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영업인으로 첫 발 내딛기
면접을 본 다음 날, 회사에서 바로 연락이 왔다. “얼룩말씨는 언제부터 출근이 가능하세요?” 딱히 할 일이 없었던 나는 “내일부터 가능합니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첫 출근을 한 순간 약간 후회했다. ‘일주일만 더 쉬고 출근할걸.’
직장 생활이라는 게 '해 뜨면 일어나 출근하고 해 지면 퇴근해서 잠드는 것'이라는, 어쩌면 농경 사회에 적응한 인간의 DNA 속에 내재된 생산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홍콩에서 귀국하고 한 달여간 백수로 지내다 보니 생체 리듬이 출근과 맞지 않았다. 면접 볼 때는 입지 않았던 정장과 넥타이를 입고 첫 출근을 하였다.
무역에서 제일 처음 배우는 것이 서류 작업이었다. 모든 회사, 모든 업계가 마찬가지겠지만, 서류라는 것은 '그 일에 대해 말하는 방식'이자 '기록'이다. 건축 설계사는 설계도면이 서류이고, 의료 업계에서는 환자 차트가 그에 해당할 것이다. 무역업에서는 송장(Invoice), 물품 명세서(Packing List), 선하증권(Bill of Lading)이 가장 기본적인 서류이다. 사실 무역업을 하지 않아도 이 서류들이 익숙할 수 있다. 비슷하게 표현하자면, 송장은 거래 명세서, 물품 명세서는 물품 내역서, 선하증권은 택배 송장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다.
제일 먼저 배운 것이 이러한 서류를 작성하는 법이었다. 성격상 꼼꼼하지 못해서 자주 틀렸다. 서류가 내 손을 떠나는 순간 고치기가 힘들어진다. 단지 간단한 종이 한 장에 철자 실수인데, '왜 이렇게 빡빡하게 구냐'라는 생각을 했다. 서류를 자주 틀리다 보니, 종래에는 꿈속에서 서류를 자꾸 틀려서 물건을 못 찾게 되고, 수출했던 물건을 폐기하면서 바다에 빠뜨리는 꿈까지 꾸곤 했다. 마치 언어를 처음 배울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영어를 처음 배운 순간은 이미 오래되어 기억나지 않지만, 중국어는 성인이 되어서 배웠다. '인생은 알 수 없다'는 모토를 지닌 나는 팔자에도 없던 중국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다. 휴학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학교는 다니기 싫어서, 팔자에도 없던 중국 교환학생에 지원했다가 덜컥 합격했다. 당시 학교에서 특별 교환학생이라는 제도로, 영어를 듣고 말할 수 있으면 베이징이나 상하이로 교환학생을 보내주었다. 오전에는 중국어를 배우고 오후에는 영어로 중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배우는 프로그램이었다. 막상 교환학생에 합격하였지만, 중국어를 한마디도 못 했다. 당당하게 '니하오! 한 단어만 알고 가면 되지. 거기도 다 사람 사는 곳인데, 한국어는 못 써도 영어는 쓸 거야'라는 망상을 가지고 베이징으로 향했다. 베이징에 도착한 지 2시간 만에 '중국어 조금이라도 배우고 올 걸'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한자 문화권이라 중국어를 배우는 건 금방이었지만, 아무리 배워도 한국어에는 없는 성조 때문에 발음을 자꾸 잊어버리고 헷갈리곤 했다.
무역 서류도 비슷했다. 가이드라인은 있지만, 바이어마다 요구 사항이 다 달랐고, 이 바이어가 저걸 요구했는지, 저 바이어가 이걸 요구했는지 자꾸 잊어버리고 헷갈렸다.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