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의 배낭여행이란
엄청나게 긴 비행을 마치고, 드디어 카이로 국제 공항에 도착을 하게 되었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 이집트에 대해 찾아보았을 때 생각한 것보다 자료도 많이 없고, 하나같이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던 터라 그런지 긴장을 바짝하고 있었다.
그러나 처음 내가 마주한 이집트는 긴장했던 만큼 험악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공항이라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있을 건 다 있는 꽤 괜찮은 시설이었고, 비자를 발급받는 일과 입국 신고서를 쓰는 것 모두 순조로웠다.
입국 신고서 작성을 마치고 짐을 찾으러 갔는데, 선민이의 배낭커버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바르샤바에서 이집트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 우리 배낭을 싣고 있는 것을 함께 보고 있었는데, 그 때 벗겨진 선민이의 배낭커버를 밑에 막 쑤셔 넣었던 것이 화근이 되었던 것 같다. 배낭커버를 되찾기 위해 선민이와 택연이랑 공항 직원들에게 가서 물어봤는데 물어볼 때마다 다 자기 소관이 아니니까 다른 사람을 찾아가보라며 책임을 전가했다. 6명 정도 되는 직원들을 붙잡고 물어보았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고, 결국 찾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이집트 사람들은 ‘직업 정신이고 뭐고, 일단 모르니 다른 사람들에게 넘겨주자.’와 같은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선민이의 배낭커버를 결국 찾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보니 우리를 노리는 택시 기사들이 한가득이었다. 흔히 ‘삐끼’라고도 부르는데 그들과 기싸움을 할 생각에 두려웠다. 이론과 실전은 다르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노련한 택시 기사들과의 흥정은 쉽지 않았다. 이미 담합 마냥 택시 기사 아저씨들끼리 어느 정도 합의를 본 건지 좀처럼 다들 가격을 내릴 생각을 안해서 그런지 흥정하기가 더 힘들었다.
괜찮은 가격에 하는 것 같다가도 인원 수가 안되거나, 설명했던 차보다 훨씬 작은 경우가 많아서 우리는 여러 차례 다시 공항 앞으로 원상 복귀했다. 삐끼들과 실랑이를 벌이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무조건 단호해야한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가격보다 높거나 차가 작으면 바로 돌아서야한다. 그러면 결국 가격을 깎고 다시 붙잡으러 온다. 그렇게 약 1시간 반정도의 실랑이 끝에 겨우 타협을 마치고 택시를 탔다.
인원을 나눠서 택시에 탔는데, 우리 택시에는 유심이 있는 핸드폰이 없었다.(여행 다닐 때 한명을 제외하고 유심 없이 와이파이에 의존해서 살았다.) 낯선 땅, 낯선 사람들로 가득한 이곳에는 우리와 유심 없는 휴대폰이 전부였다. 굉장히 불안해서 제대로 숙소에 갈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걱정된 마음들은 금새 놀라는 마음으로 덮혔다. 신호등도, 차선도 없는 굉장히 프리한 이집트의 교통.. 사람들은 그냥 도로를 지나다니고, 차는 그냥 걸어다니는 사람들을 피해서 간다. 깜빡이도 없이 그냥 끼여든다. 마치 무질서 속 규칙이 존재하는 느낌이랄까? 이러한 교통 속 마침내 우리는 타흐리흐 광장에 도착했다.
밤의 이집트는 길거리에서 시샤를 피는 사람들과 시샤 냄새로 가득했다. 숙소로 가는 길마저 흉흉했다. 분명 지도에는 여기가 우리의 숙소라고 뜨는데, “여기가 숙소가 맞아?”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먼지를 뒤집어 쓴 건물이 우리의 눈 앞에 있었다. 그치만 일단 밤이 너무 늦었고, 미리 예약을 해놓았던 터라 큰 문제 없이 들어가겠거니 했는데, 그것 역시 오산이었다.
장시간 비행과 오랜 시간동안 이어진 흥정, 또 무거운 배낭을 들고 왔던 터라 모두가 지쳐 있었는데 갑자기 숙소 측에서 '너무 늦게 와서 예약한 방을 이미 내주었고, 내어줄 수 있는 방이 1개 밖에 없다’는 어이없는 말을 전해주었다. 사람은 17명인데 방이 하나밖에 없다니.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시간은 새벽 1시가 지나 있었고, 비용도 이미 지불했고, 무엇보다 저 흉흉한 길을 다시 돌아가 숙소를 찾을 힘이 없었다. 정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잘 하지도 못하는 영어를 사용해 필사적으로 항의를 했고, 원래 예약한 4개의 방을 돌려받지는 못했지만 일단 2개의 방을 얻어낼 수 있었다. 우리는 방 2개에 여자 8명, 남자 9명 이렇게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이집트 공항에서 숙소까지 찰나의 시간들이었지만 역시 이집트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