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7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홍콩 3일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

by 미코더 Mecorder Mar 08. 2025


 미뤄뒀던 일은 결국 다시 내게 돌아오게 되어있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 어떻게든 끝내려고 했으나 늘 그렇듯 여행을 시작도 전에 걱정할 것들이 한아름이라 계획했던 대로 일을 끝내지 못했다. 개운치 못한 감정으로 홍콩에 입국했으나 막상 공항에 내려 코끝에 낯설지 않은 향신료 향이 닿았을 때는 갑자기 마구 설레기 시작했다. '맞아, 이런 향이었지!' 공항버스에 올라타자마자 길 안내 표지판을 대충 찍어서 7년 전 같이 홍콩에 왔던 친구에게 바로 디엠부터 보냈다. '오자마자 네 생각이 났어.' 뱉어놓고 나니 너무 로맨틱한 대사 같았는데 사실이었다. 그때 느꼈던 감정은 진짜 순수한 낭만 그 자체였다. 아마 또다시 홍콩에 온다고 해서 그 기분을 느끼지 못할 테니까. 완전히 1회성의 감정인 거다. 그냥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7년 전의 시간이 마구 떠올랐다. 



 7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그대로라고 생각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래도 꽤 변했다. 가장 큰 변화는 막 새내기였던 내가 휴학을 2번을 하는 여유까지 부리며 졸업을 했다. 원치 않았지만 할 수밖에 없었던 음식점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벌이가 크게 다르진 않다. 내가 떡볶이를 먹고 싶을 때 사 먹을 수 있는 정도). 미국과 유럽을 장기 여행으로 두 번이나 다녀오기도 했다. 비행기 타는 것만으로도 긴장이 되고 설렜던 첫 여행과 달리 이제는 여유롭게 라운지를 이용할 줄도 안다. 무엇보다 여행하는 방식이 굉장히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계획했던 곳 중에 한 군데라도 가지 못하면 그게 그렇게 가슴이 아팠는데 지금은 계획조차 없다. 그냥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움직인다. 놓친 것도 크게 아쉬워하지 않는다. '언젠가 다시 오면 되니까.' 물론 체력도 많이 변했다. 하루에 3만 5 천보에서 4만 보는 거뜬했던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체력 이슈 때문에 불가피하게 운동도 시작했다. 운동이라 하면 그저 다이어트의 목적이었던 내가 생존을 위해 시작하게 된 거다. 그러다 요가를 만났고 이번 여행까지 결심하게 됐으니 삶은 전부 여행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반면에 그대로인 것들도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나는 사회적 표면상 여전히 백수다. 20대 초반에 지독했던 가난에서는 벗어난 것 같지만 나는 여전히 지금도 가끔 돈에 허덕인다. 또래 친구들처럼 직장에 다니며 고정적인 수입이 있지 않기 때문에 늘 불안함을 내재하고 있다. 영어 공부는 매년 새해 다짐으로 적어놓지만 7년째 중3 영어 실력을 유지하고 있다(사실 그때만큼도 못하는 것 같다). 뭐든 진짜 간절해야 배우는 것에 몰두하는데 여행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가면 여행지의 낭만만이 떠오르고 불편했던 기억은 퇴화된다. 매번 여행 짐을 챙기면서 진짜 필요한 것만 가져가야지 생각하지만 배낭과 캐리어를 꽉꽉 채워 다니는 일도 변하지 않았다. 여행지도 사람 사는 곳인데 매번 '거기서 사는 건 비싸지 않을까?' 하는 촌스러운 생각과 함께 가방이 터지도록 물건을 챙겨 다닌다. 그리고 다시 여행지 와서 깨닫는다. 그래, 반은 비워왔어야 하는 건데. 하지만 여전히 이번 여행에서도 수하물이 넘칠까 봐 노심초사 가방을 들었다 놨다를 열 번은 반복했다. 



 오늘은 홍콩에 온 지 사흘째 되는 날이다. 10월 30일 수요일 오전 일곱 시 삼십 분. 지난 이틀간 미뤄놨던 일을 해대느라 이제야 일기 쓸 여유가 생긴 거다. 신선한 경험이긴 했다. 여행지에 오면 하나라도 더 구경하려고 애썼던 내가 호텔 방구석에서 노트북을 붙잡고 끙끙 앓다니. 그런 내가 신선했다 (뭔가 되게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아직 세계에 가보지 못한 나라들이 수두룩한 데 갔던 도시를 다시 오는 건 낭비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상하게 홍콩에 다시 오고 싶었다. 그때의 내가 그리운 건지 진짜 이 도시가 그리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많이 끌렸다. 어쩌면 이번 여행 메이트가 내게 홍콩 영화를 다시 볼 수 있게 물꼬를 터준 친구라 그런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아쉬운 마음도 있었다. 7년 전에는 '화양연화'를 보지 않고 홍콩에 와서 영화 속에 등장했던 차찬탱집을 가보지 못했다. 지금은 그 장소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당시에는 왕가위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일단 비행기에서 냅다 '중경삼림'부터 봤던 기억이 있다 (그랬던 내가 영화과로 졸업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당연히 다시 방문한 도시라 처음의 신기함과 신선함은 없다. 그때는 해외 경험이 많지 않기도 했고 그저 가로수만 봐도 '우와, 홍콩 나무' 하고 신기해했었는데 지금은 그렇진 않다는 것이다. 대신 내가 좋아하는 홍콩의 모습을 생각하고 발견하며 여행을 다니게 되었다. 도로 중간에 야자수가 빼곡히 세워진 모습, 미래도시 같은 현대식 건물과 어우러진 낡은 건물들이 빼곡하게 채워진 도심, 예전과 달리 많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드문드문 눈이 부시게 빛나는 네온사인 간판들, 목적지 없이 걸으며 도로에 즐비한 이층 버스만 봐도 그냥 '홍콩'인 거다. 



 막연한 인물을 상상하기도 한다. 이런 장소에서 이런 캐릭터가 등장하면 어떨까. 이런 이야기를 쓰면 재밌겠다. 혼자 우스운 상상들을 하며 걷고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면 뭔가 대단한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것만 같은 근본 없는 자신감도 생긴다. 



 보통 홍콩에서 사람들은 미식 여행을 많이 한다고 하는데 나는 그때도 지금도 사실 딱히 절대 못 잊을 음식을 만난 적은 없다. 7년 전에는 돈이 없어서 먹는 것을 가장 많이 아꼈다면 지금은 한국에도 홍콩에서 먹는 것만큼의 맛은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이다. 홍콩에서 지내는 3일 내내 딤섬을 격파하겠다고 친구와 다짐했으나 이틀 차인 어제 이미 포기 선언을 했다. 특유의 느끼함 때문에 금방 젓가락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맛이 없다는 건 아니고, 다시 다음날 아침이 되면 분명히 또 먹고 싶다니까. 희한한 일이다 (그렇지만 오늘 아침은 한국에서 챙겨 온 라면을 끓여 먹기로 했다). 



 나는 오늘 새벽 홍콩을 떠나면 정확히 49일 후에 돌아온다. 그래서 사실 사흘밖에 안 되는 시간을 여유롭게 사용했던 것도 있다. 그때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여행을 다니게 될지 궁금하다. 따지고 보면 3번 째 방문하는 거니까. '갔던 데를 뭐 하러 또 가냐'라는 생각은 이번 여행을 기점으로 아예 사라졌다. 갔던 도시를 또 보는 것은 그만큼 더 많이 보고 자세히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시간과 여유가 있다면 얼마든지, 이 시간에 있는 나와 훗날의 나를 비교해 가는 것만으로도 색다른 여행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짧은 일기]


2024. 10.28 



브런치 글 이미지 1


 라오스 여행 이후 1년 만에 탄 비행기. 나는 왜 비행기만 타면 잠이 쏟아지는지 모르겠다. 무서워해서 그런가. 진짜 헤드뱅잉을 해가며 기절하듯 잤다. 비행시간 3시간 30분 중에 3시간은 잔 듯. 애초에 일을 할 생각을 했던 게 말이 안 됐던 거다. 잠을 쫓아내기 위해 펼쳤던 발리 여행 책은 악수가 되었다. 옆 좌석에 앉아있는 낯선 사람과 나란히 머리를 부딪쳐가며 진짜 잠만 잤다. 



록에 딤섬록에 딤섬


 이번 여행에서 또 변한 점이 있다면 딤섬 취향이다. 난 평생 하가우파 일 줄 알았으나 이틀 내내 샤오마이가 제일 맛있어서 충격을 벗어나지 못했다. 사진 보니까 또 먹고 싶다. 얇은 피 안에 양념된 고기와 새우의 단짠 조합이... 쓰읍, 침 고인다. 


 사진은 록에 딤섬인데 관광객은 우리밖에 없고 다들 현지인 같았다. 그런데 가게 노래가 너무 힙합이라 딤섬 하나를 입에 넣을 때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먹었다. '너무 힙한데.', '그러게 진짜 너무... 너무 힙이다.' 이상하게 딤섬은 내게 클래식 같다고... 



브런치 글 이미지 3


 홍콩에 오기 이틀 전부터 해야 하는 일은 안 하고 알고리즘에 뜨는 홍콩 여행 브이로그만 수십 개를 봤는데 공통적으로 추천해 주는 것이 몇 가지 있었다. 바로 이 레몬티! 가격은 약 2천 원 정도인데 상큼함과 달달함의 비율이 아주 좋다. 홍콩 음식의 느낌함도 싹 잡아줘서 평소에 음료수를 잘 안 먹는데도 많이 마셨다. 



 참고로 저거 사러 세븐 일레븐에 갔던 첫날, 친구가 품에 끼고 있던 물 한 병을 계산대에 올려놓지 않아 계산을 안 하고 나오는 실수를 저지르게 되는데... 나중에 호텔에 들어가서 깨닫고 나와 다시 편의점으로 돌아가 직원에게 미안하다고 이야기하고 값을 치르고 나왔다. 본인은 국제 범죄자가 될 뻔했다며 이제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호텔로 돌아가는 내내 웃었다. 우리의 고백에 화들짝 놀라던 편의점 직원의 얼굴이 아직도 기억난다. 아마 그때 우리 뒤로 줄도 길고 우리가 찾는 옥토퍼스 카드가 없어서 잘 안 통하는 대화를 길게 늘이다 보니 직원도 정신이 없어 발견하지 못했던 것 같다. 



브런치 글 이미지 4


 해외에서 배달시키는 걸 처음 도전한 건 미국이었는데 그때 한 번 물꼬를 트고 나니 이제는 그냥 궁금해서라도 배달음식을 시켜보는 편이다 (그때도 주소를 잘못 적어서 고객 센터랑 전화를 하고 난리가 났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이런 영어실력으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한 건지 신기할 따름이다). 


 마감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시킨 졸리비!!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들어올 때 우연히 눈으로 봤다. '필리핀에서는 맥도널드도 제패했다던데...' 어떤 블로그에서 본 후기 한 줄을 보고 바로 주문을 결심했다. 결론은 진짜 맛있음. 해외에 가면 경비 때문에 패스트푸드를 자주 찾는 내가 여행 다니며 먹은 패스트푸드 중 가장 만족스러웠다. 구성도 가격도 조화가 완벽... 약간 급식 맛이라고 해야 하나 ㅋㅋㅋ 새콤 매콤한 스파게티 먹으면 또 고소한 버섯밥이 먹고 싶고 그럼 짭짤한 치킨에 그레이비소스 듬뿍 찍어 먹고 싶고. 무한 굴레에 빠져 순삭 했다. 


 중요한 건 저거 먹고 마감하기로 했는데 못하고 그냥 배부른 채로 잠든 사람 됐음. 




2024. 10. 29



 어제 밥 먹고 그냥 잠든 죄로 눈 뜨자마자 노트북부터 오픈. 겨우 마감을 해냈다. 이미 개 피곤한 상태. 진심 눈가에 다크서클이 볼까지 내려왔다. 



브런치 글 이미지 5



 란퐁유엔 토스트. 관광객에게 유명한 맛집은 가라-라고 생각했지만 그냥 숙소 근처에 있어서 왔다. 다른 메뉴는 그냥 그렇고 이 토스트에 슈가 한 바퀴 싸악- 꿀 듬뿍 뿌려서 먹으면 아침부터 행복혈당 기가 막히게 오른다. 밀크티도 진하고 맛있었다. 열 두시쯤 가니까 대기도 없이 먹을 수 있었다. 굳이 대기하면서까지 갈 필요는 없는 거 같고... 나올 때 현지인들이 점심 해결하는 덮밥 집도 궁금했다. 




브런치 글 이미지 6












익청 빌딩. 모두가 상상하는 홍콩의 모습인 것 같은데 일부러 찾아와야 하는 게 조금 웃기다. 주민들은 어떤 기분일지 궁금하다. 다른 것보다 아파트 내부가 궁금했다. 그래도 사진 한 장에 홍콩 감성 제대로 충전했다. 







브런치 글 이미지 7










익청 빌딩
益昌大廈











어떻게든 사람 없는 곳에서 담아보려고 노력하는 나. jpg어떻게든 사람 없는 곳에서 담아보려고 노력하는 나. jpg




 여행지에서 사진에 집착하지 않고 충분히 눈으로 담으려고 노력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안 난다니까? 그래도 찍어와야 남는다. 기록에 게으른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사진만큼 소중한 문명이 있을까.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내가 갔던 장소의 날씨와 공기까지 전부 떠오르는 곳이 있다. 물론 봐도 기억 안 나는 곳도 있다. 그래서 더 소중해. 사진은 없는 기억도 증명한다.







브런치 글 이미지 9



 나는 홍콩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게 두 가지 있다. 이층 버스, 빨간 택시. 물론 가격 때문에 타는 일은 없지만 그냥 사진만 찍어도 내가 홍콩에 왔다는 걸 제대로 실감할 수 있는 좋은 오브제처럼 느껴진다. 




Alchemy OriginAlchemy Origin



커피 값이 비싼 홍콩에서 커피도 사 마셨다!

롱블랙 라지 사이즈가 한화로 8천 원 정도 되었는데 건물이 워낙 깨끗하고 카페 인테리어도 너무 예뻐서 더위 식히기에 좋았다. 


다른 것 보다 손을 가져다 대면 열리는 자동문 화장실이 제일 신기했음. 뭔가 초능력자가 된 기분이랄까 크크크. 나는 대체적으로 과거의 것을 그리워 하는 사람인데 또 이런 거 보면 사족을 못쓴다. 그냥 재밌잖아. 마법사 된 거 같고 그렇잖아. 푸하.



브런치 글 이미지 11



 센트럴 피에르 - 침사추이 피에르로 넘어가는 페리. 시원한 바람맞으며 바다를 건너는데 교통수단 자체가 너무 낭만이다. 예전에는 저녁에 탔던 것 같은데 이번에 타니까 생각보다 멀미가 심해서 다시 도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딤딤섬딤딤섬


록예 딤섬이 그렇게 만족스럽지 못해서 다시 찾은 딤섬집. 록예보 다는 맛있었지만 아직까지 '제일 맛있다!' 이 정도는 아니다. 가지 딤섬은 처음 먹어봤는데 느끼한 속에 매콤한 마라 소스가 들어가니까 맛있어서 다른 딤섬도 저 소스를 묻혀 먹었다. 우히히. 





카도라 베이커리카도라 베이커리


 딤섬을 먹고 나오는 길에 발견한 푸딩 빵집. 비닐봉지에 하나씩 낱개로 포장되어 있는 걸 집어 들었는데 직원분이 우리가 관광객이라는 걸 눈치채시고는 박스에 담아주시겠다며 정성스레 포장을 해주셨다. 친절 맥스. '푸딩이 어떻게 빵...?'이라고 생각했으나 생각보다 잘 어울렸다. 에그타르트 같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푸딩 맛...  근데 진짜 빵이야...  커스터드푸딩 좋아하면 맛있을 거다. 





 의외로 초코도 맛있었음. 뭔가 쌉싸름한 초코향이 달달한 푸딩맛을 잡아줘서...  어쨌든 한 번쯤 먹어볼 만한 맛!


 + 우리 앞에 계산하시던 분은 돈을 왕창 바닥에 흘리셨는데 많이 당황하셨는지 계산한 빵까지 놓고 가시길래 직접 붙잡아 빵을 전해드렸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은 도망이다 2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