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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ji Oct 15. 2024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면

괜한 죄책감으로 미안하고 불편한 마음이 들 때,



어젯밤 난데없이 노트북을 켜서 사진첩을 열었다. 궁금한 사진 몇 가지가 있어 잠시 확인만 하려 했는데, 밤이 가는 줄도 모르고 사진 속 추억 여행을 했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갔다.


우리 가족의 역사는 2009년부터 시작된다. 그때 남편과 만나 이듬해 결혼했다. 2년 후 큰 아이가, 몇 년 뒤 둘째 아이가 태어났다. 처음에는 시간 순서에 맞춰 사진들을 정리했었다. 하지만 둘째가 태어난 이후 삶의 가속도가 붙어 온갖 사진이 뒤죽박죽 섞여있다. 게다가 핸드폰으로 사진을 수시로 찍어내고 있어 10만 장도 훌쩍 넘는 양인 것 같다. 이제는 아무리 봐도 어떤 사진이 더 오래된 것인지 구분을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했고 하다못해 영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 사진도 생겨났다. 소중한 추억에도 망각 장치가 작동하니 서운하다. 


저장된 사진은 첫째 아이의 것이 아무래도 제일 많다. 첫 아이, 첫 여행, 첫 경혐... 첫 아이와 만든 '첫'이 셀 수 없이 많다. 사진 속 나는 어김없이 아이를 품에 안고 이마를 맞대고 있다. 따듯한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난, 영락없이 사랑에 푹 빠져 있는 모습이다. 개구쟁이의 귀여운 너의 얼굴도, 어린 부모인 우리들 모습도 지금 보니 마냥 예뻐 보인다. 

‘그래, 난 널 몹시 사랑하고 감출 수 없어 매일 표현했구나.’ 

당연한데 사진을 보고 새삼 다시 이 아이에 대한 나의 사랑을 깨닫는다.  


작년 학원에서 다녀온 큰 아이가 느닷없이 사랑스럽게 내 품을 파고든 적이 있다. 문득 이 아이가 포옹을 좋아했나 라는 생각과 함께 이 아이를 안아 준지 오래됐구나 라는 생각이 스쳤다. 둘째가 태어난 후로는 내 품은 주로 동생의 차지였으니 말이다. 그날 이후 사춘기를 목전에 두어 곧 엄마 품을 떠날 것 같은 아이를 수시로 안아주고 있다. 난 약간의 미안함과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사진을 보니 난 그동안 으레 부모라면 갖는 괜한 미안함을 품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는 너를 품고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널 사랑하고 있어. 이런 사랑은 내 생애 '첫'이야.' 



피식 웃음이 나오는 또 한 장의 사진을 발견했다. 새하얗게 함박눈이 덮여 있는 놀이동산 사진이다. 그 안에 코가 빨개진, 눈에 젖어 머리와 옷이 엉망진창인 우리 가족이 해맑게 웃는 모습이 이었다.  둘째가 태어난 지 한 달 여쯤 됐을 때다. 1월의 추운 겨울, 동생을 본 후 시무룩해진 첫째 아이를 데리고 야외 놀이동산 소풍을 감행했었다. 많이 추웠고, 함박 내린 눈이 녹아 찝찝했던 기억도 희미하게 떠오른다. 몸조리 중이라 주변의 만류에도 나는 기어코 거길 따라갔다. 지금 생각해 보니 대단한 모성애다. 눈 속에 파묻힌 사진 속에 우리는 마냥 즐거워하는 모습이다. 매서운 추위에도 서운했던 아이의 마음이 조금 녹은 날이었을까. 지금 너는 이 추억을 기억이나 할까.



무수히 많은 사진에는 행복이 한 장, 한 장 켜켜이 쌓여 있다. 인스턴트 하게 남겨진 많은 사진을 보며 ‘셔터를 적당히 눌러 야지’ 하기도 했는데. 가끔 꺼내어 보니 수많은 사진만큼 웃을 일이 가득하다. 같이 보낸 시간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섞여 있지만 사진 안의 우리는 그저 밝고 행복하고 평화롭다. 그때도 열심히 행복하게 지냈고 지금도 그때처럼 채워나가면 되겠구나. 켜켜이 쌓은 행복을 발판 삼아 단단하게 살아갈 미래를 그려본다. 누군가에게 미안할 때, 기억이 희미해질 때는 ‘행복’이 가득한 사진첩을 열어보자. 실루엣만 남아 희미한 추억에, 다시 선명하게 ‘행복’이라고 덧칠한다. 





아이에게 미안하다면, 어딘가에 남겨 놓은 추억을 찾아보세요.

아주 소소하고 사소한 것부터요. 작은 것에는 매 순간이라는 시간이 보태져 있더라고요.

사진첩에는 내가 아이를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들이 수없이 많았어요. 미안함과 죄책감이 가벼워졌어요.

저는 오늘 쓴 이 글을 첫째 아이에게 읽어줬어요.

어찌 보면 '사랑 고백 편지'가 된 거네요.

심드렁하게 받아들일 줄 알았는데, 무뚝뚝해진 사춘기 소년이 발그레한 얼굴로 웃어줬습니다.

추억을 쌓고 같이 꺼내어 보고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사랑을 더 단단하게 해 주네요.

오늘을 잊지 말아 주라~ 사춘기 무렵 내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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