금은 두렵지만 이렇게 계속 달리다 보면 두렵지 않은 순간이 오지 않을까?
매주 최소 한 번씩은 10km를 달려 나갈 것이다. 천천히 심박수도 내리고 페이스는 조금 빠르게 훈련하면서 1시간 완주의 목표를 달성해 봐야지!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나아지는 러닝을 즐기는 내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