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약 없는 만남
에피 3.
불쑥 나타날 거야, 언제나처럼
내가 모델일을 하면서 해외를 떠돌아다니기 시작한 건 바야흐로 2016년 여름, 퇴사와 동시에 밀라노로 떠나면서부터였다. 계약직인 듯 아닌 듯한 애매한 포지션으로 거의 2년 가까이 다닌 회사를 퇴사하기로 마음먹은 건 회사를 다닌 지 1년이 지나면서부터였다. 회사 컴퓨터 앞에 앉아 일도 하면서(강조) 틈날 때마다 패션쇼를 찾아보던 나를 보며 마음 한편에 아직 모델일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음을 깨달았다.
한 번은 반차를 쓰고 서울패션위크 오디션을 보러 갔는데, 마침 그곳에서 대기 중이던 어떤 모델과 우연히 스몰토크를 하게 됐다. 그런데 세상에나 알고 보니 나와 같은 나이에, 이 친구 역시 당시 회사를 다니고 있던 직장인이었고 나처럼 반차를 쓰고 캐스팅을 보러 왔다는 것이 아닌가? 곧바로 우린 서로에게 본능적으로 동지애 같은 것을 느꼈고, 그렇게 모델 동료이자 라이벌이 되었다. (여담으로 이 모델 친구도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아무튼 이후에 나는 퇴사를 하고 밀라노에 갔고, 밀라노패션위크를 위한 캐스팅을 돌던 어느 날 평소처럼 캐스팅하는 장소에 도착했는데 어디서 많이 본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바로 앞서 말한 그 모델 친구였다.
우린 이렇게 또다시 밀라노에서 마주치게 되었다.
간간이 소식을 들어 약간의 근황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꾸준히 연락을 했던 사이는 아니었기 때문에, 우린 서로를 굉장히 반가워했다.
캐스팅 시즌부터 쇼 시즌까지 한 달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나와 이 친구는 거의 매일을 만나다시피 했고, 서로의 넋두리를 밀라노의 두오모성당 모퉁이에 있는 카페 파스꾸찌(Pasccucci)에 남겨둔 채 밀라노에서의 첫 도전을 마무리했다.
밀라노에서의 시즌이 끝나고 나는 홍콩으로 이 친구는 다른 유럽권의 나라로 각자의 길을 떠났다.
두 번의 우연한 만남 뒤 기약 없는 헤어짐이 이어졌다.
이후 나는 홍콩과 싱가포르를 몇 번을 오갔고, 이 친구는 유럽과 유럽 사이를 옮겨 다니며 활동했다. 여러 해가 지나고 우린 파리에서 세 번째, 뉴욕에서 네 번째 우연한 만남을 가졌다.
그리고 이렇게 계속된 우연한 만남들은 인연의 끈이 되어 마침내 나와 이 친구를 친한 친구사이로 만들어주었다.
해외에서 모델일을 하는 사람들은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바로 '기약 없는 만남'과 '외로움'이 아닐까
모델의 스케줄은 매우 유동적이고, 나의 경우 철저하게 일을 1순위로 두고 있기 때문에 개인적인 일정을 미리 세우는 것이 어렵다. 하물며 당장 내일 다른 나라를 가야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나라를 계속 옮겨 다니다 보니 진정한 친구를 사귀는 것이 어렵다. 이러한 이유 등으로 같은 모델들끼리 혹은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기약 없는 헤어짐은 언젠가부터 너무도 당연한 부분이 되었고, 그에 따른 외로움은 덤이었다.
어느 정도 해탈의 경지에 이르면 내가 현재 있는 곳과 상대가 있는 곳과의 물리적 거리를 계산하면서 '우리 제법 가까이에 있다.'라는 식의 너스레를 떠는 여유도 생기는데, 그 너스레 한편엔 반드시 외로움이 묻어져 있었다.
타국에서의 외로움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모를 그 마음.
얼마 전,
한국에 있는 친구 한 명이 내가 있는 곳으로 여행겸 나를 만나러 왔다.
짧았지만 강렬하게 몇 박을 함께 하고 친구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던 날 택시를 타기 직전에 내가 한 말이 있다.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또 보자! "
그 친구는 후에 나와의 통화에서 그 말이 귀에 박혔다고 했다.
나는 모델일을 하면서 항상 그런 마음으로 나의 주변인들을 대해왔던 것 같다.
언젠가 엄마에게 간다고 말하지 않고 비행기를 타고 불쑥 집에 간 적이 있었다. 그러곤 또다시 기약 없이 떠나 던 날 '우리 쿨하게 헤어지자~ 다녀오겠습니다~' 하며 집을 나섰다. 떠나는 이 보다 남겨질 이들의 헛헛함이 클 것을 알기에 진지해지고 싶지 않았다. 애써 씩씩한 척을 하는데에 에너지를 다 쓰다 보니 다시 혼자가 되는 나의 마음을 보듬어 줄 여력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내가 선택한 이 일을 너무도 사랑하지만 한 번씩 마주하는 외로움을 홀로 감당하는 것이 이따금씩 벅차기도 했다. 이 친구가 한국으로 돌아가던 날 역시 나는 애써 담담하게 이별을 받아들였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다음 만남을 기약하면서.
안정감 없는 이 삶을 감히 추천하진 않겠다.
하지만 그래도 좋지 아니한가, 적어도 나는 오로지 나의 선택으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며 살아가니까.
(라고 스스로에게 심심한 위로를..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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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같이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작별 인사를 한다.
엄마에게도 안녕
친구에게도 안녕
내가 사는 동네에도 안녕
한국에도 안녕!
나는 또 불쑥 나타날 거야, 언제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