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발령 받은 학교에서학생부라는 부서에 근무를 하게 되었다. 주로 젊은 선생님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퇴직 1, 2년 정도 남은 남자 선생님도 한 분 계셨다. 인성교육을 담당하셨고 특이하게 아침 조회시간에 명상의 시간을 운영하셨다.그만큼이나 조용하시고 차분한 분이셨다.
담임으로써 아침조회시간에 방송이 나오는 것은 반가울 수도 있고 한편으론 아닐 수도 있다. 나는 주로 후자였던 것 같다. 일단 아이들이 하기 싫어 했었고 전달사항이 있을 땐 시간이 부족하기도 하고 시끄럽기도 했다. 무엇보다 명상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고 같이 따라하기 솔직히 좀 창피했었다.
그 선생님은 그런 아침명상시간을 1년 내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꾸준하게 해오셨다. 마지막엔 항상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라는 멘트를 꼭 하셨었다. 그래서 이 멘트는 그 분의 별명처럼 불렸었고 항상 수업 시간이나 기타 학생들은 물론 어른들에게 이야기를 하실 때도 끝맺음으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라는 말씀을 하셨다.
2014년 10월 31일 아침, 그렇게 여느 때와 같이 약간의 소음과 함께 어수선하게 시작된 아침 명상시간...
평소 같으면 자세를 바르게 하고 눈을 감으라고 말씀하셨을텐데 목청을 가다듬으시며 10월의 마지막 날이라며 노래를 한 곡부르겠다 하셨다.
그렇게 교내 방송으로 노래 전주가, 선생님 목소리가,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 흘러나왔다. 아이들은 웃기도 하고 히히덕거리기도 했지만 곧 조용히 노래를 같이 들었다. 이용처럼 잘 부르시진 않았다. 가을의 운치가 느껴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어찌보면 인생이라는 계절 중 가을 쯤, 시월의 어느 마지막 날 쯤을 달리고 계셨을 60세가 넘으신 어느 선생님의 애절한 진심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2024년 10월 31일,
둘째 유치원 등원을 시키고 여느 때와 같이 차를 타고 수영장으로 향하는 길, 라디오에선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 흘러나온다. 좋아하는 노래라서 항상 내 플레이리스트에도 포함되어 있고, 가끔 유투브로 옛날 라이브 영상도 보곤 한다.
매년 10월 31일이 되면 옛날 교내방송을 통해 흘러나오던 그 선생님의 애절한 진심의 잊혀진 계절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