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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 Sep 16. 2015

백두산 등척기(03)

강 너머 북한 땅과 마주한 도문


■  백두산 등척기(登陟記) - 강 너머 북한 땅과 마주한 도문(圖們)


2015년 07월 16일 새벽4시 기상해 공항버스 첫차에 올라 영종도로 달려간다. 회갑기념 백두산등정을 결정한 6명의 입행동기가 07시에 맞춰 인천국제공항으로 모여들었다. 이번 백두산 등정은 칠십 세에 손자와 동행한 일행을 포함해 8명이 함께 여행길에 올랐다.


출국수속을 마치고 9시30분 인천국제공항을 이륙해 2시간 30분만에 길림성 연길(옌지) 공항에 도착했다. 연길(延吉)은 중국 23개성(省) 중동부 끝자락에 위치한 길림성 연변(延邊)에 속해있는 조선족 자치주이며 7월 기온이 27℃로 습하지 않은 9월 중순 날씨였다.



[연길]은 지리상 위치로 보아 부산과 같은 경도(經度)상에 위치해 있지만, 중국이란 이유로 시차가 1시간 빨랐다. 따라서 한반도와 같은 시간대를 사용해야할 연길에서는 7월 일출(日出)이 새벽4시 전후로 시작되는 것 같다.


중국만큼이나 광활한 미국은 5구간의 경도로 시차를 달리하고 있지만, 광대한 대륙의 중국만이 유독 단일 시차를 쓰고 있는 현실에 그들만의 독특한 교만과 불통(不通)이 느껴지기도 한다.


점심을 위해 머물렀던 연길 시내 

조선족 청년인 현지가이드 안내로 도요타 24인승 미니버스에 올라 순두부찌개로 점심을 마치고 도문(圖們)으로 향한다. 이번여행 역시 여행객 예의를 벗어나지 않도록 가이드는 신쿨러(辛苦了)를 반복하도록 당부한다.


또한 21세기 들어 한국면적 2배인 길림성 내에서 조선족의 위상이 많이 높아졌는데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과 2003년 드라마 대장금 및 최근 한류문화가 크게 기여했다 한다. 연변 동남부로 1시간 남짓 달려온 도문市는 70년대 한국의 풍경으로, 북한과의 국경지대는 두만강을 경계로 함경북도 남양시(온성군 남양면)와 마주하고 있다. 


출처 : 사진작가 / 임성환 / 前 기업은행 지점장

동쪽은 러시아의 국경인 훈춘, 서쪽으로는 연길과 용정과 닿아있는 도문은 14만의 인구 중 약 65% 조선족이 살고 있으며 대륙성기후 영향으로 겨울은 길고 여름이 짧다고 한다. 이곳은 두만강 연안에서 유일하게 북한과 철도가 연결돼 북한교역이 가장 활발한 곳이며 중국에서는 두만강(豆滿江)을 도문강(圖們江)으로 부르고 있다.


현지에서 제공해주는 아이스커피로 잠시 더위를 식힌 뒤 강가로 나가본다. 두만강 하류는 강폭이 넓다는데 도문에서 바라본 상류는 강 너비가 좁기에 두만강 푸른 물에 배 띄워 노를 저을만한 강이 아니라 개울 같은 느낌이었다.


손에 잡힐 듯 한 두만강 너머 북한  

특히 강폭이 좁은 곳은 불과 10m정도라고 하니 겨울철 강물이 얼어붙으면 경계가 소홀한 틈을 타 월경(越境)이 가능해 보인다. 일행 모두는 두만강의 황토물살에 손을 적셔보며 지척이 천리임을 새삼스레 깨달아 본다. 


두만강 접경지대에는 5km의 강변공원이 조성돼 있는데, 북한이 가까이 보이는 조망권에서는 북한 땅이 손안에 다 을 듯 보인다. 이곳에는 북-중간 경계를 나타내는【중국도문 변경(邊境)】비석이 세워져있고, 두만강 유람선을 타면 북한을 더 가까이서 볼 수 있다. 



북한이 바라보이는 강변에는 커다란 수양버들 아래 조선족으로 보이는 중장년의 선남선녀들이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고 있었다. 이곳을 찾은 젊은 관광객들도 그들과 합류해 흥을 돋우고 있는데, 강 건너 이를 바라보는 북한 주민들의 심정이 어떠할지 착잡해진다.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고 있는 조선족들

강변을 끼고 우측숲길로 향하니 중국과 북한을 연결하는 다리가 보인다. 1942년 1월 1일 개통됐다는 도문교는 전체길이 495m로 중국과 북한영토가 나눠지는데, 중국 측 다리는 90m이고 나머지 400여m는 북한 국역이다. 


중국 교각(橋閣)은 빛바랜 붉은색으로 가로등이 설치돼 있는 반면, 북한 측은 희미해진 파란색 교각으로 가로등이 아예 세워져 있지 않아, 다리의 경계를 구분하기가 매우 용이해 보인다. 도문교 앞 국경길목 입구에는 출입대문 상단에 【중국도문구안(口岸)】이라 적혀있는데 1991년에 장쩌민이 쓴 것이라 한다. 


"중국도문변경" 비석이 있는 도문교

입구에서 입장료 한화 5천원을 지불하면 중국과 북한의 국경다리까지만 밟아볼 수 있다. 맑은 날에는 집단농장에서 일하고 있는 북한주민들을 볼 수 있다는데 다리를 밟지 않고도 사물을 관찰할 수 있어 보인다.


2015년 5월 KBS 뉴스에 어린 꽃제비들이 먹을 것을 찾아 두만강 북-중 국경을 넘어오다 중국공안에 체포되면, 도문교를 건너 다시 북한으로 끌려가는데 탈북자들은 이 다리를 북송(北送) 다리로 부른다고 보도된바 있다.


금차 동기들과의 회갑기념 도문방문은 두만강 건너에 북한 땅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지만 세계유일의 분단국에 살며 북한의 어린 꽃제비들의 고통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현실에 가슴 저미는 시간이기도 했다.


"중국도문구안"이 쓰여진 도문교 출입문

1시간에 걸쳐 연길로 되돌아오는 주변풍경은 반듯 하고 깔끔하게 정돈된 느낌이었다. 또한 연변의 조선족자치주 수도인 연길은 한창 개발붐이 불며 성장해가는 도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연길시내는 제법 넓고 시원한 강이 곧게 뻗어있는데 【부르하통하】로 불리는 강은 10년간 공사 끝에 연길시를 서울 한강처럼 남북으로 갈라놓았다 한다. 만주어로 푸른 수양버들이란 “부르하통하”는 현재 시민들이 휴식과 오락을 즐길 수 있는 수변공원 으로 연길대교와 함께 어우러진 풍경구이다.


강가 도로를 따라 진달래광장 한쪽에 있는 연변박물관을 찾은 시각은 오후 4시경. 1960년 조선족 민속박물관으로 출발해 2002년에 현재 위치로 이전한 연변박물관은 웅장하고 현대적인 건물로 조선족의 연변이주와 개척역사가 전시돼 있고, 조선족이 간직해 온 전통문화의 기록과 유물들이 고스란히 간직돼 있었다.


연변 조선족 박물관

이어 둘러본 진달래 광장은 공안청을 마주하고 있는 연변제일의 광장이라는데 중앙에는 진달래를 상징하는 탑이 우뚝 솟아있고 주변에는 놀이기구가 즐비하다. 연길시내는 시민 교통법규가 뿌리 내리지 못한 탓인지 거리의 신호등이 매우 적었는데, 우리일행의 제안으로 오후에만 들어선다는 일정에 없던 재래시장을 찾았다.



보도를 따라 다양한 먹거리를 체험할 수 있는 노상 시장을 둘러 본 후 돼지고기 샤브샤브로 저녁식사를 마쳤다. 이어 ㈜대우가 운영했던 대종(大宗) 호텔에서 침실을 배정받아 여장을 풀고 난 뒤 시내로 나와 가이드가 추천한 애단로(愛丹路)에 위치한 양꼬치 전문점 백옥관성(白玉串城)을 찾았다.


백옥관성

어둑해진 연길 시내빌딩들은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대로변 건물간판은 대부분 한글로 돼 있기에 중국어가 필요 없는 서울로 착각되기도 한 연길이었다. 이날 연변 빙천(氷川)맥주와 양꼬치 구이를 처음 맛보았는데 빙천맥주는 청도맥주 만큼이나 맛난 맥주라고 한다.



늦은 밤 화려한 네온사인이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연길시내를 찾은 회갑의 청춘들은 동기 활성화라는 미명(美名)아래 "함께한 30년, 함께할 30년"을 제창하며 불타는 양꼬치와 함께 타오르는 열정을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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