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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페이정윤 Nov 02. 2024

시아버지가 집으로 들어오셨다

전쟁의 시작



시아버지는 두 집 살림을 하셨다



우리랑 함께 사는집이 본처


그리고 가게의 작은 골방은 후처다.



평생 장사만 하시던 분이라 가게에 있는 작은골방은 당신의 진짜 집보다 훨씬 편하고 아늑하다.


본처보다 후처가 더 매력적인 법


작은 방에는 티비와 작은 책상 그리고 한사람이 누워 잘 공간이 전부다


전기매트는 오래 써서 색이 진해지고


책상도 벽지도 아버님이 살아온 세월이 묻어난다.



여전히 시간이 안 맞으니 가게를 갈 일이 별로 없지만


큰애 어릴때는 지나가다가 몇번 들러 점심을 얻어먹곤 했다.


아기띠를 하고 이쁘게 단장한 손녀와 젊은 며느리가 함께 오면 


아버님은 근처에 냉면 맛있는 집이 있다고 시켜주시기도 했고


볶음밥이 맛있는 집도 있다고 시켜주셨다.


지나가는 사람이 아는 체라도 하면 


같이 사는 막내며느리라고 묻지도 않은 질문에 대답을 연신 하신다.




이곳은 아버님에게 최고의 아지트였다.


젊을 땐 동네 아저씨들이 모두 모여 이곳에서 화투판이 벌어졌단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뻑하면 모이셨던 것이다.


아주버님이 오셔서 아저씨들을 모두 내쫓고 화투판을 뒤엎고 어머니가 오셔서 말리고


아버님은 화를 내시고...


드라마에서만 보던 진풍경이 예상된다.



아버님은 화투아니면 낚시를 다니셨다.


낚시는 양어장 낚시다


 붕어를 잡으면 거기에 상품이 걸려 나와 운이 좋으면 


제법 큰 상품이 걸리나보다.


주말마다 가셨다. 평일에도 격일로 가셨다.


어머니는 화투아니면 낚시다닌다고 노름에 미쳤다고 매일 하소연 하신다.



사실 아버님이 집에 계신것보다 훨씬 좋은데


왜 저렇게 나가는 것을 싫어하시나 모르겠다.


늦게 나마 아버님과 따스한 정을 느끼고 싶으신건가...


아버님이 쓰시는 돈이 아까워서겠지...











남편과 가게에서 일을 하시고 1시 정도에 집에 오셔서 저녁까지 드시고


9시 정도에  다시 가게로 나가셨다.


새벽에 커다란 트럭이 무를 싣고 오기도 하고 감자를 싣고 오기도 한다.


하차반을 불러 짐을 내리고 그 분들과 식사를 하기도 하신다.


남편이 있어도 여전히 당신이 하셔야 직성이 풀렸다.


새벽 장사로 잠을 자다 말다 한 습관 때문인지


아버님은 누우면 주무신다.




"빨리 일어나!! 9시라고... 일어나."



아버님이 가셔야 어머니도 편히 주무실테니, 다급하게 깨워 빨리 보낸다.


졸린 눈을 비비며 택시를 타고 가게로 가신다.


버스를 타고 가도 되는데 택시 탄다며 어머니의 타박은 또 시작된다.











시아버지는 호탕하고 허세가득하고 쩌렁쩌렁하셨다.


항상 지갑에 돈을 잔뜩 넣어가지고 다니셨다.


항상 지갑이 빵빵했다.



집에 오시면 남편 몰래 용돈도 잘 주시고 나를 참 이뻐하셨다.


항상  나는 시아버지의 자랑스런 며느리였다.


아이들 문제로 가끔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지만


대체로 아버님과 잘 지내는 편이었다.


이 집안에서 아버님과 제일 친한 사람은 솔직히 나였다.


남편도 시어머니도 아버님은 진저리나는 사람이었으니까



어머니가 머리숱이 너무 없어져서 가발을 쓰고 싶어하셨다.


백화점에 가보니 꽤 비쌌다


가서 한번 상담이라도 받아보자고 시부모님과 함께 나섰다.


평생 A/S도 가능하고 인모라서 가발 티가 안나고 어쩌고 저쩌고...


직원은 목소리 크고 호탕하신 아버님을 보고 분명 물건을 팔 수 있으리란 기대를 했을 것이다.



"현금으로 다 주면 안 깎아주나?"



"아이고 아버님, 현금으로 다 주신다고요? 그럼 깎아드려야죠~~"



"깎아주면 오늘 나온김에 여기서 사지 뭐."



두툼한 지갑에서 현금을 쫘악 꺼내 직원에게 내미셨다.


직원은 무슨 VVIP를 모시는듯 굽신거렸다.


커피도 직접 사다주셨다. 정말 눈물나게 지극정성인 모습에 웃음이 났다.



백오십만원도 넘는 금액으로 산 가발인데 어머니는  두어번 쓰시고 안 쓰셨다.


어머니 장롱에 동그란 상자에 고이고이 모셔놓으셨다.


어색해서 안쓰신단다.


나보고 나이먹으면 쓰라고 하신다. 된장











아버님이 집으로 완전히 들어오셨다.




가게가 몇십년만에 이사를 가면서 아버님의 아지트인 골방이 사라졌다.


남편은 지긋지긋한 아버지를  어머니와 나에게 토스했다.




아버님이 평생 가게에서 주무실거라는 섣부른 예견은 비껴갔다.


어머니랑 나는 무방비 상태였다.



퇴직을 한  남편이 집에 들어 앉아 종일 티비 보다가 잠이 들다가 하는 모습이다.


저녁식사만 함께 하던 시아버지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에 계신다.


낚시나 식사약속이 아니면 종일 집에서 티비만 보신다.


밥을 함께 먹는 시어머니의 얼굴은 이세상 사람 얼굴이 아니다.


젊어서 고생시킨 남편이 그나마 함께 있지 않아 행복했는데


하루 종일 얼굴을 마주하려니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이때 부터 어머니는 사람들을 만나러 여기 저기 다니셨다.


예전보다 약속을 훨씬 많이 잡으시고 바쁘게 다니셨다.




원래가 잔소리도 많고 말도 많으신 양반인데


귀에서 피가 날 지경이다.



"여기에는 참기름을 좀 더 넣어야 하는데."



"왜 이렇게 겉절이가 허옇냐? 고추가루 좀 더 넣어라."



"매운탕이 왜 이렇게 싱거워, 소금 가져와."




일을 하고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던가.


어머니는 앞으로 어떡하지? 


내가 죽을 판국인데 시어머니 걱정이 웬말이냐..


전쟁의 서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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