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영준SimonJ Nov 13. 2024

4th Essay: 아들과 나

어렸을 적 아버지는 무척 무서웠다. 조금만 잘못을 해도 매서운 눈초리와 어떤 때는 매가 수반됐다. 대화를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런 때가 되면 엄마는 나를 감추기 바빴고 난 거의 지옥을 맛보는 듯했다. 행동거지 하나하나 조심조심, 그래서 의기소침한 그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가난한 가정에서 자란 터라 부엌에서 몰래 우는 엄마의 모습을 훔쳐보며, 마음 아파하며 살았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보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나이가 들어서 아버님께 여쭤봤다. ‘나에게 왜 그렇게 까지 무섭게 했냐고.’ 아버지는 버릇없어질까 봐 그랬다고 했다. 아무것도 이해 안 되는 대답이었다. 미안하고 잘 자라줘서 고맙다고 했다. 깊은 침묵이 흘렀고 나는 내 아들과 대화하는 아빠가 되자고 결심했다. 중요한 순간을 놓쳐서 먼 길 돌아가는 일이 없게 하자고 다짐했다. 아빠가 못 배웠으니 너는 해야 한다는 논리도 맞지 않다. 아들이 수능시험 점수 나오는 날 “집에서 엄마 아빠랑 충분히 얘기하고 선생님 뵈러 가라.”라고 얘기하고 그날 저녁 아들과 마주했다. 아이스 브레이킹 차원에서 최근에 목표를 세우고 잘 진행해서 면허 취득한 일 등 칭찬을 앞세웠다. 분위기가 좋아질 무렵 아들은 자기 얘기를 들어 달라고 했다. 지금 나온 점수로 자신을 표현하고 싶지 않고 엄마 아빠가 주신이름 가지고 적당히 살고 싶지 않다고 서두를 꺼내며, 진정 자신을 찾고 자기답게 살고 싶다는 것이다. 결국 대학 지원을 안 하겠다는 얘기였다. 갑작스러운 얘기에 당황했지만, 끝까지 들어보기로 했다. 눈치를 보니 사범대를 나온 아내는 이미 아들의 말에 반은 넘어간 눈치였다. 평생을 살아도 자기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모르고 또 자기 정체성을 깨닫지 못하고 끝나는 인생도 많은데, 나이 스물도 안 된 녀석이 자기 자신을 찾겠다는데 어찌 말리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가지 서운한 건 나는 그동안 대화를 할 줄 아는 아빠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아들에게도 그냥 말하면 들어야 되는 윗사람이었다. 돌이켜 보면 어떤 순간에는 내가 생각하는 가치를 밀어붙이기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세 가지 약속을 받고 아들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다. 첫째, 지금 엄마 아빠가 너의 얘기를 존중한 것처럼 엄마 아빠를 진짜 대화의 파트너로 인정해 달라는 것. 둘째, 학교를 졸업하면 규칙 적인 생활에서 벗어나 흐트러지기 쉬우니 뭔가 정해진 일상을 만들 것. 셋째, 자신과의 약속을 잘 지킬 것. 이상 세 가지의 요구가 끝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어떤 회사의 미성년자 취업 동의 서류를 내밀며 동의해 달라고 했다. 나름 준비된 발언이었고, 결연한 태도여서 우리는 아들의 생각을 응원하기로 했다. 그때 비로소 꼰대가 아닌 아빠로 대화의 파트너가 될 수 있었다. 친구들은 거의 6:4 정도로 생각이 갈렸다. 60% 정도의 친구들은 “어린 게 뭘 안다고 그 얘길 들어줬냐고 억지로라도 대학에 보냈어야지.”라고 말했고, 40% 이하의 친구들은 “역시 우리 친구 멋있다. 잘했어, 네 아들 잘 될 거야, “라고 말했다. 지금은 나름 좋은 파트너다. 혼자서 노력해서 외국어도 잘하게 돼서 원하는 전공의 외국 국립대학에 합격해서 졸업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 아무것도 하라고 하지 않았다. 본인이 원하는 가치를 찾아 나설 때까지,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의 그 서먹한 관계도 다른 집에 비해 거의 없다. 나도 힘든 일 있으면, 아들과 상의도 한다. 아버지와 나 그리고 아들 멋진 동지들 아닌가! 아직도 아버지는 어렵다. 그래도 ‘아들과 나’ 덜컹거릴 때도 있지만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간다.    

작가의 이전글 3rd Essay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