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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 Nov 11. 2022

주왕산 가을나들이

2022.11.09


주왕산 가을나들이


동작 주차공원을 출발해 4시간가량 달려간 경북 청송 주왕산(721m)은 태백산맥 남단에 위치한 세계지질공원으로 온통 암벽으로 둘러싸인 산들이 병풍처럼 이어져 있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탐방로는 평탄하고 완만한 길로 이루어져 있고 용추폭포 선녀탕의 옥수(玉水)는 가을나들이 여행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주변에 큰 산들이 없기에 산세가 더욱 가파르고 험준해 보여 이곳의 기암절벽은 옛날부터 조선8경 중 하나로 꼽혔던 만큼 멋진 경관을 이루고 있다. 파란 가을하늘 아래 기암계곡을 따라 맑은 물이 흐르는 것을 보노라면 문득 장가계의 축소판 같은 느낌도 지울 수 없다.     


주왕산 트래킹에 앞서 [주왕산국립공원]에 자리한 주산지(注山池)로 향하며 가볍게 몸을 풀어본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촬영지이기도 한 주산지는 조선 숙종 말년(1720년)에 착공해 이듬해인 경종 원년에 준공했다 한다. 주산지 입구 바위에는 주산지 제언(堤堰)에 공이 큰 월성 이씨 이진표의 공덕비가 있다.


주산지 가을

명승(名勝) 제 105호로 지정된 주산지는 주산천 지류의 발원지로 비가 오면 바닥이 스펀지처럼 물을 머금고 있는 퇴적암층을 형성하고 있어 그 오랜 세월 가뭄에도 바닥이 드러난 적이 없다고 한다. 늦가을 주산지 연못에서 자생하는 왕버들 수목(水木)들의 고고한 자태는 마냥 신비롭기만 하다. 



오후 2시경 주왕산 국립공원 주차장에서 시작된 탐방 길은 대전사 매표소에서 용추협곡을 거쳐 용연폭포까지 약 5.3km이다. 대전사(大典寺)를 시작으로 용추폭포에 이르러 용연폭포로 이어지는데 가을풍경을 담으며 걷다보면 왕복 약 2시간 30분쯤 소요된다. 주왕산 계곡탐방로는 깊어가는 가을풍경 덕에 걷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다.



 대전사/ 기암


상의 주차장에서 대전사 방향으로 진입하면 대전사 대웅전 너머 거대한 성채처럼 하늘을 찌를 듯 서있는 기암이 보이는데, 기암수직절리를 따라 오랫동안 침식과 풍화를 받아 7개의 암봉으로 분리돼 주왕산의 상징처럼 보인다. 둘레 길은 대전사를 통해 폭포탐방을 시작하는데, 사찰이 있는 산과 절의 이름이 주왕의 설화에서 유래한다.


대전사(大典寺)

주왕산의 본래 이름은 바위가 병풍을 두른 듯하여 석병산(石屛山)이었으나 주왕의 전설이 있다하여 주왕산(周王山)으로 바뀌었다 한다. 석병산에 숨어들은 주왕은 자하성을 쌓았으며, 그의 아들인 대전도군(大典道君)의 이름을 따서 절 이름을 대전사(大典寺)라 하였다 한다.


기암(旗巖)

또한 주왕산에 숨어들은 후주천왕 주도를 신라 마장군이 화살을 날려 격퇴하고 그 바위에 대장군기(大將軍旗)를 꽂았다 하여 기암(旗巖)으로 불린다고 한다. 사찰을 빠져나와 걷다보면 길가에 시비(詩碑)가 보이는데 김성일(金誠一)이 지었다는 한시(韓詩)가 세워져 있다.



 주왕전고기(周王殿故基) 주왕전의 옛터에서


披草尋行闕(피초심행궐) / 山椒落日低(산초낙일저) / 階平已無級(계평이무급) / 瓦解半成泥(와해반성니) / 制陋非堯殿(제루비요전) / 林深是鳥栖(임심시조서) / 興亡千古恨(흥망천고한) / 長嘯過溪西(장소과계서)


풀숲 헤치며 주왕궁궐 찾노라니/ 산마루 지는 해 낮게 드리웠네/ 계단은 무너져 이미 층계는 없어졌고/ 기와는 부서져 반 진흙 되었네/ 규모는 초라하여 높은 사람 집은 아닌 것 같고/ 숲은 깊어 산새들 서식지 되었네/ 흥망이 천고의 한이 되어/ 길게 휘파람 불며 서쪽 계곡을 지나네


주왕전고기

김성일은 1590년(선조23) 일본에 파견되었다 돌아와서 왜가 군사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 보고했다. 이후 1592년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지난 과오를 씻기 위해 곽재우와 함께 의병을 모아 목숨 바쳐 왜군으로부터 진주성을 보전했다. 순조 33년(1833년) 청송의 서원모(徐元模)는 주왕산지(周王山志)에서 주왕전설은 믿을 수 없다고도 하였다.


주왕산성(자하성)



이어 갈림길이 나오는데 오른쪽으로 가면 주봉으로 올라가는 등산로이고, 왼쪽은 폭포와 주왕굴로 가는 길이다. 폭포로 가는 길을 따라 조금을 걷다보면 주왕산성터가 나타나는데 자하성(紫霞城)은 주왕이 신라군을 막기 위해 대전사 동편 주왕암 입구에서 나한봉(羅漢峰)에 걸쳐 가로막은 돌담이었다고 한다.


주왕산성터

약 2km에 달하는 돌담 성은 주왕굴을 중심으로 사방을 방어할 수 있는 요새로 돌문과 창고 등이 있었으나 지금은 곳곳에 부서진 성터의 자취가 이끼와 칡넝쿨에 덮여있다. 기암 속을 파고드는 수많은 탐방객들 사이로 주왕이 숨어 살았다는 주왕굴을 향해 계곡하천을 따라 걷다보면 우측에 커다란 두개의 바위 급수대가 보인다.


급수대(汲水臺)

 용추협


탐방로 중간에 위치한 망월대는 주왕산의 기암절벽을 가장 가깝게 만나는 전망대이다. 주왕계곡 사이로 우람하게 서 있는 ①망월대, ②급수대, ③학소대와 ④시루봉 등 기암(奇巖)의 자태가 이어지며 한눈에 들어온다. 망월대 우측으로는 주왕이 무기를 감췄다는 무장굴과 주왕이 은거했다는 주왕굴이 있다.



주왕의 아들과 딸이 달구경을 했다는 망월대(望月臺) 위쪽에는 앞으로 넘어질 듯 솟아오른 급수대가 장엄한 모습을 드러낸다. 주방천 왼쪽 기슭에 있는 절벽바위 안내판에는 옛 신라시대 왕족 김주원이 왕이 되지 못하고 급수대 위에서 대궐을 짓고 살았는데, 바위위에서 물을 길어 올렸다고 해 급수대(汲水臺)라 부르게 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 주왕전설


전설에 의하면 중국 당(唐)나라 덕종(德宗) 때 주도(周鍍)라는 사람이 스스로 후주천왕(後周天王)이라 칭하고 장사 백여 명을 거느리고 당나라 수도 장안을 치려다, 안록산의 난을 평정했던 곽자의 장군에게 패하여 요동을 거쳐 신라로 흘러들어와 천신만고 끝에 이 산으로 도망쳐 숨었다고 한다.


그는 천혜의 요새인 이 산 입구의 주방천 협곡에 산성을 쌓고 군사들을 훈련시키며 후주천왕의 재기를 노렸으나 당나라의 요청을 받은 신라의 마일성(馬一聲) 장군에게 쫓기다가 그가 머물던 동굴인 주왕굴에서 화살을 맞고 사망했다는 전설이 남아있다.

 


그밖에 신라 원성왕(785년~ 798년) 때 왕권다툼에서 패배한 무열왕계 왕족 김주원(金周元)이 수도했던 산으로, 김주원 가운데 이름 주(周)를 따 주왕산이라 부른다는 설도 있다. 주왕(周王)이 중국서 이곳까지 피신을 왔던 인물인지, 왕위계승에 실패한 신라왕족이 이곳에 왔는지에 대해서는 역사적 기록이 없다.


산재돼 있는 전설들을 모아보면, 신라의 야사를 에둘러 전하기 위해 주왕(周王)의 구전(口傳)을 빌려왔거나, 변방의 산에 왕(王)의 설화를 붙여 이 산의 명성을 알리려 한 게 아니었을지 짐작해 볼 뿐이다.


용추협곡

서애(西厓) 유성룡은 주왕산의 한자를 周王山이 아닌 朱王山으로 기록했다 하는데, 이는 중국인명사전에 나오는 주도(朱滔)와 연관지어보게 된다. 주도(朱滔: 746~785년)는 당나라 유주(幽州) 창평(昌平) 사람으로 주차(朱泚)의 동생이다.


그는 유주노룡절도사(幽州盧龍節度使) 이회선의 부장(部將)이 되었다가 주차가 그 지역을 관할하게 되자, 형을 설득해 입조(入朝)하여 절도사가 되었다. 덕종(德宗) 3년(782) 왕무준과 함께 당나라에 반기를 들고 나라 이름을 기(冀)라 한 뒤 스스로 왕이라 불렀다.


학소교(鶴巢橋)

이듬해 주차가 경사(京師)에서 칭제(稱帝)하고 나라 이름을 진(秦)으로 한 뒤, 주도를  황태자로 삼은 뒤 낙양(洛陽)으로 오도록 했다. 얼마 뒤 주차가 전쟁에서 패하고 죽자 회흘(回紇)의 병사를 이끌고 패주(貝州)를 공격했지만 왕무준에게 패하고는 유주(幽州)로 달아나 글을 올려 죄를 기다리다 죽었다고 기록돼 있다.


학소대(좌측)

중원(中原)을 빠져나온 주도(朱滔)가 신라로 피신해오며 주도(周鍍)로 신분을 변조한 것은 아닌지 잠시 상상력을 동원해 본다. 이어지는 길은 학소교를 건너면 하늘을 찌를 듯이 솟은 절벽 위에 한 쌍의 청학과 백학이 둥지를 짓고 살았다고 학소대(鶴巢臺)가 있고, 맞은편에는 떡을 찌는 시루처럼 생겼다는 시루봉이 촛대처럼 솟아 올라있다. 


시루봉

 용추/용연 폭포


학소대를 지나면 거대한 바위가 세로로 길게 갈라진 듯한 바위틈으로 나무데크 길이 이어진다. 이 길을 따라 바위벽을 통과하면 거대한 바위벽으로 둘러싸인 신비로운 공간이 펼쳐지는데, 이 용추협곡이 주왕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다. 


용추협곡(龍湫峽谷)

협곡을 빠져나와 나지막한 비탈 데크를 오르다보면 제1폭포인 용추(龍湫)폭포가 나타난다. 용추폭포는 크지 않지만 3단 폭포로 이뤄져 바위사이로 떨어지는 풍경이 매우 이색적이다. 용이 하늘로 승천했다는 폭포는 양쪽이 바위로 둘러싸인 속에 맑은 물줄기가 쏟아져 내리고 있다. 


용추폭포 선녀탕

위쪽으로 몇 걸음 올라서면 중간 단에 옥빛을 머금은 선녀탕(仙女盪)이 있고 맨 위쪽에는 상단인 구룡소(九龍沼)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발걸음을 재촉해 등산로를 따라 1.2km를 내디디니 어느새 용연(龍淵)폭포가 모습을 드러낸다.


용추폭포 구룡소

용연폭포 길목의 우측 길에는 절구모양으로 생겼다는 절구폭포도 있다. 제3폭포로 불리는 용연폭포는 2단으로 이뤄져 아래에 폭포가 한 단 있고, 위쪽에 한 단이 더 있어 주왕산에서 가장 웅장하다고 한다. 산길 좌측에 하단폭포로 내려가는 길이 나오는데 이 길은 빠져나오는 길이고, 조금 더 올라가면 상단폭포로 들어가는 데크 길이 나온다. 


용연폭포 상단

탐방코스는 좌측 데크 길을 따라 들어가 상단폭포를 보고, 계단으로 내려와 하단폭포까지 보고 돌아 나오도록 길이 만들어져 있다. 강수량이 많을 때는 물살의 제법 세기 때문인지 상단폭포 옆에는 몇 개의 동굴이 만들어져 있다. 위쪽은 높고 좁은 반면 아래쪽 폭포는 넓고 짧다. 


용연폭포 하단

용연폭포 아래에는 널따란 포호(布湖)가 형성되어 있고 폭포를 편안히 감상할 수 있도록 데크를 잘 설치해 놓았다. 트래킹 내내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고 나지막한 폭포와 보기드믄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는 가을 절경(絶景)을 눈에 담으며 발길을 돌린다.  



주왕산은 발길 닫는 봉우리와 암굴마다 주왕의 전설이 얽혀있다. 주왕의 딸인 백련공주 이름을 딴 백련암(白蓮庵), 주왕과 마장군이 격전을 치렀다는 기암(旗巖)등 곳곳의 기기묘묘한 암봉과 암벽이 대한민국의 명산임을 유감없이 뽐내고 있었다.  - 壬寅年 십일월 아흐렛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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