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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페이정윤 10시간전

너는 돈이 썩어 나냐?

없이 살아 온 시어머니는 비싼 선물보다 돈이 좋다.


" 어머니, 집에서 막 쓸 스카프 없나요? 날씨가 너무 춥네..."



" 왜 없어? 여기 잔뜩 있잖아."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 어머니께 sos를 청했다.


나는 막 쓸 스카프가 한개도 없지만 우리 어머니는 버리기 직전 스카프도 모아두시는 양반이니


분명 뭐라도 있을 것 같았는데 역시나..장롱에 스카프 천지다.


선물로 사드린 스카프며 가방이며 잔뜩이다.


신혼 초에는 대신 정리도 많이 해드렸는데


아무리 정리해 드려도 다시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관성의 법칙이 적용된다.



" 여기 이런 것들 왜 안하세요? 스카프 천지네."



" 나는 이상하게 치렁치렁 안하게 되더라. 쓰는것만 쓰게 돼지."



" 골고루 다 예쁘게 잘하고 다니시지, 아끼다 똥 된다.


이것도, 저것도 다 내가 사 드린 거잖아."






결혼하고 몇년 안되었을 때다.


이불을 사러 백화점을 들렀다.


충분히 포근하면서 재질도 좀 좋은 이불을 사고 싶었다.


간절기 이불이라  여기 저기 둘러봐도 생각보다 많이 비싸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시부모님께도 화사하게 한 채 해드리고 싶었다.


사면서 오조오억번 생각이 활개를 친다.


어머니는 다 떨어져 너덜너덜 해질때까지 뭐든 쓰시는 분이니


내가 이렇게 새 이불을 사가면 반가워 하시지 않을 것도 같고


나랑 같은 여자니까  새이불을 반기실 것도 같고


한참을 고민 끝에 그냥 사기로 했다.


맘에 안 드신다 하면 반품하면 되니까.




" 어머니, 저희 이불 사는데 너무 싸고 이뻐서 하나 더 샀어요."



" 아니...너는 돈이 썩어 나냐? 집에 이불이 천지인데.... 다시 갖다 줘라!"




역시나 단호하다. 예상했던 대로 안쓰신단다.


재질이 별로네, 정도도 아니고 그냥 안 쓰신단다.


아들 혼자 힘들게 벌고 있을 때니 어머니 입장도 이해 하지만 


자세히 보지도 않고 무조건 안쓴다고 하시니 나는 너무 서운했다.


가격도 괜찮고 이불도 가볍고 참 좋았는데...


매몰차고 싸늘한 어머니의 말투


저렇게 까지 화를 내실 게 뭐람...


시어머니를  친하다고 생각한  내가   바보같아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마음 속 깊은 곳에 상처로 남아 평생 낫게 하지 않을 거라 다짐했다.


시간이 지나 아물더라도  다시 생채기를 내서 마음을 다잡아야지.




'  다시  어머니께 선물을 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평생 아물것 같지 않은 상처는 언제 그랬냐는듯 새살이 나와 흉터도 보이지 않는다.


까일 게 분명하지만 또   선물을 사드리곤 했다.




크리스마스 날 가족들의 선물을  하나씩 사면서 시부모님께도  따뜻한 목도리를 


선물로 사드렸다.


아버님은 너무나 고마워 하시면서 받으셨지만


(여전히 잘 쓰신다)


어머니는 영 표정이 별로다.


그냥 저냥 넘어가는 가 싶었는데


다음날 부엌에서 밥을 하는 나에게 조용히 다가오신다.



" 저거 목도리...나는 있는거 하면 되니까 다시 갖다 주면 안되냐? 


집에 있는 것도 잘 안쓰는데 말이야...아버지는 좋아하는데  나는 목에 뭐 하는게 영 불편해서 말이야."



예전보다 훨씬 순화된 어머니의 말투다.


서운할 것도 없다. 사실 어느정도 예상한 결과였다.


한번도 기분 좋게 선물을 받으신 적은 없었으니까 나도 그려려니 한다.




'나는 돈이 더 좋은데...돈으로 주면 안되겠니? '



어머니의 마음의 소리를 알아채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시어머니께 선물을 여러 번 하면서 


어른들은 역시 돈을 제일 좋아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취향도, 성격도 다르고 세대까지 다른데 어머니가 좋아할 것이라고 예상한 나의 선물들은


선물을 하는 나만 기분이 좋을 뿐 어머니의 입장은 반영되지 않았다.



없이 살아 아끼고 아끼며  살아 온 어머니는


아들 내외가 뜯어 말리는 의료기기에 가서 아줌마들과 맛난 간식 사서 나눠먹고


비싸지만 한 푼 두 푼 모아 당신이 써보고 싶은 의료기기 사는게 더 좋았을 것이다.


따뜻한 이불보다  따뜻한 목도리보다  그게 더 좋으셨던 것이다.


그딴 거 다 사기라고 


쓸데 없는 곳에 돈쓰지 말라고 하는 며느리도


어머니 마음 깊은 곳에 상처를 준 건 매 한가지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조금씩 낫기를 반복하면서 살았다.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또 상처를 주기도 했지만 


어떤 때는 상처가 심해질까 소독약을 넌지시 건네기도 했다.


함께 살아 보니 진심을 알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함께 살았기 때문에 그 진심을 알게 되었다.


진심 따위는 알고 싶지 않았는데....










"어머니 이거 국장님이 쓰라고 주신건데 어머니 쓰세요."



" 아이고 화장품이네...네가 쓰지 왜 나를 줘 ? "



" 저는 쓰는 것만 써서  안 써요 ...어머니 쓰세요 "


아끼다 똥 된다구 ... 좀 팍팍 써요!!!


화장대에 뭐가 이렇게 많아? "



" 네가 준 건 다 좋은 거라서 아껴서 쓰는 거지..."




내가 어머니께 드리는 화장품은 전부 누가 준 것이고 내가 산 것은 하나도 없다.


하얀 거짓말은 점점 늘어 투명한 거짓말이 되어 간다.


내가 드린 화장품을  쓰시기는 하는 걸까 ...화장대에 전시만 되어있다.


누가 줬다고 해야만 기분 좋게 쓰는 당신


속이 뻔히 다 보이는 


속고 속이는 두뇌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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