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번엔 너 혼자 가는 건 어때?
YS! 너무 서운해하지 말고 내 얘기 좀 들어봐.
우리가 좋은 여행 메이트인 것과 상관없이 혼자 여행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내뱉은 말이야. 결코 너와의 여행이 불편하다거나 너에게 어떤 불만을 가지고 있거나 해서가 아니란 알아주길 바라.
작년에 내가 독일 여행했었잖아? 20일 동안 나 혼자 무작정 다녀왔었지. 그때의 경험이 너무 좋아서 너에게 적극적으로 권해본다는 것이 오해를 낳았네. 미안해. 이것도 나이 들어서 그런 것일까? 내가 너무 좋은 경험을 하면, 그것이 타인에게도 좋을 것이라고 나만의 생각을 두서없이 이야기하며 강요하게 되는 것 같아. 왜 이런지 모르겠어.
그래도, 나는 너에게 혼자 여행 다녀와보라고 권하고 싶어.
너와 헤어지고, 집에 도착해 독일 여행했던 기록을 뒤적여봤어, 작년 2월 중순의 여행이 벌써 10개월이 지났네. 아직도 그때가 그립고 다시 가고 싶어.
시간만 주어진다면 여행부터 가고 싶다고 늘 이야기하면서, 정작 회사를 그만두고 여유가 주어지니 딴생각만 하는 나를 스스로 꾸짖고 싶었나 봐. 무작정 안 가본 나라로 혼자 여행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어.
걱정이 정말 많았어. 안전이나 건강이나 대한 것도 많았지만, 가장 큰 걱정은 처음 가본 곳에서 그곳의 낯섦을 나 혼자 견딜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어. 뭐가 그렇게 걱정이냐고? 아냐 그게 이전(정확히는 20-30대) 과는 다르더라고. 이전에는 너랑 꽤 오랫동안 자주 다녔잖아. 생각보다 내가 YS 네게 많이 의지했었나 봐.
40대 중반의 나는 혼자 여행을 하면 외로움에 쉽게 지칠까 아니면 새로운 경험에 대한 기대감으로 열정이 솟아날까. 나 스스로도 알 수가 없으니 더욱 두려웠던 것 같아.
독일 여정 20일을 정리하며,
그렇게 처음으로 20일이라는 긴 시간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나라 독일로 다녀오기로 했어.
20일간의 독일 여행 여정, 프랑크푸르트 입국 & 베를린 출국 독일을 선택하게 된 건, 유럽 국가 중 출장으로도 가본 적이 없는 나라, 당시 사람이 많이 몰리지 않는 곳으로 찾다 보니 독일이 되었어. 아! 물론 합리적인 비행기 티켓가격도 큰 역할을 했어. 정말 운이 좋았지.
YS. 혹시라도 독일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언제든지 나에게 연락해. 내가 다녀온 코스를 소개해 줄 수 있어. 처음 계획과는 좀 많이 다르게 움직였고 많이 즉흥적이기도 했는데 그래서 더 많은 이야기 해줄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독일이 좋았던 이유를 요약해 보자면,
다채로운 것을 볼 수 있었어. 대도시의 세련됨과 조용한 분주함, 근교 소도시의 정겨움과 고즈넉함, 중세 유럽의 궁전과 성당들에서 느껴지는 역사의 찬란함과 허무함들, 각 도시별로 다른 다양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어.
독일 도시 전경 왼쪽부터 -프랑크푸르트, 뉘른베르크, 밤베르크 저녁도 새벽도 멋지다. 왼쪽부터, 뮌헨도심 밤거리, 베를린 주거지역, 새벽의 베를린 기차역
네가 그림을 즐긴다면 독일은 꼭 가봐야 할 곳이야. 각 도시마다 다양한 주제의 미술관이 있고, 특히 독일 19세기말 20세기초 독일 화가들의 그림이 내 취향이었어. 딱히 작가를 모르더라도, 내 눈을 멈추게 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그림들을 만날 수 있었어.
프랑크푸르트 시나고그, 막스 베크만, 1919
커피를 즐길 수 있는 나라야. 골목골목 맛나고 멋진 공간의 카페가 많이 있어서, 지쳐서 잠시 외로움이 스며들 때, 잽싸게 카페로 들어가 오감을 만족시키는 쉼을 할 수 있었어.
독일의 카페들,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베를린Konditorei ,뉘른베르크YellowTile,프랑크푸르트Hoppenworth&Ploch,밤베르크Zuckerstuck
음식이 별로라고 하는데, 나는 굉장히 만족했어. 날마다 다양한 소시지와 도시별 맥주를 즐기며 저녁을 보내고, 도시마다 다른 슈바인 학센(도시별로 맛이 다르더라고. 가장 맛있었던 것 프랑크푸르트였어) 도 지겹도록 해치웠어.
도시별 슈바인학세. 왼쪽부터 프랑크푸르트, 뮌헨, 베를린
역사에 대한 그들의 책임감과 더 나은 역사를 만들려는 그들의 노력들에 감탄하게 돼. 이건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지.
베를린 장벽, 화해의 교회, 조각 Reconciliation
무엇보다 편하고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었어. 교통망도 접근하기 쉽게 잘 연결되어 있고, 무엇보다도 교통비도 잘 알아보면 절약할 수 있는 옵션이 많더라고. 독일어가 된다면 정말 편하겠지만, 간단한 영어만으로 충분히 답답하지 않은 여행을 할 수 있어. 그리고 요즘엔 구글번역기가 있잖아? 편한 시대야.
뭐 좋은 점들이야 끝도 없어. 어느 나라에 가던 각각의 장점이 있으니까.
무엇보다도 나에게 이렇게 독일이 좋았던 건
'혼자'여서 더 좋았던 것 같아.
이번 여행을 통해 나에 대해 알게 된 것들이 있어.
습관이 무섭더라. 어느 순간 돌아보니, 업무 하듯이 체크리스트를 완성하면서 목적지를 향해서 걷고만 있는 나를 발견했어. 여행도 일처럼 하고 있더라고. 깨닫는 순간 혼자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
그 후로는 의도적으로 계획을 세우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최선을 다했어.) 여행에서 이런저런 걸 봐야 하고 뭔가 얻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니, 비로소 나만 바라보는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 아무 생각 없이 돌아다니며, 내가 느끼는 단순한 감정들에 집중하려고 노력했어. 생각도 멈추고 멍하니 주저앉아 있던 시간들이 꽤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순간들만 선명하게 기억나.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그리고 나는 계획이 없어도 그다지 불편해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 나는 내가 계획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봐. 계획이 없이 자유롭게 움직이니 더 좋더라.
나는 이렇게도 할 수 있는 사람이었어.
무엇보다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는 게 제일 좋았어.(미안, 정말 너와 여행이 불편했던 건 절대 아니야!)
매 순간의 눈치 보지 않고 선택할 수 있었고, 그 결과도 온전히 내 몫이라는 게 마음에 들었어. 당황스럽고 짜증 났던 순간들도 많았지만, 그건 나 혼자 만의 감정이니까 빨리 떨쳐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어. 나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하기 위해 즐거운 선택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지. 이기적으로 보이겠지만 지금 이 순간의 '나'에게 집중하는 것이 좋더라.
YS, 서운해하지 마.
당분간 난 혼자 여행을 더 즐기고 싶어. 너의 넓은 이해심을 기대할게.
너에게도 기회가 된다면, 아니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꼭 혼자 여행을 다녀봐. 분명 특별한 경험이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