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시우 광장은 중앙에 솟아있는 원기둥 정상에 [페드로 4세]의 동상이 있다. 그는 이슬람세력이 차지했던 영토를 되찾기 위한 “레콩키스타”를 추진했던 아라곤의 국왕이다. 광장은 13세기부터 리스본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로시우 광장] 바닥은 물결무늬처럼 돌의 색깔을 달리해 아름답게 장식돼 있다.
[페드로 광장]이라고도 불리는 로시우 광장은 중앙에 위치한 동상과 바로크 양식의 분수대가 어우러져 멋진 광장을 이루고 있다. 특히 해가 지는 시각에 로맨틱한 분위기가 물들면 리스본만의 낭만을 한층 더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광장 왼편에는 신트라 등 교외지역으로 가기 위한 [로시우 기차역]이 있다.
❏프랑스식 정원 에두아르두(Eduardo) 7세 공원
이 공원은 신시가지 중심거리를 축으로 19세기후반에 조성된 프랑스식 공원이다. 언덕 위에서 드넓은 강 쪽을 향해 펼쳐진 경사면에 기하학적인 조경을 설계해 주위경관과 잘 어우러져 있다. 공원은 1902년 영국 왕 에드워드 7세가 포르투갈을 방문했을 때 그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고 한다.
언덕 위 전망대에 오르면 내리막으로 펼쳐진 독특한 무늬의 화단이 조화롭고 탁 트인 전망의 시원함이 느껴진다. 플라타너스로 뒤덮인 리스본 시내 리베르다데(Liberdade) 거리와 타구스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저 멀리 대서양으로 빠져나가는 큰 강을 바라보며 잠시 15세기 탐험가들의 기개(氣槪)를 떠올려본다.
리스본 벨렝地區 방문
❏ 제로니모스(Jerónimos) 수도원
15세기 포르투갈은 유럽의 부유한 국가였으며 당시 벨렝(Belem)은 수도 리스본의 주요 항구였다. 리스본 항구에 있는제로니모스(聖人) 수도원은 포르투갈 예술의 백미로 꼽히는 건축물이다. 1502년 건축이 시작됐으나 왕의 죽음으로 건축은 중단되었고 이후 1550년 공사가 재개되면서 100년간에 걸쳐 완공됐다.
산타마리아 성당(우)
제로니모스 수도원(좌)
1497년 바스코 다 가마는 인도로 출발하기 전야에 이곳 예배당에 머물며 기도한 뒤, 1499년 항해를 무사히 마쳤다. 그의 귀환을 기념하기 위해 엔리케 왕자가 세운 예배당 자리에 포르투갈 7대 국왕인 마누엘 1세가 수도원을 지었다. 당시 천문학적 건축비용은 인도에서 수입해온 향료세금으로 일부를 충당했다.
하얀 석회석으로 세워진 장엄한 수도원은 왕의 이름을 따서 “마누엘 양식”이라 명칭 했다. 수도원 우측에 있는 산타마리아(Santa Maria)성당입구에배치된 [성모 마리아]와 [십이사도] 등의 조각상들이 매우 정교해 보인다. 성당 안에는 마누엘 1세와 8대 국왕 주앙 3세가 묻혀있고 바스코 다 가마 석관도 있다.
기도하는 바스코 다 가마 석관
웅장한 수도원과 화려한 성당 조각상은 대항해시대 신대륙과의 무역과 식민지에서 착취한 막대한 부(富)로 세워진 영화(榮華)의 상징물이었음을 증명해 보이는 듯 여겨진다. 이어 [벨렝 탑]으로 이동하기 전 잠시 임페리우 정원광장(Jardim da Praça do Império) 앞에서 쉬어갔다.
임페리우 정원광장
밸렝지구에는 [제로니모스 수도원]에서 만들기 시작한 에그타르트가 유명하다고 한다. 잠시 쉬는 동안 수도원에서 200m 거리에 있는 소문난 파스테이스 드 벨렝(Pasteis de Belem) 테이크아웃 가게에서 오리지널 에그타르트를 맛보는데, 여행객들에게 워낙 소문난 가게인지라 긴 줄을 서있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Pasteis de Belem
이 가게 파스테이스(Pasteis)의 특징은 피를 굉장히 얇고 바삭하게 굽는다는 것이다. 파스텔 드 나타(Pastel de Nata)라고도 하는데 이는 페이스트(paste)에 크림(Nata)을 넣어 구운 것으로, 먹다보면 우리네 겨울철 빠삭하게 구어 진 붕어빵이 떠오른다. 테이크아웃 판매가는 2개에 3€로 한국의 절반 값이다.
❏ 벨렝 탑(Belém Tower)
벨렝 탑은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 캘리컷 발견을 기념하기 위해 타구스(Tagus) 강변에 세워진 포르투갈 식민개척의 시대적 상징물이다. 1519년 탑이 세워진 이후 강을 드나드는 선박을 감시하는 요새이기도 했고, 대항해시대 탐험대의 전진(前進) 기지이자 식민지 권력의 상징이기도 했다.
요새로 쓰일 당시 지하에 정치범 수용소가 있었는데, 에스파냐에게 지배받던 시기(1580년~1640년)에 저항했던 독립투사들이 지하 감옥서 고통 받았다. 특히 만조 때마다 지하에 차오르는 바닷물로 죄인들을 잔인하게 고문했다고 한다. 벨렝 탑은 35m 높이의 4층 육각형 요새이다.
요새 1층에는 건물을 빙 돌아가면서 [포대]가 설치돼있고, 중앙에는 뱃사람들의 무사귀환을 빌기 위한 [성모 마리아상]이 있다. 좁은 원형계단을 오르면 2층에 총독 방, 3층에는 예배당이 있다. 4층 전망대에 오르면 [벨렝지구]의 드넓은 경관이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인다.
지금 내가 서있는 이곳에서 5백여 년 전 [바스코 다 가마]는 끝 모를 대서양으로 흘러나가는 타구스강을 바라보며, 돌아올 기약 없는 항해로 마지막이 될지 모를 벨렝 항을 지긋이 바라 봤으리라. 그리고 오랜 시간 불굴(不屈)의 의지와 모진시련 끝에 리스본으로 귀환하며 살아있음에 비로소 안도했을 것이다.
❏ 발견기념비(Monument of the Discoveries)
[벨렘 탑]에서 타구스 강변을 바라보면 지나친 역사자부심의 상징물인 발견기념비가 보인다. 50m 높이의 기념비는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온다. 항해 왕으로 불리는 엔리케의 사망 500주년을 기념해 1960년에 세워졌는데, 그 옛날 탐험가들이 신대륙을 점령했을 때 취했던 몸짓이 연상되는 기념비이다.
배가 아래부터 비스듬하게 위로 향하게 하여 진취적인 기상을 표현했는데, 맨 앞은 엔리케 왕자가 있고 1420년 마데이라 제도 발견자인 곤살베스 자르코와 인도항로를 발견한 바스코 다 가마도 찾아볼 수 있다. 항해시대 선구자인 엔리케는 원정대를 꾸려 아프리카 서해안과 지중해 항로개척에도 나섰다.
1497년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를 향해 출발했던 장소가 타구스강을 끼고 있는 이곳 [벨렝 항]이다. 그는 4척의 배를 이끌고 아프리카 연안을 따라가지 않고 대서양 가운데로 멀찍이 돌아가며 무역풍을 피해 아프리카 최남단인희망봉(Cape of Good Hope)에 도달한 뒤 순조롭게 서인도에 도착했다.
이후 포르투갈은 브라질, 인도의 고아(Goa)州, 마카오, 일본까지 도달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항해시대 노예무역에 대한 반성과 성찰 없이 과거의 영광만을 기억하며, 자신들의 기억하고 싶은 욕망만을 담아낸 포르투갈의 기념비가 장대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리스본 일정을 마치고 저녁은 포르투갈 주식이라는 농어구이(Sea bass)를 맛봤는데 생선껍질이 바삭하고 짭짤했다. 속살도 우리네 삼치구이처럼 부드러워 괜찮았다. 포르투갈은 국토절반이 바다와 접해있기에 농어뿐만 아니라 정어리구이(Sardinha; 사르지냐) 등 어류를 많이 즐긴다고 한다.
대서양과 마주한 포르투갈은 유럽서편 끝자락에 위치해 스페인보다 1시간 빠른 시차를 보이며, 오후 5시가 되면 바로 어둑해진다. 때문에 저녁노을 배경으로 멋진 샷을 남기기에는 11월초가 최적기였다. 또한 포르투와 리스본에 머무는 동안 우기(雨期)임에도 해양성의 포근함과 맑은 날씨가 이어져 감사함이 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