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 속의 기온 마츠리
어릴 적부터 스트레스에 취약한 편이었다. 무더운 여름이면 습도와 찌는듯한 햇볕이 짜증 나 집 밖을 잘 나가지 않았고 연인과 이별을 할 때면 방전된 배터리 마냥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특히 세워놓은 계획이 어떠한 연유로 틀어졌을 땐 말도 할 수 없을 만큼 짜증이 솟구쳤고 이 모든 게 그저 태어날 때부터의 체질 탓이라 생각했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 굳어 왔던 이 생각이 최근 어떤 사건으로 인해 바뀌게 되었다.
일본은 전국적으로 다양한 마츠리(축제)를 여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오사카에서 열리는 텐진 마츠리, 삿포로 눈 축제, 오본 마츠리 등 어느 하나 거를 것 없는 아름다운 축제들이다. 하지만 나는 그중에서 7월 교토에서 한 달가량 열리는 기온 마츠리를 가장 선호한다.
무려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야사카 신사와 교토 시내의 중심부로 열리는 기온 마츠리에는 신령들을 실은 수레가 도심을 행진하면서 아름다운 종을 울린다. 도로는 차량을 통제하고 거리에 야타이(屋台)가 들어서면서 주변은 축제 분위기가 형성이 되고 곳곳에서 축제를 즐길 수 있다.
스무 살. 입대 전 친구와 둘이서 여행으로 교토를 향했고 우연히 처음으로 기온 마츠리를 경험하게 되었다. 한 폭의 그림과 같은 고풍적인 건물들과 사람들. 그 기억을 잊지 못하고 또 한 번 추억을 쌓기 위해 이번엔 그녀와 함께 신칸센을 타고 교토 중심부로 향했다. 그녀 또한 나처럼 오랜만의 축제인 만큼 꽃무늬의 유카타와 치장을 했다. 유카타를 입은 그녀는 미소가 지어질 정도로 예뻤고 축제의 분위기를 더욱 고양시켰다.
약 30분 가량 신칸센을 타고 내리자 왠지 모를 습도가 우릴 덮쳤지만 기분 좋은 날 습도 따위로 인상을 찡그리거나 하긴 싫었다. 그렇게 축제가 열리는 시조거리로 향하자 예상대로 엄청난 인파와 열기에 숨이 막혔다. 심지어 느꼈던 습도는 예상대로 비가 오기 전의 신호였고. 부슬비를 시작으로 점점 거세게 어깨 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내 곧 축제를 구경할 여유조차 없을 강풍과 비가 내리 쏟았다. 허둥지둥 바람으로 부러진 우산을 들고 우리는 근처 비를 피할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결국 인내심이 바닥이 났고 비로 젖은 옷과 머리를 털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일기 예보엔 그저 흐림이었는데 왜 폭우가 쏟아지지?’, 애초에 이런 날씨에 축제를 즐기 수는 있나?‘ 온갖 불평불만이 입에서부터 나와 툴툴거리기 시작했다. 잔뜩 기대하고 왔던 탓일까 실망감은 배가 되었고 오늘만을 기다렸던 옆의 그녀도 분명 안 좋은 표정일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 바라본 그녀의 얼굴은 출발하기 전처럼 미소가 여전히 띄워져 있었다.
이번 축제를 위해 빌린 비싼 유카타와 공들인 화장도 모두 물거품이 됐을 텐데 그녀는 그저 좋은지 빙긋 웃고 있었다. 그러자 부글부글 끓어올랐던 화도 점차 가라앉는 듯했다.
“모처럼 축제에 왔는데 이렇게 큰 비가 내렸던 것도 나중에 기억에 남겠지?”
그 말을 듣고 나 자신이 부끄러워 아무 말 없이 고개만 숙였다. 그녀는 축제가 아닌 나와의 추억에 더 중점을 두고 있었다. 결국 어떻게 받아들이냐의 차이였다. 여태까지 나를 스트레스받게 했던 것이 상황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여름은 습도가 높고 갑작스럽게 비가 내리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불가피할 상황에 입을 내밀고 불평을 늘어놓아도 바뀌는 것은 없다. 그렇게 나는 찡그렸던 인상을 다시 고치고 그녀를 마주했다.
시간이 흐르고 심굴 궂던 비가 점점 멎기 시작했다. 다시 밖으로 뛰쳐나오자 길거리 포장마차의 사장님들 조차 그녀처럼 언제 비가 왔냐는 듯 다시 웃는 표정으로 손님을 맞이했다.
세상에 좋은 일만 생길 수 없는 법이고 설령 그렇게 된다 한들 그것은 인생이라 할 수 없다. 안 좋은 쪽으로만 생각을 하면 결국 그 길 밖에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인생은 마음대로 되지 않지만 적어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의 차이로 여러 갈래의 길을 볼 수 있다. 그 길을 선택해서 불행에 빠트릴 것인지 추억으로 담아둘 것인지는 스스로의 몫에 달렸다.
그날 나는 전철을 타고 돌아가는 길에 그녀에게 말했다.
“오늘은 최고의 여행이었어.”
당신의 오늘 하루는 어땠는가. 누군가는 고된 일로 인해 녹초가 되어 방안에 한숨만 채우는 이가 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하루하루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다가올 내일을 준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자신은 어떤 태도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 한 번쯤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