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 할머니

차별에 대해서

by 숲속다리

캐나다에서 나는 수많은 이민자들 중 한 명일 뿐이다. 이민 후 캐나다에서 직장을 얻으려고 할 때, 지원한 회사들은 내가 한국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관심이 없었다. 캐나다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가 중요했다. 내가 지원한 직장들은 모두 내가 바로 일할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 캐나다에서 일한 경력이 없는 나와 아내는 경력이 그다지 필요 없는 단순노무직을 찾아보고, 나는 공장에서 아내는 가게 카운터에서 일을 시작했다.


공장에선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되지만, 가게 카운터는 간단한 영어를 말해야 하는 일이다. 한국에서 육체노동을 해보지 않았던 나는 일이 끝나면 몸이 힘들었고, 손님들을 상대하는 아내는 일이 끝나면 누적된 감정적인 스트레스가 힘들었다. 우리가 처음 정착해 살던 토론토는 워낙 이민자들이 많아, 일상생활에서 영어를 잘 못하는 것이 불편할지언정 창피하다 느끼진 않았다. 하지만, 아내는 매일 손님을 상대해야 하니 영어를 잘 못하는 것이 순간순간 자신의 자존심을 깎아내리는 일이었다.


어느 날, 아내가 일하는 가게에 한 백인 할머니가 찾아와 자신이 받은 서비스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아내는 늘 하던 대로 그녀를 상대했지만, 기존의 다른 손님들과는 달랐다. 아내가 영어를 잘 못해서 자신이 말하는 것을 제대로 못 알아듣는다고 아내 앞에서 대놓고 말한 것이다. 그 순간, 아내는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창피해서 뭐라고 대꾸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 백인 할머니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손님이 그녀에게 영어로 뭐라고 말했고, 그 말을 듣더니 그 백인 할머니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그냥 돌아갔다.


백인 할머니에게 그 손님이 했던 말이 어떤 내용이었는지 잘 모르지만, 아내가 똑똑히 들은 익숙한 단어가 하나 있었다. DISCRIMINATION. 전에 ESL 수업에서 들었던 단어였다. 차별이라는 뜻. 그때, 우리를 가르쳤던 선생님이 분명히 말했다. 사회에서 일하다가 차별을 당하면 곧바로 경찰에 신고하라고. 아내도 나도 이민자에게 영어를 잘 못하다고 말하는 것이 차별이라고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은 캐나다에서 명백한 차별이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아내는 그런 식으로 말하는 손님이 있으면 곧바로 말한다. 네가 지금 한 말은 분명한 차별이다. 계속한다면 난 경찰을 부르겠다. 그러면, 백 프로 그 손님은 아무 말도 못 하고 도망치듯 돌아간다. 심지어, 옆에서 그 모든 일을 지켜본 손님들이 아내가 경찰에 신고한다면 자신들이 기꺼이 증인이 돼주겠다고 말해주었다.


이민자로 살며 영어를 잘 못해 불편하지만 창피하지 않다. 정말 창피한 것은,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해 상대방을 깎아내리고 자신의 우월감을 확인하는 행동이다. 적어도 이곳은 그렇게 살 수 없다. 그 사실이 지금까지 내가 이곳에서 사는, 살 수 있는 이유들 중 하나다. 최소한 무엇이 잘 못 된 일인지 알고, 그런 일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하지 말라고, 사회가 제도가 이웃이 당당히 말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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