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좋아한 노래들(My favorite songs)
사랑에는 책임이 따른다.
사랑했는데 서로가 좋아서
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 사랑했는데
어이 혼자 울어야 하나
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 여자의 눈물
그 팔에 안기어 꿈꾸던 창가에
시들은 장미꽃 이 마음 따라우네
사랑했는데 서로가 좋아서
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 사랑했는데
-작사:손석우, 작곡:손석우, 노래:이미자
우리엄마 애창곡중 하나이다. 아직도 귀에 쟁쟁한 달콤하던 그 목소리는 어린 나만이 아는 목소리로 어찌하여 이 노래 주인인 이미자씨와 그리도 비슷한지 나는 깜짝 놀랐었다. 이미자씨 출현 할 때마다 어린 나는 늘, “엄마!”,라고 되내이곤 했었다. 나의 엄마의 슬픔이 모두 베어나오듯 하였기때문이었다.
“꼭 3일에 한 번씩 편지를 받았어. 안나는 너무 슬퍼하지마. 우리안나는 아빠가 새끼손가락을 깨물어 혈서를 써서 낳은 것이니 잊지마!"
"......"
"우체부 아저씨가 증인이야! 3일에 한 번씩 편지를 가지고 오셔서는 어디서 이렇게 편지가 오느냐고 하셨지. 온 동네 사람들도 다 알아. 그 편지만도 한 권의 책이지."
"......"
쫑긋쫑긋, 나는 거짓말을 듣는 듯이, 그러나 너무나 감격하며 엄마의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어하였었다. 하지만 늘 시간은 짧았고, 엄마는 아버지와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작은아버지들과 남동생들을 매일매일 챙겨드려야 했기에 오직 단 몇분 동안만, 가끔 외할머니랑 사는 집에 오시어 '새아빠'라는 소리에 놀라 기를 펴지 못하고 움츠러드는 듯한 나를 보시고는 힘을 주시는 말씀을 하시고 돌아 가시곤 하셨던 것이다.
사랑했는데, 그토록 사랑했는데, 번개처럼 당도한 이별을 고하고 엄마는 첫 돌 지난 나를 업은채 신혼집이라 여기고 찾아간 곳을 박차고 나오셨고 오래가지 않아 뒷마을 새아버지와 결혼식을 올리게 되셨던 것이다. 동네 어르신께서는 '우체국국장님의 후처로 가면 어떻겠느냐',고 혼담을 주시다가 반대하는 어머니께 후에 세 남동생을 낳으신 뒷마을 아버지를 엮어 주셨었다고 하셨다.
"안나 데리고 와, 딸 데리고 와서 결혼해도 되니 걱정말고 딸 내놓지 말고 데려와."
나처럼 보통사람들은 믿지 않는 이야기다. 또한 이는 비공개된 나의 탄생 스토리들처럼 쉽게 인정하지 아니하고 그저 안나가 거짓말한다,고만 편할대로 판단을 내리고 나는 늘 어처구니없이 또 어딘가에서 나도 모르게 헤매며 살았던 것이나 다름이 없던 이야기다. 나는 그저 엄마 말씀을 믿듯 세상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부잣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태어난 이후 나는 가족들의 사랑은 물론이거니와 동네어르신들의 손에서도 내려놓지 않던 아기였다고 하셨다.
'공지영 작가의 봉순이 언니'처럼 진실로 '내게도 봉순이 언니'가 있었고, 나의 봉순이 언니는 논밭에 일 나가시는 엄마를 대신하여 이별을 슬퍼하는 엄마를 돕고, 걷지도 못하는 나를 업어주고 달래주는 친언니와 같았
다. 나의 봉순이 언니는 고향의 옆집 언니로 공지영 작가의 바람 난 봉순이 언니와는 전혀 다른 성실하고 착한 언니였다.
새천년 무렵 발표된 소설 '봉순이 언니'를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라는 MBC방송 프로그램의 소개로 만나며 동네서점에서 발견하곤 너무 놀라 구매를 하여 읽었었다. 그런데 그 표지는 이상하게도 부산의 어느 골목에서 본 세발 자전거였던 것으로, 초등학교때 아버지 따라 갔던 작은아버지 댁 문밖 풍경으로 나의 뇌에 각인 저장된채 비활성화모드 기억의 저편이었을뿐, '소설 봉순이 언니'의 표지는 다른 작가의 사진으로 전혀 별개인 것이다.
사랑했는데, 사랑하고도 남았는데 왜 이별이 주인이 되어 헤어졌던 것일까. 그 이별의 포자들은 어찌하여 강직하기 이를데없이 한 사람의 온 삶을 헤집고 사망에 이르도록 유도하는지 바꾸어 생각해보면 사랑은 참으로 위대한 것임을 알게 된다.
이미자씨가 부른 가요 '사랑했는데'는 다분히 여성적이다. 하지만 이에 못지 않게 또한 매우 남성적이기도 하다고 느낌은 성장성, 즉 내적 성숙을 요한다고 볼 수 있다. 심리학적으로 아니마(Anima)와 아니무스(Animus)의 공존이 '사랑했는데',라는 이 하나의 노래 속에 존재하며 상처받은 남녀 서로의 감정을 위로함으로 긍정적 효과를 더욱 이끌어내는 요인으로 이 곡의 성공적 키워드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예상과 다르게 「사랑했는데」이미자씨 노래는 1968년으로「사랑은 눈물의 씨앗」나훈아씨의 노래보다 한 해 먼저 발매로 검색되고 있다. 어린 나의 생각이란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 '사랑했는데'를 낳았다고 여기며 살아왔던 것으로 이 사소함마저도 큰 요인으로 작용되는 것은 시간의 경과속에서도 이 사소함이 언제나 공존하며 온전함을 가리웠다고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사랑했는데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고 한다.
사랑했는데 헤어지다니, 나를 낳으신 부모가 헤어진 것이었다니,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내 입장은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는 것인가? 아, 피할 수 없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이 예에서 움을 트고 자란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듯이 대중문화를 자세히 살피는 것만으로도 나의 길과 부모님의 길들이 보이는 것으로 대중문화의 위력을 주시하여 위험을 예방하여야 하는 것이다.
전시(戰時)중에도 늘 챙겨야 할 사항이 1960년과 1970년대만 하더라도 「라디오」가 필수품이었다. 정부의 공지를 정확하게 전달 받을 수 있어야했기 때문으로, 가가호호 인편으로 전할 수 없는 상황을 대비한 방책중 하나로 원격통신의 효시로 볼 수 있던 '봉화烽火'의 역할인 '라디오'를 필수품으로 비치하고 소지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때 직설적인 경계태세에서의 공지 전에 '국가원수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하여 그 나라의 모든 대중매체들은 국가원수에 촛점을 맞추고, 이의 상황에 보조되는 역할로의 목소리를 드러내야 헸던 것이며, 이는 충분한 당위성을 갖는 방편이었던 것이다. 공중의 권세는 완전함이어야 그 아래 존재하는 모든 것들도 완전함을 잇게 되는 것이다.
성경의 에베소서 2장 2,3절 말씀중 '불순종의 아들들의 역사를 주장하는 본질상 진노'를 우리들 공중에 중심이 되게 하여서는 안되는 것이다. 즉, 하느님 중심에서 벗어난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게 되면 모든 대중매체는 순식각에 혼란에 휩싸이고 마는 것이다. 21세기 언론출판의 자유가 실행되는 것을 지켜보는 나보다 윗세대들의 지각과 나의 세대들 일부중에서도 아직은 이에 따른 근심이 모두 가신것만은 아닌 것이다.
내가 만든 문화는 어떤 빛을 지닐수 있을까? 나는 과연 어느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 정신적 산물을 생산중인 것일까? 나는 '돈이 필요하면 소매를 걷어 올리고 일을 하는 것이 더 빠를 수 있어요!', 라고 주장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 또한 일감이 없을때는 전혀 터무니없는 낭설이 되고 마는 시간들이 존재함으로 하여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닌 것이다.
펜의 길이나 호흡의 길이는 고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정신적 노동에 해당함으로 육체적 노동에 버금가는 것으로서의 그 값을 주고 받는 것이나니 이왕이면 다홍치마격으로 무슨 일을 하든지 선한 영향력을 행사는 마음으로 임하며, 기존 대중문화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버리고 올바른 이해가 속히 따라야 하는 것이 문화 크리에이터와 향유자의 기본 자세가 될 것이다.
다시 즉, 나를 낳으신 부모님께서 대중문화의 홍수를 견디지 못하시다 헤어진 것이라면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되었던 이미 56년전 이야기들이며, 특히 2차세계대전과 6.25의 전쟁을 직접 경험한 우리 부모님 세대들의 정서적 입장을 고려해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사랑」에 대한 집착인 것이다. 그러나 모든 다툼의 중심에도 그 사랑이 있었을 것인즉, 이즘에서 다시 에릭 프롬의「사랑의 기술」이 빛을 발할 때 인것이다.
사랑했는데 이별이 찾아 왔다면 서러워도 한 번쯤은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진정 사랑했다면 그 사랑이 전혀 거스름이 되지 않을 것이며 사랑의 재생산처가 되는 것이므로 생각의 중심을 잘 살펴서 길이 어긋나지 않도록 주의 해야 하는 것이다. 마치 청개구리들처럼 엄마를 물가에 묻고 비가 올때마다 우는 어리석은 일은 그만 두어야 하는 것이다.
이 곡은 이미자, 남진, 김상희, 최동길, 천다희 다섯명의 가수가 부른 컴필레이션 앨범 A면 첫번째 곡으로 12곡중 두 곡 외는 모두 손석우씨 작품이다. 앨범 부제에 「손석우 작곡집」으로 나타나 있다. 손석우씨는 전혀 낯선 자로 처음 듣는 이름이었지만 「패티김씨의 눈이 내리는데」를 검색중 우연히 듣고는 좋아하던 옛생각에 눈물이 그 평온과 함께 왔다. 우리 외할머니와 동년 출생 작사 작곡가로 은행원이었다고 한다.
-커버이미지 : Pinterest/55ed205491fd2ccbd958eddcd4caf147.jpg
-Writer : Evergreen정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