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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에는별땅에는꽃 Oct 18. 2024

M의 이야기

-M-

축축함이 느껴지는 공기 속 그 축축함을 견디다 못해 겨우 잠에서 깨었다. M은 겨우 몸을 일으켜 전날의 숙취를 몸으로 체감한다. 머릿속에 거친 파도가 들어차 있느냐 울렁이고 빈속에 연거푸 술을 마신 탓인지 속은 엉망이었다. 안방을 나와 주방으로 향했다. 주방은 컵라면 용기만 가득 차있고, 빈 플라스틱 물통, 술병으로 가득했다. 냉장고를 열어 액체로 된 것들을 찾아본다. 희미한 기억이지만 어제 취한 채로 1.8L 이온음료를 사 왔다.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다. 냉장고 옆에 있는 약봉투를 열어 아침이라 써져 있는 약을 이온음료와 함께 마셔 삼킨다. 


어제 어떻게 집에 왔더라.. 매일 가던 백반집에 가서 늘 마시던 소주 3병 맥주 1병을 마셨다. 점차 필름이 끊기는 빈도수가 많아진다. 몸보다 먼저 뇌가 맛이 가는 걸까.. 거실에 있는 시계를 확인하니 8시를 향해 있다. 거실 소파에 나란히 벗어져있는 정장과 셔츠를 그대로 입고, 새 양말을 하나 내어 신는다. 욕실로 가서 대충 세수와 양치를 하고, 물로 머리를 정리한다.


9시까지 가야 하지만 회사까지는 지하철 한 정거장, 그냥 걷기로 한다. 지금부터 걷는다면 충분히 갈 수 있다. 술도 좀 깨야 했다. 술을 다시 입에 대기 시작하면서, 차는 오피스텔 주차장타워에 고이 모셔져 있다. 차를 쓸 일이 없었다. 대신 걷고 또 걷게 된다. M은 회사 영업팀 과장이다. 6년 차.. 그냥 크지도 작지도 않은 회사다. 


29살에 입사를 해서 지금껏 다녔다. 그냥 매일 하던 일을 한다. 특별한 사고도 이벤트도 없는 하루. 그런 하루를 오늘도 견뎌야 했다. 회사 앞에 가서 아이스커피를 하나 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로 올라간다. 다들 업무 준비를 하느라 바쁘고, 전날 있었던 이야기나,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이야기하느라 정신이 없다.


M은 그냥 구석에 있는 자신의 자리에가, 눈을 감고 9시가 되기를 기다린다. 9시부터는 늘 하던 일을 시작한다. 각 팀과 조율을 하고, 회의를 한다.


점심시간이 되어 각자 무리 지어 점심식사를 하러 간다. M은 그냥 옥상에 올라가 담배를 한대 태운다. 해가 쨍쨍하다. M은 이런 쨍쨍함이 싫다. 간단하게라도 배를 채우려 하다, 이내 식욕이 없어 그냥 회사로 올라온다.


오후 내도록 업무가 이어진다. 쳇바퀴 돌듯 권태로움을 느끼는 M이지만, 다른 직원들은 마치 사활이 걸린 것 마냥 열정들이 대단하다. M은 자신도 저런 시절이 있었을 거라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나의 열정의 불꽃은 땔감이 떨어졌을까. 왜 불을 지피지 못할까. 


아직 살아갈 날이 많은데 한없이 무기력감을 느끼는 자신의 모습에 갑자기 호흡이 가빠오고 식은땀이 흐른다. 가끔 이럴 때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공황상태가 돼버린다. 지어온 약 중 저녁약을 물과 삼키고 화장실로 가 찬물로 세수를 하고 또 해본다. 회사 복도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호흡을 가다듬고 또 가다듬어 본다. 


약기운이 살짝 올라오는지 수그러드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버티다 보니 퇴근시간이 다가온다. 퇴근 시간이 되자 저마다 인사를 하고 남아있는 이들을 두고 퇴근을 한다. M도 잠시 남아있다 이내 집으로 향한다. 


오늘 하루도 버텼구나.. 지나갔구나.. M은 집과 회사 사이에 있는 백반집에 들어선다. 소주하나 맥주하나를 잔과 함께 꺼내어 자리에 앉는다. 따로 주문하지 않아도 늘 먹던 정식을 가져다준다. 술만 마시지 말고 반찬하고 밥도 좀 먹어 총각. 매번 접시에 음식이 그대로 남아 있으니 매번 걱정을 한다. M은 예라고 답하며 소주와 맥주를 타서 한잔을 순식간에 들이킨다. 빈속에 술이 들어오니, 죽어있는 감각이 살아올라 온다. 


한참 계속된 가뭄 속에 내리는 비처럼, 그렇게 마른 감각을 적셔온다. 그렇게 연거푸 맥주 한 병을 비울 만큼 소주맥주를 섞어 마신다. 취기가 올라온다. K에 대해 생각한다. 그녀가 떠나 간지 3일이 지났다. 3일 동안 뭘 먹지도 못하고 술만 들이켜봤다. 


늘 삶의 무기력감을 빠져 있었다. 늘 술로 공허함을 달랬다. 그러던 어느날 한통의 전화가 왔다. 모르는 전화번호였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나야 오빠 기억 안 나? 나 K야. 갑작스러웠다. 어.. 무슨 일이야? K는 말했다.  아니 그냥.. 나 오빠 생각 많이 했었는데 갑자기 연락하고 싶어서 했어. 잠시 볼 수 있어? 부담은 가지지 말고. M은 답했다. 어…. 어딘데? 갈게. M은 그때도 취해있었다. 아마 취해있지 않았다면 가지 않았을까. 그럼 그냥 인연이 이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K와 M은 각각 20대 초반 20대 중반 무렵 알게 되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알게 되었고, K는 M에게 마음을 가졌다. 그렇게 마음을 두고 몇 년을 K는 M에게 마음을 줬다. 하지만 M은 마음을 열지 않았다. M은 그랬다. 사랑에 회의적이었고, 믿지 않았다. 언제나 인연의 영원함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적정한 거리를 두고 K를 만났다. K가 물었다. 우리는 무슨 사이야. 왜 오빠는 나를 안 사귀어. 나랑 사귀면 되잖아. M은 그런 K에게 나는 지금 누군가를 만나고 싶지 않아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점차 K는 멀어졌고 이내 연락이 끊겼다. 


몇 년 만에 만난 K는 많이 변해 있었다. 여성스러워졌고 자신감이 있어보였다. 학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열의에 가득 차있었다. 배움을 더 하기 위해 대학원도 다니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멋지다고 생각했다. 어느새 M은 K에게 빠져들었다. 뭐랄까.. 멋짐에 끌렸다. 권태롭던 삶에 그녀가 한줄기 빛처럼 보였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M은 K에게 편지와 꽃 한다 발을 내밀며 고백을 했다. K 역시 오랫동안 바랬던 M과 이제야 이뤄졌다고 기뻐하고 행복해했다. 함께 웃고 즐거웠다. 하루 중에 한 번도 웃을 일이 없던 M은 가끔 일을 하다가도 미소를 뗬다. 늘 K를 만나러 갔다. M은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에서 그녀를 더했다. 그러다 보니 그녀가 전부였다. 그녀를 위해 달려갔고, 그녀를 위해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공허함을 그녀로 채웠다.


반면에 K는 바빴다. 학원도 신경 써야 했고, 대학원도 마쳐야 했다. 공부도 해야 했다. 거기에 M이 더해졌다. M과 K는 그것부터 달랐다. M은 1시간을 운전해서 가더라도 10분을 볼 수 있다면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K는 그 1시간을 오로지 M 본인을 위해 쓰기를 바랐다. 


K는 점차 M의 내면에 있는 우울감과 불안감, 그리고 불면증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K는 늘 물었다. 무슨 생각을 하냐고, 술을 매일 마셔도 괜찮냐고, 이틀에 하루 정도 자는 것 같은데 생활이 가능하냐고, 오빠를 위해 다른 걸 해보고 싶은 게 없냐고, 배우고 싶은 것이 없냐고. M은 말했다. 나는 너만 있으면 된다고. M은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M은 스스로 생각했다. 누군가를 만나면서 이토록 잘 대한적은 없으니까 , 나는 잘하고 있다. 행복하게 해주고 있다고. 자신했다. 과거에 밀어내고 상처 줬던 것들을 몇 배로 보상해주고 싶었다. 


M은 평일을 챗바퀴처럼 보내고 주말이 와 K와 붙어 있는 시간만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술을 마셨다. 내면에 깔려있는 공허함을, K가 없는 시간을 술로 채웠다. K는 점점 지쳐갔다. 그랬을 것이다. M이 취하지 않은 척 했지만 늘 목소리에 취기를 느꼈을 것이다. 스스로를 돌보지 못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야망이나 욕심을 느끼지도 못했을 것이다. 


K는 그런 M을 떠났다. 뜨거운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시작될 무렵 안녕을 말했다. 머리가 띵했다. 여름을 그렇게 잘 보내고 왜? 그녀는 한참 전에라도 이별을 준비한 사람처럼 그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나의 우울감이 본인에게 영향을 준다고 했다. 그녀가 떠났다. 메마른 감정을 그만큼 적셔놓고 나를 떠났다. 


M은 K를 잡았다. 빌었다. 모든 걸 고치겠다고 했다. 스스로를 돌보고 술도 끊어 내겠다고 했다. 

그런 M에게 K는 말했다. 스스로 해보라고. 스스로 행복할 줄 알고 그렇게 바뀌고 내년에 연락하라고.


M은 멸치볶음을 하나 들어 씹어본다. 어느새 옆에는 소주가 한병 더 놓여있고 바닥을 보여 간다. 바닥을 보이는 소주를 소주잔에 가득 담고, 냉장고로 가 소주를 한병 더 가져온다. 반찬이며 밥이며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M은 이대로 한 병을 더 마실 것이고, 또 내일을 후회할 것이다. 문득 스스로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뭐 하는 짓이냐.. 이게. M은 생각했다. 오늘로 마지막으로 마시겠노라고. 집에 있는 술도 다 버릴 것이라고. 잠을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취침약을 먹으려면 술을 끊어야 했다. 집에 가서 술병부터 다 버리자 생각한다. 마지막병은 따지 않고 그대로 두고 계산을 하고 집으로 향했다. 


환기를 시켰다. 집을 청소해야 했다. 분리수거할 것들을 현관에 쌓고 쓰레기를 치운다. 냉장고에 있는 술을 모조리 변기통에 부어 버렸다. 플라스틱, 술병, 쓰레기들을 내려가서 버리고 왔다. 화장실 청소를 했다. 그리고 부엌도 청소했다. 거실과 침실을 걸레질했다. 그리고 먼지들을 닦고 또 닦았다. 땀이 범벅이 되었다. 샤워를 한다. 그리고 소파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핸드폰에 K의 사진을 바라보고 다짐한다. 내년까지 반드시 변하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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