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취한다, 근데 국빵부 장관, 이 버튼은 뭐야?'
시장상황에 대응할 수 없다. 외부 인사들이 국내정치를 신뢰하지 않음
슬프게도, 정치적인 공백은 시장 상황 대처에 대한 공백을 가져옵니다. 이상하죠? 정치인 몇 명이 문제를 일으켰다는 이유로 내 돈이 우왕좌왕하다니요. 앞선 여러 이야기에서 말했듯 돈은 그 실체가 ‘유동성’ 즉 움직임 그 자체입니다. 움직이는 방향과 속도는 여러 가지로 나타나지만 유동성에 대한 권한과 명령은 우리들의 정치 속에서 발현이 됩니다. 전세와 채권 이야기에서 언급했듯이, 실제로 돈다발이 어디에 있느냐는 딱히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불할 수 있고, 내가 살 수 있고, 내가 돌려받을 수 있다는 약속, 신뢰가 유동성의 근본 가치입니다. 그리고 이 근본가치는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를 대표하는 정치인이 그 권한을 휘두릅니다. 정치인들은 돈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돈을 움직일 수 있다는 거죠. 그 아이러니가 우리 유동성의 신뢰를 증폭시켜줍니다.
계엄으로 인해 이제 우리 정치적 상황이 사실상 멈추었습니다. 멈추었다는 말은, 우리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거죠. 외국의 외교 사절단은 물론이거니와, 사기업의 여러 실무진들도 한국에 오려고 하지 않게 됩니다. 그들에게 대통령이 누구냐, 그 대통령의 성향이 어디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믿을 수 있느냐는 거죠. 지금 쓰는 계약서가 내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확신을 그들에게 어떻게 줄 수 있습니까? 불가능합니다. 물론, 억울하죠. CNN과 BBC에는 연일 군인과 경찰이 국회의원들을 밀치는 장면과 수만 명이 여의도와 광화문, 지방 각 중심지에서 모여 응원봉과 휴대폰 플래시를 드는 모습이 나옵니다. 당분간은 그 누구도 대한민국을 신뢰하지 않을 겁니다. 이것은 우리 통장에 돈이 한 푼도 없다는 것과 비슷한 의미를 가집니다.
거의 무제한에 가까운 양적완화
그러다 보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한국에서 이탈하려는 자금을 막아야 합니다. 주식을 팔고 나간다? 그건 푼돈입니다. 아주 다양하고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자금이 이탈하게 될 겁니다. 이에 한국은행은 150조 규모의 채권매입을 약속했습니다. 한국은행이 ‘당신이 돈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빌려드리겠습니다 우리 능력 있어요’를 보여주는 겁니다. 세간에 도는 달러 막으려고 150조 썼다는 틀린 말입니다. 이 유동성은 금융기관에게 ‘약속’ 한 것이고, 달러 방어를 위해서는 그런 약속으로는 할 수 없겠죠? 게다가 포지션이 들통나면 안되니까, 자세한 금액이나 시기, 방법 등은 뉴스에 나오지 않습니다. 즉, 150조 + 수조 혹은 수십조가 더 들고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그 150조를 당장에 쓰는 상황은 아니긴 합니다. 어쨌든, 역외 거래(NDF)에서 외환이 두들겨 맞고는 있습니다만, 그것은 외인들만의 그들만의 리그입니다. 한국의 외환거래는 꽤나 폐쇄적인데. 환율 방어를 위해 그렇게 만들어 뒀지만, 이런 비상사태에는 낮에 방어하면 밤에 홍콩에서 외국인들한테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웃기는 모양새가 되고 있습니다. 밤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외국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으니, 낮에 아무리 서울외환시장에서 방어를 해도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기만 하는 형국이 되는 거죠. 결국, 달러가 있어야 외환이 방어가 되는 만큼, 달러를 찍을 수 없는 한국은행은 지는 싸움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피해는 내국인이 보게 되지만, 그 키는 외국인이 쥐고 있다. Msci 비중, 공매도는 여전히 금지될 것
위에서 말한 ‘주식은 푼돈’이라는 말을 했지만, 금액이 적다는 거지, 외국 자금의 대한민국 엑소더스라는 면에서는 다를 바 없습니다. 신뢰가 없는 곳에서 손절은 너무 당연하죠. 대한민국은 세계 11위 경제 대국입니다만, 문제는 대한민국이 MSCI지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나도, 너무나도 미미 하다는 겁니다. 비중이 작은 데는 아주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것은 차치하고, 당신의 포트폴리오에 비중이 작은 자산이 급락하면 어떻게 하시나요? 어떻게 하긴요 팔아버리고 엔비디아나 구글 사아죠. 지금 대한민국이 딱 그런 상황입니다. 이머징 마켓의 숙명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타 동남아 국가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신뢰를 바탕으로 국제 경제질서에 편입되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장장 30여 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IMF, 닷컴 버블, 리먼사태, 코로나 위기까지 모든 위기를 국제 질서가 요구하는 대로, 그들이 신뢰할 수 있는 방법대로 이행해 주었기 때문에 미약하나마 MSCI지수에 편입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단 6시간 만에 우리의 국제 신뢰도를 약 30여 년 전으로 되돌려 버렸습니다. 지수에 편입이 된 이상 우리는 국제 금융시장의 결정을 따라야만 합니다. 너무나 아프지만 우리의 가치는 급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받아들여야만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MSCI지수에서 아주 작은 포지션을 차지하는 이유 중 하나가 공매도를 자유롭게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면 믿으시겠어요? 이것은 우리의 환율 거래와 폐쇄성과 완전히 연결되는 지점입니다. 외국인 입장에서 ‘아니.. 달러를 갖고 들어가는 건 마음대로인데, 가져나가는 건 허락 맡은 시간에만 해라?’ 받아들이기 힘들죠. 게다가 금융선진국이라면 모든 나라가 자유롭게 허용되어 있는 공매도가 매우 제한적이다? 매력적이지 않죠. 다들 아시다시피 이 정권 이후 공매도는 전면적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이유는 공매도 세력이 대한민국 주가를 어지럽힌다는 이유에서였죠. 하지만, 국장에 투자하신 여러분들 다들 아시잖아요. 진짜 공매도 때문에 우리 증시가 이렇게 꼬라박았나요? 아니잖아요. 공매도를 금지시킨 게 ‘주가가 떨어져서’ 이기 때문에, 계엄으로 인한 주가 하락이 급속화 되는 이 순간 공매도는 여전히 금지될 겁니다. 외국인들은 더더욱 나가려고 할 겁니다.
채권과 외환, 국내 사기업의 연쇄적인 가치하락
이 사달이 나기 직전, 한국은행은 금리를 0.25% 인하했습니다. 제가 금리가 인하되면 채권 가격이 어떻게 된다고 했죠? 네. 채권 가격이 ‘상승’ 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떠나고 싶은 자금이 생기면 어떻게 하나요? 원화를 쥐고 있기 싫으면 채권을 팔겠죠? 채권을 빨리 팔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채권의 가격을 ‘낮춰서’ 팔면 빨리 사겠죠? 채권의 가격이 낮아진다= 금리가 오른다 와 같은 효과를 가져옵니다. 한국은행장님은 이것 때문에 아마 잠도 안 오실 겁니다. 여러 논란이 있지만, 가장 큰 손해는 여기서 오는 거라고 봐도 무방 할 겁니다. 한국에서 움직이는 자산 중 가장 큰 덩치가 채권이니 당연하죠. 채권을 판 사람들은 그 돈으로 달러를 사려고 하고, 달러를 원화로 사려고 하니, 원달러 환율은 더더욱 가파르게 오릅니다. 진심으로 나가고 싶은 사람이 다 나갈 때까지는 환율이 박살 나는 것을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한국은행 입장에서는 외통수에 걸린 거죠.
하물며, 일반 사기업들은 어떨까요? 이를 대처할 수 있나요? 없습니다. 그냥 앉아서 두들겨 맞아야 됩니다. 삼성 현대 LG는 물론이거니와, 중국에 카리나 틴트를 박스로 납품하는 업체까지 모든 업체에서 거래 일시 중단통보를 받았을 겁니다. 환율이 이렇게 일방적으로 박살 나는데 외국인 입장에서 지금 물건을 받아야 될 필요가 있나요? 내일이면 환율 더 작살나서 나는 같은 돈으로 틴트를 4개 더 받을 수 있게 될 텐데? 뭐 모르는 사람들이야 ‘아니 달러 비싸지면 우리가 받는 돈이 많아지니까…’ 하는데 그것도 경기가 괜찮을 때나 하는 소리죠. 지금 전 세계에서 물건 사겠다는 곳이 미국 밖에 없는데, 어라..? 미국은… 달러를 찍는 나라네? 기업 입장에서 계엄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도 없지만, 상대, 카운터 파티에게 괜찮다는 인상을 줘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계엄과 탄핵에 대해 어떠한 공식입장도 낼 수 없는 기업이 무슨 수로 상대에게 신뢰를 줄 수 있겠습니까? 그냥 앉아서 가치 하락을 두들겨 맞는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적인 불확실성은 단시간에 해결할 수 있지만, 경제적인 불확실성은 최소 연단위가 될 것
윤석렬 주정꾼이 6개월 안에 ‘질서 있는 퇴진’을 하겠다고 했다죠? 뭐, 믿지는 않습니다만, 네 그렇다고 치죠. 6개월이면 솔직히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너무 깁니다. 아마 예상컨대 사쿠라가 피기 전에 대선을 치를 거라고 믿습니다. 그렇게 되면 국내에서 정치적인 불안은 해소가 됩니다. 계엄 다음날도 출근하고 그날밤에 시위도 하는 사람들인데, 그렇게 끝난다면 우리 일상은 제자리로 돌아오겠죠. 하지만 외국인들이 본 그 충격적인 장면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아니.. 이제 대통령 술주정뱅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니까’라고 해봐야 외국인들이 이해해 줍니까? 전 대통령은 안경을 안 썼고, 현 대통령은 안경을 썼네 정도면 아마 한국정치에 굉장히 관심이 많은 사람 취급을 받을 겁니다. 이제 앞으로 기 수년간 외국인은 한국에 대해 ‘계엄의 위험이 도사리는’ 국가 취급을 받을 겁니다. 어떻게 하나요, 다시 신뢰를 회복하려면요,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이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보편적인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는 것임을 증명하면 됩니다. 불법적인 계엄을 법치주의가 ‘처단’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됩니다. 그리고 그 방법은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탄핵입니다.
이를 다 하고 나면 외부에서의 시각이 어떻게 변하는지는 우리의 소관이 아닙니다. 그저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고통의 시간이 꽤나 오래 지나고 나면 우리 경제가 어느 정도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