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소중한 나를 위한 공간
결혼 후 10여 년간 전셋집에 살았다.
전셋집에는 뭐 하나 쓰는 게 아까웠다.
하지만 주방 식탁 등을 예쁜 것으로 바꾸고 싶어 이케아에서 저렴한 7만 원짜리 전등을 하나 사서 갈았다.
그 뒤로 그곳은 나의 애착 공간이 되었고 조금씩 그곳을 가꾸기 시작했다.
매일 해 먹는 음식도 조금 더 예쁘게 만들려고 했다.
무언가에 관심을 두고 가꾸는 것이 힐링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식탁'은 그렇게 나만의 애착 공간이 되었다.
몇 달 전 지금 사는 이 집으로 이사 왔다. 아는 사람도 없고 올 초 퇴직한 후라 줄 곧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는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식탁 앞에서 보낸다. 얼마 전 푹신한 소파를 구매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딱딱한 식탁 의자가 난 더 좋다.
여유 있는 한낮이면 거실 큰 창을 한 폭의 그림인 양 식탁에 앉아 감상한다. 평생 못 끊을 것 같은 커피를 내려 식탁에 앉는다. 창문과 커튼을 통과하는 은은한 햇빛을 바라본다. 몇 년간 키워온 식물이 이제는 키가 훌쩍 커버려 내 키에 닿는다. 햇살은 키다리 식물의 초록색과 조화롭게 어울린다. 매일 보는 모습인데 자연의 색상 조화는 매번 새삼스러운 행복감을 준다. 저 따스한 햇살을 머금고 아가 같던 여린 풀들이 저렇게 부쩍 커 단단한 모습으로 변했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을까. 난 식탁에 앉아 지내온 일상을 관망한다.
바쁘게 일하던 때, 주말이면 나와 가족을 위해 밥을 했다. 몸이 힘들지 않다면 배달보다는 직접 해 먹는 식사를 즐겼다. 평소에 해보고, 먹어보고 싶었던 음식을 기억해 두었다 시도했다. 기왕이면 음식과 어울리는 그릇에 담아 식탁 위에 플레이팅 한다. 내가 마치 센스 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 가족들의 입속으로 얼마나 빠른 속도로 들어가는지 시간을 잰다. 굳이 묻지 않아도 그들의 젓가락 순발력만 봐도 오늘의 요리 점수가 얼마인지 알 수 있다. 먹고사는 것, 매일의 일상이지만 정성껏 만든 음식을 차려놓고 사랑하는 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뿌듯하다. 난 식탁에 앉아 내게 주어진 사랑을 느낀다.
평일 저녁 퇴근 후에는 식탁에 멍하게 앉아 있는다. 가끔 거실에 노는 아이들을 보기도 하고 장단도 맞춰준다. 낮에는 나를 부르는 끊임없는 소리에 쫓겨 하루를 보냈다. 그에 대한 보상으로 맛있는 저녁을 나에게 준비한다. 어느 날은 쉰 김치 한 조각이 너무 생각나고 어느 날은 치즈가 듬뿍 들어간 느끼한 파스타도 생각난다. 그날의 메뉴 무드에 맞는 술 한 병을 따서 벽을 보고 앉는다. 식탁의 한쪽 벽면은 도화지처럼 하얗다. 그 위에 오로지 내 기호에 맞춰 걸어둔 그림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포근한 식탁 조명이 더해져 더 마음에 든다. 마치 매일의 의식처럼 머릿속을 비워냈다. '멍-------' 퓨즈가 나간 것처럼. '그래, 어쨌든 오늘도 잘 보냈어.' 라며 나를 도닥인다. 난 식탁에 앉아 열심히 애쓴 나를 응원한다.
식탁은 나만의 애착 공간. 조금씩 가꾸다 보니 나의 시각적, 경험적 취향을 충족해 주는 공간이 되었다. 가족과 함께 하면서 이곳에 앉아 혼자만의 시간도 같이 즐긴다. 바쁜 일상 속에 겨우 낸 '여유'와 '사색'의 시간은 식탁에서 이뤄진다. 삐그덕 거리는 삶이지만 이 시간을 통해 조금 더 유연한 사람이 되어 간다. 우리 가족들 모두 모르고 있다. 내가 얼마나 이 공간에, 이 귀퉁이에 애착을 갖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 난 오늘도 식탁에서 무엇을 즐길지 고민 중이다.
'공간 심리학'에 따르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만의 영역을 갖기 원하고 이러한 공간은 사람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나만의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취향대로 가꿔나가는 것은 우리에게 휴식과 안정을 준다. 내일을 살아가기 위한 회복이 있는 '나만의 애착 공간'을 만들어보길 추천한다.