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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달리러 갑니다.

by 한빛나

카톡!

매일 비슷한 시간, 어김없이 울리는 소리.
“오늘 러닝 가실 분!”
시간은 늘 저녁 8시.


가족의 저녁을 챙기고 나면 딱 그때쯤이다.
러닝 멤버는 최소 두 명에서 많을 땐 여섯 명까지.

솔직히 혼자였다면 진작에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함께의 힘이란 게 이렇게 큰 줄, 달리기를 하며 또 느낀다.


집에서 호수공원까지는 1km 남짓.
공원 한 바퀴는 약 4.5km 정도다.


집을 나서면 빠른 걸음으로 그 1km를 걷는다.
그 걷는 거리가 몸을 푸는 시간이다.

공원에 도착하면 각자 스트레칭을 하고, 이어폰을 꽂은 채 오늘 함께할 음악을 고른다.


“지금 몇 분이지?”
“8시 15분!”
그렇게, 오늘의 달리기가 시작된다.


우리는 함께 시작은 하지만, 함께 달리지는 않는다.
각자의 속도, 각자의 리듬으로 달린다.
나는 그중에서도 가장 느린 사람이다.


처음에는 ‘슬로우 조깅’을 목표로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내 한계 속도였던 것 같다.
그래도 괜찮다.
내게 중요한 건 ‘빠르게’가 아니라 ‘끝까지’이니까.


걷지 않고 완주하려면, 내 호흡에 맞게 천천히 달리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숨이 차오를 때마다 ‘지금 이 속도면 충분해’라고 마음속으로 되뇐다.


달리기가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지만, 내겐 단순한 유행 이상의 의미다.
체력을 만드는 방법,
그리고 나를 단단하게 하는 연습
그게 바로 달리기다.


달려야겠다고 결심하던 그 시기,
글쓰기 모임에서 선정한 책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책을 읽으며 달리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강해졌다.
그의 문장처럼,
나도 내가 세운 작은 규칙을 지키며 열심히 달리고 있다.


나는 느리지만,
그만큼 오래 달리고 있다.


그리고 문득 깨닫는다.
달리기는 끝까지 가는 일이 아니라,
멈추지 않는 일이라는 걸.


오늘도 나는 나의 속도로 달린다.
조금 느려도,
그 속도 안에서 나는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천천히, 걷지 않고 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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